유사역사학 사절



19세기 동아시아의 베스트셀러를 통해 보는 역사 지식의 한계 인도차이나 ~Indoc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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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동아시아의 베스트셀러를 통해 보는 역사 지식의 한계

이전 글에서 볼 수 있듯, 과거에는 수 많은 선서(善書)가 간행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읽힌 책이 있었으니 바로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이다. 

데이비드 K. 조던은 태상감응편을 영어로 번역하여 인터넷에 올렸으며, "후대 왕조시대에 살았던 대다수 중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문헌 유형은 선서였다"라고 한다.

"이와 같은 문헌을 중국 전역의 소형 출판사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수 백만 부 인쇄하였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사원의 '홍보 책자' 꽂이에 무료로 가져갈 수 있도록 비치하었다. 부자 뿐만이 아니라 상당히 검소한 생계를 꾸리는 사람도 시주한다는 의미에서 출판 비용을 부담하곤 했다. 선서에는 서문과 주석이 붙는 경우가 많았는데, 선서를 자주 읽거나 읊어서 큰 덕을 쌓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폴 카루스는 다이셋츠 테이타로 스즈키와 함께 20세기 초에 태상감응편을 번역하면서, "그 판본이 성경이나 셰익스피어 보다도 많다"고 말했다.


그 점을 감안한다면, 태상감응편이 그토록 유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에 있는 도서관에서 태상감응편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 흥미롭다. 굳이 찾는다면 카루스와 스즈키의 1906년 번역본과 제임스 웹스터의 1918년 번역본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WorldCat을 찾아보면, 과거에 출간된 한문본은 극히 드물다.

위 화면을 보면 아마도 1840년에 출간된 태상감응편을 전세계에 2개의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도서관 두 곳은...


...덴마크에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태상감응편은 인터넷 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며, 유튜브 버전도 있다.


그렇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수 세기 동안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출판된 책이 서양의 도서관에는 존재하지 않다시피 하다.

어째서일까? 아마도 태상감응편이 대중문화의 산물이고, 근년에 들어서야 서양권의 여러 도서관들이 대중문화를 눈여겨보기 시작한 까닭이 클 것이다.

20세기 초반에 서양에 여러 도서관이 설립되면서 장서를 수집하기 시작했을 때, 태상감응편과 같은 문헌은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되었다.


한편, 선서 문헌군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도 세계 곳곳에 있다. 예컨대 베트남에서는, 국립 도서관과 한놈원(Viện Hán Nôm) 모두 선서를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 학자들은 이제껏 이들 문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시피 하였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째, 민족주의로 인해 "중국" 문헌으로 보이는 문헌을 무시하게 되었다. 둘째, (대부분의 역사학자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헌들이 한문으로 쓰여있기 때문에 읽을 수가 없다. 셋째, 한문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역사학 보다는 (한놈) 문헌학 훈련을 받는 경향이 있고, 이러한 문헌군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해야하거나 무슨 말을 해야하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여기서 몇 가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선서라는 문헌군은 대단히 인기가 있었는데, 이런저런 이유에서 우리가 선서를 연구하지 않았고, 선서가 무엇인지, 선서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모른다면, 19세기 후반 베트남 사회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은 어떤 것일까?

당시 (베트남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가장 널리 읽힌 책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면, 서양 및 일본 학자들이 중국 및 대만 선서의 역사를 다룬 훌륭한 연구는 물론 있다. 다만 필자가 여기서 강조하려는 것은 베트남의 과거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 이와 같은 지식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의 지식은 무엇에 기반해있는가?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는 자료에 기반해있는가? (지구상에는 선서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도서관도 많다.)

사료 독해 능력에 기반해있는가? (선서 문헌군을 읽을 수 없는 역사학자들도 많이 있다.)


교훈 있는 결론을 짓자면, 태상감응편의 첫줄로 이 글을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본다.

"재앙과 복에는 따로 문이 없으니, 오로지 사람이 스스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禍福無門, 惟人自召)

또한 동일한 개념을 우리가 과거를 이해하는 방식에도 연결짓자면,

"역사적 지식에는 따로 문이 없으니, 오로지 우리가 스스로 찾아낼 뿐이다." (史智無門, 惟我自找)

그리고 그것을 찾음에 있어, 우리가 어디를 살피는지, 무엇을 살피는지, 식별하기 위해 어떤 지식을 갖추었는지, 무엇을 읽을 수 있는지 하는 것은 모두 우리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알 수 있는지 결정하는 요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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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조선의 태상감응편에 대해서는 본 블로그에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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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동두철액 2019/01/06 10:41 # 답글

    충격적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베트남 역사학자들 중 많은 수가 한문을 모른다는 것도 그렇고 중국문헌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저렇게까지 배척할 수 있는지...
  • 남중생 2019/01/06 11:21 #

    저도 설마 그 정도일까, 하고는 있습니다만 켈리 교수님이 베트남 학계에 대해 아무런 근거 없는 비난을 할리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좀더 알아보고는 싶습니다.
    또 한편으로 켈리 교수님은 신예 베트남 역사학자들을 두고 “한문으로 된 원사료를 읽고 책을 썼다”는 이유로 극찬을 하시기도 하기 때문에... 부정하기 어렵죠;;

    본문의 해당 부분에 관련글을 링크 걸어놓았는데, 한문을 못 읽는 베트남 역사학계에 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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