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베트남의) 황금 똥을 싸는 오리 이야기 인도차이나 ~Indochine~

Liam Kelley 교수님의 When Ducks Shit Gold in Giao Chỉ를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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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똥을 싸는 오리

어린 시절, 필자의 아버지가 "5달러 지폐로 담뱃불을 붙였다네"라는 제목의 책을 가져오신 적이 있다. 19세기 버몬트 주의 양 목장에 대한 책이었다. 

19세기 들어 수십년 동안 버몬트 주가 세계 양모 생산의 중심지였다. 메리노 종 양을 스페인으로부터 수입한 것이었는데, 세계 경제의 각종 사건으로 인해서 버몬트 양털이 세계 시장을 석권한 것이다.


버몬트 양 목장주들은 워낙 돈을 잘 벌어서 "5달러 지폐로 담뱃불을" 붙였다는 것이다. (그 시절에는 5달러가 큰 돈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거품이 꺼졌다. 호주에서 양을 기르기 시작했고, 거대한 양떼를 탁 트인 대지에서 기르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호주에서 양을 기르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 되어버렸다.

버몬트 주 사람들은 낙농업으로 돌아섰지만, 결코 양 목장을 하던 시절 만큼 수익이 나지는 않았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필자는 역사가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부와 번영이 19세기에 존재했다는 내용을 읽은 다음, 정작 주변을 돌아보면 그 부와 번영의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양을 방목하던 터의 경계를 따라 세워진 돌담 유적 정도가 남아있을 뿐이다.


쩐 꽝 득(Trân Quang Đưc)의 "천년의 의복(Ngàn năm áo mũ)"이란 책을 읽어나가면서 홍하 삼각주 지역에 자립적 정치체가 처음 등장한 시기(기원후 10~12세기)에 대한 정보를 접하였는데, 위의 책이 다시 떠올랐다.

쩐 꽝 득은 여러 송대 사료를 이용해, 옛 비엣 왕조가 다스린 지역에 금이 많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보를 많이 찾아낸다. 송대 사료에는 교지(交趾) 혹은 안남(安南)이라고 불린 지역이다.

예를 들어, 비엣 지도자들이 송나라 황제에게 공식 서한을 보낼 때, 글씨를 금으로 썼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지/안남 사람들은 송 제국의 남부지역에서 노예를 사들였다. (아마 금광에서 일하게 하려는 이유가 한 몫을 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쩐 꽝 득이 쓴 책의 주제인) 지배계층의 의복을 보면 금이 많이 붙어있었다.


필자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초창기의 비엣 왕조들은 크기가 작았고 다스리는 지역에서 권위를 세우려고 애썼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마 사실이겠으나, 필자가 여태껏 인식하지 못한 것은... 이 사람들이 부자였다는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거기 사는 누군가는 부자였다.)

이 사실을 똑똑히 보여주는 것으로는 쩐 꽝 득이 인용하는 주거비(周去非)의 영외대답(嶺外代答)에 나오는 구절만한 것이 없다. 영외대답은 12세기 송 제국의 남부 지역에 대한 책이다.

영외대답을 보면 송 제국과 교지의 경계는 강 하나로 그어진다고 말하는 구절이 있다. 또한 거위와 오리가 자유로이 교지 쪽으로 헤엄쳐 건너가 먹이를 찾다가 헤엄쳐 돌아오곤 했다고 한다.

돌아온 뒤에는, 거위와 오리가 흔히 하는 일을 했다. 똥을 싸는 것이다. 그리고 주거비에 따르면 배설물 속에는 금이 조금씩 들어있었다고 한다. 강물에 금이 (아마도 사금의 형태로) 얼마나 많이 떠다니는지 거위와 오리가 그걸 먹이와 함께 삼키고 집에 돌아와서는는 "배출"했다는 것이다.

[. . .vịt ngan bơi đến bến nước Giao Chỉ tìm ăn rồi quay về, trong phân có lẫn vàng, ở bến nước trong địa phận nước ta thì không có.]

...鵝鴨之屬至交趾水濱遊食而歸者, 遺糞類得金, 在吾境水濱則無矣。]


눈이 휘둥그레지는 이야기다!!

필자는 이 "황금 똥을 싸는 오리" 이야기가 정말 마음에 드는데, 이런 인식을 통해 교지에 황금이 발에 채일 만큼 널려있는 시대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버몬트 양 목장을 하던 사람들이 돈이 워낙 많아서 5달러 지폐로 담뱃불을 붙였듯, 12세기 교지의 사람들도 금이 워낙 널려있어서 자신들이 기르는 오리가 (또는 국경 건너편에 사는 사람들의 오리가) 금을 삼켰다가 똥으로 싸도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이처럼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을 때는 단점이 (혹은 반전이) 꼭 있다. 누군가가 벼락부자가 된다면 대개 누군가는 착취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버몬트 주의 양 목축업에도 어두운 면이 있었음에 틀림없고, 교지의 경우에는 송나라에서 사들인 노예들을 볼 때 마찬가지로 착취가 일어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양모나 황금 같은 생산품으로 얻는 엄청난 부는 교역망에 변동이 생기거나 자원이 고갈되었을 때 빠르게 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사람들의 삶에 충격의 여파를 남긴다.

오늘날 베트남의 오리들은 더 이상 황금 똥을 싸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어느 시점에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언제, 어떻게 변화가 일어났는지, 그 지역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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