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포이로(布爾爐)를 찾아서 (1) [특집] 유제품 시리즈

Recipes Project 합동 블로그의 The "Gentle Heat" of Boerhaave's Little Furnace를 번역합니다. 

반 년 전에 브루스 러스크 교수님의 글 Artifacts of Authentication: People Making Texts Making Things in Ming-Qing China소개하면서, 선덕로(宣德爐)라는 소형 화로를 소개드린 적 있습니다. 
15세기 초반인 명나라 선덕제 연간에 수없이 많이 제작되었다는 소문을 따라 이 앙증맞은 향로들이 중국 골동품 시장을 휩쓸었지만, 실상은 근거 없는 짝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선덕로는 16세기 말에 최고의 인기 골동품이 되고, 17세기 후반을 지나서까지 교묘한 문헌 위조가 이뤄졌죠.

이번 글에서는 또다른 "소형 화로"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선덕로 처럼 청동으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향을 내는데 쓰이기는 했습니다. 제가 감히 "포이로(布爾爐)"라고 한문 이름을 붙인 이 화로는 17세기 말, 네덜란드에서 처음 제작됩니다.

포이(布爾/)는 네덜란드어로 "농부, 평민"을 뜻하는 부르(boer)의 중국식 표기일뿐 아니라, 화로를 발명한 부르하버(尔哈夫)의 이름에도 들어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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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열기"를 내는 부르하버의 소형 화로

루벤 페르발(Ruben Verwaal)과 마리에케 헨드릭센(Marieke Hendriksen)

17세기 말, 화학을 대학 교과 과정에 편입하면서 학생들이 실험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실용적인 수요가 부상했다. 부드러운 열기를 제공하고, 연기가 나지 않고, 학생이 쓰기에 안전한 화학 실험용 화로를 제작하는 것이 가능할까? 헤르만 부르하버(Herman Boerhaave, 1668-1738)는 여기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을 찾아냈다고 자신했고, 그것은 후대에 부르하버의 소형 화로라고 불리게 될 발명품이었다.

▲코르넬리스 트로스트가 그린 부르하버 (1730년 경)

부르하버는 18세기 초 레이던 대학교의 약학, 식물학, 화학 교수였다.[1] 부르하버는 학생들에게 금속과 광물을 이용한 난이도 높은 실험부터 가르치는 대신, 잎과 꽃을 증류하거나 체액을 발효하는 등의 간단한 과정으로 실험 기술을 가르치는 편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화학 실험실은 대개 1학년 학생들이 다루기에는 지나치게 정교한 기구들을 비치해놓았다. 18세기 대학교의 새내기는 어린 경우 고작 14살일 수도 있었다. 더욱이 벽돌제 화로는 고온을 발생시키도록 제작되었기 때문에, 로즈마리 이파리처럼 작고 연약한 물질은 순식간에 불타버릴 것이 뻔했다.[2] 그렇기 때문에 부르하버가 필요로 한 것은 다루기 쉽고 저렴하면서 부드러운 열기를 내는 실험 기구였다. 

▲화로 설계도 - H. 부르하버, 화학의 기초, (레이던 1732).

해답은 소형 목제 오븐이었다. 부르하버는 1690년대에 화학을 공부하던 학생으로서 이러한 형태의 화로를 고안했다고 주장했다. 부르하버가 집필한 화학 교과서에서 실험 기구에 대한 장을 펼치면 첫머리에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필자가 40년 전에 발명한 가장 간단한 화로 이야기부터 시작하겠다. 필자가 공부한 곳은 큰 연구실이 아니라서 굴뚝은 하나 뿐이었는데, 화로는 여러 개가 동시에 필요했다."[3]

▲버지널을 연주하고 발치에 난로를 둔 여인, 
얀 민스 몰레나르의 그림, 1630-1640.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이러한 기구는 아무래도 흔한 발난로에서 착안했을 것이다. 각로(脚爐)라고도 불리는 이 화로는 네덜란드 공화국에서 크게 유행했다. 다양한 모양(사각형, 팔각형, 원통형)의 발난로를 책이나 그림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잉걸불이 살아있는 석탄이나 토탄으로 채운 발난로를 여인들은 옷자락 밑이나 이불 속에 두고 온기를 유지했다.[4] 발난로는 종종 철사 손잡이가 달려 손에 들고 옮기기 쉽게 되어있었다. 그런 발난로 덕분에 마차, 썰매, 집, 교회에서 발이 추위를 타지 않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흔한 발난로는 이후 차 난로나 커피 난로라는 새로운 용도로 쓰이기도 했고, 두 필자는 이 발난로가 레이던 대학교 화학 실험실의 '가장 간단한 화로'의 원형이었으리라고 추측한다.

▲작은 난로를 든 여인, 하르멘 테르 보르흐, 1648-1677.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부르하버의 소형 화로가 내는 부드러운 열기는 온갖 화학 실험을 하는데 유용했다. 향기좋은 상록 관목식물인 로즈마리를 예로 들어보자. "격렬한 불" 위에 놓고 증류한다면, 불길과 연기와 잿더미로 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로즈마리를 "여름 열기"(대략 섭씨 29.5도)에 놓고 부드럽게 증류를 한다면, 여름철 로즈마리 풀 냄새를 맡을 때와 같이 향긋하고 은은한 휘발성 로즈마리향을 추출할 수 있을 것이다. 안젤리카, 바질 등 다른 향초에도 마찬가지의 증류 방법을 쓸 수 있다. 

▲레이던 대학교 실험실의 학생들, 
헤르만 부르하버, 화학 실험과 시설 (파리, 1724). 겐트 대학 도서관.

다시 말해 부르하버는 부드러운 열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데 이 화로의 의의를 두었다. 이 목제 화로에는 더이상 연기가 나지 않고 잉걸불이 타는 석탄 조각이나 네덜란드 토탄을 채워넣으면, 24시간까지 지속력 있고 잔잔한 열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렇듯, 부르하버의 소형 화로는 학생들이 가열과 증류 전반을 실험하는데 최적의 기구였다. 부르하버는 이 발명품에 대해 의기양양한 나머지 "달걀도 부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는 주장마저 했다.[5]

과연 이 소형 화로가 부르하버가 주장한 것 만큼이나 다루기 쉽고 효율적이었을까? 우리는 부르하버의 화로를 재현한 뒤 실험을 통해 그의 주장을 확인해보았다. 다음 글에서 우리의 성공 여부를 확인해보시라!

▲ 오래된 난로 두 개를 합쳐서 화로를 만드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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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르하버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마리에케 헨드릭센의 "부르하버의 광물 화학이 네덜란드와 영국의 18세기 약학에 미친 영향", 앰빅스(2018). 
루벤 페르발, "피의 성질: 18세기 네덜란드 공화국의 혈액학 논쟁과 혈액 화학", 초기 과학과 약학 지(2017).

[2] 부르하버, 화학의 기초 (레이던, 이사악 세베리누스, 1732), 2권, 실험 1.

[3] 상동, 1권.

[4] 르 프랑크 반 베르크헤이, 홀란드 자연사 (암스테르담: 인테마와 티보엘, 1769-1778), 3권, 706-707, 1200.

[5] 부르하버, 화학의 기초, 1권.

[추가 영상]

▲소빙기 네덜란드의 발난로는 이 영상에도 나옵니다! 약 5:00 지점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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