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타이 족의 괴물, 미랑 인도차이나 ~Indochine~


지난 번에 소개드렸던 "처녀의 창자" 이야기는 사실 영남척괴열전에서 "산원산에 얽힌 이야기(傘圓山傳)"를 다루는 마당에서 언급한 여러 이야기 중 하나였죠. 압승술사 고변이 산원대왕(傘圓大王)의 침을 맞고 탄식한 이야기까지 소개드렸는데, 그 다음에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세상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기도 한다. 산원대왕(傘圓大王)과 물의 정령은 둘 다 웅왕의 딸 미랑(媚娘)에게 장가들고 싶어했다. 그런데 왕이 먼저 예물을 갖추어 왔으므로 웅왕은 딸을 왕에게 주었다. 왕은 미랑을 데리고 산원산(傘圓山)으로 돌아갔다. 뒤에 도착한 물의 정령은 앙심을 품고 수족(水族)을 이끌고 왕을 공격하여 미랑을 빼앗고자 했다. 왕은 자렴현(慈廉縣)에 철망을 쳐서 물의 정령의 공격을 막았다. 그러자 물의 정령은 따로 하나의 작은 강을 열어 이인강(蒞仁江)에서 갈강(喝江)으로 나와 타강(沱江)으로 들어가서 산원산의 뒤쪽을 치는 한편, 소석강(小昔江)의 지류를 열어 산원산 앞쪽을 향했다. 그래서 감자(甘蔗), 동루(東樓), 고악(古鶚), 마사(麻舍), 욕강(浴江) 등의 골짝은 물에 잠겨 만(灣)이 되었으며, 수족이 지나다니게끔 되었다.

물의 정령은 늘 풍우를 일으켜 날을 어두침침하게 만든 다음 물길을 따라 왕을 공격했다. 산 아래 백성들은 즉시 대를 엮어 울타리를 만들어서 이를 저지했다. 그리고 북을 치고 절구질을 하면서 큰 소리를 내어 왕을 보호했다. 백성들은 울타리에 무엇이 달라붙는 족족 활을 쏘았는데 교룡, 물고기, 자라 등의 시체가 강을 뒤덮었다. 물의 정령이 이끄는 무리는 거듭 패해 돌아갔다. 그러나 물의 정령은 분을 삭이지 못해 해마다 8, 9월만 되면 강물을 범람시켜 벼농사에 해를 입히는 바람에 산 아래 백성들이 피해를 봤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것을 두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산의 정령과 물의 정령이 미랑에게 장가들기 위해 싸우는 거야."

라고들 한다.

(베트남의 신화와 전설, 80-81)

베트남에서 상당히 잘 알려진 "산의 정령과 물의 정령 이야기"인데요. 여기에 좀더 해석할 여지를 주는 Liam Kelley 교수님의 Mị Nương the Tai Monster을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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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Tai) 족의 괴물 미랑(媚娘)

앞의 글에서 언급한 안남지원(安南志原)[1]이라는 문헌에는 산원산(傘圓山)에 대한 항목이 있는데, 웅왕의 딸이라고 알려진 미랑(媚娘, 미 느엉)이라는 신령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 다음 베트남에서 아주 잘 알려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傘圓山媚娘神. 相傳乃雄王之女. 愛之. 欲擇才能者爲婿. 時嘉寧山二人. 一曰山精. 一曰水精. 能透山石. 能沒入水. 二人謀歸以方物來獻. 翌日. 山精以金銀寶玉奇禽異獸陳於王庭厚禮相婚. 因挾媚娘匿雷洞山. 水精後至. 獻珍珠玳瑁奇貝龜鼈等物. 而媚娘已爲山精挾去. 大怒. 攻破雷洞山. 山精因遷媚娘于傘圓山巓. 水精年年怨伐不已. 至今猶然. 其媚娘亦靈怪. 嘗現其形貌. 其人長髮長衣. 儼然美婦人也. 詳見廣威州志內.

산원산에는 미랑신(媚娘神)이 있다. 상전하기를 웅왕(雄王)의 딸이라고 한다. 왕은 미랑을 아껴서, 재능있는 자를 골라 사위로 삼고싶었다. 그때 가녕산(嘉寧山)에 두 사람이 있었는데, 산의 정령(山精)과 물의 정령(水精)이었다. 산의 정령은 바위산을 뚫을 수 있었고, 물의 정령은 물 속에 잠수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방물(方物)을 바쳐 돌아올 궁리를 하였다. 다음날 산의 정령은 금은보옥과 기이한 날짐승과 들짐승을 왕 앞에 바쳤다. 후한 예로 미랑과 혼인하고는 미랑을 데리고 뇌동산(雷洞山)에 숨었다. 

물의 정령은 뒤에 와서, 진주, 대모, 기이한 조개, 거북이, 자라 등의 물건을 바쳤다. 그러나 미랑은 이미 산정과 함께 떠난 상태였다. 크게 노한 물의 정령은 뇌동산을 공격해 파괴했다. 

산의 정령은 그리하여 미랑을 산원산 꼭대기로 옮겼다. 물의 정령은 해마다 원한을 품고 공격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렇다.

미랑은 또한 영괴(靈怪)로, 자주 그 형체를 나타내는데, 그 사람은 긴 머리카락과 긴 옷을 하고, 엄연히 아름다운 부인의 모습이다. 광위주지(廣威州志)를 보면 상세하다.


이것이 그 유명한 산의 정령과 물의 정령 이야기라는 것은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영남척괴와 같은 문헌에 기록된 이야기의 최종본과도 다르다. 영남척괴에서는 미랑을 "아름다운 여인"처럼 "긴 머리와 긴 옷"을 입은 "영험한 괴물(靈怪)"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런 정보는 어디서 온 것일까?

1) "미랑(媚娘, Mị Nương, 미 느엉)"이라는 이름은 타이 제어(Tai 諸語)에서 온 것이다. 타이 제어에서 "매 낭(Mae nang)"은 "귀족 여인"이나 "공주"를 뜻한다. (사실 "낭"은 한어 계열이기 때문에 "한-태어(漢-泰語)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2) 대월사기전서에서 산원산을 언급할 때 오랑캐(만, 蠻)가 그 주변에 살았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1207년에는 산원산의 "산만(山蠻)"이 노략질을 했고, 1226년에는 주변 오랑캐들과 싸움을 벌였다.

3) 필자가 보기에는 다른 사본에는 뇌동산이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산 이름에 있는 동(洞)은 "오랑캐"가 사는 곳을 일컫는데도 쓰였다는 것에 주목해봄직 하다.[2] 

이 정보를 종합하면, 미랑은 타이 어 구사자들(비엣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오랑캐")이 숭배한 신령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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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남지원을 언급한 다른 글
구희와 악어 (2010.09.01)

[2] "동(洞)"에 대해서는 켈리 교수님께서 영남척괴열전의 베트남의 구미호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다룬 바 있다. 
"동(洞)"이라는 용어는 비중국인이 다스리는 국경지대의 행정구역을 가리키기 위해 중국에서 만든 말이었다. 서호 근처에 동(洞)이 있었다는 것은 중국이 베트남 북부를 지배했던 시대에 생긴 지명이 이후로도 계속 쓰여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당시 베트남 식자층이 해당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어딘가 이질적이라고 느껴서 그런 지명으로 불렀을 수도 있다. 

산원산의 오랑캐에 대한 언급도 같은 이야기에 등장하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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