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처녀의 창자", 그리고 중세 베트남을 방문한 엑소시스트 [영남척괴열전]

Liam Kelley 교수님의 Killing Spirits and 17 Year-Old Girls in Medieval Vietnam을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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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의 창자" - 중세 베트남을 방문한 엑소시스트

고변(高駢)[1]은 당나라 때 관료로, 860년대 홍하 삼각주 지대로 파견되어 남조국(南詔國) 군대가 일으킨 봉기를 진압하였다. 파견되어있는 동안, 고변은 해당 지역의 풍수학적 힘과 지역 신령을 자신의 힘으로 누르고자 하였다. 

남척괴(嶺南摭怪)를 보면 고변이 신령과 싸우는데 기용한 것으로 알려진 기술에 대해 굉장히 흥미로운 정보를 담고 있다. 이 정보는 고변과 함께 파견된 당나라 관료 증곤(曾袞)이 집성한 교주기(交州記)라는 문헌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고변이 "신령한 자취"(영적, 靈跡)라는 것을 억누르고자 할 때마다 17세 처녀의 배를 갈라 장기를 적출했다고 한다. 그런 다음 몸 속에 구릿대(지초, 芷草)[2]를 채워넣고, 옷을 입혀 의자에 앉게 했다. 다음으로는 물소[3]를 제물로 바치고, 처녀의 몸이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처녀의 시체가 움직이면, 그 목을 베었다.

기술을 이용해 고변은 신령을 속일 수 있었다. 처녀의 시체에 신령을 끌어들인 다음 제물로 바친 고기를 먹으려고 할 때 죽이는 방법으로 보인다.

실제로 17세 처녀들을 이런 식으로 희생했을까? 아니면 고변이 사람 형상을 만들어서 신령을 상징적으로 죽이는 의식을 행했는데, 17세 처녀 시체라고 불렸던걸까?[4]

어떤 경우가 되었든, 이는 흥미진진한 민속학 정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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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변은 베트남에서 풍수학을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2] 켈리 교수님은 지초(芷草)라고 읽으셨지만, 박희병 교수님 팀은 악초(惡草)라고 읽으셨다. 그림 참조.

[3] 제이생뢰(祭以牲牢) 부분을 이렇게 해석한 것으로 보이는데, "생뢰(牲牢)"는 희생한다는 뜻이고, "물소"라는 특정한 의미가 아니다. 
켈리 교수님의 저본은 제사지낼 제(祭)가 금할 금(禁)으로 잘못 써있는 등, 틀린 글자가 더러 보인다. 여러 이본을 검토한 박희병 교수님 팀의 번역본을 참조하는 것이 옳다.

[4] 조선의 유사한 사례로는, 성호사설의 "염매"에 대한 추측 참조.
타치바나 난케이의 야마온나(山女) 기사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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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고변이 안남 절도사로 있을 때다. 그는 왕의 신령한 자취를 누르고자 17,8세의 처녀 배를 갈라 창자를 제거하고 독초(惡草)를 그 배에 채워 넣은 다음 옷을 입혀 의자에 앉히고 제물을 차려(牲牢) 왕에게 제사를 지냈다. 고변의 속셈은 신령의 거동을 살펴 칼을 뽑아 베어 버리려는 것이었다. 대개 신령을 속일 때 이 술법을 사용한다. 고변이 여자를 바쳤건만 왕은 구름 위에서 백마를 탄 채 침을 뱉고 가 버렸다. 그러자 고변은 이렇게 탄식했다.

"남방의 신령한 기운은 헤아릴 수 없거늘 그 성대한 기운을 어찌 없앨 수 있으랴!"

그 거룩한 신령이 밝게 드러남이 이와 같았다. 

(베트남의 신화와 전설, 7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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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진냥 2018/12/11 01:58 # 답글

    헉.. 재미무섭네요....
    예전에 읽었건만 왜 이런 내용이 생각나지 않을까요? 다시 읽어야겠습니다!ㅠㅠ
  • 남중생 2018/12/11 02:29 #

    저도 사실 배 가르는 이야기는 가물가물 했는데, 침을 뱉고 갔다는 이야기가 웃겨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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