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락이냐 웅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인도차이나 ~Indochine~

Liam Kelley 교수님의 Were There "Lạc" Kings or "Hùng" Kings? Or Neither?을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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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ck이냐 웅이냐... 그거 아님


'락'이냐, '웅'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오늘날 베트남 북부에 해당하는 지역을 최초로 다스린 사람들이 "락(Lạc)" 왕이라 불렸는지 "웅(Hùng)" 왕이라 불렸는지 하는 것으로 반 세기 가까이 열띤 논쟁이 이어졌다. 프랑스 학자 앙리 마스페로(Henri Maspero)가 20세기 초에 이 논쟁에 불을 붙였는데, 이 주제에 관한 가장 이른 시기의 사료인 중국 사료에서 락()과 웅(雄)에 해당하는 글자가 모두 나타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마스페로는 중국 필사자가 락() 대신 웅(雄)이라고 잘못 썼고(두 글자는 매우 유사하며 다른 맥락에서도 두 글자가 양 방향으로 혼동되었다는 근거가 충분히 있다), 후대 베트남 사람들이 그 오류를 이어나갔다고 결론지었다. 

마스페로는 유능한 학자로 일컬어지지만, 이 논문에서 마스페로의 주장은 아쉬운 점이 많다. 베트남 사람들이 선대의 실수를 알아보지 못한 채 베끼기만 했다는 마스페로의 입장은 베트남 사람을 멸시하는 태도이기도 했으며, 그런 만큼 이 태도가 많은 논쟁에 불을 지폈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 1960년대 말서 1970년대 초에 이 논쟁은 "정치적인" 이유에서 웅왕이 맞다는 결론을 맺었으나(이 주제에 대해서는 차후에 글을 쓰겠다), 학술적인 결론은 보지 못하였다.

필자는 해당 주제에 대해 많은 논문을 읽었으나, 전부 읽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필자가 여기서 논하는 내용을 누군가가 이미 말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적어도 필자는 보지 못한 것이니, 다른 누군가가 이 주장을 펼쳤다면, 부디 필자에게 알려주기를 바란다. 

락()과 웅(雄) 중에 어느 글자가 정확한지 학자들은 끊임없이 논의해왔으나, 두 글자가 등장하는 옛 중국 사료의 구절 전체를 논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 구절들을 보면 어느 글자가 "정확"한지에 대해 가장 명백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 논쟁에는 두 가지 주된 사료가 있다. 다시 말해, 락()을 쓰는 사료와 웅(雄)을 쓰는 사료가 있다. 이 두 가지 사료 외에도 해당 정보가 나오는 다른 사료가 있기는 하나, 다른 사료들은 교주외역기(交州外域記)와 남월지(南越志)에 등장하는 두 구절을 편집한 것이 분명하다. 두 문헌 모두 현전하지는 않지만, 일부 구절은 현전하는 문헌에 인용되어 남아있다. 

첫번째 주요 사료부터 살펴보자. 교주외역기는 문헌 내 정보에 비추어 기원후 3세기 말이나 4세기 초로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저작이다. 아래 구절은 6세기에 쓰인 역도원(酈道元)의 수경주(水經注)에 인용되어 나온다. 


交州外域記曰,交趾昔未有郡縣之時,土地有雒田,其田從潮水上下,民墾食其田,因名為雒民。設雒王雒侯主諸郡縣。縣多為雒將。雒將銅印青綬。

교주외역기에 말하길, 교지(交趾)가 옛날에 아직 군현이 없었을 때, 토지에는 락밭(雒田)이 있었고, 그 밭은 조수(潮水)의 오르내림을 따랐다. 그러므로 그 밭을 개간해서 먹고사는 백성의 이름은 락민(雒民)이었다. 락왕(雒王)과 락후(雒侯)를 세워 여러 군현을 다스렸다. 현에는 많은 경우 락장(雒將)이 있었다. 락장은 구리 도장(銅印)과 푸른 끈(青綬)을 가졌다.

주목할 첫번째 사안은 저자가 "락"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살던 시절에 이 지역을 방문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글은 한나라가 해당 지역에 "군현"을 세운 뒤에 쓰인 것이다. 

다음 주목할 사안은 락(雒, lạc)이라는 글자가 뜻을 표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리를 표기한 것이고, 중국어가 아닌 언어의 단어를 소리나는 대로 표기한 것이다. 이 단어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그 밭은 조수(潮水)의 오르내림을 따랐다"는 내용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해석한 학자들이 많은데, 왜냐하면 그 뒤에 "그러므로(因) 그 밭을 개간해서 먹고사는 백성의 이름은..."이라고 적혀있기 때문이다. 

(알림: 潮는 "밀물과 썰물"이라는 뜻일 수도 있지만 강의 수위가 올라가는 것을 가리킬 수도 있다. 이 문맥에서는 "범람하는 물"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위 구절의 마지막 부분이 중국이 지배하기 이전 시기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많다. 

"락왕(雒王)과 락후(雒侯)를 세워 여러 군현을 다스렸다. 현에는 여러 락장(雒將)이 있었다. 락장은 구리 도장(銅印)과 푸른 끈(青綬)을 가졌다."

누가 락왕을 세웠(設)는가? 누구의 "구리 도장과 푸른 끈"이었을까? 우선 "군현"은 중국 정치 체제의 일환이었다. 그러므로 이 내용에 따르면 해당 지역에 "락"이라 불린 사람들이 있었는데 한나라가 지배한 뒤로는 락 사람들이 중국 사람을 대신해서 지역을 다스리도록 임명되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이는 당시에 매우 흔한 현상이었다.)

(알림: 왕王이라는 글자는 "임금"이나 "군주"로 번역할 수 있다. 이 구절을 보면 락왕이 한 명 이상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필자는 "군주"로 해석한다.)


두번째 주요 사료는 태평광기(太平廣記, 10세기)에 실린 남월지(南越志, 아마 5세기?)다.

交趾之地頗爲膏腴,徙民居之,始知播植,厥土惟黑壤,厥氣惟雄,故今稱其田為雄田,其民為雄民,有君長亦曰雄王,有輔佐焉亦焉曰雄侯,分其地以為雄將。(出南越志)

"교지의 땅은 자못 비옥(膏腴)하다. 이주민(徙民)을 이곳에 살게 하니, 비로소 씨뿌려 심을 줄을 알았다. 그 흙은 검고 부드럽고, 그 기운은 웅(雄)하다. 그리하여 지금 그 밭은 웅밭(雄田)이라고 부르고, 그 백성은 웅민(雄民)이라고 부른다. 군장이 있으니 또한 웅왕(雄王)이라 한다. 보좌하는 이가 있으니 또한 웅후(雄侯)라 한다. 그 땅을 나누어 웅장(雄將)이 되었다. (남월지에 나온다)"


여기서 주목할 첫번째 사안은 "군현"에 대한 언급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문헌에서는 교주외역기에서 처럼 중국 지배 이전의 과거 시점을 가리킨다는 말이 없다.

다음 사안은 웅(雄)이라는 글자가 여기서 소리가 아니라 뜻을 표기한 것이라는 점이다. 교주외역기의 락(雒)과는 다르다. 땅의 기(氣)가 웅(雄, hùng)하니, 그래서 그 지역 사람들도 웅(hùng)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저자는 락(雒)을 써야할 자리에 웅(雄)을 쓰는 필사 과정의 오류만을 저지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저자는 해당 구절을 크게 변형해서 웅(雄)의 '강하다'는 뜻이 통하도록 하였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앞부분에 땅이 비옥하고 기가 웅하다는 내용을 추가하였고, 그런 다음 이 웅(雄)이라는 단어와 밭과 사람을 일컫는 이름을 연관지었다. 

저자가 이 정보를 얼마나 "창작"했는지가 여전히 불분명하다면, "흙은 검고 부드럽다(厥土惟黑壤)" 는 구절이 상서(尙書)의 우공(禹貢)이라는 꼭지에 나오는 "흙은 희고 부드럽다(厥土惟白壤)"을 거의 그대로 베낀 것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고전 한문을 안다면 이것이 흔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금새 알아볼 것이다. 이 글의 저자는 상서를 흉내내서 이 구절을 쓴 것이다. 한편 교주외역기 구절에는 이처럼 다른 문헌에서 "빌려온" 흔적이 없다. 

마지막으로, 이 구절에는 관료들을 세웠다는 언급이 없다. 대신, 외부로부터 제약을 받지 않는 주체적 지배자를 볼 수 있다.[1]

종합해보면, 두번째 사료는 먼저 만들어진 교주외역기의 정보를 변형한 것임이 틀림없다. 저자는 락(雒)을 비슷하게 생긴 글자인 웅(雄)으로 바꿈으로써, 글자가 의미를 알 수 없는 외국어의 소리 만을 표기하는 대신 뜻을 갖도록 한 것이다. 그런 다음 구절 전체를 바꿔서 땅의 비옥함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더했고 (범람하는 물에 대한 정보를 지웠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웅(雄)이라는 글자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맥락을 부여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한나라의 통치에 대한 언급을 생략함으로써 교주외역기가 제공한 역사적 맥락을 지웠다.[2]

이 다음 베트남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마스페로가 주장하였듯이, 오류를 베끼기만 했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창작해냈다. 이것은 긴 이야기고, 세세한 내용은 나중의 글에서 다뤄야겠으나, 궁극적으로 베트남 사람들은 두 버전 모두에서 정보를 "취합"했다. 오사련(吳士連)의 대월사기전서(大越史記全書)를 보면 주체적인 웅왕들이 세운 "재상은 락후라 불렀고, 장군은 락장이라고 불렀다.(相曰侯, 將曰)"

그러나 결국, 우리가 그나마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기원전 시대에는 중국인들이 락(lạc)이라고 부른 사람들이 해당 지역에 살고있었다는 것이다. (왜그렇게 불렀는지는 불분명하고, 오늘날 중국 남부의 다른 지역에 살고있는 사람들에게도 이 표현을 썼다.) 그리고 중국인은 이 사람들을 뽑아 지역 단위의 행정을 맡겼다. "왕(王)"과 "후(侯)"는 중국에서 온 명칭이니, 락(lạc) 사람들이 자신들끼리 지도자를 부를 때는 이런 표현을 쓰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교주외역기를 보면 이러한 직책에 임명된 사람들이 "군현" 그러니까 중국식 행정단위를 다스리는 일을 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교주외역기는 중국이 지배하기 이전에 베트남 북부를 다스린 사람들에 대해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단지 그 인구집단을 통틀어서 락(lạc)이라고 불렀다는 것만을 알 수 있고, 어쩌면 중국인만 그들을 락(lạc)이라고 불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락(lạc)" 왕이 있었는가 "웅(hùng)" 왕이 있었는가? 지금까지 본 바로는 둘 다 없었다. 중국 세력과 협조한 락 군주(락왕)들은 있었으나, 우리가 아는 것은 그것이 전부다.[3] 락 사람들은 중국인들이 오기 전에 분명 자기들만의 지도자가 있었겠으나, 뭐라고 불렀는지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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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지막으로, 이 구절에는 관료들을 세웠다는 언급이 없다. 대신, 외부로부터 제약을 받지 않는 주체적 지배자를 볼 수 있다."

켈리 교수님은 두 사료에서 락 사람들이 "주체성(sovereign)" 있게 묘사되는지에 집중을 하는데, 역자는 생각이 다르다.
켈리 교수님은 남월지에는 교주외역기와 달리 관료를 세웠다(設)는 표현이 없고 "대신, 외부로부터 제약을 받지 않는 주체적 지배자를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켈리 교수님 주장대로 남월지의 내용이 교주외역기를 상당부분 차용한 것이라면 "위(爲)"라는 글자 역시 "삼았다"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 

교주외역기에서 세운(設) 것은 락왕과 락후인데, 그렇다면 그 아래에 있는 락장은 말할 것도 없다. 켈리 교수님은 구리 도장과 푸른 끈도 분명 (한나라 조정으로부터) 하사받은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구리 도장과 푸른 끈을 받은 것은 다름아닌 락장이다. 
 
雒王雒侯主諸郡縣 락왕과 락후를 세워 여러 군현을 다스렸고,
縣多雒將             현에는 많은 경우 락장을 세웠다/삼았다. 
雒將銅印青綬          락장은 구리 도장과 푸른 끈을 가졌다. 

그보다 앞서 백성들의 이름을 "그리하여(因)" 락민이라고 불렀다(雒民)는 내용도 락민이라는 이름을 (중국인들이) "만들었다/삼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남월지의 구절에서도 위(爲)를 마찬가지로 해석하자면 "웅장을 삼음으로써 그 땅을 나누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分其地以為雄將 웅장을 삼음으로써 그 땅을 나누었다.

더욱이, 그나마 교주외역기에서는 락민이 알아서 락밭을 일구고, 락왕에서 락장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복종하여 구리 도장과 푸른 끈을 받은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지만, 남월지에는 (정치적인 목적에서) 이주시킨 백성인 사민(徙民)을 보낸 뒤에야 "비로소 씨뿌려 심을 줄을 알았다"고 묘사하고 있다. 비옥한 땅을 두고 쓸 줄도 모르다가 (대개 죄수, 군인, 포로 등으로 이뤄진) 이주민이 가서 먼저 농사를 지으니 그제서야 보고 배웠다는 것이다. (交趾之地頗爲膏腴,徙民居之,始知播植)

이런 맥락을 종합했을 때, 남월지의 내용이 지역의 주체성(sovereignty)을 강조한다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타성과 외부의존도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2] "종합해보면, 두번째 사료는 먼저 만들어진 교주외역기의 정보를 변형한 것임이 틀림없다.
남월지의 저자가 반드시 "교주외역기"의 정보를 변형했다는 증거는 없다. 지금은 (혹은 중세 베트남인들이 자체적인 역사를 쓸 시점에 이미) 두 가지 사료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비슷한 정보를 담은 다른 사료도 있었을 가능성을 남겨놓아야 한다고 본다. 
어쩌면 켈리 교수님은 실재하는 사료만으로 설명한다는 엄밀한 입장에서 교주외역기 --> 남월지라고 설명하는 것일 수도 있다. 

[3] "그렇다면 "락(lạc)" 왕이 있었는가 "웅(hùng)" 왕이 있었는가? 지금까지 본 바로는 둘 다 없었다.
켈리 교수님이 왕(king)과 군주(prince)라는 용어를 엄밀하게 사용하셔서 다소 헷갈리는데, 
"락왕(雒王)"이라는 직책은 있었으나, 이것은 지방 행정을 위해 중앙으로부터 임명받은 직책(군주, prince)일뿐, 나라를 다스리는 왕(king)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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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효도하자 2018/12/09 01:24 # 답글

    타케시 입니다
  • 남중생 2018/12/09 02:01 #

    아닠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군요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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