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식민사관의 어느 부분이 "식민주의적"인걸까? 인도차이나 ~Indochine~

Liam Kelley 교수님의 What's so "Colonial" about Colonial-era Scholarship?을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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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관의 어느 부분이 "식민주의적"인걸까?

다오 주이 아잉(Đào Duy Anh)이 1954년 반 스 디아(Văn Sử Địa)라는 학술지에 기고한 논문을 접했다. 이 논문에서 다오 주이 아잉은 동 선(Đông Sơn) 청동기 문화가 유럽의 할슈타트 지역(얀스와 겔데른의 주장)이나 중국(골루베프와 피노의 주장)에서 온 영향을 받은 기미가 보인다는 유럽 학자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걸 읽고 필자는 얼마전 고고학자 한 분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필자는 청동 기술과 특히 금속을 제련하는 기술 전반이 동남아시아로 전파된 것에 대한 최신 이론이 어떻게 되는지를 물었다. 

고고학자 분께서 말씀해주시길 요즘에는 금속 제련 지식이 북쪽을 통해 동남아시아로 왔다고 본다고 한다. 궁극적으로는 중국보다 서쪽에 있는 지역에서 온 것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동남아시아에 주목하는 고고학자들 사이의 논쟁은 금속 제련 지식이 중앙아시아에서 출발해 중국에서 상당 기간 동안 발달한 뒤 동남아시아로 왔는지, 아니면 중앙아시아로부터 (간수 지방 통로와 운남 지방을 통해) 직접 들어왔는지에 대한 것이라고 하였다.

[인터넷에서 이 논쟁을 다루는 논문 몇 개를 무료로 볼 수 있다: "선사시대 동남아시아의 금속제련에 대하여: 태국에서 보는 시각"과 "태국으로 전파된 초기 청동기술: 새로운 시각"]


이런 견해를 보면 여러 모로 얀스와 하이네-겔데른 같은 사람들의 견해로 돌아온 부분이 흥미롭다. 식민지 시대의 학문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중요한 문제를 짚어주는 것이다.

탈식민지 시대에는, 식민지 시대 학자들의 학문 성과를 무시하기 쉬웠을 뿐더러, 그리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식민지 시대 학자들의 견해 자체가 아니라, 당대 학자들이 자료를 해석한 방식이 문제였던 경우가 있다.


앙리 마스페로(Henri Maspero)와 웅왕(雄王)을 예로 들어보면, 마스페로는 그런 왕조가 존재했다는 근거가 없다고 간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다음 마스페로는 중세 문헌에서 언급하는 웅왕을 설명하면서 베트남 유학자들이 홍하 삼각주에 대한 과거 중국 기록을 베끼면서 락()을 웅(雄)이라고 잘못 옮겼다고 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중국 관리들이 실수를 했는데 후대 베트남 유학자들이 이를 발견하지 못한 채 중국인들이 과거에 저지른 실수를 계속 반복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두 가지 논점이 있다. 1) 웅왕이 없었다는 논점과 2) "웅"이라는 글자의 사용이 필사 과정의 오류에 기인한 것이라는 논점이다. 

마스페로의 주장을 반박한 베트남 학자들은 두 가지 논점을 모두 부정하면서 마스페로의 견해가 "식민주의적"이거나 "유럽중심적"이라고 보았다. 

필자가 보기에는 두번째 논점만 "식민주의적" 사고와 연관지을 수 있다. 마스페로는 베트남인이 주체성이 있다거나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만들어진 전통을 창조했을 수 있다고 생각을 못했다. 

마스페로가 보기에, 베트남인은 그런 식의 주체성이 없었다. 베트남인은 발명하거나 창조할 수 없었다. 베끼는 것 밖에 못 했다. 그래서 웅(雄)이라는 글자를 두고 마스페로는 베트남인이 무언가를 잘못 베꼈다고 주장한 것이다. 


"웅왕"을 이야기하자면, 마스페로 이후로 아무도 웅왕이 존재했다고 증명한 사람이 없다. 홍하 삼각주 지역에서 고고학 유물을 발견했지만, 이 유물과 문헌 상 웅왕에 대해 적혀있는 정보를 명확하게 연결해낸 사람은 없다. 

기원전 1천년기에 홍하 삼각주 지역에 사람이 살았고, 꼬 로아(Cổ Loa)는 당시에 건설된 성채지만, 우리가 아는 것은 그게 전부다. 지금까지 찾은 근거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이지, "웅왕"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이런 측면에서는 마스페로가 옳았다. 웅왕은 없었다. 그러나, 사료 문헌 상에서 언급하는 웅왕이 과거의 필사과정에서 일어난 실수의 결과라고 주장한 것은 잘못 되었다. 그것은 멸시적인(그리고 "식민주의적"인) 시각으로 베트남인과 베트남 역사를 본 것이었다. 


필자는 고고학자들이 금속 제련 지식이 어떻게 동남아시아로 퍼졌는지에 대해 논할 때 이용하는 근거를 모두 알고 있지는 못하다. 또한 필자는 얀스와 하이네-겔데른이 동 선 문화가 유럽의 할스타트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기 위해 이용한 근거를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이 마스페로의 경우와 유사할 것이라는 의혹은 느낀다. 얀스와 하이네-겔데른의 근거는 문제가 없었다. 근거를 어떻게 해석했는지가 문제였다. 

식민지 시대의 학문을 보면 학자들이 종종 "식민주의적"인 해석을 내놓을 때가 있다. 한편 학자들의 주장이 반드시 "식민주의적"이지만은 않았고, 후대 학자들이 그런 식으로 넘겨짚은 것은 잘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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