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몽고학 개론 - 제 1강 인도차이나 ~Indochine~

Liam Kelley 교수님의 Mongol Invasion 101, Lesson 1을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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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학 개론 - 제 1강


어느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몽고 군대가 우리나라를 침략하기 일보직전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1257년, 쩐 왕조의 군주였던 태종(太宗, 타이 똥)이 갖고 있던 고민이 바로 그랬다. 첫 대응은 군대를 이끌고 맞서싸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태종의 군대가 몽고군에 의해 짓밟히면서 이 계획은 실패하였다. 그리고 나서 태종은 최고 사령관인 태위(太尉) 벼슬을 맡은 진일교(陳日皎, 쩐 녓 휴)에게 가서 어찌 할지를 물었다. 진일교는 작은 배에 기대앉아 일어나지를 않았다. 그저 뱃전의 물가에 "입송(入宋)"이라는 두 글자를 그릴 뿐이었다. 

진일교가 태종에게 송나라에 가서 보호를 받으라는 말을 하려던 것이었다. 태종에게 이 말을 직접 하는 대신 물 위에 그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확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진일교는 태종에게 나라를 버리고 중국으로 도망가서 목숨을 구하라는 제안을 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진일교는 그 피난길에 태종과 함께 오르기를 기대하고 있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둘은 목숨을 구하겠지만, 나머지 많은 사람들이 이 결정으로 인해 피해를 볼 것이다. 그래서 진일교는 누가 들을까봐 말로 뜻을 표현하기를 꺼린 것이다.

쩐 왕족은 파벌로 갈라서있었다. 1256년에는 무성왕(武成王, 부 타잉 브엉)이 송나라로 도망치려 했다가, 송나라 신하로 있던 따이(Tai)족 변방관리(土官)에게 사로잡혀 베트남으로 송환되었다. 이 황병(黄炳)이란 이름의 토관도 1257년 몽고군이 침입해오자 자기 딸을 쩐 태종에게 바치고 1,200명의 부하와 항복함으로써 목숨을 구하고자 하였다.

여기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위기시에는 목숨을 보전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동기가 된다는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이 항상 "외세의 침략"에 항쟁하기 위해 뭉쳤다는 베트남 측의 공식 역사 서사는 역사 기록으로 뒷받침되기 어렵다. 위기가 닥치면 힘있는 사람은 우선 자기 목숨을 구하려든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베트남 사람, 따이족 사람, 전 세계 어느 누구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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