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왕을 위한 황금 음료를 대령하라 Recipes Project: 사후약방문

Recipes Project 블로그의 Making Drinkable Gold for the King of Siam을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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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위한 황금 음료를 대령하라

요크 대학교, 타라 알버츠 교수

지난 글에서는 근세 가톨릭 선교사들이 선교 대상의 환심을 사기 위해 최첨단 유럽 의학을 선보이고자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는 아시아 각지에서 선교사들이 왕실에 접근하기 위한 핵심 전략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시암의 나라이 왕(재위: 1656-88) 조정에서는 유럽인이 중국, 인도, 동남아 전역에서 온 전문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시암 왕족에게 의학 지식을 제공하였다. 나라이 왕의 조정은 다양한 국적이 어우러진 공간이었는데, 나라이 왕은 외국 기술과 이론에 대해 배우고 싶어했을 뿐더러 대외교역을 독려했다. 파리 외방전교회(MEP)의 프랑스인 선교사들은 여기에서 오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프랑스 사절단을 맞이하는 나라이 왕, 1685. 위키미디아 커먼스.

말은 쉽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약을 제조하는 일은 르네 샤르본노(René Charbonneau)가 맡았을 가능성이 높다. 샤르본노는 MEP에 속한 평신도 도우미로 수술의사 교육을 받은 인물이었다. 1677년, 샤르본노는 파리에 사는 친구에게 불만쌓인 편지를 보내면서 프랑스어로 된 알기 쉬운 아우룸 포타빌레(aurum potabile, 마실 수 있는 금) 제조법을 달라고 간청했다. '왕께서 마실 수 있는 금을 달라고 하셨네. 그러나 우리는 해내지 못했어. [...] 제조법과 음용 전 순도를 높이는 방법, 음용 방법을 편지에 써주게나. 알기 쉬운 프랑스어로 전과정을 써주어야 하고, 나는 화학을 모르니 라틴어나 화학 용어는 아니 되네.' (Archives des Missions Etrangeres [AMEP] vol. 861, 41쪽).

유럽과 아시아의 다양한 의약학 전통에서 금으로 약을 만든 전례는 고대까지 거슬러올라간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약물이 흔히 그렇듯, 금을 재료로 하는 약도 16세기 말, 17세기 초 유럽에서 부활하였다. 금박이나 금가루를 보석류, 유니콘 뿔, 향신료 등 고가의 재료와 함께 써서 아우룸 포타빌레를 만드는 제조법이 무수히 등장했다. 

그럼에도 16세기 이래로, 많은 저자들은 금을 마시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될지 지극히 회의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화학자 니꼴라 르페브르(Nicholas Lefevbre)는 Traité de la Chymie(1660)에서 마시는 금은 인체에 아무런 효과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탕약과 가루약에 금박을 섞어넣는 것은 '아랍인들이 도입한 것으로, 약학에 대한 모독이었다.' (801쪽) 인체에는 금을 분해할 수 있는 물질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런 약을 먹는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금으로 만든 그 어떤 약이더라도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르페브르는 의구심을 품었으나, 연금술 전집을 집성한 다른 저자들과 마찬가지로 르페브르도 금을 보다 고도화된 방식으로 순도를 높이고 사용할 수 있는 일반 제조법을 광범위하게 내놓았다.

▲금을 만드는 연금술사. 헨드릭 헤어숍의 유화. 1665

아마도 MEP는 (그저 물약에 금박을 뿌려넣는 대신) 위와 같은 연금술 기법을 이용해 '진정한' 마실 수 있는 금을 만들고자 했다가 실패를 거듭한 것으로 보인다. MEP 선교사 샤를 세빈(Charles Sevin ?-1707)은 시암에서 구한 실험기구를 탓했다. 세빈은 파리의 상관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신들은 왕에게 위일 도르 포타블(huile d'or potable, 음용 금유飮用 金油)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를 가져갔으나, 현지에서 구입한 유리 용기가 필요한 온도까지 올라가기도 전에 모두 깨져버렸다고 했다.[1] (AMEP, vol. 851, 190쪽).

연금술 기법을 몰라서 제작이 더뎌진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샤르본노는 자신이 보유한 크리스토프 글라세르(Christophe Glaser)의 Traité de Chymie(1667)을 언급한다. 이 책에서 글라세르는 금의 순도를 높이는 다양한 방법을 설명하고, 순도 높은 금을 약재로 쓸 수 있게 가공하는 여러 방법을 내놓는다. 뇌산 반응(fulmination)을 일으키는 것, 수은으로 하소(煆燒)하는 법, 또는 '왕수'(프랑스어는 오 레갈eau régale, 라틴어는 아쿠아 레기아aqua regia, 즉 질산 염산 혼합물)에 넣어 녹이는 것이다. '발한성(發汗性) 금가루'가 들어가는 물약 제조법을 일례로 들면, 순도를 높인 금을 왕수 3 작은 컵에 녹인 뒤, 정제한 염초 1 작은 컵을 넣는다. 이 액체로 린넨 면 쪼가리들을 적셔서, 말린 뒤, 불에 태워야 한다. 남는 재는 토끼 발이나 깃털로 조심스럽게 모아서 포도주나 부용(bouillon) 스프 약간을 섞어 환약이나 물약을 만들어야 한다.

글라세르는 책을 쓰는 목적이 평이한 언어로 화학 원리와 작용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하였으나, 샤르본노는 글라세르의 책이 혼동을 일으킨다고 불평했다. 샤르본노와 선교단 형제들은 납의 순도를 높이는 과정에서는 글라세르의 지시를 따라서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으나, 왕에게 바칠만큼 멋진 처방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와 기구를 시험해보거나 혹은 낭비할 만큼 확신하지는 못하였다.

왕의 환심을 살 마실 수 있는 금을 만드는데 이들이 몰두한 배후에는 이국적인 유럽식 처방의 효과를 선보임으로써 같은 연장선상에서 다른 유럽 지식도 제안할 수 있다는 명백한 유인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잘 설명한 최신 서적이라도 과학 이론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기술과 기구 없이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니 시암에 파견된 MEP 상관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연금술에 능한 선교사나 평신도 도우미를 보내달라고 파리 본부로 요청을 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i] 약용 금의 역사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R. 콘솔의 글은 여기, M. 헨드릭센의 글은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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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나 정작 유럽에서도 르네상스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연금술 실험을 하다가 유리가 깨지는 일은 일상다반사였다. 틸만 타페의 글, "연금술사가 투잡을 뛰면 생기는 일" 참조.

"르네상스 시대의 연금술사들은 유리나 금속이 녹아내릴 정도의 고온을 놀라우리 만큼 두려워하지 않았고, 밀봉한 유리 용기 안에 불안정한 가연성 액체를 가열할 때는 각별히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깨질 위험이 있다고 그들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정작 유리 용기를 자주 권했다."




"이 나라 왕은 뭐가 까다롭군... 
우리 임금님처럼 태양 에너지만 먹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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