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스지웡은 어디? 번역 시리-즈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명청대 민간문학, 종교, 문화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캐서린 알렉산더 교수의 11월 10일자 글을 번역합니다.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스지웡의 세계" 관련 사진은 원문에 없고, 제가 따로 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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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지웡"은 세상 누구? 무엇? 어디?

1960년대 후반, 1957년의 동명 소설에 기반한 "스지웡의 세계(The World of Suzie Wong)"가 뉴욕에서 최초 개봉하였다. 영화를 요약하자면, 별볼일 없는 백인 남성이 자아 찾기를 하러 홍콩에 나타나 수지 웡이라는 이름을 쓰는 창녀와 사랑에 빠짐으로써 자기실현을 한다는 것이다. 이 수지 웡이라는 여자는 어찌된 일인지 여태껏 아무도 몰라준 남자주인공의 온갖 재능을 알아보고,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전문 화가가 되어 작품을 팔고 유명해질 수 있게 영감을 불어넣는 것이다. 아, 그리고 줄거리를 위해 수지의 아기는 결말에 가서 죽고, 수지는 기존의 모든 속박에 풀려나 주인공과 결혼할 수 있다. 이 글은 사실 영화에 대한 글이 아니다.

이 글은 필자가 최근에 산 옷에 대한 것이다. 이 옷은 "수지 웡의 세계"를 분명 염두에 두고 만든 옷이다.

필자의 트위터 계정을 잘 알고있는 독자는 필자가 종종 온라인 경매 사이트를 둘러보면서 어떤 중국발 물품이 올라오는지 구경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몇 주 전, 필자는 치파오를 발견했는데, 메이드 인 코리아였고, 처음 만들어진 1960년대 포장상태가 그대로였다.


치파오(한국어로는 청삼)는 중국을 대표하는 옷이자 의복 양식으로 자주 문화적 도용에 관한 논란의 대상이 되곤한다. (여기, 작년에 터진 사례가 있다.)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도 비서구 문화가 자주 의상이나 캐리커쳐로 소비하는 경우가 잦다는 논의의 중심에 21세기의 치파오가 서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치파오의 역사를 연구하다보면 19세기 말에야 지금의 형태를 띄게 된 치파오는 중국에서 남성과 여성 둘다 근대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물으면서 끊임없이 재형상화된 옷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어떤 창의적인 방법으로 외부의 패션 유행이 중국인을 대상으로 적용되고 재발명될 수 있을까? 근대의 세계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이런 혁신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중국 여성은 언제 치파오를 통해 중국스러움을 정의했는가? 중국스러움은 왜 20세기 도중에 문제적이었다가 다시 문제적이지 않았는가. 왜 이 드레스는 처음 전통 중국의상에서 갈라져나온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중요한 논의을 끌어내는가. 중국 패션과 세계 패션은 어디서 만나는가? 
필자가 이 질문을 전부 답할 수는 없겠지만, 이 복잡한 사안을 더욱 복잡하게 이해하고픈 독자를 위해 링크를 달아놓았다. 

그렇다면 냉전시대 패션/지정학의 역사가 담겨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어떻게 열어보는 것이 좋을까?

우선 진짜 포장상자를 여는 것으로 시작해볼 수 있겠다... 


수지(Suzy) 웡이라고 잘못 쓰면서도 그녀의 이름을 빌림으로써 한국 제조업체 측은 영화의 유명세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심산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서울의 Shi Lee Hung Eup., Ltd.는 이 의류 제품을 만들면서 미국식 중국 음식점 메뉴에서 흔히 보이는 글자체를 선택함으로써 오리엔탈리즘을 강화한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이 브랜드가 한국 것임을 숨길 이유를 느끼지 않았다. 국가명을 포장상자에 두 번이나 인쇄했고,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인쇄함으로써 이국주의를 더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도 14세기 말에서 19세기 말까지 한반도를 다스린 조선 왕조의 이름을 글자 그대로 직역한 것이라고 내세우면서 극동에 대한 19세기 유럽의 낭만주의적 환상에서 나온 이름이다. 

이 제품은 말할 것도 없이 관광객을 대상으로 나온 것이다. 한국의 서울이 수지 웡의 홍콩과 거리가 있다던가 치파오 양식의 드레스가 한국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을 모르는 영어권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을 여행한 관광객은 기념품을 갖고 돌아가고 싶어할 것이고 타자의 이국적인 여성성을 통째로 몸에 두를 수 있는 옷보다 좋은 선택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전후 한국인들에게는 봉제 기술을 발휘해서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와 문화권을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옷을 파는 것만큼 좋은 돈벌이 기회가 있을까? 

이 구겨진 상자 안에는 (내가 이걸 산 자선 상점이 위치한 곳이니 아마도) 오하이오 출신 주디가 포장된 채로 꺼내보지도 않은 치파오가 들어있다. 


포장 속에는 선 그림이 찍혀있다. 몸은 없고 드레스만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기념품을 받는 사람이 오리지날 오리엔탈 크리에이션(Original Oriental Creation)의 "수지 웡"이라도 된 듯, 저 얼굴없는 형체에 자신을 이입할지도 모르니까.



벼룩으로 의류를 구매할 때마다 (요즘들어 점점 더 자주 그러는데 이건 비학술적 블로그에 쓸 주제다) 필자는 시간을 들여 같은 기업이 만든 같은 옷을 다른 곳에서도 찾아본다. 주로 엣치(Etsy)와 이베이(Ebay)를 검색한다. 실제로 똑같은 "수지 웡(Suzy Wong)" 이름이 들어가있는 드레스를 여기여기서 두 벌을 더 찾았다. 그러나 이 옷 두 벌을 찾는데만 "수지 웡"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는 수백 벌의 치파오 스타일 드레스를 훑어넘겨야 했는데, 왜냐하면 개봉한지 거의 60년이 되어가는 영화의 대단한 유명세 덕분에 미국 관객은 수지 웡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중국식 드레스와 연관 짓게 되는 무언가가 문화적 기억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에 대한 뿌리 깊은 착각, 오래가는 오해, 이국적으로 그려지는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일. 미국에서 중국과 중국 문화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직업으로 삼는 이상 필자의 핵심 임무는 이게 아닐까?

이 드레스를 필자가 입을 날이 올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홍콩과 대만에서 만든 치파오가 더 잘 맞기는 하지만, 이 옷도 몸에 잘 맞는다. 

입게 된다면, 이 옷에 얽힌 이야기를 하겠다는 각오와 함께 입을 것이다. 치파오라는 의복 양식이 지난 수백년간 어떻게 발달해왔는지부터, 동양에 가서 완벽한 이국적 여성을 만난다는 백인 남성 판타지가 어떻게 다수가 기억하는 문화 전반을 장악하게 되었는지, 소설 속 여성의 동서양 혼종 이름이 어떻게 해서 하나의 미학을 대변하게 되었는지도. 중국 문화에 대한 사실적이고 진실적인 표현이 지원지는 것에 대항해 싸우기 위해서는 이 지워지는 행위가 어떻게 이뤄지는 지적할 용기가 필요하다. 한 번에 한 벌 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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