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어우 락이라는 나라는 없어 인도차이나 ~Indochine~


이번 수능의 "동아시아사" 과목 문제라고 합니다.
저 5번 선택지의 "어울락(어우락) 왕국"에 대한 글을 번역해보아야겠군요.


Liam Kelley 교수님의 There was Never a Kingdom called "Âu Lạc"을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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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락이라는 나라는 없었다

필자는 어우 락 왕국(甌) 이야기를 듣는데 질렸다. 그 어떤 나라의 이름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계속해서 입에 올리는 것이다. 

오늘날 "어우 락"이라는 용어는 안양왕(安陽王, 안즈엉브엉)이라는 왕이 기원전 3세기 홍하 삼각주 지역에 세웠다는 왕국의 이름으로 일컬어진다. 

솔직히 말하자면, 안양왕이라는 사람이 왕국을 세웠는지 증명하기에 충분한 (문헌적, 고고학적) 역사적 근거는 없다. 안양왕이 홍하 삼각주 지역의 지배 계층을 공격해서 굴복시켰다는 문헌 기록도 있고, 오늘날 "꼬 로아(Cổ Loa)"라고 불리는 곳에 당시 이미 존재했던 성벽 안에 왕궁을 지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밖에는 이 "왕국"에 대한 정보가 없다. 그러므로 안양왕이 실제로 "왕국"을 다스렸는지는 말하기 어려운데, 꼬 로아 성벽 너머까지 진정 "지배"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관료를 파견해서 지방을 다스리게 했을까? 세금은 걷었을까? 여기에 대한 정보는 없다.


이 "왕국"이 "어우 락"이라고 불렸다는 언급도 당시로부터 약 1700년이 지난 15세기에나 등장한다. 영남척괴(嶺南怪, 링 남 칙 꽈이)와 대월사기전서(大越史記全書, 다이 비엣 스 끼 또안 트)라는 책인데, 이 책들은 어찌 된 일인지 이때까지 한 번도 기록된 적이 없는 먼 옛날에 대해 방대한 정보를 "밝혀낸다"...

필자는 여기 등장하는 문제적인 정보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어우 락"이라는 이름은 그 시대에 "만들어진 전통"일 뿐이다.  

안양왕에 대한 가장 이른 기록이자 유일하게 "역사적으로 믿을 만한" 기록은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아주 믿을 만하다고는 할 수 없다) 역도원(酈道元)의 수경주(水經注)인데, 수경주에는 보다 조금 이른 시기의 문헌 몇 편이 인용되어있다. 


수경주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교주외역기에 말하길, 교지(交趾)가 옛날에 아직 군현이 없었을 때, 토지에는 락밭(雒田)이 있었고, 그 밭은 조수(潮水)의 오르내림을 따랐다. 그 밭을 개간해서 먹고사는 백성의 이름은 락민(雒民)이었다. 락왕(雒王)과 락후(雒侯)를 세워 여러 군현을 다스렸다. 현에는 여러 락장(雒將)이 있었다. 락장은 구리 도장(銅印)과 푸른 끈(青綬)을 가졌다.


交州外域記曰,交趾昔未有郡縣之時,土地有雒田,其田從潮水上下,民墾食其田,因名為雒民。設雒王雒侯主諸郡縣。縣多為雒將。雒將銅印青綬。

"이후 촉나라() 왕자가 병사 3만을 이끌고 와서 락왕, 락후를 토벌했고 여러 락장을 복속시켰다. 촉나라 왕자는 그리하여 안양왕(安陽王)이 되었다."  

後蜀王子將兵三萬來討雒王、雒侯,服諸雒將,蜀王子因稱為安陽王。

"이후 남월왕(南越王) 군위(郡尉) 타(佗)가 무리를 이끌고 안양왕을 쳤다. 안양왕에게는 고통(皐通)이라는 신인(神人)이 밑에서 보좌하였는데, 안양왕에게 귀신을 다스리는 석궁[1] 한 장(張)을 만들어 한 발을 쏘면 300명을 죽였다. 남월왕은 싸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군사를 물려 무녕현(武寧縣)에 자리잡았다."

後南越王尉佗舉衆攻安陽王,安陽王有神人名臯通,下輔佐,為安陽王治神弩一張,一發殺三百人,南越王知不可戰,却軍住武寧縣。

"진태강기(晉太康記)"를 보건대, 이 현은 교지에 속해있다. [남]월나라에서 태자[조타의 아들]를 보냈는데 이름이 시(始)였다. 안양왕에게 항복하고, 신하를 칭해 그를 섬겼다. 안양왕은 [고]통이 신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를 무례하게 대했다. 통은 결국 떠나면서, 왕에게 말였다. '이 석궁을 가지면 천하의 왕이 될 수 있고, 이 석궁을 못 가진다면 천하를 잃을 것입니다." 그리고 통은 떠났다. 

按《晉太康記》,縣屬交趾。越遣太子名始,降服安陽王,稱臣事之。安陽王不知通神人,遇之無道,通便去,語王曰:能持此弩王天下,不能持此弩者亡天下。通去。


"안양왕에게는 미주(媚珠)라는 딸이 있었는데, 시(始)가 단정한 것을 보았다. 주는 시와 교통하였다. 시가 주에게 묻기를, 아버지의 석궁을 가져와 보여달라고 하였다. 시는 석궁을 보고는, 석궁을 몰래 톱으로 끊고는, 남월왕에게 도망쳐 돌아가 보고하였다.   

남월은 병사를 이끌고 공격하였다. 안양왕은 석궁을 쏘았으나, 석궁이 부러져 결국 졌다. 안양왕은 배를 타고 바다로 도망쳤다. 지금 평도현(平道縣) 뒤에 왕궁성이 보이니 그 옛터다.

安陽王有女名曰媚珠,見始端正,珠與始交通,始問珠,令取父弩視之,始見弩,便盜以鋸截弩訖,便逃歸報南越王。南越進兵攻之,安陽王發弩,弩折遂敗。安陽王下船逕出于海,今平道縣後王宮城見有故處。 



이야기는 이렇다. 말했듯이, 안양왕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왕국"을 다스렸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그 왕국 이름이 "어우 락"이 아니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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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獠子)가 석궁을 잘 다뤘다는 내용과 연결짓는 이들도 있다. 


P.S.
여름 4월에 왕자 호동(好童)옥저(沃沮)로 놀러 갔을 때 낙랑왕(樂浪王) 최리(崔理)가 출행하였다가 그를 보고서 묻기를 “그대의 얼굴을 보니 보통사람이 아니구나. 어찌 북국 신왕(神王)의 아들이 아니겠는가?”하고는 마침내 함께 돌아와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후에 호동이 나라로 돌아와 몰래 사람을 보내 최씨 딸에게 알려서 말하기를 “만일 그대 나라의 무기고에 들어가 북과 뿔피리를 찢고 부수면 내가 예로써 맞이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맞이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이에 앞서 낙랑에는 북과 뿔피리가 있어서 적의 병력이 침입하면 저절로 울었다. 그런 까닭에 이를 부수게 한 것이다. 이에 최씨 딸이 예리한 칼을 가지고 몰래 창고에 들어가 북의 면(面)과 뿔피리의 주둥이를 쪼개고 호동에게 알렸다. 호동이 왕에게 권하여 낙랑을 습격하였다. 최리는 북과 뿔피리가 울리지 않아 대비하지 못하였다. 우리 병력이 갑자기 성 밑에 도달한 연후에야 북과 뿔피리가 모두 부서진 것을 알았다. 마침내 딸을 죽이고 나와서 항복하였다. 혹은 말하기를 “낙랑을 멸하려고 청혼을 해서 그 딸을 데려다 며느리로 삼고, 후에 본국으로 돌아가서 병기와 기물을 부수게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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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진냥 2018/11/17 03:23 # 답글

    영남척괴열전은 전기만록과 더불어 무척 재미있게 읽었지요!
    현재 동아시아사 교과는 동아시아사라는 패러다임 하에 베트남을 다루려고 노력하지만, 정작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는 동아시아라는 패러다임 뿐만 아니라 인도나 이슬람, 유럽의 패러다임도 함께 작용하고 있어서... 현행 동아시아사 교과의 안일한 내용체계로는 결코 소화시킬 수 없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ㅠㅠ
    억지로 동아시아 패러다임에 구겨넣는 것보다 동남아시아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편이 좋을 텐데요. 뭐, 정작 저에게 구상해보라고 하면 딱히 대안이 없어서 막막할 따름이지만....
    ....남중생님 힘내세요(소근)
  • 남중생 2018/11/17 09:12 #

    세심한 말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대로, 베트남사를 동아시아사라는 관점에서 볼 여지는 분명 있겠지만 현재 고등학교 교육과정 내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제가 이번 포스팅부터 새로 시도한게 있는데, 그전까지는 베트남 한문 이름은 한국식 한자음 표기만 했다면 이제부터는 베트남의 발음도 표기(안즈엉브엉)하려고 합니다. 고등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친다는군요.^^

    무엇보다도 응원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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