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갈고리주둥이 풀"의 비밀 [특집] 뱀, 여자, 위험한..

Recipes Project 합동 블로그의 Transmission of Drug Knowledge in Medieval China: A Case of Gelsemium를 번역합니다. 
---------------------------------------------------------------------------------------------------------------------------

"갈고리주둥이 풀"의 비밀

옌 리우(Yan Liu)
그림 1. 본초품휘정요(本草品彙精要, 1505)의 구문 그림. 
사진 출처는 정진셩 편저 "중화대전" (2008).  


전통 중의학의 특징적인 면모로는 독성 물질을 풍부하게 사용한다는 것이 있다. 대표 사례로는 오두(烏頭), 비소(砒素), 우황(牛黃) 등이 있다. 이러한 물질의 독성(전근대 중국인들이 말한 "독毒")을 익히 알고 있던 중국 의사들은 독성 물질을 가공하고 치료에 쓰는데 다양한 방법을 개발했다. 전근대 중국에서는 이런 지식이 어떻게 생산되었을까? 지식은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어떻게 이동했을까? 필자는 7세기 의학 문헌에서 남부 중국에 자생하는 "겔세뮴(Gesemiium, 구문鈎吻 혹은 야갈野葛/冶葛)"이라는 독초를 중심으로 위와 같은 질문을 탐구해보고자 한다. (그림 1)

중국 의학사에서 7세기는 중요한 시점이다. 당나라(618-755) 전기의 안정적인 정치 환경 덕분에 의학 이론이 활발히 유통되었고 영향력 있는 문헌이 여러 편 만들어졌다. 그중에는 중국 역사상 최초로 국가가 후원한 의학사전 신수본초(新修本草, 659)가 있다. 조정에서 학자 20명 이상을 동원하여 집성한 신수본초에는 의학적 지식을 표준화하고자 했던 정부의 노력이 드러난다. 신수본초에 나오는 850종의 약재 중에는 "겔세뮴"도 있다. (그림 2) 뜨겁고, 쏘는 맛이 있고, 독성이 몹시 강하다고 정의된 겔세뮴의 뿌리는 다른 증상 보다도 날붙이에 다친 상처, 종기, 염증, 발작을 고칠 수 있었다. 신수본초의 저자들은 겔세뮴 이파리 한 두 잎에서 짜낸 즙으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고 설명하면서 겔세뮴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하지만 염소는 겔세뮴을 먹어도 죽지 않는다. 오히려, 겔세뮴 새순을 먹인 동물은 덩치가 커졌다. 학자들은 생각하기를 세상 그 무엇이라도 적수가 있다는 이치라고 하였다. 

당대 의사들도 겔세뮴을 사용하였다. 손사막(孫思邈, ?-682)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의사로 손꼽히는데 천금요방(千金要方, 7세기 중반)이라는 책을 쓰면서 이 약재를 포함시켰다. 겔세뮴은 독초임에도 불구하고 19가지의 처방에 등장하고, 특히 증상별 치료에 나타난다. 특히 독성 염증, 팔다리의 통증과 마비, 종기, 발에 힘이 없을 때 등의 증상을 치료하는 겔세뮴 연고(야갈고野葛膏) 제조법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손사막은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이 처방은 천박한 사람에게 제공해서는 안 된다. 조심할 것.(此方不可施之猥人, 慎之)"

손사막은 왜 이 처방이 천한 사람, 즉 평민들의 손에 닿지 않도록 했을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번째는, 겔세뮴을 다루는 것이 섬세함을 요했기 때문이다. 독성이 워낙 강한 탓에, 자칫 잘못 썼다가는 끔찍하고 더러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평민들은 겔세뮴을 다루는데 제대로 된 지식을 보유하지 않을 수 있으니, 이 처방을 쓰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 겔세뮴은 약인 동시에 독이었기 때문에, 일반인은 이것을 써 남을 해치려 할 수 있었다. 이들이 겔세뮴을 손에 넣지 못하게 함으로써 손사막은 이와 같은 악용을 방지하고자 하였다. 당대 사료를 보아도 손사막의 우려에 공감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8세기의 의료 관련법을 보면 개인 가정은 겔세뮴을 소지하는 것이 불법이었다. 정부는 겔세뮴이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겔세뮴에 대한 접근성을 강하게 통제한 것이다. 

그림 2. 신수본초(659)에서 말하는 구문. 
이 사본의 출처는 돈황 문서(P.3714)이며, 667년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 출처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 (Gallica). 
                              (羊食. 獸, 大物肥, 有相伏, 如此)
왼쪽에서 10번째 줄: "양은 먹는다. 짐승은 몸집이 커지고 살이 찌니, 상복(相伏)이 있기가 이와 같다."


이렇게 되니 겔세뮴이 실제로 약으로 쓰이긴 했는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사회 상류층에서는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나라(奈良)의 토다이지(東大寺) 사원에는 756년 코묘(光明) 황후가 덕을 베풀기 위해 기증한 희귀 약재들이 보관되어 있는데, 여기서 증거를 찾을 수 있다. 당시 중국과 일본 사이 오갔던 활발한 문화 교류로 인해, 중국에서 유래한 약재가 많이 일본으로 향했다. 그중에는 겔세뮴도 있었다. (그림 3) 나라 조정과 당나라 조정이 모두 겔세뮴의 의학적 가치를 높이 산 만큼, 겔세뮴은 교역 품목이었을 수도 있다. 

그림 3. 나라 토다이지 절의 쇼소인(正倉院)에 보관된 8세기 추정 겔세뮴 뿌리. 뿌리 직경은 0.5-2.0cm이고 길이는 17-24cm이다. 출처는 일본 궁내청 웹사이트.

지역 사회에서는 여건이 달랐다. 당 제국의 서쪽 끝, 실크로드 상에 위치한 돈황이라는 거주지에서 발견된 7세기 사본에서 사뭇 다른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이 사본에는 사소한 처방들이 적혀있고, 많은 경우 피부에 바르는 식이다. 회초고(茴草膏)라는 이름의 연고에 주목해봄직하다.(그림 4) 필자가 위에서 제시한 손사막의 처방과 매우 유사하지만, 겔세뮴을 쓰지 않는다는 중대한 변형이 일어났다. 당륙(當陸)이라는 약재 이름 밑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적혀있다. "본래 처방은 겔세뮴을 쓴다. 오늘날에는 얻을 수 없으니, 당륙으로 대체한다.(本方用冶葛, 今不可得以當陸代之)"[1] 왜 이런 변형이 일어났는지 추측해볼 수 있는데, 겔세뮴의 자생지는 중국 남부 즉 돈황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고 앞서 설명했듯이 평민들의 손이 닿지 않게 금지 품목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당륙은 현지에서 자라는 약초로 약효는 겔세뮴과 상당부분 겹쳤고, 멀리 있어 얻을 수 없는 겔세뮴 대신 쓸 합리적인 대용품이 된 셈이다. 

이처럼 약재를 대체해서 쓴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 사회지도층과 달리, 지역사회의 일반 백성들은 의료 자원이 한정되어있다는 어려움에 직면해있었다. 그에 따라 이들은 대안책을 찾았다. 제국의 중심에서 등장한 권위있는 문헌은 그리하여 다양한 지리적 사회적 영역으로 이동함에 따라 유동적인 변화를 겪었다. 의학 지식은 전파됨에 따라 분해되고, 사회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되었다. 

그림 4. 돈황 문서(P. 3731)에 보이는 약물 대체. "회초고" 제조법에는 파란색 상자를 쳐놓았다.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작은 글자로 쓰인 주석으로, 겔세뮴을 당륙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 출처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Gallica).
=============================================================================================================================

[1] 사실 원문에는, "본래 처방에는 야갈(冶葛)을 쓴다"고 적혀있다. 

야갈(冶葛 혹은 野葛)은 겔세뮴(구문)의 또다른 이름이다. 일본 궁내청 기록에도 "야갈"로 기록되어 있다. (칡과 연관은 없어보인다.)  




핑백

  • 남중생 : 14세기 중국의 외과 수술과 마취제 2018-11-12 23:47:09 #

    ...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는 몰리-존스-루이스의 게시물을 참조.) 그러나 잘 사용하기만 하면, 오두는 효능이 강력했고, 독을 약으로 쓰는 중의학 체계의 일환이었다. (옌 리우의 게시물 참조.) 뜨겁고 쏘는 성질을 가진 오두는 질병을 일으키는 풍(風)과 냉기를 몸 밖으로 몰아내고, 몸 속 침전물을 분쇄하고, 몸의 기운을 다시 일으켰다. ... more

  • 남중생 : RECIPES PROJECT 원문 게재 순서 2018-11-14 22:24:36 #

    ... --------- 목차 2013년 7월 11일 (2018년 8월 21일 재게재) - 연금술사가 투잡을 뛰면 생기는 일! 2016년 7월 7일 - "갈고리주둥이 풀"의 비밀 2017년 7월 19일 - 뇌피셜과 갈리아 전기2017년 9월 26일 - 14세기 중국의 외과 수술과 마취제2017년 12월 14일 - 19세기 중 ... more

덧글

  • Lee 2019/02/12 17:30 # 삭제 답글

    야갈이라는 명칭의 갈은 아마도 덩굴식물이라는 점과 연관 있을 듯 합니다.

    Gelsemium 속 식물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데, 흔히 '개나리 자스민'이라 유통되는 캐롤라이나 자스민(G. sempervirens)가 그것입니다. 구문, 즉 G. elegans 와 같이 덩굴식물이나, 잎은 작고 꽃은 크며, 화서의 형태가 다릅니다. 이름대로 미국 동남부가 원산지이며, 마찬가지로 독이 있습니다.
  • 남중생 2019/02/12 18:24 #

    오호, 그렇군요!! 옛날 사람들이 "갈"의 일종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저런 이름을 붙였을텐데... 라고 궁금해하던 참이었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