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안남 아가씨"와 1943년 중국이 부르짖은 범아시아주의 [호치민과 베트남 전쟁]

앞 포스팅과 마찬가지로 베트남 여성과 열대과일이 주된 심상으로 등장하지만, 사뭇 다른(?) 시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Liam Kelley 교수님의 The Annam Maiden" and a Chinese Call for Asian Unity in 1943를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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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 아가씨"와 1943년 중국이 부르짖은 아시아 연합

필자는 최근에 1943년 엄걸인(嚴杰人)이 쓴 "안남 아가씨"(安南女郞)라는 제목의 중국어 시를 접했다. 엄걸인은 광서성 출신 작가이자 기자였고 1940년에 공산당 지하조직에 가입했다.

이 시는 엄걸인이 중월 국경에서 본 한 여인에 대한 것이다. 엄걸인의 묘사(예컨대 푸른 터번을 쓰고 있었다는 점)를 볼 때, 이 "안남 아가씨"는 오늘날 우리가 "소수 민족"이라고 부를 집단에 속한 여성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엄걸인에게 이 여성은 "안남"의 표상이었고, 그녀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래 시는 문학창작(Wenxue chuangzuo 文學創作, [2卷, 1期, 97-8])이라는 문예지에 출간되었다. 필자는 이 작품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우선 시 전문을 소개하고, 감상평은 아래에 달겠다.


국경에서
당신을 보았소
유심히 살피는 눈빛으로
반라의 육체를 보았소

머리 위 푸른색은 프랑스인의 눈동자
벽람의 천공
아열대의 붉은 토양 위에 우두커니 서서
전신을 오롯이 드러내었구나

당신 조국의 지도와 한가지로 
S형의 곡선

당신의 자태
그것을 보는 나는 한 그루
당신 고향 땅의 야자수 나무를 떠올렸소
당신은 참으로 한 그루 야자수 나무야

당신의 몸
야자수나무 줄기처럼 붉은 맨땅에 서있고
야자수 나무 줄기와 한 빛깔을 띠었어

당신 머리카락
야자수 나무 이파리처럼 울창한 녹색으로 생기넘치고
당신 앞가슴에 달린
두 개의 젖망울은 
또 야자수 나무의 설익은 열매를 닮았어


당신 자매들과 한가지로
당신도 빈랑을 즐겨 씹어
분홍색 입술을 검붉게 물들이게 내버려두네
새하얀 이빨을 새카맣게 물들이게 내버려두네

당신들이 집요하게 계승하는
당신네 종족의 기호(嗜好)
종족의 혈통을 계승하는 것 같아
혹여나 자기자신이 
자기 종족을 잊지 못하게 하려는 것인지?

아아
그리고 당신은 노래를 불렀소
고통과 원통(寃抑)
목청을 비틀고 꺾어
즐거움을 슬픔처럼 
가성을 마치 곡성 처럼 만들었소

당신의 시원한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귓가에 선하니
당신네 남자들의 피를 타고 흐르는 홍하(紅河)
당신네 눈물을 타고 흐르는 메콩강의 울음을


그리고 나는
당신 노래부를 때
(당신 흐느낄 때)
나도 흐느꼈소

당신의 노랫소리에
(당신의 울음소리에)
나를 떨쳐낼 수 없는 
농중한 비애로 전염시켰소

안남의 여아(女兒)여
당신은 알고있소

내 종족과 당신 종족이
동일한 근량의 고통의 무게를 분담하고 있음을
내 국가와 당신 국가는
같은 잔혹한 대우를 한가지로 받고 있음을

당신은 또 알고 있소
당신 고통과 비애
곧 나의 고통과 비애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같이 불타버린 땅 위에 자라는 초목이오
폭풍이 몰아칠 때
서로 기대고 울부짖지 않겠소


한 반세기 동안
중국, 안남, 면전, 섬라
그리고 조선과 인도까지
모두 내몰려
가시밭길 위를 힘겹게 걸었소

아시아---
이 고유명사는
침략자가 고쳐버린
「치욕」의 대명사

지금
침략자를 몰아낼 때가 왔소
중국이 앞장서
반항의 깃발을 쳐들면
히말라야 산의 저 봉우리
인도 형제들도
진군의 나팔을 불어

친애하는 안남 아가씨
이 소리가 들리나요


우리 하나의 아시아인
하느님의 명을 받아
침략자에 항쟁한다

이 세계의 우리들은
오로지 항쟁만으로 
모든 아시아인의 생명
존재의 가치를 지켜내는 것

그렇다면
우리 모든 아시아인
함께 항쟁하고 존재하자

친애하는 안남 아가씨여
심지어 당신과 당신 자매들
젖망울 속의 풍성한 젖줄기도
항쟁의 다음 세대를 기르기 위해 흐르는 것이오

오늘
우리 아시아인 모두가
큰소리 내어 맹세를 하자---

우리 히말라야 산의 혈맥이 흘러가는 곳
모두 행복과 희열로 충만하기를
그리고 에베레스트 봉에 우뚝 서서
이 세계의 지붕 위에서 우주를 바라봄에
모두 한가지 기쁨과 자유로 충만하기를


이 시에서 흥미로운 점은 범아시아적 연합에 호소하는 것과 베트남 사람을 향한 다소 멸시적인 중화중심적 시각을 합친다는 점이다. 엄걸인은 안남/베트남의 상징으로 "안남 아가씨"를 썼다. 그 상징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음... 반라의 상태에, 빈랑을 씹어 치아는 검게 물들었고 풍만한 가슴이 달린 굴곡진 몸매다.

잠깐 숨을 가다듬고 생각을 해보자... 1943년, "문학창작"지의 평균적인 남성 독자가 이 시를 읽었을 때 뭐 하나라도 공감한 부분이 있었다면 그게 무엇이었을까? 침략자에 저항하자는 범아시아주의적 열정에 찬 호소였을까?

아니면 "코코넛 소녀"의 심상이 불러일으켰을 다른 종류의 열정이었을까?  

궁극적으로 필자는 이 시가 "침략자"와 "항쟁자" 보다 훨씬 강력하다고 보이는 두 동력 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상과 현실이다. 범아시아적 연합에 대한 호소는 듣기 좋았겠으나, 각 지역 사회에 훨씬 깊이 각인되어있는 다른 주장들에도 대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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