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15세기 베트남 학자는 노동자 계급에 대해 뭐라고 말했을까? 인도차이나 ~Indochine~

Liam Kelley 교수님의 The Problem of "Textual Drift" in Studies on Premodern Vietnamese History를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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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베트남사 연구에서 보이는 "문헌 표류 현상"

베트남 역사 개론서 한 권이 아주 최근에 출간되었다. 예일 대학교 벤 키어넌 교수의 "베트남: 태초부터 현재까지"(옥스포드 출판사, 2017)라는 책이다. 키어넌은 베트남어도 모르고 [정정: 키어넌이 베트남어를 어느 정도 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베트남 사료를 인용하지 않고, 영어나 불어로 번역된 베트남어 사료만을 인용한다.] 한문도 읽을 줄 모르지만, 베트남사에 대해 영어로 쓰인 자료를 많이 읽었고, 다년간 베트남사를 가르쳐왔다. 

그러니 키어넌의 신간은 현존하는 영어로 된 베트남사 관련 학술자료를 가지고 개론적인 그림을 그리고자 한 지식인의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반대로, 키어넌이 책에서 내린 결론을 보면 우리는 베트남사 전문가들이 독자들에게 베트남의 과거에 대해 얼마나 잘 설명해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점을 살펴보기 위해 15세기 초 명나라가 베트남을 지배한 시기에 대해 키어넌이 주장하는 바를 검토해보자. 저서의 198쪽에서 키어넌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명나라의 지배에 항쟁하는 과정에서 이미 역사적 신화에 얽혀있던 민족 구분이 양극화했다. 대월의 문인은 기쁨에 차 다음과 같이 말했다. '토지는 다시금 남국의 토지요. 백성은 다시금 비엣 인종의 백성이라. 저고리와 치마와 풍속이 과거와 동일하네. 도덕과 정치의 기강이 옛날대로 다시 섰구나." (198)


필자는 명나라에 대한 항쟁이 민족 구분을 양극화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으나, 키어넌은 "비엣 인종"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하는 당대 사람을 인용하고 있다. 그리고 대개 자기 집단에 대해 이와 같은 자부심을 표현한다는 것은 다른 집단은 낮춰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인용문의 출처는 무엇일까?

주석에는 알렉산더 B. 우드사이드의 "베트남과 중국식 모델"(케임브리지 대학, 석사 논문: 하버드 대학교 출판사, 1971), 21쪽에서 인용한 람선 식록(Lam sơn thực lực)이라고 되어있다. 

람선 식록은 1430년대 쓰였는데, 이 글이 쓰이기 얼마 전 레 러이가 명나라 군대를 국외로 몰아내고 자주성을 회복하는데 성공한 것에 대한 것이다. 이 글의 저자(혹은 저자 집단)가 누구였는지는 불확실하나, 학자 관료 응우옌 짜이를 지목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우드사이드의 저서를 확인해보았다. 필자가 처음 "베트남과 중국식 모델"을 읽은 것은 대학원생 시절인 1994년이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20대 청년이었다. 당시에 필자는 책 내용 옆에 첨언을 달아놨는데, 오늘 책을 펼쳐보니, 이 인용문이 나온 페이지에 필자가 "인종(race)"이라는 단어에 동그라미를 쳐놓고는 "확인할 것"이라고 써놓은 것이었다.

그러니 필자는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이미 인종이라는 개념은 서양의 개념이고 중국과 베트남 같은 곳에서 이 개념을 수용한 것은 20세기로 넘어가면서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프랭크 디쾨터의 "근대 중국의 인종 담론" 1992)이라는 책을 읽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니 어쩌면 그 시점에서 이미 디쾨터의 책을 읽은 상태였을지도 모르겠다. 


확인하라고 써놓기만 하고 실제로 확인한 기억은 없다. 그래서 오늘 마침내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알고 보니 우드사이드는 람선 식록을 직접 인용한 것이 아니었다. 해당 인용에 대한 주석에는 "Hải Thu, ‘Bàn thêm về thái độ của Nguyễn Trãi đối với nhân dân lao động,’ NCLS, 85: 24-29쪽 (1966년 4월)에서 현대 베트남어로 번역된 람선 식록을 인용."이라고 되어있었다. 

다시 말해, 우드사이드는 북베트남의 학술지인 "역사 연구(Nghiên cứu lịch sử)"에 등재된 하이 투(Hải Thu)라는 학자의 논문에 나와있는 람선 식록의 한 구절을 영어로 번역했다. "응우옌 짜이의 노동 인민에 대한 태도를 둘러싼 보론"이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응우옌 짜이는 람선 식록의 저자일 지도 모르는 15세기의 학자 관료다. 응우옌 짜이가 람선 식록을 실제로 썼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응우옌 짜이가 쓴 다른 글은 모두 자신이 식자층의 일원이라는 것을 나타내며, 그가 단 한 번도 "노동 인민"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이 논문은 제대로 된 역사 연구가 아니라, 마르크스 사관에 입각한 선전선동 작품이다.

그럼에도 우드사이드가 번역한 람선 식록의 구절은 분명히 해당 논문에 실려있다. 그 구절은 막 바오 턴(Mạc Bảo Thần)이라는 사람이 1944년이나 1945년에 처음으로 번역한 람선 식록에서 인용한 것이었다. 그 중에서 하이 투가 자신의 논문에 인용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Đất cát lại đất cát nước Nam! Nhân dân lại nhân dân giống Việt! Áo xiêm phong tục đúng như xưa! Nề nếp mối giềng lại sang như cũ (bản dịch của Mạc-bảo-Thần).


우드사이드가 인용한, '토지는 다시금 남국의 토지요. 백성은 다시금 비엣 인종의 백성이라. 저고리와 치마와 풍속이 과거와 동일하네. 도덕과 정치의 기강이 옛날대로 다시 섰구나."라는 것은 위 구절을 충실하게 번역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비엣 인종(giống Việt)"이라는 표현은 확실히 여기에 나온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인종이라는 것은 근대 용어다. 15세기 문헌에 나타났을 리가없다. 그렇다면 고전 한문으로 된 원문에는 뭐라고 써있을까?

현재 필자는 람선 식록의 2개 사본(파리에 소장된 사본과 도쿄에 소장된 사본) 밖에 확인해 볼 수 없는데, 둘 다 같은 정보가 실려있다. 
土地復安南土地,人民復安南人民。風俗衣冠,得以復正,綱疇統紀,得以復明矣。

"토지는 다시금 안남의 토지요. 인민은 다시금 안남의 인민이라. 풍속과 의관이 바르게 돌아왔네. 강도와 통기가 다시금 밝아졌구나."

흐음... "비엣 인종"에 대한 내용은 아무리 봐도 없다. 오히려 이 문헌에서는 해당 지역을 "중국식" 지명인 "안남(安南)"으로 부른다. 그러면 왜 막 바오 턴의 번역은 이토록 차이가 나는 것일까?


막 바오 턴은 뉴엉 똥(Nhượng Tống)이라는 사람의 필명이었다. 뉴엉 똥(1904-1949)은 남 딩(Nam Định) 지역의 유학자 가문에서 자랐다. 그는 베트남 국민당(Việt Nam Quốc Dân Đảng)을 공동창립하였으며, 프랑스 총독부에 의해 체포되어 꼰 다오(Côn Đảo ) 유형소에서 1929년에서 1936년까지 복역했다. 

1944-45년 시기에 뉴엉 똥은 다량의 글을 출간했다. 중국 고전을 번역한 것도 있었고 민족주의적인 주제에 대한 글도 있었다. 이를테면 베트남 국민당의 창설자 응우옌 타이 혹(Nguyễn Thái Học)에 대한 책이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뉴엉 똥이 람선 식록을 번역 출간한 것이었다. 이 책은 1940년대와 50년대에 사이공에서 재판을 거듭했다. 

한편 뉴엉 똥은 1949년 하노이에서 월맹 세력에 의해 암살당했다.

 
뉴엉 똥의 민족주의적인 면모를 생각하면 왜 "안남의 인민"을 "비엣 인종"이라고 번역했을지 이해할 수 있다.

전근대 베트남 문인들은 "안남"이라는 용어를 자국을 의미하는 중립적인 의미로 사용하였지만, 20세기 베트남 민족주의는 "안남"을 프랑스의 식민지라는 굴욕적인 현 상황과 중국의 조공국이었던 과거의 굴욕적인 위치를 떠올리게 하는 "멸칭"으로 바꾸어놓았다. 

그러나 15세기에 "토지는 다시금 안남의 토지요. 인민은 다시금 안남의 인민이라"고 적은 사람은 "안남"이라는 용어를 이런 식으로 문제삼지 않았다. 

뉴엉 똥의 문제는 근대적인 문제였고, "안남"이라는 옛 용어를 "비엣 인종"이라는 근대적 용어로 교체함으로써 이 근대적인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람선 식록에 원래 쓰여있던 내용을 완전히 왜곡해버렸다.


그러니 민족주의의자 뉴엉 똥은 1940년대에 전근대 문헌을 형편없는 (민족주의적) 번역을 해서 15세기의 람선 식록 원문에는 없는 "비엣 인종"을 언급했다. 

1960년대에 뉴엉 똥의 세계와는 반대되는 정치계에 있었던 하이 투는 형편없는 (맑스주의 선동) 글에 뉴엉 똥의 글을 인용했다. 

1960년대의 더 늦은 시점, 영어권에서는 그 누구도 살펴보지 않았고 영어권에서는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주제를 살펴보던 젊은 학자 알렉산더 우드사이드는 책을 쓰면서 "비엣 인종"에 대한 맑스주의적 선동 문건에서 찾은 민족주의적 오역문이라는 형편없는 내용을 인용했다. 

수 십 년 뒤, 베트남 전문가가 아닌 원로 학자가 우드사이드의 책에서 중역을 거친 "비엣 인종"에 대한 인용문을 인용함으로써 15세기 초 베트남에서는 명나라의 지배 시기 동안에 "민족 구분이 양극화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현상을 필자는 "문헌의 표류"라고 부르고자 한다. 람선 식록 구절의 의미는 시간이 지나면서 "표류"했고, 그 과정에서 매 학자 마다 원문을 찾아보거나 충실히 옮기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뉴엉 똥은 민족주의적인 목적에서 원문을 왜곡했다. 하이 투는 뉴엉 똥의 왜곡된 번역을 검토하지 않았(거나 못했)고, 원문에서 이야기하지 않은 "응우옌 짜이의 노동자에 대한 시각"을 주장하기 위해 이용했을 뿐이다. 

우드사이드는 뉴엉 똥의 오역을 확인하지 않고 중월관계사에 대한 주장을 하는데 인용했다. 

키어넌은 뉴엉 똥의 오역을 확인할 능력이 없는 채로 15세기 베트남에서 "민족 구분이 양극화했다"는 것을 주장하는데 사용했다. 

매 학자 마다 우리는 "원문"의 의미에서 점점 더 멀어지며 "표류"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헌 표류 현상"이고, 사람들이 원문을 읽지 못하거나 읽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과거로부터 점점 더 멀리 표류하기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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