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15세기 베트남의 "국가처럼 보기" 위한 노력 인도차이나 ~Indochine~

Liam Kelley 교수님의 Seeing Like a State in Fifteenth Century Vietnam을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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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베트남의 "국가처럼 보기" 위한 노력

15세기 베트남에서 만든 여지지(輿地誌)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원래 응우옌 짜이(Nguyễn Trãi)라는 학자 관료가 집성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오늘날 현존하는 사본에는 후대의 학자들이 덧붙인 정보도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 베트남에서 여지지라는 책은 과거의 "지리학"이나 "역사 지리학" 저술로 다뤄진다. 어느 학자가 말하였듯이, 응우옌 짜이의 책은 궁극적으로 "베트남 민족의 역사지리학" 분야 발달로 이어질 씨앗을 심은 셈이다. (Lần đầu tiên, Nguyễn Trãi đã đặt nền mống xây dựng khoa địa lý lịch sử của dân tộc Việt. . .)


분명 오늘날 사람들은 여지지를 활용해 역사지리학을 공부한다. 그러나 응우옌 짜이가 여지지를 저술한 이유도 똑같을까? 그저 정보를 기록하고자 하는 학구열에 불탄 나머지 이 책을 쓴 것이고, "베트남 민족"을 위해서 쓴 걸까? 혹시 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을까?

제임스 스콧의 유명 저서, "국가처럼 보기"에서 이야기하는 시각으로 여지지를 살펴봄으로써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스콧은 초기단계의 국가들은 다스리는 땅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이 책에 대한 글에서 스콧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전근대 국가들이 피지배 사회에 대해 상대적으로 얼마나 조금밖에 알지 못했는지 알아보는 것은 충격적인 동시에 중요하다. 국가 관료들은 관할 하에 놓인 인구에 대해 가장 느슨한 생각만 갖고 있었다. 인구의 이동, 부동산, 재산, 곡식 수확량,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 부족은 문제로 이어질 수 있었다. 전근대 국가정부는 자칫하면 한 지역 주민들로부터 지나치게 많이 뺏어가서, 반란으로 이어질 수 있었고, 또는 정보 부족으로 인해 정부가 다스리는 각 지역에 어떤 자원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국가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전근대 국가들은 영토/왕국 내에 무엇엇이 있었는지 "보기" 시작했고, 영토 상의 자원과 지리에 대한 정보를 기록하면서 가능해진 것이었다. 


15세기 이전의 베트남에서도 정부가 왕국 내 자원을 "보기"로 한 노력이 분명히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해당 목적으로 만들어진 문헌이 남아있는 것은 없다. 

오늘날 현전하는 문헌 중 해당 지역에 무슨 자원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기록한 것은 명나라가 지배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안남지원(安南志原)[1]이라는 책이다. (안남지원에 대해서는 여기여기 참조.)

안남지원도 여지지와 마찬가지로 "역사 지리학"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고, 여지지와 마찬가지로 안남지원도 토산(土産)에 한 정보를 담고 있다. 

▲하아... 큰 호수(大湖) 위 섬에 세운 국자감(國子監) 무엇... 로망... 
그리고 호숫가에 있는 사천감(司天監)... 천문대... 호숫가에서 별보기...

왜 명나라 관료들이 안남의 토산에 대한 정보를 기록하고자 했을까? 해당 지역의 자연사에 대한 정보를 기록하려는 학구열이 넘쳐서 그랬던 걸까? 

당연히 그랬을 리가 없다. 그 자원을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응우옌 짜이의 여지지에 담긴 정보도 같은 목적이었다. 안남지원과 여지지는 (명나라와 레 왕조) 왕조 국가들이 "국가처럼 보기" 위해 노력한 선행 사례들이다. 

다시 말해, 안남지원과 여지지 모두 왕조 국가들이 영토 내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기" 위해 정보를 기록했다. 왕조 국가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영토 내에 있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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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남지원: 켈리 교수님께서 안남지원을 최초로 소개하신 글 두 편은 본 블로그에서 아직 번역을 안 했지만, 안남지원을 사료로 활용한 흥미로운 글은 있다. 


"고웅징(高熊徵, 1636-1706)이 쓴 안남지원(Annan zhiyuan/An Nam chí nguyên 安南志原)은 전근대 베트남사에 있어 중요한 자료인데도 극소수의 학자만이 활용해왔다. 그리고 안남지원을 활용한 경우에도 최소한으로 활용했을 뿐이다. 17세기에 안남지원을 편찬한 고웅징은 중국인으로, 명나라가 베트남을 정복했을 당시(~1407-1427)에 얻은 자료에 기반한 것으로 보이며, 여기에는 향토사료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에 포함된 정보는 종종 독특하고 매우 흥미롭다." 


"레 딱(Lê Tắc)이 1335년에 펴낸 안남지략(安南志略), 15세기 명나라 지방지인 안남지원(安南志原), 19세기 응우옌 왕조가 주문한 대남일통지(大南一统志)는 모두 이 산이 과거에는 진(秦)나라 때 신선 안기생(安期生)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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