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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 춘권을 아시나요? 기타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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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 춘권을 아시나요?
- 세네갈 국민 간식에 숨겨진 반세기 전 전쟁과 식민지배 이야기.

넬리 페이튼(Nellie Peyton) 
기사 원문 투고 일시: 2016년 11월 7일, 아침 9시 2분

▲ 베트남 출신 이민자의 아들이 운영하는 세네갈의 테이크아웃 음식점, 사뵈르다지의 춘권 
(사진: 미칼 맥앨리스터 / Roads & Kingdoms) 


[다카르, 세네갈] - 세네갈 춘권의 유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제 없다시피 하다. 프랑스어로는 넴(nems)이라고 하는 이 튀김요리는 겉은 황금갈색으로 바삭하고 속은 당면과 다진고기 혹은 새우살로 채워져있다. 춘권은 다카르의 길거리와 해변가에서 사람들이 즐겨찾는 음식이다. 대부분의 점포와 포장마차가 춘권을 팔고, 거의 모든 중요행사에서 춘권을 먹을 수 있다. 

세네갈 춘권의 역사는 1947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14살이었던 쟝 고미(Jean Gomis) 씨는 사이공 항구에서 파스퇴르 호(SS Pasteur)에 올라탔다. 고미 씨는 파스퇴르 호가 천국 같다고 생각했고, 베트남에서 세네갈까지 한달 동안의 항해를 회상하면 지금도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고미 씨의 아버지는 세네갈 출신의 프랑스 군인 에밀 고미(Emile Gomis) 씨였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세네갈에서 입대해서 또다른 식민지 베트남에서 복무했던 것이다.

어머니 응우옌 티 사우(Ngueyn Thi Sau) 씨는 베트남에서 태어났고, 흑인 남성과 결혼을 함으로써 사회의 편견을 거부했다. 응우옌 씨의 남편은 오랜 파병생활 끝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었지만, 응우옌 씨는 앞으로의 여생을 보낼 나라를 보러 가는 중이었다. 

1954년, 베트남 해방 세력에 의해 완전히 격퇴되기까지 프랑스는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동남아시아로 5만 명의 병력을 파병했다. 그중에서 세네갈 출신 병사들은 특히 다수를 차지했다. 식민지 보병대는 서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모병했지만, 집합적으로는 세네갈 보병(tirailleurs séngalais)라 불렸다. 

베트남 이주 여성 공동체의 역사를 기록하는 엘렌 은도예 라메(Helene Ndoye Lame)에 따르면, 1차 인도차이나 전쟁 시기에 병사들과 결혼한 100명에 달하는 베트남 여성이 다카르로 이주했다. 라메 씨는 그중 49명의 이름을 알고 있다. 라메 씨가 이야기하기를, 결혼식이 열릴 때면 라메 씨와 알고 지내는 베트남 여성들이 한 지붕 아래 모여 2,3일 동안 음식을 마련했다고 한다. 돼지고기를 양념하고, 춘권을 말고, 시를 읊었다고 한다. 

▲ 쟝 고미 씨가 가족사진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 미칼 맥앨리스터 / Roads & Kingdoms) 

당시에는 베트남과 세네갈 모두 프랑스 문화가 워낙 강해서 이주해온 아내들은 세네갈이 고향 같다고 느껴졌다고 한다. 두 식민지 모두 프랑스식 학교, 빵집, 건물이 있었던 것이다. 올해 83세 되는 쟝 고미 씨는 "당시 분위기는 베트남이랑 비슷했어요"라고 말한다. "제게 익숙한 환경이었죠." 퇴역 장군 고미 씨는 곧장 웃음을 터뜨린다. 옛날 사진을 보면 어머니 곁에 자랑스럽게 우뚝 서있는 잘생긴 군복 차림 청년을 볼 수 있다.  

세네갈 텔레비전 방송 진행자이자 작가인 메리 베이(Merry Bey) 씨는 베트남 출신 할머니의 비단결 같이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기억한다. "우리 할머니가 제일 곱다고 동무들한테 자랑했어요." 그녀의 할머니는 베트남 전통 옷만 입는 것을 고집했다. 일요일에 할머니는 친구들과 모여서 함께 요리를 하고 춤을 추고 베트남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이렇게 맺어진 가족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은 것은 아니다. 베이 씨의 할머니는 현지 언어를 익히고 이슬람교로 개종할 때까지 시댁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할머니는 과거 이야기는 결코 안 하셨다고 한다. "고생하신게 보였어요"라고 베이 씨는 말한다.

아내들이 겪은 어려움은 종종 가난과 함께 찾아왔다. 식구는 많았지만, 프랑스 식민지 시절 군인 월급은 결코 많다고 할 수 없었다. 베트남 출신 아내들은 생계를 꾸리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했고, 가장 자신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시내에 나가서 지저분하고 북적거리는 먹자골목 마르슈 케르멜(march Kermel)에 가판대를 세우고 음식을 만들었다. 

고미 씨는 어머니로부터 제대로 된 넴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피를 알맞게 적시는 법부터 마르기 전에 궐련담배 처럼 마는 법, 그리고 기름을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가열하고, 춘권들끼리 달라붙지 않게 하는 법까지. 고미 씨에 따르면, "베트남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모두 음식 만드는 일을 돕습니다. 정말 좋은 교육이지요" 라고 한다.

▲ 각종 베트남 채소를 기르는 옥상정원을 자랑하는 쟝 고미 씨. (사진: 미칼 맥앨리스터 / Roads & Kingdoms) 

스무 살도 되기 전에 군에 입대하였지만, 고미 씨가 평생 천직으로 삼은 것은 요리였다. 고미 씨는 다카르에 있는 자택 옥상에서 여러 약초를 화분에 기르는 것을 보여주었다. 고미 씨가 친구와 가족을 위해 요리할 때마다 그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젊은이가 있었으니, 그때 그 젊은이가 지금 세네갈에서 가장 유명한 셰프, 피에르 티암(Pierre Thiam)이다. 

"제가 처음으로 남자가 요리하는 걸 본게 쟝 아저씨였어요"라고 티암 씨는 말한다. 피에르 티암은 1980년대 이래 뉴욕에 거처를 잡고 세네갈 요리를 소개해왔다. 티암이 펴낸 두 권의 요리서 "욜렐레! 세네갈의 마음이 담긴 요리"와 "세네갈: 재료부터 알아보는 현대 세네갈 요리"는 쟝 아저씨가 제공한 레시피와 함께 세네갈 요리에 미친 베트남의 영향을 선전하고 있다. 

티암 씨는 어린 시절 여름철만 되면 고미 씨를 찾아갔다. "저한테는 큰 스승님이었어요." 박하와 고수를 넣어 만드는 신선한 샐러드, 라임을 곁들인 튀긴 생선, 그리고 쟝 아저씨의 특제 쌀국수까지 모두 어린 티암 씨의 마음에 쏙 들었다.

티암 씨에 따르면, 두 요리 모두 깊은 감질맛을 활용한다고 한다. 세네갈의 국민요리 티에부디엔(thiéboudiénne)은 쌀과 생선, 채소를 토마토 소스에 넣어 끓이고 삭힌 생선과 우렁이로 간을 하는 것이다. 티암 씨가 미국에서 이 요리를 할 때 삭힌 양념을 찾을 수 없으면 베트남 피쉬소스를 쓴다고 한다.    

▲ 사뵈르다지에서 직원이 볶음밥을 담고 있다. (사진: 미칼 맥앨리스터 / Roads & Kingdoms) 

고미 씨는 현재 다카르에서 베트남어를 말하고 읽고 쓸 수 있는 세 사람 중 한 명이다. 또다른 한 명은 라메 씨다. 라메 씨가 세네갈-베트남 가족족을 위해 여는 파티에는 200명이 모여들곤 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장례식이 있을 때만 모인다고 한다. 라메 씨가 아는 바로는 세네갈 군인의 아내로 이주해온 사람은 단 한 명이 살아있고, 현재 92세라고 한다. 

넴을 만들던 여인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남에 따라, 요리 방식도 바뀌었다. "옛날과는 달라요. 이제는 밤낮 할 것 없이 장사죠"라고 티암 씨는 말한다. 다카르에 돌아갈 때면 옛날 기억만큼 맛있기를 바라면서 춘권을 주문하곤 하지만, 매번 실망한다. 요즘 춘권은 기름을 너무 많이 머금는다고 한다. 바삭거리는 맛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다카르에는 여전히 사뵈르다지(Saveurs d'Asie) 처럼 맛좋은 베트남 음식을 파는 곳도 있다. 그러나 가뭄에 콩 나듯 있을 정도다. 길거리에서 파는 춘권은 끔찍하리만큼 실망스럽다고 모두 입을 모았다. 그런 만큼 나는 극도의 신중함을 기해 길거리에서 파는 춘권을 먹어보기로 하였다. 


▲ 사뵈르다지를 찾은 손님 (사진: 미칼 맥앨리스터 / Roads & Kingdoms) 

12세 소년 부바카르 디알로(Boubacar Diallo)는 근방에서 춘권을 팔고 있었다. 다카르 시에서 어딜 가든 볼 수 있는 포장마차 2대 중 한 대를 이 소년이 맡고 있는 것이다. "넴 하나에 얼마죠?"하고 프랑스어로 물어보았다. 소년은 유리 그릇에서 춘권 하나를 집어낸다. 포장마차에 딸린 기름때 묻은 화로에서 구운 온기가 아직 남아있다. 소년은 춘권을 기름범벅인 신문지에 담아서 건네고 나는 125 서아프리카 프랑을 지불한다. 20센트 정도 된다.

기름진 넴 껍데기에서는 부스러기가 떨어지고 티암 씨가 이야기한 공기방울이 들어있었다. 어설프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맛은 좋았다. 속에 든 고기도 먹을만해 보였고, 당면은 깨끗했고, 무슨 풀인지는 모르겠지만 채소도 조금 들어있었다. 

나는 반쯤 먹은 춘권을 가리키며 부바카르에게 물었다. "원래 베트남에서 온 거라면서요?" 그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게 뭔데요?"


덧글

  • 로그온티어 2018/11/03 12:26 # 답글

    정통을 잃어버려 간다는 느낌
    막판 대사는 영화느낌 나네요 주제를 함축한 대화라니
  • 남중생 2018/11/03 13:52 #

    그렇습니다. 스러지는 전통의 이야기...
    마지막의 여운이 번역문을 통해서도 잘 전해졌다면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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