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성호사설의 "염매"에 대한 추측 창작물의 원형을 찾아서~


조선시대 오컬트나 괴담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성호사설의 "염매" 이야기를 익히 아실겁니다. 

이선생님께서 이미 여러번 소개하신 바 있죠. 
[토막상식] 다양한 고독의 유형들 포스팅 중, 3. 염매고독(魘魅蠱毒)

또한 게렉터님의 문선야승 괴물열전 중, 87번 염매(厭魅)도 있습니다.

제가 이 염매 이야기에서 이상한 점은, 중국과 일본에서 "염매"는 사람을 주문으로 저주해서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조선에서도 대체로 마찬가지입니다. 
유독 아래의 성호사설 기록에서만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이상한 염매 이야기를 한다는거죠...



우리나라에는 염매(魘魅)라는 괴이한 짓이 있는데, 이는 나쁜 행동을 하는 자가 처음 만들어낸 것이다. 남의 집 어린애를 도둑해다가 고의적으로 굶기면서 겨우 죽지 않을 정도로 먹인다. 때로 맛있는 음식만을 조금씩 주어 먹이는바, 그 아이는 살이 쏙 빠지고 바짝 말라서 거의 죽게 될 정도에 이른다. 이러므로 먹을 것만 보면 빨리 끌어당겨서 먹으려고 한다. 이렇게 만든 다음에는, 죽통(竹筒)에다 좋은 반찬을 넣어 놓고 아이를 꾀어서 대통 속으로 들어가도록 한다. 아이는 그 좋은 반찬을 보고 배불리 먹을 생각으로 발버둥치면서 죽통을 뚫고 들어가려 한다.
이럴 때에 날카로운 칼로 아이를 번개처럼 빨리 찔러 죽인다. 그래서 아이의 정혼(精魂)이 죽통 속에 뛰어든 후에는, 죽통 주둥이를 꼭 막아 들어간 정혼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 다음, 그 죽통을 가지고 호부(豪富)한 집들을 찾아 다니면서, 좋은 음식으로 아이의 귀신을 유인하여 여러 사람에게 병이 생기도록 한다. 오직 이 아이의 귀신이 침범함에 따라 모두 머리도 앓고 배도 앓는다. 그 모든 병자들이 낫게 해달라고 요구한 다음에는, 아이의 귀신을 유인하여 앓는 머리와 배를 낫도록 만들어 주는데, 그 댓가로 받은 돈과 곡식은 드디어 자기의 이득으로 만든다.
이것을 세속에서 염매라고 하는데 국가에서 엄격히 징계, 고독(蠱毒)의 죄와 동등하게 중벌을 가할 뿐더러, 무릇 사령(赦令)도 그에겐 주어지지 않는다. 근자엔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듣지 못하겠으니, 이는 아마 법이 준엄하기 때문이리라.
(...)
소위 고독(蠱毒)이라는 술법 또한 염매란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서쪽 지방 백성들에는 이를 영업으로 하는 자가 있었으나, 근자에 와서는 일체 없어졌다.

제가 밑줄 친 부분만 요약해서 볼까요?

우리나라에는 염매(魘魅)라는 괴이한 짓이 있는데, 남의 집 어린애를 도둑해다가 고의적으로 굶기면서 겨우 죽지 않을 정도로 먹인다. 그 아이는 살이 쏙 빠지고 바짝 말라서 거의 죽게 될 정도에 이른다.  아이를 꾀어서 대통 속으로 들어가도록 한다. 
 아이를 번개처럼 빨리 찔러 죽인다.  죽통 주둥이를 꼭 막아 들어간 정혼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 다음, 그 죽통을 가지고 호부(豪富)한 집들을 찾아 다니면서, 그 댓가로 받은 돈과 곡식은 드디어 자기의 이득으로 만든다.
이것을 세속에서 염매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서쪽 지방 백성들에는 이를 영업으로 하는 자가 있었으나, 근자에 와서는 일체 없어졌다.

러니까,

1) 우리나라에서만 세속에서 이렇게 부른다. (즉, "염매"의 원래 의미는 그것이 아니고, 일종의 변질된 말이란 것을 성호는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2) 어린아이처럼 보일만큼 작고 말라비틀어진 형체.

3) 대나무통과 같은 용기에 보관.

4) 죽은 뒤 영혼이 그대로 갇힌 것 마냥 생생한 모습으로 보존.

5) 돈을 낼 만한 부유한 집을 찾아다님.

6) 이것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도 있었다.


여기서 제가 (순전히 뇌피셜로) 끌어내고 싶은 결론은 이겁니다.

"염매"란 사실 "미이라"를 말하는 것이고, 가짜 미이라를 만들어 일본이나 서유럽에서 구경거리로 삼던 그런 문화가 조선에도 있었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게 "미이라"라면 왜 이익 선생님은 이걸 (이덕무 처럼) "목내이(木乃伊)"라고 부르지 않고, "염매"라고 부르고 있는 것일까요?


우선 이익이 이 기사를 쓰게 된 이유부터 추측해보겠습니다. 당시 성호사설의 다른 항목에서는 종종 "염매고독"을 금지하는 법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염매란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사람을 주술로 죽이는 것(고독은 사람을 독약으로 죽이는 것)을 의미했지만, 한자로만 읽어서는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기가 어려웠을테고, 정확히 이 "염매"가 무엇인지 궁금했나 봅니다.

이후에 성호사설을 많이 인용한 19세기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도 이 "염매"를 고증하면서, "고독은 무슨 뜻인지 대충 알겠지만 염매는 도저히 알 수 없어서" 성호사설을 찾아보게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에서도 이런 정황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성호 본인도 사실 잘 몰랐던거죠.^^;;

이것을 세속에서 염매라고 하는데 국가에서 엄격히 징계, 고독(蠱毒)의 죄와 동등하게 중벌을 가할 뿐더러, 무릇 사령(赦令)도 그에겐 주어지지 않는다. 근자엔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듣지 못하겠으니, 이는 아마 법이 준엄하기 때문이리라.

동시에 세간에서는 "염매" 혹은 비슷한 발음으로 부르는 요상한 "술법"이 유행하고 있었나봅니다. 성리학자 이익 선생님의 눈으로 보기엔 위 기사와 같이 해석할 수 밖에 없는 현상이었죠. (기괴함에 매혹되는 대중 엔터테인먼트를 유학자가 이해하기란...)

게다가 이 "염매"는 고독과도 어딘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견고/묘고처럼 죽은 혼령을 그대로 박제시키는 주술의 일종이라고 이익은 해석하고 있죠. 그러니, 문자 기록 상으로는 "염매 & 고독"인 것이 염매=고독으로 읽힌 것 아닐까요?

이 가설대로 성호사설 고독염매 기사의 각 부분을 분석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주 조금씩 고통스럽게 굶겨죽인다는 설정 --> 비쩍 마른 미이라 박제를 설명

달콤한 음식에 중독시킨다는 설정 --> 대나무통에 우겨넣은 모습을 설명

날카로운 칼로 단번에 죽인다는 설정 --> 죽은 모습 그대로 부패하지 않는 것을 설명

부자집에 찾아가 (질병을 퍼트리고) 돈을 받는 설정 --> 기괴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을 설명 


한편, 저도 정확히 어떤 경로를 통해 "미이라 구경"이 조선으로 건너왔는지는 모르겠으나, 미이라(영Mummy/네Mummie) 즉 "멈미"가 일본으로 건너와서 발음이 유사한 염매(厭魅, 일본어 발음은 "엠미")라는 한자로 음차된 뒤, 조선으로 건너와 "염매"가 된게 아닐까 싶습니다.

멈미 --> 엠미 --> 염매


이런 전시물로써, 가장 즉흥적으로 생각나는 것은 물고기와 원숭이를 이어붙인 듯한 모양의 19세기 "가짜 인어" 박제들일겁니다.
위대한 쇼맨 P. T. 바넘의 "피지 인어(Feejee mermaid)"가 대표적이죠.
(그리고 이러한 가짜 인어들은 일본에서 제작되어 유럽과 미국으로 수출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바넘의 "피지 인어", 1842년.


▲이집트 미이라, 잉카 문명의 미이라, 피지 인어를 함께 전시한다는 선전물!


이와 같은 전시물들은 그 자체로 남들을 속이고 이야기를 부풀리려고 만들어진 만큼 정확한 유통경로가 모호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수출(?)될 때도 정확한 번역이 안 이뤄지는 경우가 많죠. 멈미->염매 처럼요.

그러니 유사한 사례로 제니 하니베르(Jenny Haniver) 양을 소개해보겠습니다. 
박제술의 최첨단을 달리던 네덜란드 앤트워프 시[1]에서는 말린 가오리와 홍어로 사람모양(혹은 악마나 용의 모양)을 만드는 것이 유행했습니다. 
이것도 가짜 인어와 비슷한 종류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제니 하니베르를 들고 있는 살바도르 달리


프랑스에서는 이 기괴한 볼거리를 두고 이렇게 불렀습니다.
"앤트워프의 어린 아이(jeune d'Anvers)"!

영국인들은 그 이름을 듣고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제니 하니베르(Jenny Haniver)!"
 
아마 조선의 "염매"도 비슷한 길을 걸은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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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미이라와 동서교류, 그리고 방부처리 기술의 최첨단을 달린 근세 네덜란드에 대해서는,
적륜재의 아래 포스팅들 참조!

"그러니, 당연히 짝퉁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낙타라던가 부랑자라던가 비스므리한 사체를 적당히 방부처리한 상품이 시장에서 거래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19세기의 기록에도 암스테르담에 전시된 이집트산 아기 미이라의 경우 진품인지 가품인지 알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 미이라 분말은 유럽 전역을 넘어 마침내 해외로 수출되기 시작합니다."

시도티와 아라이, 그리고, 라르데인:1708-1712 (2013.03.30)
한편으로는 아라이는 라르데인을 통해 시도티로부터 입수한 정보들을 크로스 체크하기도 했습니다. 이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인도 고아의 자비에르 성인의 썩지않은 신체"에 대한 시도티의 주장이었습니다. 시도티가 아라이에게 기독교와 관련해서 설명한 것 중에는 합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수북한데, 그 중에서 일본에 처음 카톨릭을 전파한 예수회의 자비에르 신부가 이후 사망한 후에 고아에 존치된 그 신체가 썩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 성체 기적은 자비에르의 성인 자격을 나타내는 현상으로 받아들여져서 17세기부터 18세기 내내 그 관을 열어서 오! 와! 확인하는 이벤트가 계속되었습니다. 심지어 최종적으로 1950년대에도 아직 남은 그의 신체 부분을 검증하는 일들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17세기 18세기 동인도의 바다의 카톨릭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그야말로 기적의 증거였던 셈이지요. 아라이는 당연히 사람의 신체가 썩지않고 보존된다니 이게 말이 안되는데, 시도티가 정말로 열렬히 주장하자, 마침 라르데인에게 이 사실에 대해 확인을 합니다. 라르데인은요? 한마디로 "교황청의 뻥"이라고 일축해버립니다. 당시 네덜란드가 방부처리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국이었으니 아마 그 사체 몰래 방부처리 했을거라고 그러지 않고 그런 기적은 무슨! 있을 수 없다고 설명을 했을 것입니다.




self_fish님의 번역 포스팅, 
도 참조!


P.S. 2
조선의 프릭쇼 기록에 대해서는, 역사관심 님께서 소개하신 학산학언의 기담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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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존다리안 2018/10/29 22:38 # 답글

    한국형 호러 소재 중 하나군요.
  • 남중생 2018/10/29 22:46 #

    그렇습니다. 성호사설의 염매 이야기를 굳이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읽어도 오싹하죠!
    할로윈 특집으로 써봤습니다. ㅎㅎㅎ
  • 하니와 2018/10/30 06:33 # 삭제 답글

    "새튼이" 라는 개념하고 비슷하네요.
  • 남중생 2018/10/30 12:05 #

    넵, 위에서 소개한 이선생님 포스팅에서 새타니/새튼이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소금으로 방부처리를 했다는 묘사”도 아마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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