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한문을 못 읽는 베트남 역사학자들 [베트남과 한국]

Liam Kelley 교수님의 The Destructive Divide in Vietnamese Academia를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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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학계를 파멸로 이끄는 분열

며칠 전 VnExpress지에는 "한놈(Hán Nôm)을 공부해서 어디에 써먹을까?"라는 제목의 짧은 기사가 있었다. 한(Hán)은 흔히 말하는 "한문"을 말하고, 놈(Nôm)은 과거에 구어체 베트남어를 적기 위해 만든 민중문자다. 한자를 기반으로 한다.

베트남에서, "한놈"은 그 자체로 하나의 학문분야다. 한놈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한문과 놈을 읽는 법을 배운 뒤 문헌을 읽고, 한문일 경우 현대 베트남어로 번역을 하거나 놈 문헌일 경우에는 오늘날 베트남에서 쓰는 로마자 문자로 옮겨적는다.

한놈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문헌을 읽다가 접하는 문제도 다루는데, 예를 들자면 특정 문헌의 진위나 문헌에 담긴 정보의 정확성 등의 문제다.


그렇다면 한놈을 공부해서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까? VnExpress지의 기사는 여러 가지를 나열하는데, 한놈 강사부터 번역가가 되는 것까지 있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 역사학자라는 직업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20세기 초까지 사료의 거의 대부분이 한문과 놈으로 써있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의 역사학과에서는 학생들이 한문이나 놈을 확실히 익히고 넘어갈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른 여러 나라에서는 1차 사료 원문을 읽을 수 있는 능력 없이 전문 역사학자가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베트남에서는 이것이 허용된다. 필자는 왜 그런지 여태껏 이해하지 못했다.

한편 그 사료를 읽을 수 있는 사람(한놈연구자)들이 있지만, 이들은 역사나 역사학 방법론을 배우지 않았다. 그리고 VnExpress 기사에 나와있듯이, 역사학자가 되거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한놈을 공부한 사람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닌 셈이다.


1차 사료를 원문으로 읽을 수 있도록 공부하는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분야를 이룬 이유는 무엇이리까? 베트남이 바깥세상과 교류해온 역사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놈학이라는 분야는 문헌학(philology)의 연장선이다. 문헌학은 유럽과 소련에서 특히 강세를 보였으나, 영미권에서는 지난 60년간 문헌과 과거를 공부하는데 더 넓은 접근법을 선호하면서 점차 소외되었다. 바로 어학능력과 특정 학제(혹은 학제간)의 지식을 혼합하는 접근법이다. 

그러니 다른 나라 학계에는 보이지 않는 분열이 베트남에는 있고, 파멸에 이르는 분열이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과거를 살펴볼 수 있게끔 완전한 교육을 받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연구기관이 언젠가 이 점을 깨닫고 변화해서 학생들이 역사를 공부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한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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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함부르거 2018/10/22 08:24 # 답글

    허... 베트남 역사학계는 어쩌려고 저러는 걸까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일이군요. 역사학을 어떻게 배웠길래 1차사료에 대한 접근을 하려 하지 않는 걸까요?
  • 남중생 2018/10/22 13:06 #

    맑스-레닌주의 역사학이 중심이라서, 주류 역사책을 보면 고대 베트남 사회에 노예제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갖고 탁상공론하는 것으로 고대사를 때우기도 합니다... ㅠ

    그 다음은 물론 중세와 “봉건주의”지요.
  • 함부르거 2018/10/22 19:51 #

    역시 공산주의가 만악의 근원이군요... -_-;;;;
  • prohibere 2018/10/22 10:21 # 답글

    해..보통 한자문화권 사학과 정도 되면 자연스레 한문읽기 같은거 배우나 했는데 전부 그런건 아니였나보군요.
  • 남중생 2018/10/22 13:10 #

    한문을 읽을 줄 아는 집단이 학계에조차 없다는 것은 개탄할 노릇입니다. 전근대와 완전히 단절된 근대라는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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