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1911년 베트남의 과학 교과서가 말하는 화산 [과거시험과 근대화]

Liam Kelley 교수님의 A Bilingual Introduction to Volcanoes in 1911 Vietnam을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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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베트남의 국한문 혼용 교과서와 화산

팜 꽝 산은 흥미진진한 인물이다. 1908년 팜 꽝 산은 베트남어로 쓰였던 개혁사상을 고전한문으로 번역해서 고전한문만 아는 사람들도 그 내용을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유학보통설약(幼學普通說約)이라는 책이다. 1909년에는 개혁파 버전 과거 문제를 작성해서 과거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서양학문을 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책학신선(策學新選)이라는 책이다. 

그리고 1911년에는 보통독본(普通讀本)이라는 2개 언어 (한문/베트남어) 과학 교과서를 작성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있었다. 첫째 마당은 하늘, 둘째 마당은 땅에 대한 것이었다. 팜 푹 짜이(范复齋)가 1853년에 펴낸 계동설약(啓童說約)과 같이, 과거의 아동용 책에서도 이 두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팜 꽝 산은 자신이 접한 서양과학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하늘과 땅이라는 주제를 논하였다.



예를 들어, 땅에 대한 부분은 "땅은 공처럼 둥근 까닭에 지구라고 한다(地圓如球故曰地球)"라고 서술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이에 대해 팜 꽝 산이 드는 하나의 근거는 사람들이 세계일주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人能繞行地球)


팜 푹 짜이는 1853년에 쓴 책에서 땅이 둥글다고 하지 않았고, "지구"라고 부르지도 않았으며, 아마 세계일주가 가능다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고, "지구"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을 것이다. 

그러니 "땅은 공처럼 둥근 까닭에 지구라고 한다"는 서술은 단순하고 평범해 보일 수 있으나, 사실 당시 베트남 사람들의 세계관이 대대적인 변화를 겪고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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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교적 세계관과 지구평면설에 대한 Jefferey Kotyk 박사의 게시글 참조.


그리고 이 책에는 이와 같은 정보로 가득한데, 마지막 마당에는 화산에 대한 상세한 논증도 있다. 

地中有非常之熱度,與沸水同。土石被其張力衡破地殼,[送?]出於外遂成火山。火山之上有孔穴凹,下若碗名噴火口。其噴出之石質名流石。蓋地中之石漿熱汁噴出於外,沈澱於水底,漸次凝結而成石也。

火山自古以來常噴火者,謂之活火山,自古噴火至今日而熄者,謂之息火山,自古以來從未噴火者,謂之死火山。

統全地球計之,火山約二百餘座。美洲西邊為最多。不惟陸地有之,即洋海亦往往有之。地中也有溫泉熱井,其原因于火山同。

땅 한가운데는 열의 정도가 굉장하다. 끓는 물과도 같다. 그 장력(張力)으로 흙과 돌이 지각(地殼)을 깨고 나온다. 밖으로 튀어나오면 화산을 이룬다. 화산 위에는 푹 꺼진 구멍이 있다. 밑은 그릇과도 같고 이름은 분화구(噴火口)라고 한다. 거기서 분출하는 돌 성질은 유석(流石, 용암)이라고 한다. 대개 땅 속의 돌이 녹은 뜨거운 즙이 밖으로 분출되고, 물 밑으로 침전하면, 서서히 응결되어 돌이 된다. 

화산이 예로부터 계속 분화하는 것을 활화산이라고 일컫는다. 예로부터 분화해 오늘날에 이르러 불이 꺼진 것을 식화산(息火山)이라고 일컫는다. 예로부터 줄곧 분화하지 않은 것을 사화산이라고 일컫는다.

전지구를 통틀어서 세어보면, 화산은 약 200여 자리(座)가 있다. 미주(美洲) 서변(西邊)에 가장 많다. 오직 육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해양(海)에도 왕왕 있다. 땅 속에 온천(溫泉)과 열정(熱井)이 있는데, 그 원인은 화산과 같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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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산에 대한 전근대 사람들의 인식에 대해서는, 석면은 어떻게 맘모스 털이 되었나? 포스팅도 참조.


1911년, 학교에서 이 책으로 공부한 아이들은 그 부모가 어렸을 시절에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지식을 얻었다. 

1910년대 베트남 아동들은 새로운 세계에 대해 배웠다. 전세대의 베트남 사람들이 공부한 것을 답습함으로써 이해하는 세계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지식을 배움으로써 이해하는 세계였다. 이 새로운 형태의 지식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 세계일주가 가능하다는 사실, 지구상에 약 200개의 화산이 있다는 사실 등이 있었다. 

아이들이 이런 것을 배우기 시작하자, 베트남의 전통 지식은 오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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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바람불어 2018/10/21 01:33 # 답글

    유신4년이라길래, 우리로 치면 갑오개혁식으로 사건이 있어서 기년 삼았나 했는데, 그게 아니라 당시 베트남황제의 연호였네요. 유신, 주이떤.
  • 남중생 2018/10/21 02:13 #

    앗, 그런 오해가 있을 수 있겠네요! 유신제(주이 떤 황제)를 미리 소개 안 드렸으니, 충분히 그렇게 이해하셨을 법 합니다.
    메이지 유신을 본따서 "유신"을 연호로 삼았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한편 일본 위키피디아의 "메이지 유신" 항목을 보면,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간 파급력을 이야기하면서 베트남 유신제 이야기는 중요히 다루지만 한국의 유신헌법은 이야기하지 않더군요... 다소 편향적이라고 여겨졌습니다.
  • 포스21 2018/10/21 15:31 # 답글

    흠, 그런데 불교적 세계관은 이미 우리나라의 조선 시대에도 지나치게 허황되다는 이유로 유교 측에 의해 공격당한 부분 아닌가요? 뭐 과학적인 비판이라기 보단 , 억불 정책의 일환이겠지만... 조선조 초기에 그래서 유학자들이 불교를 허학이라고 비판하고 스스로를 실학이라고 주장한 바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냥 불교의 권위를 공격하는 수단이라고 보이지만 , 불교의 물리적 세계가 좀 믿기 어렵다는 건 꽤 오래전부터 제기 되어온 것으로 불교인들도 저런 수미산 중심의 세계관을 곧이 곧대로 믿었을 거 같진 않습니다. 불교나 유교나 모두 수박겉핡기 수준도 못되는 입장에서 별로 자신있는 말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전 게시물을 읽어 보니 이미 고대인도에서 세상이 둥글다! 라는 주장이 제기 되고 있었던거 같은데? 맞나요? 그렇다면 꽤 놀라운 일이네요.
  • 남중생 2018/10/21 16:23 #

    조선에서 불교적 세계관을 비판해왔던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평면 지구는 전근대 유교권/불교권 모두 공유한 세계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도 지구가 둥글다는 주장을 해왔으니, 사실 수리적/수학적 사고가 발달된 인도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도 인도 역사는 아는 것이 적어서 정확한 사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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