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영국동인도회사가 통킹의 군주로부터 받은 1673년 주문계산서 인도차이나 ~Indochine~

대영 도서관 블로그에서 A Vietnamese Lord's Letter to the East India Company에서 발췌/초역합니다. 
----------------------------------------------------------------------------------------------------------------------

영국 동인도 회사가 통킹의 군주로부터 받은 반품 요청 및 계산서



이 편지는 Sloane 컬렉션의 3460번 소장품입니다. 안타깝게도 두루마리의 앞부분은 전해지지 않아서 앞의 내용은 유추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근세 베트남 전문가, 리 타나(Li Tana) 박사는 편지의 내용을 정서/번역하고, Trịnh Tac (재위 1657-1682) 정권 때의 1673년에 쓰인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영국 동인도 회사(EIC)는 통킹에 상관장을 세우려는 목적으로 1672년 최초로 선박을 보내고, 1673년에 재차 방문했다고 하네요. 

편지의 대략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甚衆, 獨和蘭國來? ? ?情我無?, 有時供珍珠美物, 有時//

鑄銃匠人, 這個厚意, 冠於諸國目令貴國雖始與交, 然優愛之情

則同一視昨見, 貴國客目?銃一門, 銅銃二門, 總纔經?//

試即有破跡, 決非堅好之具ㄴ付艚長, 然他未及帶回, 如來年期的有//

, 到合以琥珀, 或傀或串和眞珍珠等, 件一切送來, 隨即擲價依還, //

是兩便格局, 倂將鑄銃匠者, 偕往合和蘭匠不得專施其巧, //

, 則通好之義, 永矢弗諼, 令書

 

 

, 去年, 銃二門, 奇還生絲五百陸拾

, 奇買巨琥珀塊五拾觔, 琥珀串五千粒

 

 

仲冬節具

----------------------------------------------------------------------------------------------------------------------

[우리를 찾아온 외국 상인은] 몹시 많았으나 오로지 화란국 만이 찾아와서 ... (3글자 해독불가). 우애와 의리를 행하였다. 때로는 진주와 아름다운 선물을 주고, 때로는 화포를 주조하는 장인들을 보내왔다. 그 두터운 뜻은 다른 어떤 나라의 군주보다도 높다. 

귀국은 우리와 교류를 막 시작한 참이지만, 우리는 모든 나라를 우애(優愛)의 정으로 대한다.
최근 귀국의 head trader 우리에게 철제 화포 1문, 청동 화포 2문 가져왔다. 하지만 bronze canon 폭발해요. 당신의 브론즈 캐넌은 불량 화포. 나또한 시험해보았다. ship captain 돌려주었으나 반품 안 받아. Why 영국인들? next year 진주 호박 목걸이 주렁주렁 적재하세요. 그렇다면 할부없이 cash 지불된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benefit. but also 화포 장인도 적재를 원해. 화란국 장인들 화포 기술 monopolize 좋지 않아. 우리 우정 오래간다. 

작년에 받은 철제 대포 2문 값: 생사 560익(鎰).[1] 
우리의 주문 사항: 커다란 호박 보석 덩어리 50근(觔)[2] + 진주 꿰미 5000 조각

한겨울에 편지 쓰다.
And I also 교역 좋아. 

(2018년 4월, Li Tana 번역, Geofferey Wade 편집, 2018년 10월 남중생 중역)
---------------------------------------------------------------------------------------------------------------------
[1] 504킬로그램
[2] hoc이라고 읽으며 1kg과 상응한다고 Li Tana 박사님은 써놓았는데, 베트남에서 hộc은 "말"에 해당하는 부피 단위로 斛라고 쓴다. 이것을 근(斤)의 이체자인 과 혼동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편지에 찍힌 인감

==========================================================================================================================

P.S. 
네덜란드인들이 가져온 화포는 정말 품질이 좋기는 했나봅니다.
지금도 베트남 후에의 국립박물관 안뜰에는 이렇게 "홍이포"가 전시되어있습니다. 


▲암스테르담(AMSTERDAM)에서 1664년에 주조한 대포라고 새겨져있다.


P.S. 2
영란 양국 간의 경쟁을 부추겨서 품질 좋은 화포를 구하려고 한 통킹 군주의 재치가 돋보인다.
한편 태평양 건너편에서도 네덜란드인들은 시장을 왜곡(?)하고 있었는데...

"북미 원주민들에게 원래 유럽산 인기 교역품목은 철제 도끼였었고, 당시의 유럽인들간에 원주민에게 화승총만은 팔지않는다는 묵계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네덜란드인은 비버만 가져다오 뭐든지 팔께 하고는 이로콰이에게 총을 팔기 시작했다. 이로콰이 손에 총이 들어가자 이들과 남북으로 세력균형을 이루던 러나페이와 위롱부족이 이로콰이에게 밀리게되고 이때부터 등에 업힌 유럽세력들의 이해관계에 휘말려서 오랜 부족 전쟁들을 시작한다." (적륜재, 자유의 모자 포스팅 中)


덧글

  • 포스21 2018/10/21 15:33 # 답글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사는 건 별차이 없군요. ^^
  • 남중생 2018/10/21 16:16 #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ㅎㅎㅎ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