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베트남의 문체반정 [과거시험과 근대화]

Liam Kelley 교수님의 Minh Mạng and Nôm을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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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명제와 쯔놈


알렉산더 우드사이드의 "베트남과 중국식 모델"(1971)은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베트남과 응우옌왕조에 대한 주요 연구로 여겨지는 선제적인 학술서다. 우드사이드는 영어권에서 최초로 응우옌 시대의 사료를 광범위하게 사용한 학자였으며, 그 이후로 19세기 베트남의 역사 기록을 그토록 광범위하게 다루는 연구서를 낸 사람은 없다.

그러나 여느 초탐(初探) 연구처럼, "베트남과 중국식 모델"은 물론 개선의 여지가 있으며, 우드사이드가 이 책에서 다루는 19세기 베트남에서 민중문자 놈(Nôm)의 역할이라는 주제에서도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베트남과 중국식 모델"의 전반적인 개념은 특정지을 수 있는 "베트남"이 있었다는 것이고, 응우옌 왕조가 여기에 덧씌우고자 하는 "중국식 모델"과는 판이했다는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우드사이드는 식자층의 사상과 문화적 행정적 관례가 놓인 "중국식 모델"이 "동남아시아적" 베트남 위에 놓인 세계를 보았다. 우드사이드의 책에서는 중국식 모델이 동남아시아적 현실에 잘 부합하지 않았다고 느낀 부분들을 강조한다. 

언어와 문자도 우드사이드가 여기서 논하는 주제다. 그러나 19세기 베트남의 언어와 문자를 "베트남"과 "중국"이라는 이분법적 관점 하에 두기란 어렵다. 우드사이드도 19세기 베트남에서 언어와 문자의 실질적 역할이나, 언어와 문자에 대한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서 큰 문는 한자에 기반한 민중문자인 놈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정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우드사이드는 "놈 덕분에 베트남 문인들은 중국 문인들 보다 성공적으로 중국 고전의 형식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다시 말해 놈은 "중국적이지 않은" 것이라는 말이다. (53)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드사이는, 놈이 "중국어의 의미가 베트남어의 문맥으로 들어올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했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적어도 어느 정도는 "중국적"이라는 것이다. (53)



그러니 우드사이드는 놈의 역할에 대해 다소 모호하게 서했지만 놈을 베트남인들이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서 이용하고자 한 문자로 그렸고, 한화한 식자층이 "중국식 모델"을 도입함으로써 놈의 수명이 끝났다고 묘사했다.

이를테면 18세기 말 떠이 썬 반란 시기에 과거시험이 "묻혔고" 19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과거 제도라는 동기가 사라지자, 많은 베트남 관료들과 자제들은 베트남 문자가 중국 한자 보다 외우기에 거의 쉬울 정도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놈은 19세기 초두에 그 인기가 절정에 달했다. 가륭제는 놈을 장려했고, 스스로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필요성에 따른 것이었다." (54)

그리고 나서 우드사이드는 이 공식적인 놈 수용정책이 가륭제의 후계자 명명제 때 뒤집혔다고 주장한다. 

"명명제는 여기에 반응하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명명 원년 1820년, 명명제는 앞으로 모든 보고서와 모든 베트남 과거시험장에서의 논술은 '혼란스럽게 휘갈겨쓴 글자' 대신 중국에서 수입한 [강희] 자전의 글자와 동일한 글자로 써야한다고 명령함으로써 놈을 최종적으로 파괴하고자 하였다." (54-55)


여기서 우드사이드는 "베트남" 문자와 "중국" 문자가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떠이 썬 반란의 혼란기가 지나간 뒤에는 베트남 문자를 외우기가 "거의 쉬울 정도"(또다른 모호한 표현)였다고 한다. 

우드사이드가 "베트남 문자"라 함은, 사실 "놈 문자로 적은 베트남어"를 의미한다. 중국어에는 없는 단어가 베트남어에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고, 이 순수 베트남어를 표현하기 위해 놈 문자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응우옌 조정 관료들은 순수 베트남어로만 된 문서를 쓸 일이 없었다.

첫째, 그러한 단어들은 전체 베트남어 어휘에서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베트남어에서 대부분은 중국어에서 유래한 단어들로 구성되어있다. 

둘째, 전근대 베트남의 식자층은 고전 한문을 배움으로써 식자층이 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고전 한문의 관용표현에 익숙했다.

그러니, 응우옌 조정 관료가 19세기 베트남에서 공식문서를 쓰려고 할 때, 놈과 고전 한문 사이에 양자택일의 선택을 해야할 일은 없었다. 베트남어는 중국어에서 온 표현으로 가득하기 때문이고, 서구에서 문인들이 라틴어 표현을 사용했듯이 전근대 식자층은 고전 한문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 라틴어 용어와 표현을 잔뜩 사용하는 영어문장을 생각해보자.

이를테면, "Since antiquity, soldiers have always been brave and faithful"이란 문장을 "Ab antiquio, militum have been semper fortis and semper fidelis."라고 쓰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영어" 단어는 "have been"과 "and" 뿐이다. 

명명제가 반대한 것은 이것이었다. 명명제는 100% 고전 한문으로 쓰인 글을 원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때까지 관료들이 100% 베트남어로 글을 써왔다는 것이 아니다. 그게 아니라 이때까지 관료들은, 영어 단어가 몇 개 들어간 라틴어 문장에서 본 것과 유사하게 몇몇 베트남어 단어가 섞인 고전 한문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우드사이드가 1820년 명명제가 내린 교시에 대한 정보로 인용하고 있는 문헌은 국사유편(國史遺編)인데, "나라에서 처음에는 명령을 적는데 국음을 많이 섞어썼다"(國初詞命多雜用國音)고 명백히 적혀있다. 

오늘날 우리는 놈을 문자라고 부르지만, 19세기 베트남의 식자층은 놈을 "소리(音)"라고 보았고, "소리"가 "글(文)"에 비해 열등하다고 여겼다. 고전 한문은 "글"이었다. "국음"은 글이 아니었다. 이것은 중요한 분이고, 국사유편의 베트남어 번역본은 "국음"을 "놈 글자"라고 번역함으로써 그 구분을 무마한다. (위 사진 참조.) [1]

명명제는 "글"로만 이뤄지고 "소리"는 전혀 들어가지 않은 글을 원했던 것이다. 

더욱이 명명제는 글자체도 특정 양식을 따르기를 원했다. 강희자전에 나오는 글자체 양식이다. (字劃一依康熙字典, 不得用亂草本)

한자에는 여러 이체자(異體字)가 있다. 그리고 일종의 필기체라고 할 수 있는 초서체(草字)도 있다. 19세기 초, 응우옌 조정는 문서를 작성하는데 초서체를 쓰거나 이체자를 사용하는 관료들이 있었다. 명명제는 이것을 금지하고 싶어했다. 

다시 말해, 명명제는 관료들이 "베트남어" 대신 "중국어"로 글을 쓰라고 명령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고전 한문으로 글을 쓰고 있었다. 명명제가 명령한 바는 관료들이 고전 한문에 "소리"를 집어넣지 않고 초서체로 쓰지 않음으로써 고전 한문을 "정화"하고 "표준화"하고자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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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옛사람들은 문자라면 모름지기 한자처럼 '형(形, 꼴)'과 '음(音, 소리)'과 '의(義, 뜻)'를 두루 갖춰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이를테면 꼴이 '天'인 글씨는 '천'이라는 소리와 '하늘'이라는 뜻을 지녔지요. 그런데 음소 문자로 뜻이 없는 훈민정음은 옛사람들이 보기에 제대로 된 문자가 아니었습니다. 세종이 새 문자의 이름을 '훈민정문(訓民正文)'이나 '훈민정자(訓民正字)'라고 짓지 않은 것은 당시 문자관을 반영하였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나마 '언문(諺文)'은 훈민정음을 속되게 이를지언정 문자로 받아들이는 의식을 담은 이름이었지만, 한자를 으뜸으로 치는 중세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났다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옛 국음(國音)의 글자는 한문을 빌려서 마음대로 운용하였으니 天을 위에 上을 아래에 붙여 '하늘'을 만들고, 王을 위에 布를 아래에 붙여 '왕'을 만드는 것 따위이고, 최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 자전을 만듦에, 참되고 바르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소리는 고르고, 더럽고 속되고 거칠고 옹졸한 소리는 빼고, 그 어떤 기물이라도 소리가 없는 것은 소리를 보태야 합니다. 전국의 사람들이 쓰게 하고, 익히고 외우게 하여, 붓을 집어 글을 씀에, 반드시 이 글자를 쓰게 한다면, 이와 같이 남과 북이 곧 말소리로 서로 통하고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20세기 초 베트남에서 만들고자 한 관화 포스팅 中 1910년 과거시험 문제)



해당 시기의 문헌 중 현존하는 것을 보면 이 점이 명확해진다. 맨 위의 두 사진은 가륭 연간(1802-1819)의 문헌이고, 마지막 문헌(어두운 색)은 명명 연간의 것이다. 

분명한 것은 명명 연간 문헌이 더 또박또박하고 표준화되어있다는 것이다.

명명제는 조정 관료들이 이런 식으로 글을 쓰길 원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놈과 고전 한문 사이의 양자택일이 아니었다. 고전 한문을 "정화"하고 "표준화"하는 문제였다. 

우드사이드를 변호하자면, 이 점을 이해했음에도 명확하게 이 모든 것을 설명하기 위해 고생했을 수도 있다. (필자 또한 이 글을 쓰면서 고생했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이 우드사이드 책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고는 "베트남어"로 쓴 글과 "중국어"로 쓴 글 사이의 분명한 구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잘못 이해하고, 명명제가 중국어를 선호해서 베트남어를 "탄압"하였다고 잘못 이해한 경우도 분명 보았다. 

그러나 더 큰 층위에서 이 사안은 (동남아시아적" "베트남"과 "중국식 모델" 사이에 의미있는 구분이 있었다는 주장에 시사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이 개념은 지난 세월동안 많은 옹호를 받았으나, 여기서 명명제가 공식문서 양식을 개혁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위와 같은 극명한 구분을 떠올리는 것은 문제적일 수 있다.  

[國初詞命多雜用國音,明命以來,始改用驣黃莊雅,場屋文章,及臣庶箋,字畫一依康熙字典,不得用亂草本,窽格尤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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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바람불어 2018/10/17 15:57 # 답글

    문이 아닌 음에서 저도 훈민정음을 떠올렸는데 뒤에 나오는군요. 그런데 한편으론 쯔놈과 훈민정음의 어떤 차이때문에 쯔놈전용은 못하지만 한글전용은 할수있고.
  • 남중생 2018/10/17 18:27 #

    쯔놈은 한자와 병용하기 위해 만든 문자라서, 전용이 어렵죠. 사실 한국 독자들에겐 라틴어/영어 보다도 향찰전용이나 이두전용이 가능한지 떠올려보면 되겠습니다.^^
    훈민정음도 창제목적은 그게 아니었지만 세종대왕도 예상치 못한 표음문자의 어마어마한 힘이 작용한 것일테고요.
  • 바람불어 2018/10/17 21:15 #

    뒤늦게 검색해보니 쯔놈이란 게 기본 한문 문장 속에 '구어체 베트남어를 표시하는 새 단어'로서 만든것이라 합니다. 저는 문장 전체를 베트남 문법어순에 따라 베트남 발음으로 온전하게 쓸 수 있는게 쯔놈인가 했더니 그게 아닌가봅니다.쯔놈만으로는 조선처럼 한중록이나 홍길동전같은 건 못쓰겠네요.

    그럼 한글과는 아예 다른 문자체계고 쯔놈은 어찌보면 본문에 나오는 한자의 이체자에 넣을수도 있겠네요.

  • 남중생 2018/10/17 22:49 #

    말씀하신 바가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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