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제 4화> 아오르노스로 향하는 핏빛 발자국 HELLO! VENUS?

지난 포스팅에 이어서 모건 르웰린 교수님의 블로그에서 번역합니다.
---------------------------------------------------------------------------------------------------------------------

아오르노스로 향하는 계단


▲바리코트/바지라 유적지. 뒤편으로는 저 멀리 엘람 산(아오르노스)가 보인다. 사진 제공: Luca M. Olivieri

(아, 2015년 1월. 자이푸르Jaipur의 마하라자 궁전 지붕 위에서 차를 마시면서...)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인도를 통치한 영국인들이 인도인들의 자결권을 박탈하는데만 온 힘을 쏟고 있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일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영국인들은 인도에서 아오르노스 바위(Rock of Aornos)를 찾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오르노스 바위"라는 이름의 산봉우리는 기원전 327/6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승리를 거둔 명승지였는데, 오늘날 파키스탄의 카이베르파크툰크와(Khyber Pakhtunkhwa) 주에 해당하는 인더스 강 서쪽 어딘가에 위치했다. 그러나 아오르노스 바위에 대해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이게 전부였다. 고대의 문인들이 지리적 정확성을 기하는데 열의를 보이지 않은 탓이다. 그럼에도 이 사안에 대해 확고한 주장이 없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아오르노스는 라니가트(Ranigat)에 있었다. 아니면 아톡(Attock) 근처였다. 어쩌면 타르벨라(Tarbela)일지도 모른다. 영국의 정치장교 제임스 애봇(James Abbott)은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당한 도시, 아보타바드(Abbottabad)의 지명에 이름을 남기기도 했지만, 인더스 강 서쪽의 산맥을 샅샅이 살피기도 했다. (아마도 망원경을 썼을 것이다.) 1850년대 당시 영국의 법적 관할은 인더스 강까지밖에 못 미쳤기 때문에, 애봇은 그 이상 가까이 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애봇이 아오르노스 바위의 위치로 점찍은 마하반(Mahaban) 산은 한동안 널리 받아들여졌다. 오렐 스타인이 1926년에 스와트(Swat) 지역을 방문 할 때까지만 말이다. 스타인은 "알렉산드로스의 인더스 강 원정길에 대하여(On Alexander's Track to the Indus)"에서 아오르노스의 위치가 인더스 강을 따라 더 상류에 있는 산자락인 "피르 사르(Pir Sar)"라고 강력히 주장했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 주장에 대해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19세기에 인더스 강에 눈독을 들인 유럽인들은 제국의 관료, 첩보원, 망명객, 용병 등으로 이루어진 어중이떠중이들이었다. 그러나 거의 누구나 다 알렉산드로스에 집착했고,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들이 주조해서 그리스 글자가 새겨진 동전이나 중앙아시아 및 남아시아 지역에 걸친 동방원정이 남긴 물질적 기념물 등 알렉산드로스가 여기까지 이르렀다는 그 어떤 근거라도 찾아내기 위해 매진했다. 예를 들자면 알렉산드로스가 힌두쿠시 산맥을 넘기 전, 기원전 329년에 코카서스 지방에 세운 도시 알렉산드리아의 위치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지금은 카불에서 북쪽에 있는 공군부대 주둔지 베그람(Begram)으로 확정지어졌으나, 19세기에는 많은 이들이 바미얀(Bamiyan)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알렉산더 번스(Alexander Burnes)는 적어도 당대에는 인더스 강 너머를 여행한 사람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보카라 기행문(Travels into Bokhara)"라는 베스트셀러를 저술했다. 번스는 보카라를 여행하던 중, 알렉산드로스가 인도로 진입해 가장 깊숙히 들어간 지점에서 올림포스의 신들을 기리기 위해 지은 12개의 거대한 신전을 찾느라 하루를 허비했다.

그러나 진정한 전리품은 아오르노스였다. 헤라클레스조차 함락시키는데 실패했다고 하는 난공불락의 산성을 정복한 것이 알렉산드로스의 일생일대의 위업이었다.

이 사람들에게 알렉산드로스가 왜 그리도 중요했던걸까 궁금해봄직 하다. 이들은 모두 번듯한 서양 고전 교육을 받았고, 그래서 이들에게 알렉산드로스는 어린 시절부터 책에서 읽은 유럽의 영웅이었다. 예컨대, 애봇은 마하반 산을 주장하면서 라틴어 및 그리스어 자료를 잔뜩 인용했고, 이 주제에 대해 쓴 글의 제목 "아오르노스로 오르는 계단(Gradus ad Aornon)"은 분명 어린 애봇이 고향 블랙헬스(Blackhealth)의 학교에서 접했을 라틴어 운율 사전 "파르나소스로 오르는 계단(Gradus ad Parnassum)"의 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친 것이다. 이들 탐험가 중 대다수가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에 대해 장미빛 그림을 그린 덕분에 이러한 태도를 견지할 수 있었다. 1830년대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한 미국 출신 용병 조시아 할란(Josiah Harlan)에 따르면, "유럽의 박애주의자" 알렉산드로스는 "전인류를 수혜 대상으로 두어 그의 기억을 각인시킬 만한 업적을 행하였고, 당시 알려진 세계의 지평 위에 문명의 인감을 찍었다." 알렉산드로스는 확신에 찬 사람의 표본이었고, 이들도 알렉산드로스처럼 후진 민족에게 "문명"을 가져다주고 있다는 믿음에 차있었다. 할란은 여기서 가장 극단적인 사례에 해당하며, 갈수록 자신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였다.[1]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알렉산드로스는, 이 사람들이 마주친 생소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지형과 문화 속에서 그나마 익숙한 존재였으리라. 이 유럽인 침입자들이, 스스로에게 알렉산드로스가 먼저 이곳에 와있었노라고 (이 이국적인 풍경에 흔적을 남기기까지 했노라고) 최면을 걸 수만 있다면, 자신들이 속하지 않은 공간에 와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덜 불안하게 느꼈으리라. 
----------------------------------------------------------------------------------------------------------------------
[1] 조시아 할란이 자신을 알렉산드로스와 동일시했다는 정황은 르웰린 교수가 아래 달아놓은 참고문헌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다. B. Macintyre의 2011년 저서 "조시아 대왕(Josiah the Great)" 참조.
=========================================================================================================================

할란이 알렉산드로스에 대해 내린 평가는 낭만주의적 헛소리였다는 것은 구태여 말할 것도 없다. 실제 알렉산드로스는 자비 없는 잔악함을 떨치며 진군했고,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상상도 못할 혼란을 남겨놓았다. 호레이스 헤이맨 윌슨(Horace Hayman Wilson)이라는 학자가 1840년대에 쓴 글에서 지적하기를, 알렉산드로스가 일으켰다는 무시무시한 원정은 "장기즈(Jangiz)나 티무르(Timur)의 이야기였더라면 맹비난의 대상이 되었겠으나, 고전 문명의 전형인 그리스의 이야기일 경우에는 역사학자들이 간과하다시피 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윌슨의 목소리는 당대에 공감을 받지 못하였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오렐 스타인(Aurel Stein) 같이 대단한 인격자 조차도 알렉산드로스가 언급되었을 때에는 그의 무용담을 처음으로 듣고 흥분했던 소년 시절로 돌아간 것인지, 모든 객관성을 상실하는 듯 보인다. 1990년대에 TV에 자주 출연한 스타 역사학자 마이클 우드(Michael Wood)가 피르 사르(Pir Sar)를 찾아가 스타인을 기억하는 노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은 이스칸다르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답니다...

스타인이 아오르노스의 장소로 비정한 피르 사르는 아오르노스 공성전을 둘러싼 고대 기록과 분명히 잘 일치하고, 알렉산드로스에 대해 글을 쓰는 대부분의 작가들은 여전히 스타인의 주장을 따른다. 그러나 나는 바리코트(Barikot) 근처 엘람(Elam) 산에 아오르노스를 비정하는 이론을 더 선호한다. 내가 엘람 산을 선호하는 이유는 고대 기록과 여러 방면으로 부합하기도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와 승리한 그리스 군대의 목소리 이외의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그분은 이스칸다르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답니다..."

▲엘람 산 정상 부근. 사진 출처: 오렐 스타인의 "알렉산드로스의 인더스 강 원정길에 대하여"

내가 뜻하는 바를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쥬세페 투치(Giuseppe Tucci)는 이탈리아 출신 불교 전문가로, 스와트 지역에서 불교 및 기타 유적지를 탐사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투치의 경력은 얼룩져있는데, 무솔리니와도 조금 지나치게 친했고, 1930년대 일본 정부와의 관계도 조금 지나치게 좋았다. 일본의 군국주의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 많다. 그러나 투치는 스와트에서 진행한 연구를 통해, 서양 고전 문헌을 무기삼아 아오르노스를 찾아헤메는 다른 탐험가들이 지니지 못한 것을 얻었는데, 그것은 알렉산드로스가 군사원정을 하면서 마주친 사람들, 다시 말해 아오르노스 공성전에서 승기를 거머쥔 그리스 군대와는 반대로 정복당한 이들의 문화와 신앙에 대한 이해였다.

고대 사료는 마케도니아 군대의 학살을 마주한 사람들이 사방팔방에서 엘람 산 꼭대기로 피난을 가는 모습을 그려내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이곳마저 다른 곳과 매한가지로 도륙의 참극을 벌이면서 정복했을 뿐이었다. 이 지역 사람들이 침략자로부터 피난을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더라면 신성한 장소로 향했으리라고 투치는 확신했고, 역사적 근거에 의하면 엘람 산은 유사이전부터 스와트 지역 사람들에게 신성한 산이었다. 엘람 산과 관련된 부처님 이야기도 있다. 서기 7세기에 중국에서 순례를 와서 엘람 산을 오른 현장 법사에 따르면, 전생에 부처는 불교 가르침의 반 구절만 듣더라도 이곳에서 죽는 것이 행복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또한 엘람 산은 꼭대기 바위에 라마(Rama) 신[2]의 이름이 적혀있어 힌두교 신자들이 순례를 오는 성지이기도 했다. 헤라클레스가 아오르노스를 정복하려 했다는 그리스 전설도 또다른 신이나 악마가 신의 거처를 공격했다는 현지 신화에서 유래한 듯한 낌새가 있다.
----------------------------------------------------------------------------------------------------------------------
[2] 힌두교에서 비슈누 신의 7번째 화신(化神).
=======================================================================================================================

▲암룩-다라(Amluk-dara)의 불탑. 뒷 배경으로 엘람 산/아오르노스가 보인다. 이곳은 영원토록 신성한 공간이다. 
사진 제공: Luca M. Olivieri


"다른 이들은 공포에 질려 후퇴하면서, 절벽아래로 몸을 던져 스러졌다"

아오르노스 공성전에 대한 고대의 기록은 예상대로 난폭하다. 알렉산드로스의 군대가 정상에 다다랐을 때 방어 측은 도망치기 시작했고, 다수의 도망자가 참살당했다. "다른 이들은 공포에 질려 후퇴하면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스러졌다."고 그리스 역사가 아리아노스(Arrian)는 기록한다. 투치가 옳았다면, 알렉산드로스의 군대가 자행한 일은 스와트 지역 사람들이 믿는 신의 거처 가장 신성한 공간, 완전히 절망했을 때에만 의지할 법한 장소를 공격한 것이다. 그리스인들이 "아오르노스(Aornos)"라고 들은 지명은 현지 언어로 "안식처를 의미하는 일반 명사"인 "아아라나(aarana)"였을 것이라고 투치는 제안한다. 아오르노스가 엘람 산이었다면, 알렉산드로스의 특출난 무용담은 전쟁이 민간인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이야기에 가까워진다.

고대사 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이 가설을 인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투치의 가설은 의미 있는 방면으로 잘 알려져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말랄라(Malala)[3]는 민고라(Mingora)의 침실 창문을 통해 엘람 산을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알렉산드로스가 진격해옴에 따라 스와트 사람들은 "워낙 높이 솟은 덕분에 신들이 보호해주리라고 믿은" 장소를 피난처로 삼았으니, 바로 이 "신성한 산"이라는 것이다. 말랄라는 매사에 옳은 만큼, 이 점에 대해서도 그녀의 말이 옳으리라고 생각한다.
----------------------------------------------------------------------------------------------------------------------
[3] 파키스탄 스와트 지역 출신의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를 의미한다. 2014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음으로써 최연소 노벨수상자이자 유일한 미성년자 노벨수상자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반대편 풍경. 엘람 산에서 바라본 바리코트. 사진 제공: Luca M. Olivieri

참고문헌:

J. Abbott, "Gradus ad Aornon," Journal of the Asiatic Society of Bengal 23 (1854), 309-63;
A. Burnes, Travels into Bokhara (1834);
H. H. Wilson, Ariana Antiqua (1841);
B. Macintyre, Josiah the Great (2011);
A. Stein, On Alexander's Track to the Indus (1929);
M. Wood, In the footsteps of Alexander the Great (1998);
G. Tucci, "On Swat. The Dards and Connected Problems," East and West 27 (1977), 9-103, at 52-5;
L. M. Olivieri, "Notes on the problematical sequence of Alexander's itinerary in Swat: a geo-historical approach," East and West 46 (1996), 45-78;
동 저자, "Frontier archaeology': Sir Aurel Stein, Swat, and the Indian Aornos," South Asian Studies 31 (2015), 58-70.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