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제 3화> 여신의 발걸음을 따라서 HELLO! VENUS?

옥스포드 대학교의 고전학자 모건 르웰린(Morgan Llewelyn) 교수님 블로그에서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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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아테나


모래에 묻힌 코탄 유적지(Sand-buried Ruins of Khotan, 1904) 이후 출간된 오렐 스타인(Aurel Stein)의 책 중 아무거나 들어서 표지를 보라. 그리고 목차에, 또는 종종 속표지에서도 이 도상을 발견할 것이다.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아테나 여신의 옆모습이다. 오른손에는 천둥벼락을 쥐고 있고, 왼팔에는 아이기스, 고르곤 메두사의 머리가 새겨져있고 가장자리에는 술 장식 대신 뱀 머리가 달린 무시무시한 염소가죽 방패를 들고 있다.

이 그림은 스타인의 예술가 친구이자 조력자인 프레드 앤드류스(Fred Andrews)의 작업이고, 스타인이 오늘날 중국의 서북단 신강(新疆) 지역의 타림 분지에 위치한 니야(Niya)라는 곳에서 발굴을 하던 중 발견한 유물을 본딴 것이다. 스타인은 실크로드의 고대 불교 문화를 조사하고 있었는데, 기원후 3세기의 ("악취가 ... 수 세기가 지났음에도 진동하는") 쓰레기장에서 나무 조각을 종이 삼아 인도계 언어와 문자로 쓴 수 백편의 편지를 발견했다. 편지를 봉하는데 쓰인 것은 진흙이었고, 진흙에는 편지를 발송한 개개인의 인장이 찍혀있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 서한들은 특히 흥미로운데, 고전 서양 미술의 영향이 머나먼 코탄(Khotan) 지역에까지 어떻게 미쳤는지 강력한 증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처음 발견한 깨지지 않은 봉인을 깨끗하게 하던 중, 필자는 그것이 아이기스와 천둥벽력을 지닌 고전 양식의 팔라스 아테네의 형상이라는 것을 알아보고는 뛸듯이 놀랐다. 이 봉인은 ... 그 뒤로도 자주 나타났는데, 아마도 이 오래된 집락의 행정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관료의 문장이었을 것이다."


또다른 편지에서 스타인은 "의심의 여지없이 서양의 모델을 따라 조각한 두상이 찍힌 봉인 옆에 도상화된 한문이 찍힌 봉인"을 발견했다. 이것이야 말로 "서유럽과 베이징 중간지점에 있는" 실크로드의 정수였다. 인도, 유럽, 중국 문화의 사조가 섞이는 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스타인의 문장이 된 것은 다름 아닌 아테나였고, 아테나 도상이 스타인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하는 궁금증은 오래도록 내 머리속에서 떠다녔다.

아테나는 지성과 학문의 여신이다. 인간 사회를 문명하게 하는 것들의 화신이다. 동시에 그녀는 전쟁의 여신이기도 하며, 이와 같은 도상에서는 더욱 확연하게 그 성격이 드러난다. 그러나 아테나가 주관하는 것은 전쟁의 이성적인 측면이다. (비록 둘 사이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지만) 피튀기는 싸움 보다는 전술과 전략의 여신이고, 군사 도발 보다는 정의로운 전쟁의 여신이다. 그러니 아테나의 도상이 그려진 책이 독자에게 제공하는 바는 인류 문명이라는 대의이고, 스타인이 중앙아시아에서 달성한 업적도 동일한 대의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스타인이 이 아테나 도상의 역사를 얼마나 탐구하였는가 하는 것도 궁금했다. 왜냐하면, 우연이든 아니든, 스타인이 자신의 책을 장식하기 위해 고른 도상은 지극히 중요한 도상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동전 몇 개를 보여주는 것 만한게 없다. 우선 시작은 마케도니아 동전이다. 



그 다음은 시칠리아 동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동전이다.



이 동전들은 안티고노스(Antigonus), 피로스(Pyrrhus), 메난드로스(Menander)라는 세 명의 왕이 각각 발행한 동전이다. 안티고노스와 피로스의 치세는 기원전 3세기였고, 메난드로스는 기원전 140년 경이다. 놀랍게도 당시 알려진 세계의 양 끝에서 발행된 동전임에도, 동일한 아테나 형상을 담고있다. 

메난드로스는 오늘날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 걸친 지역을 다스린 그리스 출신 왕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지도자였고, 이 아테나는 그의 후계자들에게도 지속적인 상징물로 남아서, 라호르(Lahore) 부근의 자그마한 왕국을 다스린 거의 마지막 그리스계 왕 스트라톤 2세(Strato II)까지도 아테나 상징을 썼다.


이 동전은 정말 볼품없어서, 스트라톤이 얼마나 궁박한 지경에 처했는지 구구절절히 이야기해주는 듯 하다. 그럼에도 아테나는 여전히 찍혀있다. 비록 왼손잡이가 되어버린 것 같지만 말이다.

이 도상이 그리스계 왕들에게 그리도 중요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최근 학계에서는 동전에 새겨진 아테나가 특정 아테나 조각상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바로 마케도니아 수도 펠라(Pella)의 지방신 "아테나 알키데모스(민중을 수호하는 아테나)"를 연상시키는 도상이라나는 것이다. 그리고 펠라의 아테나 알키데모스는 알렉산더 대왕을 연상시켰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수도가 펠라엿고, 펠라의 주 수호신이 아테나였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로스가 전장에 나갈 때면 노련한 수행원이 트로이 아테나 신전에 있던 아테나의 신성한 방패를 들고 앞장섰다는 이야기가 있다. 안티고노스, 피로스, 메난드로스 왕은 모두 알렉산드로스의 인상적인 인물 됨됨이를 자신들과 연계할 필요가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 세계의 지도를 바꾸어놓았고, 메난드로스와 스트라톤의 경우에는 중앙 아시아에서 그리스계 왕으로 군림할 수 있게 한 장본인이 알렉산드로스였던 것이다. 

신강에서 스타인의 발굴해낸 유물은 물론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간다. 니야 집락의 관료는 알렉산더가 숨을 멎은 뒤 50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서방 3,000 마일 떨어진 곳에서 온 도상을 공무용 인감으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 관료는 아테나 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이라도 하고 있었을까? 아마 몰랐으리라. 아테나 알키데모스가 의미하는 바에 대한 지식, 이 왕들이 스스로에게 덮어씌우고 싶어했던 먼 옛날의 알렉산드로스 신화, 이런 것들은 스트라톤의 왕국이 멸망하면서 아마도 함께 소멸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렐 스타인은 어떠한가? 그는 이 도상을 통해서 무엇을 이해했는가?

스타인은 분명 알렉산드로스에 흥미를 느꼈다. 중앙 아시아에서 참으로 놀라운 발견을 연거푸 해내는 동안에도 스타인은 유년기부터 키워왔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대한 깊은 흥미를 놓지 않았다. 예컨대 1926년 스와트(Swat)을 방문했을 때 이야기를 하면서, 스타인은 7세기에 현장 법사가 기록한 중국에서 인도로의 순례길을 따라 자신도 중국 국경지대를 탐험하게 되었음에도, 현장을 사모하는 것보다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흥미가 더 깊다고 솔직하게 인정한 바 있다. 

"순례자 중 가장 이름 높으시고 제가 '중국인 수호성인'으로 모시는 현장 스님의 신성한 영령께서 부디 제 고백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저를 이곳 스와트로 이끈 것은 스님의 경건한 기억 보다도,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드로스가 푼잡 지역 공략을 승리로 이끌면서 눈덮인 힌두쿠시 산맥 자락에서 인더스 강까지 다다른 고된 원정길을 뒤따르고자 하는 소망이었습니다."     

이 탐사의 궁극적 목표는 스타인의 뇌리에 오래도록 박혀있던 목표였으며, 인더스 강 서쪽 지역을 방문한 많은 유럽인들이 공통으로 가진 욕망이었다. 그것은 바로 327년 알렉산더가 점령한 난공불락의 요새 아오르노스(Aornos)의 위치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알렉산드로스를 연상시키는 아테나 여신 도상은 스타인이 자신의 책에 찍기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도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타인과 앤드류스가 니야 집락에서 나온 봉인 속 도상을 메난드로스와 스트라톤 같은 "그리스-박트리아" 왕들의 동전과 연관지어 생각했으리라는 것은 확실하지만, 알렉산드로스 본인을 읽어냈는지는 확실치 못하다. 스타인은 이 도상을 논하면서, "아테네 프로마코스(Athene Promachos)의 고전적 도상"을 모방하고 있다고 묘사할 뿐이다. 아테네 프로마코스란 아테나 여신을 수호신으로 섬긴 유사한 개념이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봉인 속 도상과 펠라의 아테나 알키데모스 사이의 연결고리, 그리고 알렉산더로 이어지는 고리는 아직 규명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다면 오렐 스타인의 책 표지에 아테나 알키데모스가 찍혀있다는 것은 굉장한 우연이다. 스타인의 직업에 이보다 더 걸맞는 수호신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 고고학 및 고대사를 연구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스타인은 알렉산드로스에 이끌려 이곳저곳을 따라다녔다. 소년 시절 받은 그리스 고전 교육으로부터는 멀어졌지만, 단 한 번도 초심을 잃지 않은 채 지적이고 지리적인 공간들을 옮겨다녔다. 나도 종종 느끼곤 하는 것이, 서양에서 이 지역을 생각하는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끼어들지 않을 수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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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迪倫 2018/10/14 03:02 # 답글

    호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소개해주시는 여러가지 자료들 정말 감사합니다.
  • 남중생 2018/10/14 03:31 #

    저도 재미있게 번역했습니다.
    난공불락의 아오르노스를 찾는 여정은 다음 <제 4화>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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