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본초강목과 미이라 - 백랍다의 약방문 (1) 예티와 인의예지!

예티와 인의예지에서 소개드린 적 있는 칼라 내피 교수님의 또다른 논문을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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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랍다의 약방문 Bolatu's Pharmacy 
근세 중국의 티리악 Theriac in Early Modern China

칼라 내피(Carla Nappi)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논문 초록
근세 중국에서는, 중화제국의 경계와 함께 박물학과 의학도 변화하고 있었다. 육로와 해로를 통해 동식물과 약물이 중국으로 유입됨에 따라 박물학자들은 생소한 물질, 문헌, 용어에 적응하려고 애썼다. 이 현상에서 한 가지 핵심적인 측면은 근세기 이슬람 의학과 중국 의학의 교류였다. 티리악(theriac)의 역사를 통해, 근세 중국 의학에서 외래 약품을 길들이는데 제조법이 중요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티리악은 근세 유럽 약학계에서 수요가 높고 논란이 분분한 약품이었고,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문헌을 통해 중국에 도착했다. 비단길에서 일어난 약물 교역에 있어서 언어와 물질 사이의 대화는 필수적이었으며, 궁극적으로 근세 세계에서 약물과 문헌을 번역하는데 쓰인 필수 기술은 음차 표기였다.


서문 

16세기 말 어느날 이시진은 서재에 앉아 미이라에 대해 고뇌하고 있었다. 그전까지 이시진은 미이라가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이시진은 기주(蘄州, 오늘날의 후베이 성)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의술로 상당한 명성을 쌓았다. 할아버지는 떠돌이 의사를 생업으로 삼았는데 공공연하게 돈을 목적으로 의술을 판다는 이유로 멸시받곤 하는 직종이었다. 아버지 이언문(李言聞)은 의학자로 안정적인 생계를 꾸렸고 환자를 돌보면서도 쑥이나 인삼 같은 토산품 및 진단 방법에 대한 저서를 몇 권 저술하였다. 이시진도 과거시험에 연거푸 낙방한 뒤 가업을 잇기로 하였다. 아버지와 함께 여행하고 배우면서, 환자를 돌보았고, 잠시나마 관직을 맡았는데, 그러는 와중에도 자신의 방대한 본초학 지식을 활용해 중국 의학 경전을 다시 쓰겠다는 꿈을 잃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이시진은 장장 30년이 걸릴 연구과제를 수행해나가는 중이었으니, 그것은 바로 명나라(1368-1644) 말기에 이시진 같은 의사들이 약 처방에 대한 권위적인 저서로 널리 인정하던 송대(960-1279)의 약학 경전들을 재구상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이시진이 내놓은 결과물은 1,892종의 약재를 2백만 자에 가까운 분량으로 정리해 52권(챕터)로 나눈 "본초강목"이라는 제목의 본초학 백과사전이었다. 

이시진은 비록 본초강목에 본고장과 여행지에서 수집한 방대한 향토 지식을 입력하였지만, 모든 약재가 기주에서 나는 쑥 만큼 구하기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이시진은 아라비아에서 나온다는 "꿀 미이라"의 약 성분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생각에 잠길 수 밖에 없었다. 

도구성(陶九成 구성은 명(明) 나라 도종의(陶宗儀)의 자)의《철경록(輟耕錄)》에 이르기를, “아라비아(天方國)에 70이나 80세 된 노인(老人)이 사신(捨身)해서 중생(衆生)을 구제할 것을 자원(自願)하는 일이 있다. 음식(飮食)을 일체 끊고 오직 몸을 깨끗이 씻고 꿀[蜜]만 먹는다.  이토록 한 달을 지내면 소변(小便)이 오로지 꿀이다. 죽은 뒤, 그 나라 사람들이 시신(尸身)을 석관(石棺)에다 염습(殮襲)하면서 인하여 그 속에 꿀을 가득 넣어 시신이 잠기도록 하고는, 그 관(棺)에다 장사지낸 연월일(年月日)을 새겨서 묻어놓았다가 백 년이 지난 뒤에 파서 열어보니, 밀제(蜜劑)가 되어 있다. 사람 절상(折傷 뼈가 부러지는 것)되었을 때 이 밀제를 조금만 복용(服用)하면 즉시 낫는다. 이런 것을 흔히 얻을 수는 없는데, 목내이(木乃伊)라 불린다. 
(역주: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도 미이라를 변증하면서 철경록의 같은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번역문의 큰 얼개는 적륜재의 해당 내용을 참조했으나, 내피 교수님의 영문 번역에서는 목내이를 단일 사례가 아니라 천방국/아라비아의 풍습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따랐다.)

이 "벌꿀인간"은 너무 희귀한 나머지 근처 시장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직접 이 약재를 못 보았음에도, 이시진은 본초강목에 미이라를 기입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시진은 본초강목에 이와 같은 이야기를 많이 실었다. 본초강목은 전통 중의학의 정전(正傳)으로 칭송받지만, 사실 명 제국의 강역 바깥에서 온 약재 관련 단어, 이야기, 정보도 상당량 담고 있다. 적어도 당나라(618-907) 이래로, 문인들은 잡록(雜錄), 필담(筆談), 시(詩)와 단어에 대한 집주(集註), 지괴문학 모음집을 쓰면서 먼 지역과 해역에서 나는 천연자원과 약물에 대한 정보를 주기적으로 기입했다. 산스크리트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문헌이 한문으로 번역되면서, 이시진과 같은 의학 문헌 저자들은 외래 동식물, 약물 이름을 중국 의학 경전으로 편입하는 과정을 중재했다. 중의학은 근세 명 제국의 경계와 함께 변화하였고, 중의학 전통 밖에서 의약품이 대량 유입됨에 따라 이를 시험하고, 기재하고, 이해해야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본 논문은 근세 글로벌 의약품 교역에서 거래된 희귀품목인 티리악의 사례를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티리악을 포함한 이국적인 약재가 근세 중국에서 수용된 맥락을 살펴볼 것이다. 티리악이 중국으로 유입된 경위는 근세 대외관계, 특히 중화제국과 이슬람 제국 간의 관계라는 넓은 시야를 통해 이해하려 한다. 중화세계와 이슬람세계 사이의 교류를 중개하는데 제조법의 역할을 살펴보는 것은 티리악이 어떻게 한적(漢籍)으로 유입되었는지 설명하는데 유익하며, 의약품 제조법을 문헌이라는 형식으로 숙독하는 것은 한적으로 유입된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는데 유익하다. 티리악이, 다양한 언어학적, 물질적 형태를 취하는 것을 살펴봄으로써, 단일 개체가 아니었음이 명백해질 것이며, 본 논문은 의약품의 역사에서 티리악이 다양하게 변신해온 이력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의약품 제조법을 글로벌 교역의 매개체로 살펴보는 것은 이와 같은 불연속성을 이해하는데 유익하며, 중국 본초학의 장을 넘어서 근세 글로벌 교역을 연구하는데 광범위한 파급력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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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미이라에 대해서는, 아래 포스팅도 참조!
적륜재의, 

남중생 블로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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