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서호수는 왜 안남왕을 못마땅해 했을까? 인도차이나 ~Indochine~

Liam Kelley 교수님의 Seo Ho-su's Criticism of the King of Annam을 번역합니다.
한국 사료가 활용될 수 있는 한 가지 방안을 제시해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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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수는 왜 안남왕을 못마땅해 했을까?


청나라 군대가 떠이 썬 세력에게 패퇴한 뒤 이뤄진 외교 교섭의 결과로, 청나라의 건륭 황제는 광중(光中)을 "안남왕"으로 인정하기로 했으나, 한편으로는 광중이 청나라 황궁에 직접 찾아올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1790년 떠이 썬 왕조의 사절단은 처음에는 청나라의 수도를 찾아갔고, 그 다음에는 열하에 있는 여름 궁전까지 가서 아주 좋은 대우를 받았다. 



열하산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걸까?

필자는 여태껏 떠이 썬 왕조에서 누군가를 광중이라고 속여서 보냈다고 배웠고, 건륭제가 사절단을 후하게 대우한 이유는 안남왕이 직접 자기 궁전까지 찾아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배웠다. 

필자는 이 이야기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찾아냈다. 첫번째는 이런 생각의 출처를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거짓말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베트남에서 어느 누구도 이 사기극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언제 밝혀진 것인가? 어떻게? 누가 처음 발설했는가? 어디서?

필자를 혼동시키는 또다른 부분은 바로 사절단이 돌아와서, 사절단의 일원인 반휘익(潘輝益)이 정리해 출간한 시집이다. 이것은 극히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문집은 대체로 출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휘익은 이 시집에서 자신이 건륭제로부터 받은 대우에 대해 만족해한다. 그리고 그는 "가짜" 광중이 사절단에 있었다는 것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걸까? 필자의 추측으로는 누군가가 광중을 사칭하여 간 것은 아마도 사실이겠지만, 이 사실은 베트남 내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밀로 다뤄졌고, 청나라가 사절단을 후하게 대하자, 이는 반휘익의 시집을 통해 "공개"되어 떠이 썬 왕조를 지지하지 않는 식자층에게 떠이 썬 왕조가 여씨 왕조가 받은 대우보다 훨씬 후한 대우를 받았다는 것을 보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베트남 사람들"이 "중국 사람들"을 골탕먹인 사례라기보다는 떠이 썬 왕조가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베트남 사람들을 골탕먹인 사례인 것이다. 

떠이 썬 왕조가 열하에서 받은 후한 대접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과연 광중이 실제로 왔다고 건륭제가 "속았기" 때문인걸까?


필자는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조선인 사절, 서호수(徐浩修)가 쓴 연행기(燕行記)를 최근 접했다. 서호수는 안남왕이 실제로 왔다고 믿었으며, 안남왕의 행동에 대해 극히 비판적이었다. 청나라의 고위 관료 복강안(福康安) 앞에서 공손히 무릎꿇는 모습을 묘사했고, 청나라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하지 못할 짓이 없다(無所不爲)"고 적었다.

이 흥미진진한 일화는 안타깝게도 충분히 연구가 되어있지 못하다. 반면에 필자가 여기에서 지적했듯이, 당시에 일어난 사건에 관한 증거를 지워버리려고 한 이들도 있다. 

서호수의 기행문은 이 시기와 이 사건을 연구하는 역사가들이 활용해야 할 가치있는 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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