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곽수경의 천문관측 기록은 한반도가 중국영토라는 명백한 증거! 인도차이나 ~Indoc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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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중국 영토라는 명백한 증거!


필자는 오래동안 "바다에 있는 바위" 문제를 회피해왔다. 여기에 대해 사람들이 하는 말이 관심을 갖기에는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 할 말을 할 때다.

필리핀 해상에서 서쪽으로 123마일 거리에 스카버러 암초(Scarborough Shoal)라 불리는 돌덩이들이 있는데, 1279년에 곽수경이라는 중국 천문학자가 그곳에서 천문 관측을 했기 때문에 중국영토라는 주장이 인터넷에서 유포되는 것을 보았다.

곽수경은 당시 중국에서 몹시 유능한 천문학자로 몽골제국인 원나라 관료였다. 

원사(元史)에 따르면 곽수경은 몽골 황제 쿠빌라이 칸에게 진언하기를, 황제가 다스리는 영토가 과거에 마지막으로 대대적인 천문 계산을 한 당나라 때 보다도 넓고, 달력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해 새로이 천문 관측을 해야한다고 했다. 

쿠빌라이 칸은 이 요청을 윤허하였고, 곽수경을 시켜 다양한 장소에서 관측을 할 수 있도록 관측소를 세우게 하였다. 

원사에 이르기를, 이 임무를 수행한 관료들은 "동쪽으로는 고려[한반도], 서쪽으로는 전지[오늘날 운남성], 남쪽으로는 주애[하이난 섬], 북쪽으로는 철륵[오늘날 중국의 북쪽 지역에서 오늘날 중앙 아시아까지 포함하는 지역에 거주했던 투르크 계열 부족 이름]"까지 갔다고 한다.

十六年,改局為太史院,以恂為太史令,守敬為同知太史院事,給印章,立官府。及奏進儀表式,守敬當帝前指陳理致,至於日晏,帝不為倦。守敬因奏:「唐一行開元間令南宮說天下測景,書中見者凡十三處。今疆宇比唐尤大,若不遠方測驗,日月交食分數時刻不同,晝夜長短不同,日月星辰去天高下不同,即目測驗人少,可先南北立表,取直測景。」帝可其奏。遂設監候官一十四員,分道而出,東至高麗,西極滇池,南踰朱崖,北盡鐵勒,四海測驗,凡二十七所。


▲ 27개 관측소의 위치 (적륜재의 격돌! 사천대 vs. 회회사천대 中)

원사의 천문부에는 천문 관측이 이뤄진 "남해(南海)"라는 장소를 언급한다. 여기가 어디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원사에는 남해에서 관측한 기록이 남아있다. 

南海,北極出地一十五度,夏至景在表南,長一尺一寸六分,晝五十四刻,夜四十六刻。


네이선 시빈(Nathan Sivin)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주다: 1280년 중국의 천문학 개편(Granting the Seasons: The Chinese Astronomical Reform of 1280)의 577-579쪽에 이 구절을 번역해놓았다. 이 부분은 구글북스를 통해 미리보기가 가능하다. 

시빈에 따르면 "남해에서는, 북극이 땅에서 나오는 것이 15도, 하지에는 그림자가 규표(表)의 남쪽으로 지고, 길이는 1척 1촌 6푼이었으며, 낮 길이는 54각, 밤 길이는 46각."(578쪽)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곽수경의 규표(圭表)

필자는 천문학자가 아니니, 이러한 측정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해석을 바로 지금 사람들이 하고 있다. "남해"가 정확히 어디였는지 알아내기 위해, 남해의 측정결과를 보고는 측정이 이뤄진 장소를 찾아내려고 하고 있다. 

최근 어느 중국 학자는 이 측정이 스카버러 암초(중국어로는 황암도黃巖島)에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현재 인터넷에서는 여기에 대한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지 못한 것은, 더 큰 맥락을 보고, 사람들이 이 역사적 정보를 얼마나 선별적으로 활용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천년 전, 이민족 정복왕조에 협력하는 한인이 전 "영토(疆宇)"에 걸쳐 천문관측을 했다. 여기에는 지금의 한반도 뿐 아니라 아마 몽골 지역까지도 포함했다. 한편 티벳이나 대만 같은 장소는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니 곽수경의 활동이 중국 주권이 미치는 영역을 보여주는거라면, 어째서 중국인들은 한반도와 몽골 지역에 대한 중국의 "부정할 수 없는 영토주권"을 세계에서 인정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인가?

"남해"가 어디였는지는 의견이 분분한데 비해, 곽수경이 한반도에서 천문관측을 했음은 틀림없다. 이것은 100% 반박불가다. 그런데 중국은 왜 한반도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지 않는 것인가?

다른 한편으로는, 원나라는 "중국" 왕조가 아니었다. 이민족 정복왕조였다. 더욱이 쿠빌라이 칸이 다스린 동쪽의 칸국(원나라)는 오늘날 시베리아까지 뻗는 영역을 포괄했다. 

명나라가 원나라를 교체했을 때, 영토 양도를 위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법적 장치는 무엇이었는가? 원나라의 영토에서 어디까지가 명나라 왕조의 영토인 것으로 국제사회가 인정할지를 정하기 위해 어떤 법적 협상이 이뤄졌는가? 그 영토의 범위는 무엇이었는가?

당연히 위 질문들 중 답이 있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모두 당시 사람들의 머리속에 없던 근대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인들은 국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근대와 전근대 세계 사이의 구분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인간의 지성을 모욕할 뿐이다. 

후안무치로다!
(太無恥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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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아니 그래서 남해는 어디란 말입니까??
중국 정부는 어느 나라와 영토 분쟁이 터지냐에 따라서 곽수경의 "남해"를 스카버러 암초라고 했다가 파라셀 군도라고 했다가 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네이선 시빈을 포함한 중국 내외의 과학사학자들은 "남해"의 관측기록이 베트남 중부(당시 참파 왕국)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마 위 지도에서는 "남해"를 그대로 "하이난海南"이라고 본게 아닐까 싶습니다. 
적륜 님께서도 저 하이난 관측소에 대해서 "아마 안남 정복시도의 끝자락"이라고 말씀하신 바가 있는데, "참파"라고 하더라도 안남 정복의 최남 전선이었다는 의미에선 일맥상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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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haind 2018/10/05 06:59 # 답글

    이런 걸 보면 그분들은 오히려 중국도 하는데 우리는 더 해야 한다고 주장하겠죠. 역사왜곡의 정당성을 당당하게도 동북공정에서 찾는 분들인데.
  • 남중생 2018/10/05 12:43 #

    그렇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주장이죠. ㅠ
  • Fedaykin 2018/10/05 12:05 # 답글

    ㅋㅋㅋㅋㅋㅋ 중국: 오, 맞네. 원나라 땅 다 내놔! 할지도 모르겠네요
  • 남중생 2018/10/05 12:33 #

    다르게 말하면, 그 넓은 원나라 강역을 가져다가 바다에 있는 바위 하나를 주장하고 있으니, 그 편협함을 알만하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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