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미투 운동의 시대에 역사학 하기 번역 시리-즈

에이미 스탠리는 노스웨스턴 대학교 역사학부에서 일본과 세계교류의 역사를 가르친다. 스탠리 교수의 신간, "쇼군의 도시에서 나홀로: 한 일본 여성과 그녀가 살아간 세상Stranger in the Shogun's City: A Japanese Woman and Her World"은 2020년 발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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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Too 시대의 역사학
에이미 스탠리 / 2018년 9월 24일

츠네노는 말을 바꿨다. 1839년 10월, 츠네노가 일본의 수도 에도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함께 여행중인 치칸이 좋은 친구라고 편지에 썼다. 치칸은 츠네노의 고향 마을 근처의 사미승(역주: 견습 승려)이었고, 에도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말하자, 치칸은 도움을 건넸다. 물론 치칸은 츠네노에게 여행짐을 팔아서 둘이 쓸 여비를 마련하게 만들었지만, 여행 내내 그녀를 도와주었으니 고마운 일이었다.  


▲편지를 읽는 여인.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에도시대 회화. 신시내티 미술 박물관 소장/위키미디아 커먼스에서 전재 

몇 주 후, 에도에 사는 숙부에게도 이 이야기를 하면서, 츠네노는 살짝 다른 말을 했다. "도중에 치칸은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있잖아, 난 에도에 사는 친척도 있으니까 그분들이 너를 거두어줄거야. 나한테 시집 오는게 어때?' 그리고 저는 거절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행 중이었습니다. 치칸은 여자 혼자 있으면 생길 수 있는 온갖 일들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경고는 아녔죠. 그저 저를 놀리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여행 중이던 사람들은 이미 다른 길로 떠났기 때문에, 제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가 원하는대로 해주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치칸이 좋은 사람이며, 자신은 숙부님의 손을 빌리고 싶지 않다고 주장했다.  

숙부를 만난 뒤 몇 주 뒤에, 츠네노는 또다시 이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가장 아끼는 오빠에게 쓰는 편지였다. 치칸의 "불순한 의도"를 언급하면서 그를 믿었던 것을 후회했다.  "따지고 보면, 치칸은 다른 번에서 온 낯선 사람이 아녔잖아요." 그리고 치칸은 그녀를 마치 친누이 처럼 너무나도 친절하게 대해준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그녀가 다른 편지에 썼듯이 "저는 그런 끔찍한 일은 생각치도 않았는데, 치칸은 저를 아내로 삼으려는 계략을 짜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 치칸은 떠난지 오래인 시점이었다. 츠네노를 에도 어딘가의 비좁고 더러운 셋방에 남겨둔 채, 그녀의 여행짐을 팔고 받은 돈을 챙겨서는 다른 번으로 도망쳤다.
 
필자는 2010년 일본의 니이가타 현립 문서관에서 연구를 하던 중, 이 일련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그 때 필자는 치칸에게 강간당했다는 츠네노의 주장을 의심했다. 의심까지는 아니더라도, 츠네노가 여러 차례 번복한 이야기들 사이 어딘가에 진실이 숨어있다고 생각했다.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하도록 훈련받는다. 우리는 인물의 발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말을 바꾸면 더욱 그렇고, 말을 번복할 이유가 있을 경우 더더욱 그렇다. 


처음에 필자는 치칸에게 강간당했다는 츠네노의 주장을 의심했다. 
츠네노가 여러 차례 번복한 이야기들 사이 어딘가에 진실이 숨어있다고 생각했다.


츠네노에게는 이유가 있었다. 치칸과 함께 떠났을 때, 츠네노는 허락 없이 가출을 한 것이었다. 츠네노는 세 번이나 결혼을 하고 세 번 모두 이혼했다. 큰 오빠가 자신을 또다시 누군가와 혼인시키기 전에 하루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에도로 떠남으로써, 그녀는 심각한 반항을 저지른 것이었다. 큰 오빠는 자신이 정한 혼인을 물린 츠네노에게 분노했을 뿐 아니라, 낯선 남자와 달아난 것 때문에 수치를 느낄 일이었다. 츠네노는 이름있는 가문 출신이었고, 이는 가문의 당주인 큰 오빠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행위였다. 그러니 치칸이 그녀를 강제로 범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치칸은 츠네노의 애인이었는데 그녀가 버림받은 뒤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자 그제서야 말을 바꾸려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필자가 처음에 쓴 츠네노 이야기는 위와 같았다. 츠네노의 이야기로 강의를 할 때도 그렇게 설명했다. 이후에, 필자가 아메리칸 히스토리컬 리뷰에 기고한 2016년 글에서 필자는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한 말을 옮겼지만, 말을 바꾼다는 점은 심층적으로 파헤치지 않았다. 글 후반부에서 필자는 여성이 자기자신을 설명할 때 유혹과 강압에 대해 "문화가 말하는 서사"를 이용할 수도 있다고 썼다. 

그리고나서 2017년이 되자 트위터에 어떤 해시태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수년 전이나 수십년 전에 성추행과 성폭력을 당한 이야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여태껏 아무에게도 이야기를 못 했어요. 진짜로 나한테 일어난 일인가 하고 제 자신을 의심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제 탓을 하기 시작했어요. 내가 그 파티에, 그 방에 가질 말았어야 하는데. 그 사람을 잠깐이나마 믿었다는게 수치스러웠어요. 다른 사람에게는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이야기했어요. 내 동료이자 스승이라고 했죠. 인정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응답했다. #Me Too.

필자는 미투 운동이 일어나는 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여성의 말을 믿어라" 라고 하는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그리고 츠네노를 생각했다. 왜 여태껏 츠네노의 말을 믿지 못 했을까? 

사실 필자가 이 사안을 고려하기까지 해시태그 총공세가 필요한 건 아녔다. 미국사를 연구하는 흑인 학자들은 이미 수십 년 간 역사 서술의 방법론이 백인 남성의 이야기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있다고 주장해왔다. 백인이 하는 말은 자동적으로 신뢰를 얻는 반면, 노예의 회고록은 끊임없이 검토해서 숨은 저의를 잡아내려 한다는 것이다. 샐리 헤밍스와 토마스 제퍼슨(1997)에서, 아넷 고든-리드는 "마치 흑인의 증언은 백인이 하는 증언의 일부에도 못 미친다는 듯이... 흑인의 말을 조직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에 대해 썼다. 츠네노의 이야기를 쓰면서, 필자 본인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여성에 대한 글을 쓰는 페미니스트 여자인 필자가 이 "조직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에 동참할리가 없다는 마냥. 그러나 필자도 마찬가지로 사회적 조건화를 통해 사료를 읽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성적인 일탈을 저지르고, 후회하고, 자기 변명을 지어내는 여성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하나의 문화적 서사다. 내 이야기고, 우리의 이야기다.  

사료에선 읽을 수 없지만 츠네노에 대한 다른 가설도 있었다. 필자는 이것들을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츠네노가 이야기를 바꾼 것은, 강간당한 여성은 대개 자신이 겪은 일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는 게 한 가지 가설이다. 이와 같은 진실은 미투 운동이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또다른 가설은 츠네노의 인생사를 통해 구성된 일련의 근거와 관련 있다. 츠네노는 3번의 정략결혼과 3번의 이혼을 겪었다. 또 결혼당하느니 자신의 손으로 운명을 개척하리고 하였다. (종국에는 다시 결혼을 하였고, 자의라고는 하였지만, 유보적이었다) 츠네노가 남자에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을까? 이성애를 혐오해서 강압당하지 않는 한 성관계를 갖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이는 분명 우리의 주류 문화적 서사는 아니고, 지면을 빌려 이를 고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제2물결 페미니스트들이 말한 "강제적인 이성애(compulsory hetrosexuality)"가 가부장적인 연구방법론 만큼이나 필자의 생각을 결정지었다.


성적인 일탈을 저지르고, 후회하고, 자기 변명을 지어내는 여성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하나의 문화적 서사다. 내 이야기고, 우리의 이야기다. 


우리가 사료에서 찾는 모든 성폭력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할 것이다. 여성은 다양한 이유로 강간당했다고 허위고발을 했다. 남편이나 아버지가 행하는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백인우월주의 질서 아래 놓인 자신들의 취약한 입지를 보호하기 위해서, 혹은 성범죄에 대한 법적 징벌을 피하기 위해서.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담화는 특정한 문화적 법적 여건 하에서 발생했다. 위와 같은 사례의 유형이 보이지 않는 경우에는 우리가 회의주의로 치우치지 않았는지 재검토해야 한다고 필자가 제안하는 바이다. 설령 좋은 뜻에서 나온 회의주의일지라도 말이다. 따지고 보면, 상대적으로 힘 없는 사람들은 너무 자주 외줄타기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라도 거짓말을 할 이유가 거의 항상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이들을 믿을 수 없다는 뜻은 아니고, 우리가 독자를 그렇게 짐작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우리가 그냥 여자의 말을 믿는다면 어떻게 될까? 필자가 츠네노의 말을 믿는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필자가 생각하는 것, 다음 번에 츠네노의 이야기를 언급할 때 필자가 쓸 것은 다음과 같다. 에도로 가던 도중에, 함께하던 일행은 떠나간 뒤, 남에게 빌린 요를 깔고, 혹은 눅눅한 다다미 방에서, 아니면 차가운 땅바닥에, 이불 한 장을 덮은 채, 혹은 나뭇가지가 하늘을 가린 아래서, 조용한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 연희의 음악 속에 묻혀서, 츠네노는 자기 스스로도 정확히 이름붙일 수 없는 아픔을 겪었다. 처음에는 그 이야기를 할 수 조차 없었다. 자신이 자초한 실수라는 생각에 이를 인정하기를 거부했고, 치칸을 한 때 믿었다는 수치심에 휩싸였다. 그녀에게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조차 믿을 수 없었으리라. 따지고 보면, 치칸은 츠네노의 형제들과 마찬가지인 승려의 신분이지 않았는가. 그리고 치칸은 그 나름대로 도움을 주었다. 몇 주가 지나도록 츠네노는 그 일을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어느날 마침내 말할 수 있었다.   

츠네노가 당한 것은 강간이었다. 그녀가 그리 말했다. 그리고 20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츠네노의 말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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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주소: https://www.historians.org/publications-and-directories/perspectives-on-history/november-2018/writing-the-history-of-sexual-assault-in-the-age-of-me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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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진냥 2018/09/30 16:31 # 답글

    과거에는 여성에게 주어진 것도 요구되는 것도, 강간의 정의조차도 달랐죠. 성매매 여성에 대한 강간이 '화대의 절도'로 취급되었던 때가 고대 로마였는지 그리스였는지....
    하지만 과거의 여성들의 기록을 읽어보면 그들도 깜짝 놀랄 만큼 현대 인간과 비슷하게 느끼고 분노하며 괴로워했음을 알게 됩니다. 여성들에 대한 부당한 비난을 비판했던 크리스틴 드 피잔, 첩을 두는 일을 맹비난한 사안의 아내 유씨.
    역사는 과거 인물의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만한 근거를 갖추어야겠지요. 그리고 남중생 님께서 인용하신 글과 같은 맥락에서, 거짓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만한 근거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 남중생 2018/09/30 16:43 #

    세심한 말씀 감사합니다.
    "옛날에는 다 그랬어"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글이라고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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