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전기 공학은 어느 경전에서 나왔을까? 인도차이나 ~Indoc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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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를 통해 근대 세계에서 살아남기 

20세기 초 베트남의 응우옌 조정 입장에서 쓴 글을 읽어보면 당시에도 서양에 대한 정보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그러니 전통 집권층은 바깥 세상에 대해 무지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전통 집권층에 속한 이들 중에는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유럽과 아메리카를 알고 있었고, 근년에 구미에서 일어난 발전상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역경에 대한 1910년 전시(殿試)의 모범답안은 변화를 원치 않은 사람들의 시점을 명백히 보여주는 사례다. 서양 학문과 개혁파 신서 모두가 유교 경전에 이미 기록된 내용을 담고 있을 뿐이라며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팜 꽝 산(Phạm Quang Sán) 같은 응우옌 왕조의 개혁파 조정관료가 직면한 도전과제는 전통 집권층 내부의 보수주의자들이 변화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방안을 찾는 것이었다. 

팜 꽝 산은 책학신선(策學新選)이라는 책에서 문답형식을 통해 이를 해내고자 했는데, 우선 모든 지식의 근간은 고전에 있다며 보수적 집권층의 의견에 동의했다. 또한 서양 학문도 고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보수적 집권층과 동의했다. 그러나 팜 꽝 산은 서양인들은 고전에서 새로운 사상을 발전시킨 반면 아시아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아시아와 서양의 발달 수준 차이를 설명한다는 것이었다.  

팜 꽝 산은 "복고(復古)"할 것을 촉구했다. 이는 옛 경전으로 돌아가서 현재를 살아가는데 고전을 지침으로 삼으라는 것이 아니라, 경전에 처음으로 나타난 개념에서 당시 서양에서 발전한 양상까지 좇아가기를 원한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사회적 다윈주의의 경쟁 세계에서 아시아 사람들이 서양과 승패를 겨룰 수 있을 것(可與泰西爭勝)이라고 팜 꽝 산은 주장했다. 


팜 꽝 산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시했다. 


泰西諸國,電學重學化學礦學光學聲學,與夫天文地理,算法機器,莫不各造其極。其源流有可攷歟。有謂中國為西學之祖,於何可證。自今視之,何以相形見絀,有志新學者,如何而可。

태서(泰西)의 여러 나라는, 전학(電學), 중학(重學), 화학(化學), 광학(磺學), 광학(光學), 성학(聲學)과 더불어 천문과 지리, 산법과 기기를, 각기 그 극한으로 만들지 않은 것이 없다. 그 원류는 궁리할 수 있는 것인가? 중국이 서학(西學)의 원조라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고증할 수 있는가? 지금에 보기에, 어째서 형상이 못나 보이는가, 신학(新學)에 뜻을 둔 자는,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팜 꽝 산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는 4가지 질문을 던진 것이다. 
서양 학문의 원류는 규명할 수 있는가? 중국은 서양 학문의 원조인가? 아시아가 서양에 비해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가? 신학(서양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현 상황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답변에서 팜 꽝 산은 서양 학문의 원류는 분명 규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 예컨대 전학(電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泰西自十八世紀以來,文化驟進,新理日出,幾有各造其極。然有學術之結果,必有學術之造因。談所新學者,不可不溯其遠因也。試原原本本而觀之,美人福蘭課倫騐乾電之理,意人凱烈佛創濕電之說,英人造電灯,美人造電報,電學之功用著矣。而溯其原則始於希臘太利司之摩擦琥珀。

태서는 18세기 이래, 문화가 약진(驟進)하고, 새로운 이론이 나날이 나와, 각기 그 극한으로 만든 것이 여럿 있다. 그러나 학술의 결과가 있으려면, 반드시 학술의 원인(造因)이 있어야 한다. 신학문을 이야기하자면, 멀리있는 그 원인을 거슬러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 

이 근원과 근본을 살펴보자면, 미국인 프랭클린(福蘭課倫)은 건전(乾電)의 이치를 실험했고, 이탈리아인 갈바니(凱烈佛)는 습전(濕電)의 설을 세웠다. 영국인은 전등을 만들었고, 미국인은 전보를 만들었으니, 전학(電學)의 공용(功用)은 뚜렷한 것이다. 그런데 그 근원으로 거슬러올라가보면, 처음에 그리스의 탈레스(太利司)가 호박(琥珀)을 마찰한 것이다. 


서양 학문 여러 분야의 근원을 살핀 뒤, 팜 꽝산은 두번째 질문을 묻는다. 중국은 서양 학문의 원조인가?

1910년 전시의 역경에 대한 시험 답안과 같이, 팜 꽝 산은 서양 학문의 모든 분야는 그 근거를 옛 중국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학(電學)을 예로 들자면, 팜 꽝 산은 기원전 6세기의 관윤자(關尹子)라는 문헌을 인용해 "돌이 맞부딛히면 불에서 빛이 나고, 천둥번개는 연기(緣氣)에서 나온다. 이것으로 전학의 시작을 삼을 수 있지 않은가?"

(石擊火生光,雷電緣氣而生,可以為之,非電學之始乎。)


팜 꽝 산은 나아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凡西人所稱絕學者,無非出於中國經籍之中。所謂東亞為西學之祖,於與可證矣。夫泰西之學,皆發原於亞洲,則亞洲乃孕育文明之祖國也。

무릇 서양인들이 절묘한 학문(絶學)이라 칭하는 것은, 중국 경전(中國經籍) 속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 동아(東亞)를 서학(西學)의 시조라고 함은 여기서 더불어 고증할 수 있다. 무릇 태서(泰西)의 학문은, 모두 아주(亞洲)에서 발원하였으니, 아주야말로 문명을 낳고 기른 조국(祖國)이다. 


세번째 질문으로 넘어가자면, 아시아가 서양에 비해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가? 팜 꽝 산의 주장에 따르면, 아시아가 서양에 비해 뒤쳐진 이유는 비록 아시아는 모든 지식의 산실이지만 서양은 그 지식을 계속해서 개발해나갔기 때문이다.

설명은 다음과 같다.

惟墨守成法,不能推之以盡其精微,有肇造之基礎,而無進取之精神,即人文明矣,而我猶半開,人過渡矣,而我猶停頓。相形見絀,蓋以歐人得其緒,而亞人失其傳也。

"성립된 법칙(成法)만을 고수한 나머지, 이것을 미루어 그 정밀함(精微)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창조(肇造)하는 기초는 있었으나, 진취(進取)하는 정신이 없었으니, 곧 남들이 문명(文明)하는 동안, 우리는 오직 반개(半開)한 것이고, 남들은 뛰어넘었으나, 우리는 여전히 제자리에 머무른 것이다. 형상이 못나 보이는 것은, 대개 유럽인은 그 단서를 얻었으나, 아시아인은 그 전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네번째의 마지막 질문으로 이어진다. 서양 신학문을 장려하고자 하는 학자들은 현 상황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팜 꽝 산은 여기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有志者可不以學術為急務哉。蓋今日之日,乃學術競爭之日也。智與智爭,腦與腦競,非競爭不能以生存。況西人之所謂新學者,實皆我亞洲所固有之國粹。即不必侈言西學也。今[?]曰復古而已。

오늘날로 말할 것 같으면 학술이 경쟁하는 시대다. 지식(智)과 지식이 다투고, 두뇌(腦)와 두뇌가 겨루니, 경쟁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다. 무릇 서양인이 말하는 신학문은, 사실 모두 우리 아주(亞洲) 고유의 국수(國粹)다. 그러니 구태여 서학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이제 복고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문헌이다. 팜 꽝 산의 서양 지식과 서양 학문 이해는 놀라울 만큼 폭넓고 깊으며, 동포들이 그 지식을 수용하고 배우기를 원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선 보수적인 관료들에게 신지식을 수용해도 된다고 설득해야 했고, 결국 팜 꽝 산은 1) 서양학문이 궁극적으로 중국에서 유래했으며 2) 동아시아의 고전에 담긴 내용을 동아시아 사람들은 확장하지 못했으나 서양인들은 해냈기 때문에 베트남인은 서양인이 생산한 지식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야 했다.

여기서도 볼 수 있듯, 20세기 초 응우옌 조정 집권층은 서양에 대해서 몰랐던 것이 아니다. 되려 많이 알고 있었다.

여기서 "문제"는 집권층 내에서 보수적인 편에 속하는 이들이 이미 접한 신지식을 수용해도 된다고 설득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팜 꽝 산이 하려 했던 것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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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포스21 2018/09/15 08:39 # 답글

    어느 사회나... 지식과 권력은 꽤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기득권층 = 지식인 계급이었고 , 심할 경우 상류층 외엔 글자를 모르는 곳도 꽤 있었죠. 그런 지식이 곧 권력과 맞닿은 세상에서 기존의 지식을 버리고 (혹은 버리진 않더라도) 새로운 지식을 익혀야 한다면 당연히 기득권층 = 보수층의 반발을 살수 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결국 베트남역시 근대화에 실패하고 식민지 신세가 되었으며 이후 독립과 근대화 과정에서 과거의 유산인 유교지식 등은 배척 대상이 되었겠죠. 이는 우리나라와 유사하다고 보입니다. 사실 그보다 전에 우리의 고려말 , 조선초에 구고려 기득권층과 맞닿은 불교 가 쇠퇴하고 유교/(성리학) 으로 대체되는 과정과도 비슷한 거 같네요. 새로운 학문과 지식에 의해 구습이 천시되는 것도요.
  • 남중생 2018/09/15 12:03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미권에서는 그런 지식-권력층을 elite라고 하는데, 저는 맥락에 따라 식자층, 집권층으로 번역하고 있었습니다. “기득권층”도 좋은 대안이네요!
  • 迪倫 2018/09/17 12:01 # 답글

    유럽 문명과 접한 근세 동아시아 각나라마다 동일한 '합리화'를 통해 수용을 하기는 했었습니다. 그런데 19세기초반 철종대 천문학자이던 관상감도제 남병철은 그때까지의 천문학을 총집대성한 '추보속해' 서문에서 이렇게 일갈하고 있었습니다.

    ".....만력(萬曆,1573~1619. 명나라 신종의 연호) 연간에 서양 역법이 처음 중국에 들어왔는데 지금은 그 법을 사용하여 시헌력(時憲曆)을 만든다. 중국 선비들이 이에 그 기술에 통하여 전보다 아는 것이 더욱 정밀해지고 말하는 것이 더욱 상세해졌을 뿐만이 아니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던 것을 얻은 것이 매우 많았으며 또한 중국이 본래 가지고 있는 법이지만 통하지 못했던 것을 서양 역법으로 인해 비로소 통하게 된 것도 있었다. 그로 인해 서양 역법이 정밀하고 명확하며 간편하고 수월하기가 중국보다 훨씬 나은 것을 알게 되자 중국 선비들이 그것을 병통으로 여겨 위문괴(魏文魁)ㆍ오명훤(吳明烜)ㆍ양광선(楊光先) 등이 전후로 서양 역법을 헐뜯어 배척하였다. 그러나 헐뜯어 배척한 이유가 모두 망령되고 제멋대로이며 단지 의기(意氣)로만 이기려고 하였던 까닭에 거의 대개 스스로 패하고 말았다. 그러자 총명하고 학식 있는 선비들이 서법을 헐뜯어 배척할 수 없음을 알아 교묘한 수단으로 빼앗는 일이 있었다.....................만약 그 말대로라면 서양 역법은 모두 중국이 이미 가지고 있던 것인데 스승의 가르침이 이미 끊어져 전해지지 않는 것이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의 조상이 아름다운 집이 있었는데 그 자손이 수리하지 못해 무너지게 되어 다른 사람이 그 제도를 따라 짓자 그 자손이 그것을 보고 말하기를 ‘섬돌을 펼쳐 놓은 것, 이는 우리 집안의 법이다.’라고 하고 또 말하기를 ‘기둥으로 버티어 놓은 것, 이는 우리 집안의 법이니 이 역시 우리 집이다.’라고 하며 마침내 빼앗아 거처하는 것과 같으니 천하에 이러한 이치는 없다. 중국의 인사들이 서양 역법에 대해 혹시 이와 가깝지 않은가? 더욱이 이러한 것을 존화양이의 학문으로 삼는 까닭에 지식이 더 나은 것을 볼 적마다 그 폐단이 더욱 심해진다...................하늘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대상(大象 우주)은 고요하고 여러 별들은 벌려 있다. 중국이든 서양이든 따지지 않고 오직 정밀하게 관측하고 교묘하게 계산하는 것이 합당하다. 저 일ㆍ월ㆍ오성이 어찌 인간 세상에 존화양이의 뜻이 있는 것을 알겠는가. 그러므로 서양 역법으로 하면 검증되는 것이 많고 중국 역법으로 하면 검증되지 않는 것이 많은 이런 사실은 원망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다만 하늘의 검증 여부를 논할 뿐 사람의 화이를 논하지 않는 것이 옳다....."

    그러니까 이 책을 사용하던 중인들이 대부분의 양반들보다 세상의 변화에 더 잘 적응할 수 있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나저나 베트남은 정말 잘 모르는 지역과 역사인데 늘 흥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들이 많아 대단히 재미있습니다.
  • 남중생 2018/09/17 13:06 #

    19세기 초반의 글로써는 정말 획기적인 발상을 담고 있네요.@@
    "그러나 헐뜯어 배척한 이유가 모두 망령되고 제멋대로이며 단지 의기로만 이기려고 하였던 까닭"이라는 판단이 특히 현대적입니다. "단지 의기로만 이기려고 하였던" 양광선의 글은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부득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더군요!
  • Fedaykin 2018/09/17 13:48 # 답글

    동남아시아의 위에서부터의 근대화는 태국 정도가 성공한걸로 알고있었고, 태국쪽은 유교보다는 불교 쪽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유교기반의 자생적 근대화가 얼마나 가능한 것인지 사례를 보기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베트남도 (잊고있었지만 당연하게도) 내부적인 고민이 치열했군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감사합니다.
  • 남중생 2018/09/17 14:02 #

    불교 기반의 근대화 고민이라...!! 비록 식민지 근대성이지만 버마의 사례도 조만간 소개드리고 싶습니다.
    (저 혼자서 바쁘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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