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그리스 로마 및 이슬람 세계에서는 어떻게 열을 조절했나? Recipes Project: 사후약방문

제가 즐겨 읽는 레시피 프로젝트(Recipes Project) 합동 블로그에서는 이번 여름 들어 "열기(heat)"를 주제로 한 연재를 하고 있습니다. 전부 소개하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연재의 첫 게시물을 번역해봅니다.

레시피 프로젝트 블로그는 전에 "뇌피셜과 갈리아 전기"를 통해 소개드린 적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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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및 이슬람 세계의 의학에서는 어떻게 열을 조절했나?

에일린 R. 다스 (Aileen R. Das)

생기를 불어넣는 원리와 연관지어지거나 동일시 된 열(熱)은 고대 그리스와 이후 로마 및 중세 이슬람 세계의 인체 이론과 관리법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의학 문헌을 통해, 고대 의사들이 인체 생리를 이해한 방식은 세계를 구성하는 원소에 대한 철학적 사고에서 크게 영향받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주에서 불이 주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 최초의 자연 철학자는 헤라클레이토스(기원전 500년 경 활동)인 것으로 보인다. 헤라클레이토스에 따르면 모든 것은 불에서 유래해서 다양한 변화를 겪은 뒤 우리 주변에 보이는 물질들이 된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글은 현재 산재되어 있는데 의학이나 생물학에 관련된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그러나 후대의 엠페도클레스(기원전 495-435)와 같은 "소크라테스 이전 학자들"(헤라클레이투스를 포함해, 소크라테스 이전이나 동시대에 활동한 사상가를 일컫는 현대 용어)은 불이라는 원소가 어떻게 몸에 작용하는지를 설명했다. 의사 겸 철학자였던 엠페도클레스는 흙, 물, 불, 공기가 우주를 구성한다는 4원소설의 창시자다. 엠페도클레스는 열이 성별을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엠페도클레스가 지은 철학시 "자연에 대하여(Περὶ Φύσεως)"에서는 "자궁의 따뜻한 부분에서는 남자가 태어나며, 그래서 남자가 더 색이 짙고, 남성적이며, 털이 난 것이다"(fr. 67)라고 말한다.  


히포크라테스 전집을 쓴 이들은 체내의 열이 성장과 소화 등 몸의 기초 작용을 유지한다는 관념 하에 몇몇 치료법을 개발했다. 열의 강도는 성별에 따라 (남성이 여성 보다 따뜻하다는 식으로) 다르기도 했지만 사람 마다 다르기도 했다. 그러므로, 치료 방향을 정할  때, 의사는 환자에게 자연적으로 있는 열을 지나치게 늘리거나 줄이지 않도록 해야 했다. 히포크라테스 요법은 주로 식이요법이었는데, 히포크라테스 전통을 따르는 의사들은 몸 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여러 성질(차고, 덥고, 마르고, 습하고, 등등)을 음식에 붙였다. 예컨대 히포크라테스 문헌군에 속하는 "식이요법 II"에서는 속쓰림을 막고 잠에 들기 위해선 '뜨겁고 쏘는 맛이 있다'고 묘사한 고수풀을 먹는 것을 추천한다. 

히포크라테스 전통의 작가들 중 음식물과 기타 자연 물질의 힘에 대한 대이론을 제공한 이는 없다. 이후 수 세기 뒤, 갈레노스(217년 경 사망)[1]라는 의사가 히포크라테스 전통과 더 이전의 철학, 고대 약학 문헌에 착안해 동물, 식물, 광물 물질의 성질에 등급을 매기는 체계를 만들었다. 고대(뿐만 아니라 중세)세계에서 음식과는 다른 약물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간하는 기준이 모호했기 때문에, 갈레노스는 식이요법 저술과 약학 저술 모두에 이 이론을 적용했다. 101가지 약재를 기록한 "단일 약재의 힘과 혼합에 대하여(De Simp. Medicament. Facultatibus)"는 가장 포괄적인 저서에 해당한다. 이 문헌에 따르면 모든 물질에는 동적인 (뜨겁고 차가운) 성질과 정적인 (마르고 습한) 성질이 4단계의 강도로 혼합되어있다. 예컨대, 지중해에 자라는 순결나무(vitex agnus-castus) 항목에서 갈레노스는 이 식물의 씨앗이 3단계로 뜨겁고 건조하다고 적는다. 의사는 약물의 성질과 강도를 확인한 뒤, 환자의 체내 불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적절한 요법을 고를 수 있다. 순결나무의 힘을 따지자면, 갈레노스는 순결나무 씨앗을 위 속의 바람을 해소하고 자궁통을 완화하는데 쓸 것을 추천하지만, 너무 뜨거운 나머지 두통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의를 준다. 그러니 이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 순결나무 씨앗은 설탕 절임이나 기타 후식과 함께 섭취하라고 조언한다. 

▲순결나무

자연 약물의 능력에 대한 갈레노스의 이론은 고대와 중세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후대 의학자들은 갈레노스가 복합 약물의 재료 비율을 정확히 계산하는 법을 설명하지 못한 점을 보완하고자 하였다. 아부 야꿉 이븐 이스하끄 알킨디(801-866년 경)는 비록 의사는 아니었지만, 그리스 의학 문헌의 아랍어 번역을 후원했으며, 복잡한 산술 이론을 개발함으로써 예컨대 서로 다른 수준으로 뜨거운 약재를 혼합한 약물의 힘을 수량화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한 물질의 강도는 2의 제곱에 비례해 증가한다. 그러므로, 뜨거운 부분과 차가운 부분이 동일하게 함유된 '미지근한' 약재를 섭취하려는데 뜨거운 부분을 두 배로 늘린다면, 그 약은 1도의 뜨거운 성질을 띨 것이다. 뜨거운 부분을 4배로 늘린다면 약은 2도의 뜨거운 성질을 띨 것이다. 약을 처방하는 사람은 이 비율을 염두에 두고, 혼합약물에 들어가는 약재의 무게를 재서 원하는 강도를 낼 수 있다. 갈레노스의 약학에서 허점을 보완한 알킨디의 해답은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12세기에 라틴어 번역을 통해 이를 접한 유럽의 의사들 사이에서도 유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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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갈레노스에 대해서는 mori님의 글들을 참조!

"여자는 남자보다 불완전한데 그 중요한 원인은 바로 하나 여자는 더 차갑기 때문이다. 동물들 중에서도 더 따뜻한 것들이 더 활동적이고, 더 차가운 동물은 더 따뜻한 동물보다 열등하다. 두번째 원인은 해부할 때 보인다. 이 문제야말로 내가 방금 암시한 것인데 내가 설명하기는 어렵겠지만 지금 기회가 마침 되었으므로 나는 기록해야만 하며 지금 읽고 있는 당신은 내가 지금 설명하는 것들을 직접 보지 않은 이상 이 글에 대한 판단을 함부로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 신체 기관들을 보았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서 생략된 것을 덧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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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웃긴 늑대개 2018/09/10 09:27 # 답글

    근거없는 온갖 망상을 붙여서 의술인양... ㅎㅎ
    뭐... 그 시대의 한계였겠죠.
  • 남중생 2018/09/11 10:21 #

    책에서 책이, 이론에서 이론이 나온다는 점에서 일종의 2차창작/동인지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ㅎㅎ
  • Fedaykin 2018/09/10 15:28 # 답글

    엥 이거 완전 동의보감 아니냐...?
    진정한 양의학(근대의학)의 역사...는 과연 언제부터인가 하는 주제도 상당히 재미있겠네요.
  • 남중생 2018/09/11 10:14 #

    그렇습니다! 사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어느 시점부터 돌을 안 먹었나”하는게 하나의 궁금증입니다.
    금속이나 광물을 먹는게 몸에 좋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한 시대가 있고, 안 그런 시대가 있는데 그 분기가 궁금해요.
  • 나인테일 2018/09/10 17:59 # 답글

    일단 효과 있는 풀뿌리와 요법이 먼저 존재하고 거기서 효과가 있는 이유는 적당히 갖다붙이는건 동서양 고대의학의 공통점이군요.
  • 남중생 2018/09/11 10:16 #

    네, 저도 아마 저런 논리정연(?)한 이론 이전에 “먹었더니 효과있는 풀”이 먼저 있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 Barde 2018/09/11 13:24 # 답글

    으으... 보기만 해도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에는 최선이었겠죠.
  • 남중생 2018/09/11 13:38 #

    어느 정도는 검증된 효험에 이론을 덧씌웠을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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