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아무도 말하지 않는 주체적 근대화 이야기 [과거시험과 근대화]

Liam Kelley 교수님의 The Untold Story of the Self-Modernization of Vietnam's Traditional Elites를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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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말하지 않는 베트남 전통 식자층의 주체적 근대화 이야기

지난 글에서는 응우옌 조정 관료이자 개혁파 학자 팜 꽝 산이 1909년에 과거 시험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사상을 소개하고자 출판한 책을 소개했다. 

이 책에 담긴 질문과 답안은 굉장히 새로운 주제를 다뤘지만, 전통적인 사상과 유형을 따르는 시늉이라도 한 질문과 답안도 있었다. 

당시 과거 시험은 유교 경전에 기반한 문제를 출제했고, 대개 역경을 제일 먼저 출제했다. 과거 글에서 필자는 1910년 과거 시험에 출제된 역경에 대한 질문과 같은 해 출간된 그 질문에 대한 모범 답안을 논했다.  

그 질문과 답안은 지극히 보수적이었는데, 서양 지식과 양계초 같은 아시아 개혁파 학자의 사상을 모두 거부했고, 대신 세상 모든 지식은 궁극적으로 역경에서 찾을 수 있다(혹은 역경을 통해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1909년에 팜 꽝 산이 출간한 책학신선(策學新選)에서는, 다음과 같은 역경에 대한 질문이 담겨있었다.

易之要何所在歟。有謂一卦有一卦之時,一爻有一爻之時,何得聞歟。今之時何時乎。歐治風俗,學術技藝,當如何改良以合隨時之義。

역경의 요점은 어디에 있는가? 한 괘(卦)는 그 괘의 때(時)가 있으며, 하나의 효(爻)는 그 효의 때가 있다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지금의 때는 어느 때인가? 유럽이 풍속과 학술과 기예를 다스림에, 마땅히 어떻게 때에 따르는 뜻(隨時之義)에 맞춰 개량하겠는가?

팜 꽝 산은 자문자답하면서 송대 성리학자 정이(程頤)를 인용했다. "역(易)은 번역(變易)이다. 도(道)를 따름으로써 때에 따라 변역하는 것이다." (易,變易也,隨時變易以從道也。)

그렇다면 팜 꽝 산이 당시의 때에 따른다고 여겼던 변화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다른 것 중에서도 그는 "천여년의 전제독재(專制獨裁)가 마땅히 바뀌어 공화(共和)의 정체(政體)가 되어야 한다"고 느꼈다. (千餘年之專制獨裁,當易之為共和之政體。)


또다시, 질문은 역경 속의 개념에 대해 물음으로써 "전통적인" 유형을 따르는 시늉을 하고 있지만 결국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어쩌면 이것이 1910년 시험이 그토록 보수적이었던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베트남에서 1907년에서 1909년 사이의 기간은 역동적인 시기였는데, 개혁가들은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교육 방식을 도입하고자 했고, 농민은 가혹한 세금에 항의했다. 

흔히 프랑스인들이 이와 같은 현상을 억누르고자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1910년 전시(殿試)를 보면 응우옌 조정 집권층에서도 모든 사람은 아니더라도 변화를 저지하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결국 그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는데, 마지막 과거시험이 1919년에 치뤄졌을 때 계정제(啓定帝, 제위 1916-1925)는 개혁 사상가이자 응우옌 조정 관료인 팜 꽝 산이 10년 전에 제기했던 것과 동일한 주제로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정제는 역경이나 그 어떤 유교 경전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질문했다. 어찌 된 일인지 1919년에 들어서는 응우옌 황제에게조차 유교경전이 무의미해진 것이다.


계정제의 질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制策曰,環球列國動曰文明。文明二字出自何書。關於人倫國政世道民風旨盡包矣。求諸亞東,中之唐虞以及清滿,我之丁朝迄于後黎,揖遜戰爭興衰分合一一可考。語其變遷沿革,莫非氣數使然。究中治亂紛紛世代不一文明乎。有謂帝國專制籠罩其民,果磪輪否。然則亞東幾千年之帝國政策意者文明誤點歟。

지구를 둘러싼 여러 나라는 걸핏하면 문명을 말한다. 문명(文明)이라는 두 글자는 어느 책에서 나왔는가? 문명은 인륜(人倫), 국정(國政), 세도(世道), 민풍(民風)과 연관하여 모든 것을 아우른다. 이것을 동아(東亞)에서 찾아보면, 중국의 요순(唐虞)에서 만주족의 청나라(淸滿)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정조(丁朝)부터 후려(後黎)까지, 퇴위(揖遜), 전쟁, 흥망성쇠(興衰), 분열과 통합(分合) 하나하나 고증할 수 있다. 그 변천 연혁을 말하면, 운명(氣數)의 작용대로 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중국이 여러 세대에 걸쳐 난리를 다스린 것을 궁리하건대, 하나의 문명이 아닌가? 제국 전제는 그 백성을 옭죄인다는 말이 있는데, 과연 확론(確論)인가? 아닌가? 그렇다면 동아 수천년의 제국 정책의 뜻은 문명에 있어 틀린 점인가? 


이 질문(실제로 질문은 훨씬 더 길고, 도입부만 옮겼다)에서, 계정제는 아시아 전제정치의 오랜 역사를 궁리했다. 그리고 (이론적으로) 전제 군주였던 계정제는 "문명"의 시대에 전제 군주제라는 체제가 생존해나갈 수 있을지 알고자 했다. 심지어 질문 후반부에서는 헌법을 제정하는 것이 적절한지 묻는다.

팜 꽝 산이 위와 같은 사안을 제기한지 10년 뒤, 응우옌 황제도 같은 생각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1) 1909년 팜 꽝 산이 과거 시험 응시자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기울인 급진적 노력과 2) 지극히 보수적인 1910년 과거시험 질문과 답안과 3) 1919년 계정제의 완전히 "근대적인" 질문을 비교한다면, 1909년과 1919년 사이에 베트남의 "전통적" 식자층 내부에서 대대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 분명해진다고 생각한다. 

베트남 보수주의의 심장부에 위치했던 사람들이 근대화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을 혁명가나 프랑스 학교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냈다. 

왜 아무도 이 이야기를 여태껏 하지 않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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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켈리 교수님의 이전 포스팅 참조. 

둘째, 고전 한문을 배우고 (1919년까지 이어진) 과거 시험을 위해 공부한 "구세계'의 사람들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당시 베트남의 식자층이었다. 분명 중요한 역할을 했을텐데, 그 역할은 무엇이며 왜 역사가들은 이에 대해 쓰지 않은 걸까? 

마지막 질문부터 답하자면, 역사학자들이 이에 대해 글을 쓰지 않은 이유는 20세기 초 식자층에 속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고전 한문으로 글을 썼기 때문이다. 고전 한문은 현대 베트남에서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읽지 못한다. 그리고 그 결과, 그 식자층 사람들이 남긴 역사적 기록은 대체로 읽지 않은 채 방치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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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진냥 2018/09/09 18:43 # 답글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소위 '근대화'한다고 선전한 것치고는 1910년까지도 베트남에서 전통적인 과거제가 실시되고 있었고, 또한 그 내용이 전통을 넘어서 새로운 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베트남의 독특한 '근대성'이 태어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사실 동남아시아 역사를 몹시 꺼리지마뉴ㅠ(문화 측면에서는 좋아하지만 역사학자들의 무덤...:Q 업계인으로서 도무지 맥락을 잡을 수 없어요...) 남중생님께서 소개해주신 덕분으로 조금씩 이해를 넓혀가는 것 같네요!
  • 남중생 2018/10/21 22:29 #

    네, 베트남이 중국이나 조선, 유구보다 더 늦게까지 과거제를 유지했죠.
    흔히 베트남은 (그리고 동남아시아에는) 유교가 강하게 자리잡지 못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과연 그런가 생각하게 됩니다.

    한편 저도 동남아시아사가 상당히 마이너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역사학자의 무덤이라고까지 불리는 줄을 몰랐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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