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애국을 글로 배웠습니다만... 어떤 '글'로 배웠을까? [과거시험과 근대화]

Liam Kelley 교수님의 The True Vietnamese Revolutionaries를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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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진정한 혁명가는 누구인가?

필자는 오랫동안 19세기 말 20세기 초 베트남의 역사를 다룬 일반 서사를 문제삼아 왔다. 역사책을 읽어보면 매번 응우옌 왕조는 프랑스 세력에 대처하는데 실패했고, 그 결과 전통적인 베트남과 고전 한문의 "구세계"는 사멸하고 판 보이 쩌우(Phan Bội Châu) 등의 개혁가와 혁명가가 무대를 차지했다고 한다. 이는 1907년 꾸옥 응우(國語)로 쓴 구어체 베트남어 사용을 장려하는 동경의숙(東京義塾)의 설립으로 이어졌으며, 그리고... 그게 결말이다. 개혁과 혁명의 길은 모두 1945년의 독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서사의 문제는 뭘까? 우선 판 보이 쩌우는 20세기 초 베트남에서 아주 적은 시간을 보냈고, 그의 글은 당시 출간되지 않았다. 그러니 어떻게 그가 영향을 미칠 수 있었겠는가?

둘째, 고전 한문을 배우고 (1919년까지 이어진) 과거 시험을 위해 공부한 "구세계'의 사람들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당시 베트남의 식자층이었다. 분명 중요한 역할을 했을텐데, 그 역할은 무엇이며 왜 역사가들은 이에 대해 쓰지 않은 걸까? 

마지막 질문부터 답하자면, 역사학자들이 이에 대해 글을 쓰지 않은 이유는 20세기 초 식자층에 속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고전 한문으로 글을 썼기 때문이다. 고전 한문은 현대 베트남에서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읽지 못한다. 그리고 그 결과, 그 식자층 사람들이 남긴 역사적 기록은 대체로 읽지 않은 채 방치되어있다. 

20세기 초 베트남에서 "전통적 교육을 받은" 식자층의 역할을 보자면, 필자는 이들이 근대 베트남의 진정한 혁명가들이라고 주장하고 싶은데, 이들이야말로 베트남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판 보이 쩌우 같은 사람들이 망명중일 때, 이 사람들은 열심히 베트남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여기에 속한 대표 사례는 팜 꽝 산(Phạm Quang Sán)이라는 사람이다. 1874년에 태어난 팜 꽝 산은 1900년에 향시(鄕試)에 붙은 뒤, 20년간 응우옌 조정 관료로서 북부 베트남 지역의 여러 직권과 직위을 맡았다. 

20세기 초, 팜 꽝 산은 서양과 서양 지식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더욱이 팜 꽝 산은 신지식을 소개하는 소책자를 만들어 베트남 식자층과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였다. 

1908년 팜 꽝 산은 유학보통설약(幼學普通說約)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팜 꽝 산은 유학보통설약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今當學界一新之日,而民間講習,猶多株守舊套。蓋以我國千餘年來,漢文傳習久已,印於國民之腦中,而國語新學汗漫難通,進化之阻力,實根於此。

지금 세계가 일신(一新)하는 날을 맞았으나, 민간에서 강습(講習)하는 바는, 여전히 많이 수구(守舊)의 버릇에 매여있다. 대개 우리나라가 천여년이 되었고, 한문이 전습(傳習)된지 이미 오래되어, 국민의 뇌리에 새겨졌으니, 국어(國語)로 신학(新學)하는 것은 어려움이 많고 통하기 힘들다. 진화(進化)를 저해하는 힘은, 실로 여기에 뿌리를 둔 것이다.  


다시 말해, 팜 꽝 산이 하려던 말은 꾸옥 응우(國語)라는 새 문자를 사용함으로써 신지식이 보급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꾸옥 응우를 읽지 못했고, 여전히 고전 한문을 공부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팜 꽝 산은 어떻게 했을까? 그는 원래 꾸옹 응우로 쓰인 책인 유학국어신서(幼學國語新書)를 고전 한문으로 번역하고 자신 만의 주석을 달아 꾸옥 응우를 못 읽는 사람도 신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했다. 

유학국어신서에는 어떤 지식이 담겨 있었을까? 민족주의 같은 새로운 사상이 있었다. 예컨대 유교의 "오륜"(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을 말한 뒤, 유학국어신서는 "친족사회는, 모두 우리 동포이니, 무리지어 애국한다"라고 말한다. 

(親族社會,皆吾同胞,合群愛國。)

이건 근대적 민족주의 사상인데, 20세기 이전까지는 베트남에서 이런 사상이 발현되지 않았다. 이제 이러한 개념은 팜 꽝 산이 유학보통설약을 출판할 무렵의 한문과 마찬가지로"사람들의 뇌리에 새겨"된 것이다. 


1년이 지난 1909년, 응우옌 조정 관료들이 유학한자신서(幼學漢字新書)라는 또다른 책을 출간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베트남 역사의 서사는 꾸옥 응우를 사용하기 시작한 개혁파의 등장을 이야기하지만, 당시 식자층의 언어는 여전히 고전 한문이었기 때문에 신서(新書)[1]를 고전 한문으로 번역하는 조정 관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팜 꽝 산 같은 관료들이 이런 일을 하는 동안 판 보이 쩌우 등의 "민족 영웅"들은 베트남에서 멀리 망명한 채로 베트남 사회를 바꾸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만한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혁명가 칭호를 붙이자면, 누가 진정한 혁명가였는가? 판 보이 쩌우는 "혁명적" 일생의 대부분을 베트남 밖에서 베트남 사회와 단절된 채 보냈다. 반면 팜 꽝 산은 베트남에 민족주의 사상을 도입하려고 노력했다. 

팜 꽝 산처럼 베트남 "현지"에 있던 조정 관료들은 베트남 식자층을 변화시키는데 가장 효율적인 수단인 고전 한문을 써서 노력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이들은 혁명가라고 여기지 않는 것일까?

팜 꽝 산의 "유학보통설약"을 읽고 "애국"을 배운 사람들 중 판 보이 쩌우의 미출간 원고를 읽은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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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서가 언급된 바 있는 이전 포스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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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미진진한 인물이다. 1908년 팜 꽝 산은 베트남어로 쓰였던 개혁사상을 고전한문으로 번역해서 고전한문만 아는 사람들도 그 내용을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유학보통설약(幼學普通說約)이라는 책이다. 1909년에는 개혁파 버전 과거 문제를 작성해서 과거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서양학문을 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책학신선(策學新選)이라는 ... more

  • 남중생 : 아무도 말하지 않는 주체적 근대화 이야기 2018-10-21 22:32:37 #

    ... ===============================================================P.S.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켈리 교수님의 이전 포스팅 참조. 둘째, 고전 한문을 배우고 (1919년까지 이어진) 과거 시험을 위해 공부한 "구세계'의 사람들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 more

덧글

  • 바람불어 2018/09/06 13:36 # 답글

    유학보통설약 편집대의가 얼핏보면 훈민정음해례본 서문과 비슷하다 했는데 사실 완전 다르군요. 저기서 국어라는건 해례본의 국지어음같은 자기고유어가 아니라 알파벳 베트남글자란 얘기. 왜 글자를 국'어'라고 써서 정착한건지 몰겠군요.

    즉 당시 좀 낯선 알파벳 베트남 글자로는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고 전파하기엔 부족하다 생각한 당시의 (유)학자들이 전통적인 고전한문으로 새로운 (민족자강류의) 사상 '번역'전파에 힘썼단 뜻인듯한데 '국어'의 당시 위치가 묘하네요. '우리 베트남의 글자'라기보다는 좀 부족하고 낯선 새로운 글자, 발음기호 취급을 받았나봅니다?
  • 남중생 2018/09/06 11:39 #

    언어는 베트남 고유의 언어이되, 표기하는 글자는 알파벳이라는 것입니다.

    "관화" 포스팅에서도 나왔지만, 당시 보수적인 지식인들은 소리만 표기하는 것에 회의를 느꼈지요. 이들은 "25모자"라는 애매한 표현을 쓰면서, 우리 글도 아니지만 서양 오랑캐의 것이라고 배척할 수도 없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죠. 식민지 및 보호령으로 전락한 20세기 초 베트남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런 점에서 (표음문자고, 서양 알파벳이지만) 문언일치가 된 텍스트로 "신학문"을 할 수 있고, 그것이 곧 "국어"다, 라고 담대히 주장한 팜 꽝 산은 혁신적인 축에 속하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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