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부(富)와 강(强), 맹자와 1910년의 베트남 [과거시험과 근대화]

Liam Kelley 교수님의 Wealth and Power, Mencius and 1910 Vietnam을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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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富)와 강(强), 맹자와 1910년의 베트남 


19세기에 들어 중국이 서구열강의 기술적 진보를 따라잡아야 한다고 느낀 중국 학자들이 있었다. 이는 "부강(富强)"의 필요성이라고 일컬어졌다. 

한편 중국 학자들이 원치 않았던 것은 서양의 사상이었는데, 중국 사상에 비해 열등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지난 포스팅 두 개에서 필자는 1910년 베트남의 과거시험 질문과 "모범 답안"을 번역했다. 그 해 시험에 출제된 문제 대부분은 [유교] 경전에 나오는 문제를 다룰 것을 수험생에게 요구했다. 

맹자를 다룬 문제도 하나 있었는데, 이 문제는 동시에 "부강함"의 필요성이라는 주제를 논했다.


문제는 다음과 같다.

戰國之世,時侯專事富强,孟賢卻言仁義,當辰指為迂闊空言,先儒謂其救時急務。折衷而論,二說何如。夫古今有異,風會何常,論治者欲尚仁義捨富强,時指之宜乎否也。


전국 시대에는 당시 제후들이 오로지 부강함(富强)만을 섬겼다. 성현 맹자는 오히려 인의(仁義)를 말했다. 당시에는 이것을 가리켜 물정에 어둡고 공허한 말이라고 하였는데, 선유(先儒)는 그것을 말함으로써 시대의 급무를 구하고자 한 것이다. 절충하여 논하자면, 두가지 설이 어떠한가? 무릇 고금은 다름이 있으니, 기회(風會)가 어찌 일정하겠는가? 다스림을 논하는 자로서 인의를 살피고 부강을 버리고자 한다면, 시대는 이를 가리켜 시의에 맞다고 할 것인가? 아닌가? 


답안은 다음과 같다.

戰國之時,爭城用地,時侯尚富强,制產明倫。孟子卻言仁義,然言仁義而不外農桑教養等實事,未嘗偏捨富强也。時侯不察而指為迂闊空言,後儒謂時侯急於富强,而孟子專說仁義,為救時之急務。折衷而論之,二說不足以知孟子也。

전국 시대에는 다투어 성을 짓는데 땅을 썼고, 당시 제후들이 부강함 만을 살폈습니다.명륜(明倫)을 만들었습니다.[1] 맹자는 오히려 인의를 말했으나, 인의를 말한 것은 농사짓고 누에치고 가르치고 기르는 등의 실사(實事) 바깥의 것이 아니었고, 부강을 버리는 쪽으로 치우친 적이 없었습니다. 당시 제후들은 살피지 않고 이를 가리켜 물정에 어둡고 공허한 말이라고 하였으나, 후유(後儒)는 말하길 당시 제후들은 부강함에 급급했으나, 맹자는 인의를 전해 말하였으니, 시대를 구하기 위한 급무였다고 합니다. 절충해서 이를 논하자면, 두가지 설 모두 맹자를 알기에는 부족합니다. 

夫古今有異,風會何常,而所以致治之道則一。當競爭劇烈之時,非仁義不足以保和平,亦非富强不足以爭優勝。觀歐美以救世同胞為主義,而籌款支消之冊,常川豫備之兵,未嘗不以爲國家之要權。居今論治,欲尚仁義而捨富强,豈時指之宜然哉。

무릇 고금은 다름이 있으니, 기회가 어찌 일정하겠습니까? 그러나 다스림에 이르는 도는 오직 하나입니다. 당시 경쟁이 극렬한 시대에 인의가 아니라면 화평을 지키기에 부족했습니다. 또한 부강이 아니라면 싸움에서 우승하기에 부족했습니다. 

구미(歐美)를 보건대 구세동포(救世同胞)[2]로 주의를 삼고, 도관지소(籌款支消)의 책[3]과 상천예비(常川豫備)의 병사는 모두, 국가를 위하는 요점(要權)이 아닌 적이 없습니다. 지금에 있어 다스림을 논하는데, 인의를 살피고자 하고 부강을 버리는 것은, 어찌 시의에 맞는 것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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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맥 상, 부강에만 집중한 제후들이 명륜을 만들었다는 것은 의아하다. 하지만 이 구절은 맹자를 언급하기에 앞서 나온다. 켈리 교수님의 번역에서는 이 구절이 생략되어 있다. 
[2] 기독교와 민족주의?
[3] 회계장부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것은 흥미진진한 질문과 답변이다. 질문은 "양중택일"을 하라고 묻지만, 주어진 정답은 "절충안"이지만 한 쪽에 보다 비중을 두고 있다. 

인의나 부강 어느 것도 현시대에 충분치 못하다.... 하지만 분명 부강함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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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말초 2018/09/04 08:28 # 답글

    맹자, 유교에 대한 큰 오해가 몇가지 있는데 (심지어 같은 유학자들도 곡해함 =3=)

    맹자는 가난함을 미화한 적이 없습니다 =3= 군주가 사치를 즐기면 즐기되 백성들도 사치할 수 있도록 나라를 키우라는 쪽이었고。그리고 공자가 잠깐 노나라에서 권력을 잡은 적이 있었는데 분배를 중요하게 여겼고 백성들을 넉넉하게 만들면 교육과 국방이 강화된다고 믿었습니다 =3=

    유교가 경제를 경시한다고 알려졌지만 정확히는 해양이나 상인 세력이 외국과의 무역, 토지 독점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해 국가 권력에 도전하는 상태를 경계했다는게 더 맞는 거 같고.. 이건 일본이나 유럽에도 충분히 관찰할 수 있는데 일본과 유럽은 상업 세력이 성장해서 대혁명, 명치유신을 일으켰지만 한국, 중국은 그렇지 못했다는 거죠 =3=

    그 차이가 무엇인고 하면.. 일본이나 유럽은 중앙에 강력한 권력이 부재해서 반(反) 국가 세력이 국가 권력의 눈을 피해 세력을 축적할 수 있었는데 한국이나 중국은 전통적으로 국가 행정이 발달해서 중앙에 강력한 권력이 있고, 지방까지 어명이 닿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가령 유럽에 맑스, 루터처럼, 기존 체제를 엎을 사상을 가진 인물도 여기저기 망명하면서 목숨을 부지했고 결국 자신의 사상을 글로 남겨 불씨를 남기는데 성공했지만。한반도나 중국이라면 바로 잡혀서 죽었을거란 얘깁니다 =3=
  • 남중생 2018/09/04 08:48 #

    맹자를 이해하기엔 두가지 설 모두가 부족하다는 결론이니, 한가지 설만 취해선 안 되겠죠.
    다만 동서양 행정력의 차이에서 원인을 찾기엔 동아시아에 기독교가 너무 수월하게 전파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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