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20세기 초 베트남에서 만들고자 한 관화(官話) [과거시험과 근대화]

Liam Kelley 교수님의 The Idea for a Mandarin Language in Early-20th-Century Vietnam을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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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베트남에서 만들고자 한 관화

과거 시험이 베트남 역사에서 지극히 중요한 제도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베트남의 과거제를 주제로 삼은 심도있는 연구는 여태껏 없다. 과거제라는 제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버거운 과제인 만큼, 이 난제에 도전한 학자들이 많지 않은 것도 이해할 만 하다. 

최근 필자는 19세기에서 20세기 초, 과거 시험과 "모범 답안"이 담겨있는 문헌을 살펴보았다. 회정문선[會庭文選]이라는 이름의 이 문헌은 장래의 수험생들을 위한 참고서로 쓰이는 용도였다.


1910년도 회정문선을 보면, 언어와 문자를 주제로 한 몹시 흥미로운 질문과 "모범 답안"을 찾아볼 수 있다. 1910년 경 베트남에는 꾸옥 응우라는 베트남어를 표기하기 위한 라틴 알파벳 기반의 문자체계를 배우도록 장려하는 개혁파 지식인들이 있었다. 이 시험의 질문과 "모범 답안"은 꾸옥 응우의 사용을 지지하지 않았고, 고전 한문을 계속 사용하는 것을 지지하지도 않았다. 대신, 베트남의 관화(官話)를 발명할 것을 촉구했다. 

질문은 다음과 같다. 

我國文字,兆自何代。士王教民漢字盛行。不知開教之始,如何而能引我人入知曉路,可思想而得之乎。舊國音之字,假借隨心,未為盡善。今代以二十五母字,反切無差。但文士秉筆橫書,方言各別,此欲南北聲音,交相通曉,亦有方法其乎。


우리나라에서 문자는 어느 시절부터 나왔는가? 사왕(士王)[1]이 백성을 가르치니, 한자가 성행하였다. 비로소 가르침을 열었을 때, 어떻게 우리 사람을 깨우침의 길로 이끌었을지 알 수가 없다. 이는 생각으로 알 수 있는 것인가? 옛 국음(國音)의 글자는, 마음대로 빌려 쓴 것이니, 최선이라고 할 수 없다. 요즘 시대에 쓰는 25모자(母字)는 반절(反切)[2]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문사(文士)가 붓을 집어 글씨를 쓰면, 방언이 각기 다르다. 이로써 남과 북의 소리를 서로 통하고 밝히기를 원하니, 또 방법이 있겠는가?


이것은 흥미진진한 문제다. 질문의 요점은 "어떻게 하면 한 민족에게 새로운 언어를 가르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꾸옥 응우(역주: 알파벳을 쓰는 베트남어 표기법)는 이것을 하기에 녹록하지 못하다고 여겨졌다. 왜냐하면 베트남어에는 통일된 "발음"이 없었는데 꾸옥 응우는 반절과 마찬가지로 발음 만을 표기했기 때문이다. 통일된 발음 대신, 다른 지방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방언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베트남어를 서로 알아들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모범 답안"은 일종의 "관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답안을 쓴 사람은 이 관화에 한자를 쓰되 특정 베트남어 발음과 단어를 각 한자에 연결시키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답안 전문은 아래와 같다. 질문에 답함에 있어 답변자는 질문에 나온 표현에서 많은 부분을 그대로 반복할 것을 요구받은 한편, 변형하기도 해야 했다. 필자가 답변을 번역한 방식에서 이 점이 명백히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且一國各有一國的文字。我國當未學漢子之時,當有文字。觀於上游夷獠,猶有其文字可見,但載籍不詳,難於考時代耳。自士王以詩書教民,而漢字盛行。當初必有一二人諳曉漢土兩音,以互相傳播,或因事指示,因物認真,如近時人之學法語也,所以能引我人入知曉路,可思想而得之矣。


일찍이 한 나라에는 각기 한 나라의 문자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아직 한자가 당도하지 않았을 시절에 마땅히 문자가 있었을 것입니다. 강 상류의 오랑캐 노자(夷)[3]를 보면, 또한 그 문자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이 상세하지 않아, 시대를 고증하기 어려울 따름입니다. 

사왕이 시서로 교민을 가르칠 때부터 비로소 한자가 성행했습니다. 당초에 한음(漢音)과 토음(土音) 양쪽 모두에 통달한 사람 하나 둘이 반드시 있었을 것이니, 이로써 서로 전파하고, 혹은 이로 인해 일을 가리켜 보이고, 이로 인해 물건을 참으로 인식했습니다. 근래의 사람들이 프랑스어(法語)를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 사람을 깨우침의 길로 이끌 수 있었고, 이는 생각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舊國音之字,假借漢文,隨心運用,如上天下上為天,上王下布為王之類,未為盡善。今代以二十五母字,本西字以爲之也,反切無復差矣。但文士秉筆橫書  帝京兩直,音話不通,西貢北圻,方言各別,非官釐定,其法不可。

옛 국음의 글자는 한문을 빌려서 마음대로 운용하였으니 天을 위에 上을 아래에 붙여 '하늘'을 만들고, 王을 위에 布를 아래에 붙여 '임금'을 만드는 것 따위이고, 최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요즘 시대에 25모자를 쓰는 것은, 본래 서양 글자로 이를 만든 것이고, 반절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문사가 붓을 집고 글씨를 가로지르면 제경(帝京)의 양직(兩直)[4] 지방이 말이 통하지 않고, 서공(西貢)과 북기(北圻)는 방언이 각기 다르니, 관료가 다스려 정하지 않으면 그 방법은 불가합니다.

▲남국지여 교과서 (베트남의 육체 포스팅 참조)

夫清之立國者大於我者數倍,一省之方言各別,而南北東西對話不同,乃官話一立,而全國之人由之,更無鼠璞虎菟之慮矣。我誠倣而行之,定一官話,著為字典,何音之真正雅亮者選之,鄙俚粗拙者刊之,何器何物未有聲音者,補之,使全國之人,習而誦之,秉筆行文,必用此字,如此則南北聲音交通曉矣。


청나라가 나라를 세운 터는 우리나라의 몇 배나 되고, 한 성(省)의 방언이 각기 다릅니다. 그러니 동서남북의 대화가 같지 않아, 관화 하나를 세워, 전국의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마침내 말이 통하지 않는 어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실히 이를 모방하여 행하고, 하나의 관화를 정해야 합니다. 자전을 만듦에, 참되고 바르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소리는 고르고, 더럽고 속되고 거칠고 옹졸한 소리는 빼고, 그 어떤 기물이라도 소리가 없는 것은 소리를 보태야 합니다. 전국의 사람들이 쓰게 하고, 익히고 외우게 하여, 붓을 집어 글을 씀에, 반드시 이 글자를 쓰게 한다면, 이와 같이 남과 북이 곧 말소리로 서로 통하고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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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섭(士燮, 137년~226년)

[2] 반절법, 한자의 발음을 표기하는데 두 개의 한자를 이용해 표기하는 방법.

[3] 노자(獠子)에 대해서는 베트남 민족사에 있어서 청동북은 무관하다? 포스팅 참조.

[4] 광남(廣南, Quảng Nam)성과 광의(廣義, Quảng Nghĩa)성은 남직, 광평(廣平, Quảng Bình)성과 광치(廣治, Quảng Trị)성은 북직이라고 불렸다. 수도 후에의 남쪽과 북쪽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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