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듀공은 귀엽다! 그러니 다시는 우리를 고구마라고 부르지 마라! 그 나라의 이름은, 유리구슬

듀공에 대한 글인데,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글이라서 번역/소개합니다.
곧이어 추가 부연 포스팅을 할 예정입니다.^^ (1년 가까이 걸렸네요;;; 2019-07-06 )
(원문: http://www.anida.tw/susiangki-curhgo.htm 현재는 링크가 작동하지 않는다. 블로그 자체가 사라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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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엇갈린 시작"


네덜란드 통치 시대의 대만 지도(그림1)다. 일곤신(一鯤鯓)에서 칠곤신(七鯤鯓)까지의 사주(沙洲)와 건너편 해안 사이의 좁은 바다가 있는데,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를 'twalvis been이라고 불렀다. 임겸광(林謙光)이 "대만기략(台灣紀略)"에서 말한 "해옹굴(海翁窟)", 후대 사람은 "태강(台江)" 혹은 "대강(大江)"이라고 부른 바다다.

네덜란드어 walvis는 "고래", 't는 접두사, been은 "뼈(骨)"라는 뜻이다. 합치면 "고래뼈"라는 뜻으로 임겸광의 "해옹굴"과 상통하고, "골(骨)"과 "굴(窟)"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태강"이 본래 'twalvis been이라고 불렸다고 믿지 않을 이유는 없다. 임겸광은 이것을 "해옹굴"이라고 잘못 번역한 것이다. 아니면 네덜란드인이 "해옹굴"을 'twalvis been이라고 번역했을 가능성도 꽤 크다. 왜냐하면 "굴"과 "골"의 민남어 발음은 바람소리(吹氣)가 있냐 없냐 하는 차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번역할 때 생길 법한 오해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해옹굴"은 "태강"의 최초 명칭인 것이다.


"해옹굴"은 그러니까 "고래가 서식하는 바다 동굴"이다. 분명 당시 배를 따라 Tayoan을 오가는 북건 선원이 태강에 서식하는 수많은 "고래"를 보고지은 이름일 것이다. 문제는 태강 서부 해역(대만 해협)에는 돌고래는 매우 많지만, 고래가 출몰하는 경우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고래는 성질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를 좋아한다. 태강에 군집해 서식했을 리가 없다. 당초에 그런 이름을 붙이게 된 원인 및 유래가 의심스러워진다.

"해옹(海翁)"이라는 두 글자는 현대 대만어문 사용자들이 쓰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해왕(海尪)"이라고 쓴다. 현대 대만어 혹은 민남어에서는 "고래"라는 의미 외에도, 왕은 "남편"(예: 尪婿)이나 "신"(예: 尪公)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말레이 Minangkabau어의 "ang"이나 "angku"를 한자로 번역한데서 온 것이다. "해왕"의 의미가 "바다의 신"이라면, 이 말이 지칭하는 것은 "듀공"이지, "고래"가 아니다.

듀공은 바다소라고도 부르는 동물로, 매너티와 함께 바다소 목에 속해있는 수중 대형 포유동물이다. 듀공 과(科)로 분류된다. 홍해 및 아프리카 동부에서 필리핀, 뉴기니 섬과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해안 등, 남북위 30도의 사이 근해 지역에 모여 산다. 옛날 대만섬의 사람은 듀공을 보고 "바다의 수호신"이라고 불렀다. 

안평(安平, Tayowan)은 옛날에 일곤신(一鯤鯓)이라고도 불렸다. 일곤신에서 현재의 희수 사이에 있는 사주(沙洲)를 이, 삼, 사, 오, 육, 칠곤신이라고 부른다. 또한 북쪽의 남곤신(南鯤鯓) (어쩌면 북곤신)과 "청곤신(靑鯤鯓)" 등의 지명이 있다. 

"곤(鯤)"은 고래로 오인되곤 하는데, 사실 "곤(鯤)"은 듀공의 "공"이다. 옛날 안평(安平)에서 희수(喜樹) 사이에 이어진 사주 일곱 개를 멀리서 보면 일곱 마리 듀공의 회백색 몸뚱이가 수면 위에 떠있는 모습을 몹시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옛날 태강(台江) 일대는 듀공이 서식하는 곳이었다고 볼 수 있다. 태강을 오가는 사람은 듀공을 익히 보았을 것이다.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그 지방의 이름을 듀공(鯤)이라고 지은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말이 변했는지, 당시 사람이 "듀공"을 부르던 말이 "해왕"이었는데, 현대 대만어에서는 "고래"를 의미하는 것으로 된 것인가? 아니면 당시 사람이 "듀공"을 잘못 보고 "고래"라고 한 걸까? 그리고 나서 네덜란드인이 또 "굴(窟)"을 "골(骨)"로 오역한 것이다. 네덜란드인이 대만에 들어오기 전, 대만 섬의 사람은 일찍이 Folo어로 소통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1603년 진제(陳第)가 쓴 동번기(東番記)에 실려있는 漳、泉之惠民、充龍、烈嶼諸澳,往往譯其語라는 구절이 이를 증명한다.[1] 

듀공은 전신이 어두운 회백색이고, 꼬리 지느러미는 고래 꼬리 지느러미처럼 갈라져있다. 꼬리 끄트머리는 가늘고 뾰족하다. 주둥이는 아래를 향하고 둥글고, 앞니가 두 개 나있다. 수컷은 송곳니가 난다. 듀공은 바다에 서식하는데, 쉴 때는 물이 얕은 곳에서 직립할 수 있다. 머리 부분만 수면 밖에 내미는 이런 동작 때문에 듀공은 인어 혹은 미인어(美人魚)라고 불린다.

카타오카 이와오(片岡巌)의 "대만풍속지"(대만인의 괴담기화)에 실린 바에 따르면: "강희 48년 여름. 녹이문(鹿耳門)에서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았다. 그 형상은 말을 닮았다. 등에는 털이 나있고, 신장은 3,4장이었다... 강희 51년, 안평(安平)에 소 만한 크기의 괴물이 나타났다. 몸 길이는 5,6척, 몸에는 털이 났고, 두 귀는 대나무 쪼가리 같았다. 송곳니가 날카로웠다. 가죽은 물소 같았고, 광택이 나는게 수달과 비슷했다... 건륭 9년 겨울 12월, 담수 백사돈(탐수이 현 바이샤툰 보淡水縣 白沙墩堡)에 낙뢰가 있었다. 커다란 물고기 22마리가 죽어서 모래사장에 밀려왔다. 그 형상이 머리는 돼지 같고, 물고기 몸통에 새우 꼬리였다. 몸길이는 한 장 남짓이었다. 눈은 관자놀이 밑에 있었다. 입을 열면 4척, 배 둘레는 2장, 꼬리 길이는 7척, 색깔은 검고, 울음소리는 소와 같았다..."

미야모토 노부히토(宮本延人)의 "대만의 원주민"에는 다음과 같은 기술이 있다. (1928년) 미야모토와 타테이시 신키치(立石新吉)가 함께 박물관을 만들고, 타테이시가 속한 학교(대만대학교)의 동물학 교실에 진기한 동물 기증품 한 건이 있었으니, 듀공이었다. "미인어"라고 불리는 바다짐승으로, 길이는 약 3미터, 형체는 물고기 같은 것으로 몹시 보기드문 진수(珍獸)였다.

듀공은 국가지정 천연기념물이었고, 포획하는 것은 금지되어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대만 남부 해안 부근에서 상처를 입은 채 빈사하여 어부의 그물에 낚여올라온 것이다. 해당 지역 사무소에 보고를 하고 대학 동물학 교실에 기증하기로 했다. 교수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듀공을 처음으로 본 것이었다. 너무 커서 교실 안으로 들일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밖에서 처리하기로 하고, 박제 보존할 준비를 했다. 타테이시로부터 전화를 받고, 미야모토는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나타났다. 박제하는 경과는 상세히 렌즈를 통해 기록되었다. 예로부터 전설에 "미인어" 고기를 먹으면 "불로불사"할 수 있다고 했다. 가죽을 벗기고 난 고기는 태워야 했는데, 누군가 삶아먹자는 의견을 제시했고, 결국 그렇게 했다. 그 후, "미인어"라는 진귀한 동물을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2003년 8월 27일, 오키나와 나하(那覇) 시의 나고(名護) 해변에 출현한 듀공 두 마리는 곧바로 일본 매체 SNG에서 보도되었다.

듀공은 유구어로 Nago라고 한다. 대만어로는 Namgong(南戇) 또는 Hay-namgong(海南戇)이다. 종전의 사람 눈에는 바다의 수호신으로 비춰졌고, 옛날에는 대만 서남부 근해에 모여 살았다. 농경 개발 과정 중 서식지를 파괴했을 가능성이 있다.[2] 진흙과 모래가 내해로 흘러나와 해초(海菖蒲)가 자라는 환경을 파괴하여, 듀공이 서서히 절멸되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적어도 1928년까지는 여전히 존재했고, 듣기로는 2차대전 말기까지도 북항계 출해처 부근에서 본 사람이 있다고 한다. 요즘 대만 사람은 듀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대만은 줄곧 "곤도(鯤島)"라고 불려왔다. 정곤오(鄭坤五)가 저술한 "곤도일지(鯤島逸誌)"도 있다. 대만섬을 한 마리 거대한 듀공에 빗댄 것이다.

대만인은 줄곧 스스로를 "고구맛둥이(蕃薯仔)"라고 불러왔다. 대만 섬을 한 덩이 "고구마"에 빗댄 것이다. 하지만 사실 공중에서 조감하면 바다에 "미인어"가 떠있는 모습이다. 해협을 등지고, 태평양을 향해 헤엄치고 있다. 이건 대륙에게는 엇갈린 시작이겠지만, 대만에게는 필연적인 일이다. 타이완은 바닷섬일 뿐더러, 태평양을 박차고 너른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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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용된 한문은 대만의 각 부족이 하나의 언어로 통변한다는 내용. 
"언어 역시 각 부족이 서로 전혀 통하지않았지만, 그런데 일종의 무역어와 같은 공통어가 있어서 VOC가 자리잡은 남쪽에는 시라야어, 스페인이 자리잡은 북쪽은 바사이어, 섬의 중간 지역은 시딕어라는 공동 언어도 있었다고 합니다. 

공통언어가 있었다는 것은 실은 위에 언급한 호전성/야만성과 대비되는 또다른 특성을 암시합니다. 실은 이렇게 부족간의 전투가 끊이지 않는 한편 해안가를 따라 원주민 부족들간에 무역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마치 동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공통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사용되었던 스와힐리어처럼 타이완 역시 원주민들간에 무역이 이루어지고, 더나아가 동맹도 이루어졌다는 것이죠. 이 동맹과 무역은 유럽인들이 도착하기 전부터 복건계통의 중국인들과 주로 사슴가죽에 대한 물물교환 교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다, 유럽인들이 도착하자 여러가지 의미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합니다. 중국 상인들과 달리 유럽인들은 이들에게 '선교'를 해서 근본적인 베이스를 바꾸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2]
"이 동상의 주인공 하타 요이치(八田與一, 1886-1942)는 도쿄제대를 나온 토목기사입니다. 타이완에서 20세기 초반 가남평원의 용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증원시(曽文渓) 하천과 주오수이시(濁水渓) 하천을 연결하여 우산터우(烏山頭) 댐을 건설하여 가남평원에 관개수로를 건설하여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가남대수(嘉南大圳)라는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를 바로 하타 요이치가 진행합니다."

*우산터우 댐이 설치된 증원시(曽文渓) 하천은 위 네덜란드 지도 북쪽에 있는 크고 긴 강이다... 앗! 아아! 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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