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느릿느릿 53) 유구의 조선어 통역관 그 나라의 이름은, 유리구슬



P.S. 
유구인의 이름은 화명(일본식 이름)과 당명(중국식 이름)이 혼합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시미네 영서"라고 표기했습니다.
"이시미네 니야(仁屋) 영서"라고 쓰기도 하는데, 여기서 니야는 관직명으로 말단 관리를 의미합니다.
이시미네 참봉... 정도였던거죠.

한편 페친(親雲上) 역시 오키나와 본섬의 귀족계급을 일컫는 호칭인데, 치쿠둔페친은 하급 귀족으로서 영지가 따로 없었고, 왕부(조정) 관료로 발탁되는 경우는 과거시험에 합격했을 경우 뿐이었다군요. (서유기의 냉난옥 포스팅 주석 참조.)

아니, 그런데 사쿠모토 씨는 어떻게 조선말을 할 줄 알았던거야?!
의외의 의외지만, 1800년대까지도 오키나와 본섬(유구 왕국)에는 조선어 통사/역관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시미네 참봉이 유학을 가게 된 계기도 조선인 표류민을 (통역관이 상주하는) 오키나와 본섬으로 인솔한 거였거든요...

덧글

  • Fedaykin 2018/08/10 23:01 # 답글

    오..조선어 통역관이 있었다니 신기하네요. 그래도 조선의 기록으로 보면 주변의 나라를 말할때
    중국은~ 일본은~그리고 유구는~하고 나오니 어느정도 존재를 알고 교류를 했을것같긴한데
    중국 같은 조공무역도 없었을거고, 왜관같은 제도도 없었을테고, 사무역은 당연히 금지였을텐데 뭘로 교류를 했길래 역관이 있는지 궁금해지는군요.
    우리도 어엿한 국가니까 이정도 외교력은 있어야지! 하고 갖춰두는 기본기였을까요ㅎㅎ
  • 남중생 2018/08/11 21:56 #

    네, 아마 조선에 몽어노걸대 등 몽골어 교육이나 몽골어 통역관이 (실제 유용함과 무관하게)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유구에도 조선어 통역이 있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 newbie 2018/08/24 21:01 # 삭제 답글

    만약에 조선어 교육시스템이 남아있었더라도 조선 전기와 후기에 입말이 꽤 바뀐 상황에서 어떻게 조선어역관을 잘 유지했을 지 궁금하네요. 일본의 조선어교본이나 역관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유지하는건 좀 힘들어보일 것 같기도 한데 말이죠.

    그러고보니 조선의 몽어역관은 18,19세기경에 실제 몽골인들과 소통이 잘 되었는지도 궁금하군요. 교재자체는 연행사를 통해 계속 업데이트되었을것 같긴 하지만
  • 남중생 2018/08/24 21:50 #

    사실 조선의 몽어역관의 사례는 저도 비교 사례로 언급만 했지만, 조선후기에 들어서 어떻게 교육/운용되었을지 궁금합니다.

    유구의 조선어 역관의 경우엔 (이론상으로는) 일본을 통해 텍스트가 유입될 수 있었을겁니다. 17세기부터 일본의 영향은 강해지면 강해졌지 약해지지는 않았거든요. 하지만, 사츠마 번이나 쓰시마 번이 얼마나 협조적이었을지는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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