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베트남의 캄보디아 병탄 시기를 재고하다 (1) [캄보디아 병탄기]

Liam Kelley 교수님의 Revisiting the Vietnamese Annexation of Cambodia (1)를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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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대 초, 메콩 강 하류 일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샴 왕국은 반란군을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고, 1834년에는 베트남(응우옌 왕조) 세력이 샴 군대를 몰아냈다. 이후, 베트남은 캄보디아 지역을 장악하고자 하였고, 1840년 연말에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장악하고 있었다. 

1834년에서 1840년 사이의 해당 시기는 "베트남의 캄보디아 병탄 시기"라고 불린다. 이 시기를 최초로 영어로 서술한 사람은 1973년에 박사학위 논문 "프랑스 식민지 이전의 캄보디아: 1794-1848년 사이 조공국의 정치(Cambodia Before the French: Politics in a Tributary Kingdom, 1794-1848)"를 쓴 역사학자 데이비드 챈들러(David Chandler)였다. 

해당 시기를 서술하기 위해, 챈들러는 베트남 사료인 대남식록(大南寔錄)에 크게 의존했다. 대남식록은 응우옌 왕조 문서의 모음집이다. 챈들러는 논문에서 대남식록을 높이 평가하면서 "19세기 초반의 몇몇 시기에 걸쳐" 대남식록은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가장 구체적이고 정확한 사료"라고 썼다. (13)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챈들러는 대남식록을 기록한 고전 한문을 못 읽었다. 챈들러는 대남식록 번역본이 있는 현대 베트남어도 읽지 못했다. 대신, 그는 "코넬 대학교의 응우옌 티 타잉 양(Miss Nguyen thi Thanh)"이라는 분 덕분에 대남식록에 접근할 수 있었다. 챈들러는 논문 주석에 "대남식록이라는 귀중한 사료 속에서 캄보디아 사안에 관련된 구절을 찾고 번역해준 점"에 대해 응우옌에게 감사를 표했다. (23)

역사학자 자신이 읽을 수 없는 사료를 다른 사람이 대신 번역하게 하는 것은 위험의 소지가 있다. 챈들러는 이 위험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논문에 "번역가와 함께 작업을 했기 때문에, 필자는 사료에 제한된 접근만 할 수 있었다"고 썼기 때문이다. (13) 

그럼에도 이 번역가가 번역해낸 구절, 그리고 챈들러가 이 번역가와 함께 작업하면서 전개한 몇몇 주장은 챈들러가 이후에 쓴 캄보디아 역사 책, A History of Cambodia에 실리기까지 했는데, 이 책은 현재 4판까지 나왔으며 지난 수십 년 간 영어로 된 캄보디아 역사의 정전이었다.



번역 문제는 다른 게시물에서 다룰 것이니, 여기서는 챈들러가 A History of Cambodia에서 1840년 베트남의 움직임에 대해 거론한 부분을 보자. 챈들러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1840년 6월 [응우옌 왕조의 황제] 명명제(明命帝)는 베트남 세금제도를 캄보디아에도 적용하였다. 이는 오캬[캄보디아인 관료]들에게 과일과 채소 등의 추가적인 품목에도 세금을 매겼고, 새로운 인구조사, 토지대장 조사, 수자원 보고서 등을 포함하는 요구사항이었다." (1판 130쪽, 1983; 4판 158쪽; 2008)  

챈들러는 위 정보의 출처를 명시하지 않지만, 대남식록에 실린 1840년 음력 6월의 세금 문서를 찾아보면 과일과 채소에 붙는 세금이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이 문서의 내용은 챈들러가 묘사한 것과 매우 다르다. 


1840년, 명명제는 회갑을 맞았고, 그해 1월에 백성들의 세금을 감면함으로써 회갑을 기념하고자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캄보디아는 아직 베트남의 세금 제도에 편입되지 않았다. (210/1b-2b).


6개월이 지난 같은 해의 여름, 명명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데, "그 지역[캄보디아]의 세금은 관여할 만한 액수가 못 된다. 고로 지금까지 그 세금을 제도화하고자 하는 시도가 없었다." (214/1b). 그럼에도 명명제는 그 세금도 감면하여 캄보디아 백성들도 명명제의 회갑잔치 혜택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그 해 6월 명명제는 이에 대한 상세한 지시를 내렸다. 

캄보디아에 세금감면을 위해, 명명제는 어떤 세금이 부과되는지부터 알아야 했다. 캄보디아 지역을 관할하는 최고위 관료인 장명강(張明講)은 황제에게 캄보디아인 관료들이 수집하는 세금 목록을 제공하였고, 명명제는 크게 놀라 말했다. "물에도 세금이 붙을 뿐 아니라 평민들이 기르는 과일과 채소에도 세금이 붙는구나. 이것은 토호들이 제멋대로 세금을 붙이고는 착취하기를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은 바칠 것이 남아있지도 않고 살 곳을 잃기도 한다." (214/1b).



다시 말해, 베트남이 "과일과 채소 등의 추가적인 품목에도 세금을 ... 포함하는 요구사항이었다."는 챈들러의 주장은 대남식록에 기록된 바를 완전히 왜곡한 것이다. 오히려 챈들러가 A History of Cambodia에 쓴 내용은 대남식록의 적힌 것과 정반대이며, 챈들러와 번역가 사이에 무언가 큰 오해가 있었다고 추측할 뿐이다. 

대남식록에는 캄보디아인 관료가 평민들이 재배하는 과일과 채소 같은 사소한 품목에도 세금을 매겼다는 것을 알고는 명명제가 분노하였다고 기록하였지, 베트남에서 그와 같은 품목에 세금을 매기려 했다고 기록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정보를 오해하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캄보디아-베트남 관계사는 수십년간 굉장히 민감한 문제였다. 그런 맥락 하에, 역사학자는 반드시 역사기록 상의 정보를 정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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