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효, 호루, 그리고 포월로(捕月老)의 바다 [東西洋考]


제 스스로 쓰는 포스팅도 많이 있지만, 이번처럼 적륜 님의 과거 포스팅에 첨언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적륜 님의 포스팅이 교과서라면, 저는 참고서나 사회부도책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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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적륜 님께서는 이상한 나라의 교시로 시리즈를 한창 연재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리즈의 시즌2 파일럿 에피소드가 바로 이상한 나라의 교시로 시즌2: 도쿠베가 천축에 간 이야기였지요.

일본 가부키의 "최고 스펙타클 빌런 캐릭터인 덴지쿠 도쿠베"가 어떻게 실존인물인지 다루는 글이었습니다.

1707년 덴지쿠 도카이 모노가타리(天竺渡海物語)라는 문서를 소개하셨는데, 아래에 해당 부분을 인용해 놓겠습니다.

1626년 10월 16일 이때 도쿠베의 나이 약관 15세, 해외무역의 허가를 받은 교토의 대상인 스미노쿠라 요이치(角倉与一) 선단의 선장인 마에바시 기요베(前橋清兵衛)의 배에 서기로 고용되어 처음으로 먼 이국으로 출항합니다.

나가사키를 떠나 여인의 섬과 남자의 섬[1]을 지나 정남쪽의 다쿠산쿠(에도시대에 다카사고高砂라고 불린 타이완섬)에서 다시 서쪽으로 광동의 입구에 있는 항구 아마가와(天川 즉 마카오를 의미)에서 정박합니다. 아마가와 항의 수심이 너무 깊어 닻을 내리기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남쪽 하늘에 걸린 '대(大) 크로스'(남십자성을 의미)를 보게 됩니다.

아마가와의 남쪽으로 300리 아래 '효'의 경계에 도착했을때, 난킹(이본에는 통킹)의 경계에 도달하였고, 여기서 다시 서쪽으로 진행하여 달마 조사의 고향이라고 전해들은 코치(하노이로 비정)의 토롱카산 정상을 봅니다.(베트남 중부 호이안 지역으로 비정하는 학설도 있음) (효는 한자가 정확히 뭔지 어느 지방을 의미하는 지 현재로서는 저도 모릅니다. 다만 이후의 설명에 의하면 남중국해의 어느 지점같습니다)[2]

여기서 다시 남쪽으로 카보차(캄보디아를 의미)의 호콘토로 라고 하는 섬[3]에 도달한 후 다시 북서로 800리 가서 중천축 "마카타국"의 류사(流沙) 강 입구에 도착하는데, 여기까지 일본에서 모두 3800리 (대략 14,900 km)입니다. (註: 류사 강은 발음을 옮겨 적은 게 아니라 의미대로 흐르는 모래의 강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서유기에 사오정이 살던 곳이 바로 류사하였죠... 아직 정확히 어디인지 잘모르겠습니다)

류사 강을 거슬러 올라가 샤무 국(샴 즉 현재의 태국을 의미)에 한테히야 (이본에는 반테히야)라는 성이 있는데, 여기서 작은 배로 갈아타고 가서 마카타국의 왕에게 일본의 무역허가증인 주인장(朱印状)을 제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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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인의 섬과 남자의 섬서유기에서 언급한 62. 쥐가 사는 섬의 주석 참조. 

女人嶋あり。鬼界が島は男子ばかりなり。

여인의 섬도 있다. 키카이가지마는 남자 밖에 없다.



그렇다면 [2][3] 즉, 마카오 남쪽 300리에 있다는 ''와 캄보디아의 '호콘토로'는 어디일까요?

힌트를 드리자면 "효"와 "호"는 같은 말입니다.

아직도 아리송하시다고요? 


바로 '효'와 ('호콘토로'의) '호'는 모두 오스트로네시아어(말레이-인도네시아 어)의 풀라우(pulau)를 일본어로 표기하려는 노력이었던 것입니다. 

아예 한자 지명이 아녔던 것이죠! @@


어떻게 풀라우(pulau)가 '효', '호'가 되냐고요?

전근대 일본어에서는 ㅎ, ㅂ, ㅍ 발음을 구분해서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천국을 뜻하는 파라디소(paradiso)는 일본어로 하라이조(はらいぞ)라고 표기했죠.

* 구원받기 위해서 먹으면 안 되는 것 포스팅 中 "파라이조" 참조. (텐치하지마리노코토 원문에는 "하라이조"지만, 한국어 번역에는 실제 키리시탄이 발음했을 "파라이조"라고 표기함.)


꾸 라오 하이난과 한월(漢越) 팽창 포스팅을 기억하시나요?

"꾸 라오(Cù Lao)"는 "섬"이라는 뜻의 오스트로네시아어(語) 단어를 베트남식으로 쓴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에서는 "풀라우(pulau)"라고 합니다. 이 지도를 만든 사람이 도대체 왜 하이난을 다오(đảo, 島) 대신에 꾸 라오(cù Lao)라고 표기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이난 섬을 그린 베트남 지도에서는 흔히 "다오"를 쓰던데 말이에요. 하지만 이 지도를 보니 생각에 잠기게 되더군요...


▲"꾸 라오 하이 남(Cù Lao Hải Nam 劬劳海南)"이라고 표기된 19세기 대남일통전도(Dại Nam nhất thống toàn đồ 大南一統全圖)



중국 남부에서 베트남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고, 반리가세(파라셀 군도)와 이어진다는 도쿠베의 묘사를 보고, 저는 '효'가 중국의 "하이난 섬"이 아닐까... 그리고 '효'는 '풀라우'의 음차가 아닐까 했는데, '호콘토로'를 보고 제가 맞았다는 확신이 굳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베트남 남부의 "풀로 콘도르" 섬이거든요. 영국 동인도회사(EIC)가 1702년 이곳에 (잠시) 상관장을 짓고는 Pulo Condore이라고 표기했고, 이후 프랑스가 베트남 응우옌 왕조에게 군사원조를 하는 대신 Poulo Condor을 할양받기로 했죠. 안남 왕국은 자체적으로 꼰 다오(Côn Đảo, 꼰 섬)라고 불렀습니다. 


풀라우/풀로라는 발음이 너무 어려웠던 일본인들에겐 (물론 위에서 보시다시피 누구나 발음하기 어려운 지명이었습니다) "표-우", "포-루 콘도로"라고 하는 것이 최선이었고 그 표기는 "효", "호콘토로(다른 기록에는 호루콘도로)"라고 남게 된 것입니다.




▲아마카와(天川, 마카오)에서 300리 남쪽으로 가면 표-의 경계(하나)라고 부른다. 

"하나"는 같은 문서 내에서도 "끝", "경계"라는 의미로 쓰이기는 하나, 
"(풀라우) 하이난"을 "표-노 하나"라고 표기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풀라우"를 방문한 조선인도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텐지쿠 토쿠베에와 유사한 항로를 여행한 진주 선비 조완벽도 있겠으나, 그의 기록에서는 하이난과 콘도르를 "풀라우"라고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보다 백 년 이상을 앞선 기록이 있습니다.


"그 섬의 이름은 포월로마이시마(捕月老麻伊是麿)라고 하였습니다. 그 땅은 평평하고 넓어서 산이 없었는데 모두 다 모래와 돌로 된 땅이었고, 둘레는 소내도(所乃島)에 비교하여 조금 작았습니다. 그 언어와 의복·거실·풍토는 대개 윤이도와 같았으며, 우리들을 대접하는 것도 같았습니다."

(성종실록 105권, 성종 10년 6월 10일 을미 1번째기사, 1479년)



▲맨 왼쪽(서쪽)의 요나구니 섬, 동남쪽으로 하테루마 섬


성종 때 표류민들이 돌아와서 보고한 기록인데, 

여기서 말하는 "윤이도"는 현재 일본의 최서단 요나구니(与那国) 섬입니다. 

(소내도는 정확히 어디인지 불분명합니다)


"포월로마이시마"는 하테루마(波照間) 섬의 당시 이름이죠.


▲제주도 조금 위의 추자도에서 요나구니(빨간 표지)까지 표류를 한 것입니다... 

자칫 조금만 더 갔으면 타이완 헤드헌터들을 만났겠군요.


오키나와 주변 섬들이 말레이-인도네시아 어(오스트로네시아어)를 썼다니, 놀랍기도 하지만 사실 오스트로네시안의 이동은 대만에서 출발합니다. 
첫 기착지가 유구 열도였던 것이죠.

그리고 이후로도 계속 동남아 세계와 교류를 이어갔는데,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 단검 유물도 발견되는 것이죠! 


조선왕조실록의 표류 기록을 통해, 비록 지금은 일본 오키나와의 일부인 섬들이지만 15세기까지도 엄연히 오스트로네시아어의 이름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포월로"와 "시마"가 중첩적으로 쓰인 것도 흥미롭죠.

풀라우 "콘도르"가 꼰 다오(島)가 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까요?



마무리 짓자면,

완벽과 텐지쿠 토쿠베에의 바다, 주인선 무역과 스미노쿠라 선단의 바다는, 

풀라우(Pulo, Poulo)와 꾸 라오(劬劳), 시마(しま)와 다오(Đảo)와 도(島)가 모두 중첩된 채로 공존하는 바다였던 것입니다!



덧글

  • 종미몰락 미군철수 2018/06/18 06:23 # 답글

    덧글이 길어지니 알림도 안 오는군요.
    손기양과 조경남은 초원이 있었다만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초원이 말을 잘 다루고 적진을 불태울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비슷하죠.
    http://qindex.info/d.php?c=1239
    오잡조는 후병 때문에 이야기한 거고...
    오잡조와 원병삼백을 연결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죠.
  • 남중생 2018/06/18 08:26 #

    “적진을 불태울 수 있었다” 같은 식의 표현은 건너들었을 언급일 가능성이 높지요.
    해귀가 몇날몇일을 바닷속에서 보낼 수 있었다, 배에 구멍을 뚫을 수 있었다는 언급도 서로 다른 기록이 이야기합니다. 중국인이 그렇게 설명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것은 당시 해귀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그대로 옮긴 것에 불과합니다.

    오잡조 기록에는 후병이라고 써있지는 않고 “원숭이 저(狙)” 자를 쓴 것으로 읽었는데, 다른 기록도 있나요?
  • 종미몰락 미군철수 2018/06/18 08:34 #

    적진을 불태울 수 있다는 이야기는 당연히 명나라 군대로부터 들었겠죠.
    그런데 두 사람 다 원숭이라고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조경남은 해귀 4명 초원 4수라고 했죠.
    관련된 기록 전부에서 원숭이라고 말하지 사람이라고 한 것이 없습니다.
    기록을 구분해서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기록들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번째는 양호(楊鎬)가 소사 전투에서 수백 기의 원숭이 기병을 투입했다는 이야기고, 두번째는 유정(劉綎)의 부대에서 전투에 활용될 수 있는 원숭이 몇 마리를 보았다는 이야기며, 세번째는 철수하는 명나라 군대를 환송하는 행사에 300마리의 원숭이 부대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각각 1597년, 1598년 그리고 1599년의 일이다.
    원숭이에 대한 표현도 각각 농원(弄猿), 초원(楚猿), 원병(猿兵) 등으로 조금씩 달리 표기되고 있다.
  • 종미몰락 미군철수 2018/06/18 08:43 #

    척계광의 원숭이 부대 이야기는 중국인들이 전설처럼 취급하고 있습니다. 후병 또는 후군이라 불리기도 했다는데 복건은 광서와도 가까우니 낭병을 후병 또는 원병이라 했다는 이야기의 뿌리를 캐볼 수 있을 겁니다.
  • 종미몰락 미군철수 2018/06/18 19:16 #

    척계광이 원숭이를 이용해서 왜구를 물리쳤다는 이야기는 만력야획편에도 나오네요.
    그러나 원숭이가 옛날 총을 쏘았다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믿기지 않네요.
  • 남중생 2018/06/19 13:37 #

    오... 안 그래도 오잡조에 있다면 만력야획편에도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만력야획편에는 임진왜란에 파견한 낭병 기사도 있는데, 적어도 심덕부는 원병과 낭병을 별개로 생각했다는거네요.

    한편 조선 측 기록에서 세 가지 이야기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소사전투(1)와 천조장사전별도(3)에는 모두 정확히 "삼백"의 원병/농원이라고 언급이 되지요. 전별도 역시 당대 기록화가 아니라 18세기에 다시 그린 것임을 감안할 때, 택리지를 기록하거나 박지원이 시를 쓰고, 풍산김씨 문중에서 전별도를 다시 그린 18세기에는 소사전투 300 원병 전설이 두루 퍼져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아, 그리고 물론 저도 진짜 원숭이가 총을 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숭이 기병은 실제 전투 목적 보다는, 위문 공연/서커스 단 정도의 기능인데 어쩌다보니 조선까지 끌려온건가... 하고 생각하게 되어 흥미롭습니다.
  • 핵포기 비용 못댄다 2018/06/19 14:16 #

    만력야회편에 원병이란 표현이 있는지는 모릅니다.
    척계광 관련해서 후와 저라는 한자를 썼죠.
    세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는 얘기는 사건이 세 가지이기 때문이죠. 연도도 다르고 용어도 다릅니다.
    택리지에는 수백이라 했지 삼백이란 말은 하지 않았어요.
    총을 쏘는 것과 말을 타는 것은 난이도가 천지차이죠.
    말타는 원숭이는 지금도 있습니다.
  • 남중생 2018/06/19 14:25 #

    택리지에서는 수백이라고 했고, 박지원의 시에서 "삼백"이라고 명시했지요. 이 두 기록은 같은 사건 "소사전투"를 말하고 있습니다. 전별도의 "사건"은 물론 전별식이지만, 삼백원병이 소사전투에서 공을 세웠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제 과거 포스팅을 참고해주세요.

    예, 원숭이가 말을 타는 것은 현재 여러 서커스 공연의 사례에서도 고증할 수 있고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염소도 말을 탈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Ci-S5WlJpI

    오잡조 기록에는 후병이라고 써있지는 않고 “원숭이 저(狙)” 자를 쓴 것으로 읽었는데, 다른 기록도 있나요?
  • 핵포기 비용 대지마라 2018/06/19 15:40 #

    원숭이가 옛날 총을 쏘는 것도 있습니까?
    택리지와 박지원의 글에서 달단 기병과 원숭이 기병의 숫자를 비교해 보세요.
    위 링크에 오잡조 원문이 있습니다.
  • 핵포기 비용 대지마라 2018/06/19 16:03 #

  • 남중생 2018/06/19 16:35 #

    "아, 그리고 물론 저도 진짜 원숭이가 총을 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앞선 덧글에서 쓴 내용입니다.
    글을 찬찬히 읽고 생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원숭이가 실제로 총을 쏜 전투병력으로 쓰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말을 타는 것은 손발이 달린 원숭이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을 하고 있죠?


    오잡조 기록 앞머리에 "福淸石竺山多猴"로, 확실히 원숭이 후를 쓰고 있군요. 후와 저가 모두 쓰인 것으로 보아, 특정한 종류의 원숭이라기보단 일반적인 원숭이에 대한 전설이었나 봅니다.

    택리지에는 장수 4명에 기병 4000+원병이라고 되어있네요. 장수 당 평균적으로 1000명씩 기병이 있다고 계산하는게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그림의 출처는 네이버 지식백과 천조장사전별도 항목입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401398&cid=51398&categoryId=51398)
  • 핵포기 비용 대지마라 2018/06/19 16:51 #

    염소를 말에 태워 적진으로 돌진하게 했다는 기록도 있읍니까?
    박지원은 기병 삼천, 농원 삼천이라고 했죠.
    이게 근거가 있는 숫자일까요?
    아니면 삼천 궁녀처럼 상투적인 표현일까요?
    전별도의 삼백이란 숫자는 어디서 나올 걸까요?
  • 남중생 2018/06/19 17:23 #

    1. 박지원은 원숭이의 숫자가 삼천이 아니라 삼백이라고 했습니다.
    2. 기마 염소를 이용한 전투기록은 제가 알고 있는 바가 없습니다. 손발이 달린 원숭이라야만 "얼핏 그럴싸하게" 말을 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분명 위에서 말했을텐데 말이죠.
    3. 18세기의 여러 저자가 300(혹은 수백) 원병에 대해 동일하게 말하고 있는 것을 보아, 당시에 널리 알려진 "전설"이구나, 라고 위에서도 말했습니다. 전설이 무슨 뜻인지 잘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 핵포기 비용 대지마라 2018/06/19 17:48 #

    택리지의 철기 4천과 박지원의 발기 3천의 차이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라는 이야기입니다.
    기록을 연대 순으로 나열하여 변천 과정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 남중생 2018/06/19 17:54 #

    몇 개의 기록만으로 연대에 따른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고 봅니다.
  • 핵포기 비용 대지마라 2018/06/19 18:22 #

    1598년의 사건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건 부정할 수 없어요.
    문제는 1597년과 1599년의 사건에 대한 기록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느냐죠.
    1598년의 사건이 부풀려진 것이냐?
    아니면 1598년의 사건으로 인해 개연성이 뒷받침되는 것이냐?
    이런 문제에서 논쟁의 전선이 형성되는 것이죠.
  • 남중생 2018/06/19 18:43 #

    1598년에 명군 진영에 낙타와 원숭이가 모두 있었다는 언급이 두 개의 사료에서 교차검증되는 것으로 보아, 원숭이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원숭이가 말을 타는 것이 그럴싸 하거나, 고삐 푸는 것 정도는 훈련시키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가 아니죠.
    자기 이야기는 성의 없이 던진 다음에 알아들어 주기를 바라고, 남의 이야기는 아무리 친절히 반복해 이야기해도 듣지를 않는군요.


    1597년의 소사전투 기록과 1599년의 천조장사전별도의 기록은 모두 소사전투와 연관되어있습니다.
    그리고 300 원병이 전쟁 당시의 기록에는 없다가 18세기에야 등장하는 것도 주목할 만 합니다.
  • 핵포기 비용 대지마라 2018/06/19 19:50 #

    거기에 도달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립니까?
  • 남중생 2018/06/19 20:00 #

    앞서 “전설”이라고 말한 말뜻을 생각해보라고 했지요?
    괜히 뒤에서 무안하니까 이상한 말 얹는건 그만두셨으면 합니다. 전부터 계속 보이는 패턴이네요.
  • 핵포기 비용 대지마라 2018/06/19 21:01 #

    1598년 사건은 원숭이로 인정했고 그럼 1597년 사건을 이야기해 볼까요?
    낭병일 가능성은 거의 부정된 거 같고 인간 특수부대일 가능성을 한번 부정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모든 기록에서 원숭이라고 했지 인간이라고 한 기록이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달단 철기에 앞서 투입될 기병이 있을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 남중생 2018/06/19 22:10 #

    두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출처에서 "원숭이"라고 다른 동물과 함께 말하고 있기 때문에 우선은 원숭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잠정적 결론을 내린 것 뿐입니다. 그러나 해귀 역시 같은 기록에 같은 어조로 언급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제가 과거 포스팅에서 명말 시기는 인간의 경계가 모호한 시기였다는 점을 다룬 적이 있지요?
    이미 원숭이 원 자를 이리 낭으로 잘못 읽은 전력이 있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을 내리고 싶지 않은 것도 큽니다.

    교차되는 두 기록의 경우도 모두 명군으로부터 전해들은 지식(적진에 불을 놓을 수 있다) 위주이기 때문에 여전히 확언을 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다른 기병이 있을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해선 4000기병+원병으로 언급되었다는것만 다시 말하겠습니다.
  • 핵포기 비용 대지마라 2018/06/20 08:44 #

    틀리고 안 틀리고가 문제가 아니라 추론 과정이 논리적이었느냐가 중요하죠.
    특수부대 오인설이 부정되면 소사 전투의 농원수백기는 거짓이거나 사실이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죠.
    유정의 부대에 있었던 원숭이 몇 마리 이야기가 후대에 소사 전투의 농원수백기로 발전했을 수 있습니다. 당대의 기록에는 없다는 점이 이를 의심하게 하죠. 게다가 수백 기를 운용했는데도 중국의 기록에는 흔적이 전혀 없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 남중생 2018/06/20 13:43 #

    한정된 자료를 갖고 추론 과정이 논리적이냐를 따지기란 힘들다고 봅니다.

    제가 잠정적으로 "합리적"이다, 라고 계속 말을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원숭이 300마리라면 중국 기록에 보여야 하는데, 4마리니까 없다는 주장이 과연 논리적인가요?
    해귀와 우지개(거인)도 중국 기록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중국인들에게는 당연한 병력의 일부니까 기록에 없다고 이야기하는게 차라리 논리적이라면 논리적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수효와 상관 없이 말이지요.

    마찬가지로 그런 식이라면 낙타에 대한 기록, 노루에 대한 기록도 교차 검증이 되어야 합니다.
  • 남중생 2018/06/20 13:43 #

    제가 조사해본 결과, 이중 유일하게 타국 사료와 교차 검증이 되는 것은 거인 병사입니다.
    일본 측의 사천왜성 전투 기록에 보면 거인들이 있었다고 적혀있죠.
    그리고 사천왜성 전투에서 사살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천조장사전별도에서는 원병과 해귀는 있지만 거인은 없는 것을 보아, 부재로써 입증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 키의 10배가 되는 거인이 있었다는 난중잡록의 기록을 그대로 믿지는 않겠습니다.
    난중잡록이 당대의 현장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원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소극적인 논리를 적용하겠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논리를 확장해서 피력했다가 글자부터 잘못 읽은 전력이 있어 그렇습니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저건 진짜 원숭이다, 원숭이 분장을 한 병사다, 아예 입소문이다, 등등의 주장을 한다면 모두 각각 나름의 합리성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건 그들의 주장인 것이죠.
    저는 확실한 제3의 사료가 등장하지 않는 한 여기에 대해서는 지금의 입장을 고수하렵니다.
  • 핵포기 비용 대지마라 2018/06/20 14:45 #

    추론이 논리적인가는 자료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죠.
    자료를 엮는 방법의 문제니까요.
    그리고 자료가 충분하다면 당연히 결론이 명쾌하게 날 것이고 이런 논쟁도 있을 수 없습니다.
    충분하지 않으니까 여러 가지 설명이 나오고 비교우열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말하는 수준이 거의 염소가 말을 타고 적진에 돌격하는 격이네요.
  • 남중생 2018/06/20 15:11 #

    그 비교우열을 굳이 따지지 읺는 이유는 이미 이야기 했고, 말하신 바가 정확합니다. 염소도 말을 탈 수 있고 원숭이도 말을 탈 수 있죠. 어쩌면 둘 다 화승총을 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 짜맞춰서 논리만 따진다면 이런 우스운 꼴이 납니다.
    그러므로 여전히 확신은 보류하겠습니다.
  • 핵포기 비용 대지마라 2018/06/20 16:33 #

    논문이 올라오면 한번 봐야겠습니다.
    문헌과 해석 편집자가 이글루스에도 블로그를 개설한 모양이군요.
    http://hermod.egloos.com
  • 남중생 2018/06/20 17:17 #

    네, 저도 우선 논문만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 핵포기 비용 대지마라 2018/06/20 20:37 #

    지금까지 알려진 기록이 전부라면, 1598년의 사건만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고 1597년과 1599년의 사건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하는 게 좋을 겁니다.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죠.
    안대회 교수는 원숭이가 맞다는 주장을 할 거 같은데, 뒤의 두 기록까지 역사적 사실로 주장한다면 비판을 좀 받을 겁니다.
  • 남중생 2018/06/20 20:42 #

    그래서 저도 논문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어떤 참신한 제3의 자료 혹은 해석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 迪倫 2018/06/18 12:52 # 답글

    오오오! 감사합니다. 확실히 한자가 아니라 폴리네시안 어원으로 어프로치하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남중생 2018/06/19 13:07 #

    오키나와 돼지 포스팅 때 적륜 님께서 "대실망"하셨다고 하시길래, "그래도 폴리네시아 전통이 남아있다!"하는 포스팅을 어서 써야지 하고 있었습니다. 여름을 맞아 시원한 기분이 드셨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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