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가사키를 떠나 여인의 섬과 남자의 섬[1]을 지나 정남쪽의 다쿠산쿠(에도시대에 다카사고高砂라고 불린 타이완섬)에서 다시 서쪽으로 광동의 입구에 있는 항구 아마가와(天川 즉 마카오를 의미)에서 정박합니다. 아마가와 항의 수심이 너무 깊어 닻을 내리기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남쪽 하늘에 걸린 '대(大) 크로스'(남십자성을 의미)를 보게 됩니다.
아마가와의 남쪽으로 300리 아래 '효'의 경계에 도착했을때, 난킹(이본에는 통킹)의 경계에 도달하였고, 여기서 다시 서쪽으로 진행하여 달마 조사의 고향이라고 전해들은 코치(하노이로 비정)의 토롱카산 정상을 봅니다.(베트남 중부 호이안 지역으로 비정하는 학설도 있음) (효는 한자가 정확히 뭔지 어느 지방을 의미하는 지 현재로서는 저도 모릅니다. 다만 이후의 설명에 의하면 남중국해의 어느 지점같습니다)[2]
여기서 다시 남쪽으로 카보차(캄보디아를 의미)의 호콘토로 라고 하는 섬[3]에 도달한 후 다시 북서로 800리 가서 중천축 "마카타국"의 류사(流沙) 강 입구에 도착하는데, 여기까지 일본에서 모두 3800리 (대략 14,900 km)입니다. (註: 류사 강은 발음을 옮겨 적은 게 아니라 의미대로 흐르는 모래의 강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서유기에 사오정이 살던 곳이 바로 류사하였죠... 아직 정확히 어디인지 잘모르겠습니다)
女人嶋あり。鬼界が島は男子ばかりなり。
여인의 섬도 있다. 키카이가지마는 남자 밖에 없다.
그렇다면 [2]와 [3] 즉, 마카오 남쪽 300리에 있다는 '효'와 캄보디아의 '호콘토로'는 어디일까요?
힌트를 드리자면 "효"와 "호"는 같은 말입니다.
아직도 아리송하시다고요?
바로 '효'와 ('호콘토로'의) '호'는 모두 오스트로네시아어(말레이-인도네시아 어)의 풀라우(pulau)를 일본어로 표기하려는 노력이었던 것입니다.
아예 한자 지명이 아녔던 것이죠! @@
어떻게 풀라우(pulau)가 '효', '호'가 되냐고요?
전근대 일본어에서는 ㅎ, ㅂ, ㅍ 발음을 구분해서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천국을 뜻하는 파라디소(paradiso)는 일본어로 하라이소(はらいそ)라고 표기했죠.
* 구원받기 위해서 먹으면 안 되는 것 포스팅 中 "파라이조" 참조. (텐치하지마리노코토 원문에는 "하라이조"지만, 한국어 번역에는 실제 키리시탄이 발음했을 "파라이조"라고 표기함.)
꾸 라오 하이난과 한월(漢越) 팽창 포스팅을 기억하시나요?
"꾸 라오(Cù Lao)"는 "섬"이라는 뜻의 오스트로네시아어(語) 단어를 베트남식으로 쓴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에서는 "풀라우(pulau)"라고 합니다. 이 지도를 만든 사람이 도대체 왜 하이난을 다오(đảo, 島) 대신에 꾸 라오(cù Lao)라고 표기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이난 섬을 그린 베트남 지도에서는 흔히 "다오"를 쓰던데 말이에요. 하지만 이 지도를 보니 생각에 잠기게 되더군요...

중국 남부에서 베트남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고, 반리가세(파라셀 군도)와 이어진다는 도쿠베의 묘사를 보고, 저는 '효'가 중국의 "하이난 섬"이 아닐까... 그리고 '효'는 '풀라우'의 음차가 아닐까 했는데, '호콘토로'를 보고 제가 맞았다는 확신이 굳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베트남 남부의 "풀로 콘도르" 섬이거든요. 영국 동인도회사(EIC)가 1702년 이곳에 (잠시) 상관장을 짓고는 Pulo Condore이라고 표기했고, 이후 프랑스가 베트남 응우옌 왕조에게 군사원조를 하는 대신 Poulo Condor을 할양받기로 했죠. 안남 왕국은 자체적으로 꼰 다오(Côn Đảo, 꼰 섬)라고 불렀습니다.
풀라우/풀로라는 발음이 너무 어려웠던 일본인들에겐 (물론 위에서 보시다시피 누구나 발음하기 어려운 지명이었습니다) "표-우", "포-루 콘도로"라고 하는 것이 최선이었고 그 표기는 "효", "호콘토로(다른 기록에는 호루콘도로)"라고 남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풀라우"를 방문한 조선인도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텐지쿠 토쿠베에와 유사한 항로를 여행한 조선 선비 조완벽도 있겠으나, 그의 기록에서는 하이난과 콘도르를 "풀라우"라고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보다 백 년 이상을 앞선 기록이 있습니다.
"그 섬의 이름은 포월로마이시마(捕月老麻伊是麿)라고 하였습니다. 그 땅은 평평하고 넓어서 산이 없었는데 모두 다 모래와 돌로 된 땅이었고, 둘레는 소내도(所乃島)에 비교하여 조금 작았습니다. 그 언어와 의복·거실·풍토는 대개 윤이도와 같았으며, 우리들을 대접하는 것도 같았습니다."
(성종실록 105권, 성종 10년 6월 10일 을미 1번째 기사, 1497년)

여기서 말하는 "윤이도"는 현재 일본의 최서단 요나구니(与那国) 섬입니다.
(소내도는 정확히 어디인지 불분명합니다)
"포월로마이시마"는 하테루마(波照間) 섬의 당시 이름이죠.

자칫 조금만 더 갔으면 타이완 헤드헌터들을 만났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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