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제 2화 <그리스 신화를 미워한 남자들> 창작물의 원형을 찾아서~



옛날에 한 현자가 있었는데 이름은 하묵락(何默樂)이었다. 심오한 시 50여권을 지었는데, 노랫말이 풍부하고 그 뜻이 비밀스러워, 우언(寓言)이 매우 많았다. 끝내 그 뜻을 풀이하지 못하였는데, 도리어 큰 불행으로 후세의 어리석은 사람들이 장차 하묵락이 노래한 여러 형상들을 기꺼이 그 모양대로 주조해내고는, 큰 사당을 세워 거기에 빌면서, 그릇된 신을 머물게 하니, 이렇게 좌도(左道)가 처음으로 서양 땅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필달아(畢達我), 색가덕(索嘉德), 백랍다(白臘多) 같은 군자와 유학자들이 불현듯 노하여 그 폐단을 미워했고, 이에 굽히지 아니하였을 뿐 아니라, 또한 한데 몰아서 멸하고 싶어했다.

昔有一賢名曰何默樂,作深奧之詩五十餘卷,詞富意秘,寓言甚多. 終不得其解, 反大不幸後世之愚民, 將何默樂所謳之諸象欣欣然雕鑄其形, 不日功成大廟以供之, 邪神從而棲之, 而左道始入西土矣. 君子儒者如畢達我, 索嘉德, 白臘多等艴然怒而嫉其蔽, 非徒不爲之屈, 又欲驅而滅之.


이 글은 청나라 초기에 활동한 예수회 선교사 Joseph de Premare(중국명: 馬若瑟)가 쓴 "천학총론"의 한 대목입니다. 

말할것도 없이 하묵락은 호메로스고, 오디세이아(24권)+일리아드(24권) = 대충 50권이고, 아래의 군자와 유학자들은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 "플라톤"입니다. 

호메로스는 현자였지만, 그가 쓴 시의 비유를 그대로 믿은 "멍청한 그리스인"들이 다신교 신앙을 만들었다는 설명을 하고 있네요. ㄷㄷㄷ 


아무래도 이 글의 논조에는 기독교 유일신 신앙 선교를 위해 그리스 다신교를 디스하려는 의도가 가득해 보입니다.


사실, 앞서 1화에서 다룬 아리스토텔레스 자살 전설도 사실 마찬가지입니다. 

17세기 "먼나라이웃나라"라고 할 수 있는 직방외기에서는 마치 아리스토텔레스를 무슨 유럽인들이 농담거리로 삼는 슬랩스틱 코미디언 처럼 그려놓았지만... 
예수회 선교사들이 쓴 다른 책들은 어떨까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Κατηγορίαι)"을 한문으로 번역한 명리탐(名理探)의 역자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亞利)는 아테네(德納) 대성(大城)으로 가서 학교를 세웠다.[1] 그곳에서 13년을 지냈는데, 온 나라의 높은 선비가 그 가르침을 받았다. 이후 그는 우주의 명리를 깊이 궁리하고 싶어서, 멀리 에우보이아(耦百亞) 섬으로 떠나 할키다(嘉爾際德) 성에 이르러 또 몇 년을 지냈다. 에우리파(利波) 바닷물은 주야로 7차례 진퇴를 거듭했다. 아리는 그 이유를 알고 싶어, 전력을 다해 궁리했다. 여러 해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나, 나이가 들고 병이 생기자, 조물주에게 간곡히 기도하기를: "모든 곳에 계시고 최초로 계신 주재자이시어, 저를 가엽게 여기시고, 깨우쳐 주시옵소서." 그리고는 죽었다.[2]

亞利乃往德納大城而立學焉. 居十三年. 一國高士皆受其訓. 後欲更窮宇內名理. 遠詣耦百亞島. 及嘉爾際德城 復居数年. 利波海潮晝夜進退七次. 亞利欲究其故. 殫力窮思. 經年不勌. 老而有疾. 且亟猶懇切祈於造物主曰萬所以然之最初所以然幸憐而啟我乃卒. 

----------------------------------------------------------------------------------------------------------------------
[1] 대성학원을 세웠나?
[2] 이거 어째 많이 익숙하지 않나요? 
"다윈은 죽기 전에 진화론을 철회하고, 기독교로 전향했다!" 류의 주장이죠.^^



이처럼 17세기에 한문으로 번역/소개된 그리스 철학자들은 기독교 선교라는 목적에 의해 왜곡되는 일이 흔했습니다. 

========================================================================================================================

참고문헌:
Sher-shiueh Li, “Translating” Homer and his epics in late imperial China: Christian missionaries’ perspectives (2014)
Robert Wardy, Aristotle in China: Language, Categories and Translati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0)



P.S.
[한문 음차를 원어로 변경한 버전]

옛날에 한 현자가 있었는데 이름은 호메로스였다. 심오한 시 50여권(오디세이아 & 일리아드)을 지었는데, 노랫말이 풍부하고 그 뜻이 비밀스러워, 빗대는 말(寓言)이 매우 많았다. 끝내 그 뜻을 풀이하지 못하였는데, 도리어 큰 불행으로 후세의 어리석은 사람들이 장차 호메로스가 노래한 여러 형상들을 기꺼이 그 모양대로 주조해내고는, 큰 사당을 세워 거기에 빌면서, 그릇된 신을 머물게 하니, 이렇게 이단이 처음으로 서양 땅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같은 군자와 유학자들이 불현듯 노하여 그 폐단을 미워했고, 이에 굽히지 아니하였을 뿐 아니라, 또한 한데 몰아서 멸하고 싶어했다.
(Joseph de Premare, 천학총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라는 큰 도시로 가서 학교를 세웠다. 그곳에서 13년을 지냈는데,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모두 그 가르침을 받았다. 이후 그는 자연의 분류를 연구하고 싶어서, 멀리 에우보이아(Euboea) 섬으로 떠나 할키다(Chalcis)에 이르러 또 몇 년을 지냈다. 에우리포스(Euripus) 해협의 바닷물은 주야로 7차례 밀물과 썰물을 거듭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이유를 알고 싶어, 전력을 다해 궁리했다. 여러 해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나, 나이가 들고 병이 생기자,  마침내 조물주에게 간곡히 기도하기를: "모든 곳에 계시고 최초로 계신 주재자이시어, 저를 가엽게 여기시고, 깨우쳐 주시옵소서." 그리고는 죽었다.   
(이지조와 Furtado가 번역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 名理探)

덧글

  • 미군철수 없으면 반역 2018/06/04 20:34 # 답글

    종교미신은 인류가 극복해야 할 과제죠.
    기독교 경전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라던지 하는 이야기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기록이나 그리스 신화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단군설화도 마찬가지죠.
    단군조선설이라는 유사역사학을 움켜쥐고 있는 먼산족들이 하루빨리 잘못을 인정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 남중생 2018/06/04 21:31 #

    네, 토템폴 끌어안고 낑낑대는 사람을 보면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미신 타파가 이 블로그의 주 목적입니다.
  • 미군철수 없으면 반역 2018/06/05 04:23 #

    단군조선설 퇴치의 동지를 만났군요^^
    그 외에도 고려계승론 부정, 임나경영설, 미군철수 자주화론 등 획기적인 주제들이 많습니다.
  • 남중생 2018/06/05 09:59 #

    매일 새 사람을 만나니 기분은 좋겠습니다만. 저는 생활윤리 측면에서 미신타파를 합니다. 이를 테면 일관성 있는 언어 생활을 강조하죠.
  • 미군철수 없으면 반역 2018/06/05 14:46 # 답글

    아래 사항을 부정하지 않는 걸로 봐서 견해가 같은 걸로 생각되는군요.

    단군조선설 부정
    고려계승론 부정
    임나경영설 인정
    대한민국의 건국정당성 부정(지금의 국가정당성 아님)
    미군철수 지지

    두려워말고 떳떳하게 자기 견해를 말해야 합니다.
  • 남중생 2018/06/05 16:51 #

    전부 관심이 없는 주제라 그렇습니다.
    그리고 “반대 근거가 없으니, 있는거다” 식의 논증에 대해서도 전에 말씀드린 것으로 기억합니다.
  • 미군철수 없으면 반역 2018/06/05 17:26 #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민감한 주제라 그런 거 아닌지?
    그런데 적극적으로 부정하지 않으면 긍정하는 걸로 간주되는 주제들입니다.
  • 남중생 2018/06/05 17:30 #

    미군철수를 적극적으로 부정하지 않으면 지지하는거라고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