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신우비는 월나라의 유물? Post-Superfluous Things (9) 雜同散異 Superfluous Things

결론

우리가 살펴본 세 가지의 잘못 알려진 유물은 단순한 물체 이상이다. 세 경우 모두 원본의 존재 유무는 불확실하며,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미심쩍은 유래의 물건과 진위여부가 불확실한 문헌이 전부다. 어쩌면 보다 연구 가치가 있는 주제는 진위 여부에 기반한 주장의 전개양상일 것이다. 이 주장들은 자체적인 역사와 현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짓 주장도 지식을 생산해낸다. 예를 들어, 선덕로에 대한 근대적인 연구 및 감상 전반은 신뢰도가 떨어지는 문헌군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 문헌군이 아니었더라면 선덕로는 언제 어째서 생산되었는지와 무관하게 역사적 중요성과 미적 가치를 지녔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덕로의 등장 초기에 대해 선명한 그림을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우왕의 비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학술 행위가 현대 연구의 기반이 되어주었다. 대부분의 청대 금석학자는 신우비가 (송대나 명대에, 또는 이름 없는 "도사"[1]에 의해) 만들어진 위작이라고 지적했고, 의심 많은 20세기 학자들 중 특히 전통이나 미신에 기댄 역사 학설을 쓸어내는데 관심이 있는 이들은 위작설을 따랐다. 최근의 재평가에서는,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유물과 명대 사본 및 탁본을 비교한 결과, 학계에서 널리 수용되지는 않더라도 참신한 주장을 냈는데, 비석이 후대의 위조가 아니라 기원전 5세기 월나라(越)의 유물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이것을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으로 꼽을 수 있게 되었다. 1986년에 이뤄진 조사에 따르면, 원래의 비석에서 몇 조각만이 남아있을지언정, 송명대에 신우비를 홍보한 이들의 노력이 아니었더라면 이 비석 조각의 존재와 비문 전체는 영영 묻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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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나라 때 쓰인 서령기(徐靈期, d. 474)라는 인물에 대한 전기에 따르면, 서령기는 형악에서 15년 간 살면서 산을 샅샅이 살피던 중 천주봉(天柱峰) 정상에서 "올챙이 문자"로 쓴 우왕의 비문을 발견했다고 한다. (...) 이 이야기는 당나라 때까지 살아남아, 한유(768-824)는 시를 쓰기를, "도인"이었던 서령기와 달리 본인은 우왕의 비문을 보지 못했음을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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