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선덕제의 청동 향로 Post-Superfluous Things (8) 雜同散異 Superfluous Things

글로 배우는 도둑질: 선덕제의 청동 향로

옛 유물을 둘러싼 담론에서는 대개 다양한 문헌 간의 복합적인 상호작용, 위조된 주장, 불확실한 지위에 놓인 물건을 전형적으로 볼 수 있었으나, 보다 근년에 만들어진 유물의 경우에도 유사한 현상이 일어났다. 선덕 연간의 청동 그릇(대부분이 작은 향로)은 16세기 말, 즉 선덕 연간으로부터 한 세기 반 만에 가장 인기있는 수집품으로 손꼽히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선덕 연간에 만든 것이 그 중에 몇 개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의구심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선덕로(宣德爐)는 그 제도와 공예로 인해 신성시 되다시피 하였다. 진품 선덕로를 식별할 수 있다는 것은 두 가지 가정에 기반해있었다. 첫 번째는 선덕제의 명에 따라 특정 청동 그릇 세트가 주조되었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선덕로를 묘사하는 문헌 자료를 믿을 수 있다는 가정이었다. 선덕로가 주조되었다는 당대의 근거가 없으므로 첫 번째 가정은 증명할 수 없다. 선덕로가 최초로 골동품 감정 문헌군에 언급되는 만명(晩明) 시기에, 선덕로는 몹시 인기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출처는 불분명했고 시중의 많은 제품이 위조품이라고 의심받고 있었다. 이와 같은 양상이 변화하게 된 계기는 선덕제 연간의 황실에서 나온 문헌군의 등장이었다. 서로 연관성이 높은 세 편의 글이 묶여서 나왔는데, 가장 중요한 문서는 선덕정이보(宣德鼎彛譜)였다. 이 문서에 따르면, 섬라국의 왕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양의 구리 광석을 선물로 받은 선덕 황제는 황궁과 수도 및 지방에서 다양한 관청에서 사용할 수 천 개의 청동 그릇을 만들도록 명했다.


여기서 문제점은 모두 (최초의 선덕로 수집 붐이 일고 난 뒤인) 17세기 후반에 만든 위조문서였다는 것이었다. 이 자료에 대한 몇몇 문제점이 지적되었음에도, 미술사학자들은 청동기 연구를 위한 자료로 계속해서 활용해왔다. 그러나 이 문헌군이 위조라는 근거는 무수하다. 폴 펠리오(Paul Pelliot)가 처음으로 여기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였는데 이 기사는 오랫동안 무시되어왔다, 이 기사에서 펠리오는 몇 가지 역사적 불합치 사항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보다 최근에 울리히 하우스만(Ulrich Hausmann)도 비판을 제기했는데, 기록에서 언급한 수량의 청동기를 만들기에는 마찬가지 기록에서 언급한 구리 광석의 양이 부족하다고 주장하였다. 필자는 이와 같은 결론을 지지하고 문헌군의 출현 시기가 청나라 초기라는 것을 더 정확히 집어낼 수 있는 문헌적 근거를 추가로 제시할 것이다. 

첫번째 근거는 소극적 근거다. 다시 말해, 명나라 초기의 그 어떤 기록에서도 선덕로의 제작이 언급되지 않는다. 다른 무엇보다도, 조정에서 일어난 사건을 매일 기록한 명실록에 기록이 없다. 명실록이 완벽한 기록은 아니지만, 이러한 사안이 완전히 생략되었다면 놀라울 따름이다. 대량의 원자재와 노동력이 투입되었을 뿐 아니라, 수 많은 새 제기를 주조하고 헌 제기를 대체하는 일은 분명 기록이 되었을 법 하기 때문이다. 특히, 명 태조는 국가 제례를 위한 그릇은 청동이 아니라 도자기 그릇이어야 한다고 명령을 내린 바가 있다. 이와 같은 선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 했다면 분명 논의가 있었을 것이고 기록에 남았을 것이다. (추가적으로, 이때 만든 청동 그릇은 몇 종류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기 그릇의 일부는 도자기, 일부는 금속제로 뒤섞인 세트가 생겼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명실록을 보면, 이 사업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날짜로부터 몇일이 채 되지 않아 선덕제가 공부상서에게 백성의 물자를 낭비하는 사업을 벌이지 말라며 한참 잔소리를 한 것을 옮겨적어 놓았다.  


선덕정이보(宣德鼎彛譜)는 외국을 언급할 때 특히 오류가 많다. 주장에 따르면, 사용된 구리의 대부분이 섬라(暹羅)에서 왔다고 하나, 실록과 다른 기록 상의 섬라국의 조공품 목록에는 금속 광석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선덕정이보 상에서 섬라왕은 자가만애(刺迦滿靄)라고 불리는데, 이 이름은 필자가 다른 기록에서 본 바가 없다. 당시 아유타야 왕국의 지도자는 보롬마라차 2세(치세 1424-48, 한문 표기는 삼뢰파마랄찰뢰三賴波摩剌扎賴)였다. 펠리오는 외교적으로 불가능한 기록을 하나 더 언급한다. 선덕정이보는 구리의 일부가 하란(賀蘭=荷蘭)에서 왔다고 주장하지만, 1590년대까지 중국은 네덜란드와 접촉이 없었다. 더욱이 1579년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기 전의 네덜란드를 나라로 부르는 일은 드물었다. 이와 같은 오류는 위조 행위가 1600년 이후의 시점에 이뤄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보다 더 정확하게 짚을 수도 있다. 펠리오가 선덕정이보를 위서라고 진단한 것은 선덕정이보의 중요한 서문을 썼다는 항원판(項元汴1525-90)에 대한 기사에서였다. 이 서문이 1624년에 쓴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항원판이 이를 썼을리도 만무할 뿐더러 이 서문이 당대에 쓰였을 리도 없다. 1620년대에 이 서문을 읽으면서 항원판이 30년 전에 죽었다는 것을 모를 지식인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적어도 서문은 1624년 보다는 한참 뒤에 위조된 것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강력한 증거는 이 사업에 동원되었다는 일꾼 중에는 명나라 수도 남경의 금속 주조국, 고주국(鼓鑄局)에서 나온 일꾼도 있었다는 것이다. 고주국은 원나라 때 설립되었다가 명나라 때는 없었다. 그리고 청나라 때 재설립되었다. 이 근거와 항원변이 사후에 썼다는 서문의 연도를 조합해보면, 선덕정이보를 포함한 문헌군은 청나라 때 만들어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 문헌군이 전부 후대의 위조라는 결론에서부터 다시 역추론 해보면, 선덕로라고 주장된 유물의 진위 검증이 한 층 더 복합적이라는 사이 드러난다. 풍방이 신우비에 대한 송대 기록을 조작해냈듯이, 선덕로를 둘러싼 문헌군은 이미 알려진 물건에 대해 새로운 주장을 펼쳤다. 이 문헌군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이미 많은 "선덕" 향로가 시중에 풀려있었지만, 동시에 더 많은 수량이 생산되고 있었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선덕" 향로 중 상당수가 청대에 나온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문헌군은 "진품"에 대한 특정 기대치를 형성하기 위해 만든 것일 수 있다.[1] 어쩌면 한 제조업자가 만드는 특정 디자인의 선덕로를 더 많이 팔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수도 있다. 물론 그 이후로는 다른 제조업자들도 각자의 디자인을 문헌이 소개한 기준에 맞췄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진위 검증 행위가 비록 가짜 검증이더라도 현존하는 유물에 대한 미술 시장의 태도를 바꾸는데 일조했을 뿐 아니라, 물건 그 자체를 생산하도록 유인했을 수도 있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진위 검증은 특정 재화의 가치를 높이고 수요를 창출하는 일종의 홍보가 되는 한편, 감정 행위는 소비의 한 부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상업적 생산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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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明) 나라 선덕(宣德) 연간에 강서성(江西省) 경덕진(景德鎭)의 관요(官窯)에서 만든 유명한 향로인 선덕로(宣德爐)의 빛깔은 밤색〔栗色〕, 가지 껍질색〔茄皮色〕, 팥배나무색〔棠梨色〕, 갈색(褐色), 장경지색(藏經紙色)의 다섯 등급으로 나누는데, 그중 장경지색을 최고로 친다고 한다. 장경지(藏經紙)는 밀납을 먹여 광택이 나는 짙은 황색(黃色)의 견지(繭紙)인데, 장경(藏經)이 많기로 유명한 절강성(浙江省) 금속사(金粟寺)의 장경이 이 종이에 쓰여졌기 때문에 장경지라 부른다.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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