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문석 or 석문? - 조선의 경우 (3) 雜同散異 Superfluous Things


3. 문석일까? 석문일까?

그런데 정말 의미심장한 것은 낭선군의 "금석문 서첩"에 허목이 달아준 서문입니다.

이 서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 낭선군이 형산 신우비를 가져온 내력을 설명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해서,
2) 조선의 유명한 금석문 사례들을 제시한 다음,
3) 시대에 따라 글씨도 변하고, 역대 중국도 시대 별로 새로운 서체가 개발되었기 때문에, "초서" 같은 비교적 최근에 발명된 서체도 옛 성현들의 글씨에서 내려온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이치와 유풍 만은 그대로라는 거죠. 

공자(公子) 낭선군(朗善君 이우(李俁))은 우리 선조대왕(宣祖大王)의 친손자이다. 존귀함으로 자처하지 않아 거처와 의복이 일반 선비와 같았으며, 문묵(文墨)과 고사를 매우 좋아하였다. 일찍이 대국(大國)에 빙문(聘問) 갔을 때에 지금 비록 문헌이 파괴되어 없는 것이라도 옛사람이 남긴 글씨를 널리 구하여 형산 신우비문(衡山神禹碑文) 77자를 얻었는데, 용과 뱀 같은 괴이하고 신비한 모양을 볼 수 있으니, 공자가 서도(書道)에 매우 박식(博識)하다 할 수 있겠다.
또 우리나라 명인들의 글씨로서 산비(山碑), 해갈(海碣), 능침(陵寢)과 여러 사우(祠宇) 및 부도(浮屠)의 고적과 고금 분묘(墳墓)의 금석문 백여 첩(貼)을 구하여 보았다. 그중에 오래된 것으로는 신라의 김생(金生)과 최 학사(崔學士 최치원(崔致遠))의 글씨로, 지금까지 천여 년 동안의 것들이고, 거리가 먼 것으로는 묘향산(妙香山)운문사(雲門寺)지곡사(智谷寺)의 비문으로, 모두 천 리 먼 곳에 있는 것들이다. 이 가운데 인각비(麟閣碑)흥법비(興法碑)백월비(白月碑)는 가장 오래되고 먼 것으로, 모두 천 년 된 고찰에 있는 비문들이다.
대략 논해 보건대 글씨는 천지(天地)의 문장이므로 시대가 내려오면 글씨도 변한다. 옛날에 태호(太昊) 복희씨(伏羲氏)가 처음 문자(文字)를 만들었는데 삼대(三代 하ㆍ은ㆍ주) 시대에는 각기 글씨를 달리하였고, 예서(隷書)는 진(秦)나라 후기에 시작되었는데 위(魏)ㆍ진(晉) 이후에 또 변하여 해서(楷書)와 초서(草書)가 되었으니, 서체가 비록 창힐(倉頡)과 사주(史籒)의 글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 이치는 같다. 그러므로 엄정하고 공경하여 옛 서체의 유풍을 지닌 것도 있고, 자유분방하여 모방할 수 없는 것도 있으며, 또한 기괴하여 조화의 오묘함을 극도로 표현한 것이 거의 귀신의 경지와 같은 것도 있다. 크게는 해ㆍ달ㆍ별의 빛남과 같고, 넓게는 조수(鳥獸)ㆍ충어(蟲魚)ㆍ초목(草木)의 기이함과 구슬ㆍ꽃ㆍ열매의 아름다움을 여기에서 다 볼 수 있다. 훌륭하다, 공자의 예(藝)에 뛰어남이여. ‘예(藝)에 잘 노닌 자’라고 할 만하다.
금상(今上 현종) 8년(1667) 12월 하한(下澣)에 미수는 쓰다.

흐음... 그것 참 흥미롭네요.

저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혹시 초서 같은 글씨가 보이는 웅연의 석문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중립적인 발언인가요? 허목 선생님?


무술주행기(戊戌舟行記) - 1658, 효종 9년 6월
"문석(文石)이란 것은 웅연의 그늘진 벼랑의 돌 위에 초서(草書) 같은 글이 있는 것인데, 기이하여 분별할 수가 없었다. 전에 어떤 고을 원이 부수려 했으나, 글자가 깊이 새겨져서 고칠 수 없었다 한다."


내가 일찍이 웅연의 바위 벼랑에서 돌에 드러난 이상한 글씨를 보았다. 그 글씨는 괴기하기 이를 데 없어 혹은 세로로 혹은 가로로 뻗고, 혹은 합해지고 혹은 흩어지는 등 그 변화가 놀라웠다. 푸른 돌에 드러난 검은 글자가 이끼에 파묻히지 않았다. 숭정(崇禎) 말년에 고을 수령이 군데군데 쪼아서 몇 글자를 떼어 냈는데, 돌을 두께 2치가량 떼어 냈지만 돌의 글씨는 그대로였으니, 또한 기이한 일이다.
옛날에 포희씨(包羲氏)는 하도(河圖)를 받았고, 창힐(蒼頡)은 새의 발자국을 모방하여 글씨를 만들었으며, 헌원(軒轅)과 우(虞)ㆍ하(夏) 때는 상서로운 구름, 특이한 벼, 거북과 용의 상서(祥瑞)를 얻어서 운전(雲篆), 수서(穗書), 거북과 용을 본뜬 글자를 만들었다. 진(秦)나라가 일어나서는 고문(古文)을 없애고 예서(隷書)를 만들었으니, 예서는 하례들이 쓰던 글씨이다. 또 예서가 변하여 초서(草書)가 크게 유행하였는데, 해서(楷書)와 초서는 모두 성인(聖人)이 만든 것이 아니다. 초서는 또 왕자(王者)의 서동문(書同文)에도 들지 않았으므로 옛날 문헌에도 언급된 것이 없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것을 본 뒤에야 초서와 예서도 천지의 문(文)에서 나와서 이처럼 석문에 드러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금상 5년 갑진년(1664, 현종5) 6월 상순에 쓴다.

3년 전, 1664년에 웅연 석문에 대해서 하신 말씀이랑 굉장히 비슷해서 말이죠...


정리하자면,

1658년, 형산의 신우비문을 보기 전에 허목은 석문에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문석(文石)" 즉 글자 혹은 무늬가 나있는 돌멩이였죠. 

하지만 1664년, 허목은 신우비문을 손에 넣고 웅연의 "문석"은 어느덧 신비로운 "석문(石文)"이 됩니다. "돌에 새겨진 글씨"인 것이죠!! 
(그리고 64년 이후로는 꾸준히 "석문"으로 언급됩니다.)

"이와 같은 전설은 모두 신화적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돌 위에 어쩌다보니 글도 적혀있을 뿐이라는 식으로 언급한다. 몇몇 송대 문헌은 비문을 언급하지만 멋드러진 모양에 대해 상술할 뿐, 글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다. 남송대에 이르면, 금석학(金石學)의 영향이 커져서인지, 원래의 서사논리가 뒤집혀서 나오기도 했다: 비문은 글귀가 어쩌다보니 사물 위에 적혀있는 것이었다. 글은 사물에서 분리해 낼 수 있었고, 복제할 수 있었다.


우왕의 비문에서 비롯된 서체의 유풍이 전해져내려와 모습을 드러냈다는 웅연의 석문!
1664년, 신우비 탁본을 손에 넣은 허목은 이 석문이 병자호란과 명나라 멸망 사이 즉 "숭정 말년"(1630, 40년대?)에 나타났다는 사실도 전과 달리 강조합니다.

웅연은 장경대(長景臺)에서 아래로 15리 되는 연천 서쪽 지역에 있다. 내가 난리 이후 남쪽으로 돌아왔을 때는 석문이 드러난 지 이미 몇 년이 지난 뒤였다. 가서 보았더니, 푸른 돌에 검은 빛깔의 글씨가 무척이나 기괴하여 뭐라고 형용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일찍이 웅연의 바위 벼랑에서 돌에 드러난 이상한 글씨를 보았다. 그 글씨는 괴기하기 이를 데 없어 혹은 세로로 혹은 가로로 뻗고, 혹은 합해지고 혹은 흩어지는 등 그 변화가 놀라웠다. 푸른 돌에 드러난 검은 글자가 이끼에 파묻히지 않았다. 숭정(崇禎) 말년에 고을 수령이 군데군데 쪼아서 몇 글자를 떼어 냈는데, 돌을 두께 2치가량 떼어 냈지만 돌의 글씨는 그대로였으니, 또한 기이한 일이다.

ㅎㅎㅎ 과연 허목은 무슨 말을 하려던 거였을까요? 

"서양식 교육을 받은 외교관 조수명(曹樹銘)은 1951년, 맨해튼의 이스트 57번가에 있는 골동품 가게에서 놀라운 발견을 했다. 전국새(傳國璽)의 여덟 글자가 새겨져있는 묵직한 돌 도장을 구매한 것이다. 판매자는 미국인이었는데, 1294년에 전국새를 발견한 몽고인과 마찬가지로 그 값어치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 조수명은 진나라의 옥새를 재발견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발견을 싱가포르, 홍콩, 대만에서 홍보했다. 1951년은 (조수명이 공직에 몸담고 있던) 중화민국이 공산화된 중국본토를 떠나 대만으로 이주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기 때문에, 이 역사적인 분기점에 전국새라는 유물이 등장한 것을 정치적 징표로 해석하기란 탐나는 일이다." 

저로서는 "숭정 말년"이라는 "이 역사적인 분기점에 문석이라는 유물이 등장한 것을 정치적 징표로 해석하기란 탐나는 일"이네요.


게다가 단군세가를 저술하고, 삼번의 난에 조선 유민이 합류했다고 주장한 허목에게는 이 발견 장소 또한 적절했는데...

"발견 장소 또한 이상하게도 적절하였는데, 일부 밖에 안 지어진 국제연합 본부로부터 겨우 몇 블럭 떨어진 곳이었던 것이다. 중화민국이 UN 회원국이 될 수 있는지 여부는 위기에 처한 국가 정당성의 최후의 보루였다"

지역 주민이 "고미소"라고 부른 웅연(熊淵)은 "곰의 연못"이었기 때문입니다.


49성북(城北)에 청하(靑河) 있어
50하백(河伯) 三女 예쁘더라.
 
51압록 물결 헤쳐 나와
52웅심연(熊心淵)에 떠서 놀다.
 
53쟁그랑 패옥(佩玉) 소리
54아리따운 얼굴들,
 
55한고대(漢臯臺)로 알았다가
56낙수지(落水沚)를 생각하다.
        (이규보, 동명왕편 中)


동명(東明)이란 임금께서 / 帝號東明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 降自九玄
이 땅을 돌보시와 / 乃眷下土
거주를 정하셨네 / 此維宅焉
터 안 닦고 돌 안 쌓아도 / 匪基匪築
화성이 치솟았네 / 化城屹然
오룡차를 타옵시고 / 乘五龍車
하늘로 오르락내리락 / 上天下天
온갖 신이 인도하고 / 導以百神
뭇 신선이 뒤쫓았네 / 從以列仙
곰소[熊淵]에서 여인 만나 / 熊然遇女
펄펄 날 듯이 오락가락 / 來往翩翩
(최자, 삼도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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