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허목 영감의 임진강 유람선, 그리고 반가운 선물! - 조선의 경우 (1) 雜同散異 Superfluous Things

1. 허목 영감의 임진강 유람선, 그리고 반가운 선물!

1658년, 미수(眉叟) 허목은 뱃놀이를 갑니다.
사실 크루즈 투어 같은 셈인데, 마포에서 시작해서 임진강을 따라가는 코스였지요.
맨 마지막 코스로는 "문석(文石)"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돌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허목은 크게 개의치 않고, "그런 것도 있구나~"하고 지나갑니다.  

무술주행기(戊戌舟行記) - 1658, 효종 9년 6월
"문석(文石)이란 것은 웅연의 그늘진 벼랑의 돌 위에 초서(草書) 같은 글이 있는 것인데, 기이하여 분별할 수가 없었다. 전에 어떤 고을 원이 부수려 했으나, 글자가 깊이 새겨져서 고칠 수 없었다 한다."


이후 1660년 허목은 예송논쟁에서 송시열과 싸우다 패하고, (동해) 삼척의 부사로 좌천됩니다.
그러다 1662년에 사퇴하고...;;
경기도 연천군으로 낙향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이듬해 해외여행을 다녀온 친구 하나가 허목을 찾아옵니다.

연행사로 청나라를 다녀온 낭선군 이우가 선물도 사들고 온 것입니다.
오, 형산 신우비 탁본!!


이 늙은이가 동해에서 돌아온 다음 해(1663년)에 왕손 낭선군(朗善君 이우(李俁))이 형산신우비를 보내왔는데 그 글씨는 천지의 조화를 모사하여 새가 높이 나는 듯, 들짐승이 빠르게 달리는 듯, 용이 승천하는 듯, 호랑이가 표변하는 듯[1],각양각색의 신령스럽고 상서로운 모습에 찬란히 빛나고 위엄이 있으니 필력으로 모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2], 복희나 황제의 서체와도 같지 않다.
옛 기록에 하후씨(夏后氏)가 〈형사전(形似篆)〉을 지었다고 되어 있다. 홍수가 한창 폐해를 입혀 사람과 짐승, 귀신이 서로 뒤섞이게 되었는데 우(禹) 임금이 산을 뚫어 물길을 바다로 터서 구주(九州)를 개척하였다. 그러고는 고산(高山)과 대천(大川)을 표시하여 구역을 정하고 솥을 주조하면서 괴물의 형상을 새겨 간괴한 것들을 모두 드러내니[3],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해로운 것들을 멀리 피하여 편안히 살 수 있었다. 이때에 상서로운 낙서(洛書)를 얻어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서술하고, 조적서와 가화서를 변형하여 형산의 비석에 새겨 세우니, 이 또한 사물을 본떠 만든 문자이다.[4] 성인의 자취가 이제 4천여 년이 지났다. 그간에 창려(昌黎 한유(韓愈))의 구루산(岣嶁山) 시가 그 기이한 자취만을 어렴풋이 전하였을 뿐이고, 유몽득(劉夢得 유우석(劉禹錫))의 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이 비석이 세상에서 사라진 지가 오래되었는데 가정(嘉靖) 연간에 형산 악록봉(嶽麓峯)에서 이 비석이 비로소 발견되었으니, 성인의 문자가 세상에 드러나고 숨는 것은 천명(天命)이다.[5]《서경(書經)》 우공편(禹貢篇)에 민산(岷山)의 남쪽에서 형산에 이른다고 하였는데, 《지리지(地理志)》에 형산은 장사현(長沙縣) 구강(九江)의 서쪽에 있고 구루산은 형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별개의 봉우리라고 하였다.
왕손이 고문을 무척 좋아하여 지난해 연경(燕京)에 사신 갔다가 이것을 구하였는데 이 늙은이가 복희와 황제의 고문을 제법 안다고 여겨 보내와 자문을 구한 것이다.

하후씨가 수토(水土)를 평정하고는 사물을 본떠 글자를 만들었는데 이 글씨는 기이하면서도 바르고 장엄하여 산만하지 않다. 《사기》에 “우 임금은 몸이 바로 척도이고 목소리가 바로 음률이며, 왼손은 준승(準繩)이고 오른손은 규구(規矩)이다.” 하였는데, 그 글씨 또한 규구가 있고 준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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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새가 날개짓하며 붕새가 머무르고 호랑이 이무기가 뒤엉킨듯" (鸞飄鳳泊拿虎螭)

[2] "몇몇 사람들은 우왕의 시대 이후에 등장한 지명 같은 시대착오적인 표현을 지적하며 비문이 위조품이라고 단언한데 비해, 다른 이들은 비문을 옹호하기를, 현대어역이 틀렸으며 우왕의 비문은 유물이자 태고적 글씨의 사례로서 가치가 있다고 했다. 게다가 워낙 태고의 글씨인 나머지 이를 현대 글자로 옮기려고 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3] "이중 가장 유명한 것은 상고시대에 우왕이 만들었다고 하는 9개의 솥(九鼎, 구정)이다. 구정은 통치 자격을 감별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4] "아래에는 전문(篆文)이 각각 용, 뱀, 초목의 모양이었다."

[5] "우리 문명의 존립은 신성한 유물에 달렸다(斯文所在眞有神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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