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하치 이야기... Post-Superfluous Things (5) 雜同散異 Superfluous Things

Bruce Rusk 교수님의 "Artifacts of Authentication: People Making Texts Making Things in Ming-Qing China"를 계속해서 번역합니다.
전 포스팅에 이어 계속 "우왕의 비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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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전설은 모두 신화적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돌 위에 어쩌다보니 글도 적혀있을 뿐이라는 식으로 언급한다. 몇몇 송대 문헌은 비문을 언급하지만 멋드러진 모양에 대해 상술할 뿐, 글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다. 남송대에 이르면, 금석학(金石學)의 영향이 커져서인지, 원래의 서사논리가 뒤집혀서 나오기도 했다: 비문은 글귀가 어쩌다보니 사물 위에 적혀있는 것이었다. 글은 사물에서 분리해 낼 수 있었고
[1], 복제할 수 있었다. 골동품과 고문자학에 관심이 많았던 유학자, 장세남(張世南)이 기록한 이야기가 여기에 해당하는데, 하치(何致)라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1212년의 신우비(神禹碑) 목격담이다. 신우비를 본 하치는 비문을 복제하자고 마음 먹는다. 하치는 이 탁본을 관리에게 바치는데, 관리는 비문의 중요성을 알아보았으나 하치가 모조품이나 무방한 비문을 가지고 속이려드는게 아닐까 우려해서 거절하였다.[2] 국가의 관심을 끄는데 실패하자, 하치는 구루산에 있는 악록서원(嶽麓書院) 뒷편의 바위에 50여 글자나 되는 비문 글귀를 옮겨새겼다. 비록 이 이야기는 비문의 내용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을 뿐더러, 내용을 해독할 수나 있었는지조차 말하지 않지만[3], 비석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비문을 다루며 복제하고 전파할 수 있는 요소로 언급한다.  

그러나 전파에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이 비문이 다시 언급되기까지는 상당한 세월이 흘러, 1534년에야 장사 태수(太守) 반일(潘鎰, 1521년 진사)이 악록서원 뒤에서 글이 새겨진 돌을 발굴해낸 것이다. 반일은 이것이 신우비의 비문과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듬해 장사부지(長沙府誌)에 비문의 사본과 함께 이 발견에 대한 보고를 실었다. (그림2) 장사부지는 하치를 언급하지 않았고 비문을 현대의 문자로 옮기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으며, "모두 옛 전서로 되어있었고 해독할 수 없었다"고 할 뿐이었다. 더욱이 이 비문의 길이는 77자로, 하치가 말한 50여 글자가 아니었다. 한편, 반일은 하치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알지 못한 채(그러니까 신우비의 복제품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하치가 비문을 새긴 자리에서 이를 발견하였다. 1534년 이전에 하치의 탁본을 베낀 사본이 없는 이상, 반일이 발견한 비문의 정확한 유래도 알 수 없다. 

▲그림2. 장사부지(長沙府誌)의 대우비도(大禹碑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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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 행동(글)과 사물/자연물(돌)을 분리해내는 일은 이후에도 많은 중국 학자들을 괴롭혔다.

사람은 그저 사람이 아니니, 사물(物)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는가? 사물도 그저 사물이 아니니, 사람이 아닌 사물이 어디 있는가? 하물며 사람으로서 사물이 아닌 자가 어디 있으리오? 나는 영물이다. 사물도 조금은 나다. 나와 섞여있다. (사물이) 눈에 익어서 잊어버렸으니, (사물과 내가) 둘이라는 것을 모를 뿐이다.  
- 여곤(呂坤, 1536-1618), 1581년 견물(見物)에 붙인 서문


"이 물건이 도착하자 관료들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웅충이 말한대로 전국새가 맞을까? 그렇다면 이 옥새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 아니라면, 옥새와 옥새 관련 인물을 어떻게 해야할까? 벌을 주어야 하는가? 관공서의 도장을 위조하는 것과 거짓 보고서를 올리는 것 모두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였다. 반대로, 웅충이 말한대로 그 옥새가 1700년 된 유물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3] 옛 글자를 해독하지 못하거나 않았을 때, Clunas는 여기서 "의도"를 읽어냈다.
Rusk는 반대 의견을 펼친다.

"참칭자 진우량의 후손들은 황주(黃州지역에 흩어져 살았고 모두 비루한 사람들이다그 중 한 집안이 유(卣, 돔 모양의 뚜껑이 달린 술주전자)를 갖고 있었는데 그 제도가 몹시 오래되었다나의 벗 오원벽이 황주부(黃州府) 판관으로 부임했을 때채단(彩段한 단()을 주고 바꿔왔다좁쌀이 한 말(斗)이나 들어갈 만큼 크고안팎으로 황토색이 많은데간간이 붉고 푸른(朱翠색이 들어갔다금은동(金銀銅)으로 도금되어 있었다이미 변해 있었는데()자형 글자가 많이 새겨져 있었다. 참으로 상()대의 물건이다."

여기서는 유()에 새겨진 금문이 실제로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Craig Clunas, Superfluous Things, 99)


"옛 문자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는 옛 문자가 적혀있는 유물을 더 많이 찾으려는 욕망과 함께 했으며, 이에 따라 찾아낸 유물과 출판한 서적은 또 고문자학(古文字學) 지식 목록의 일환이 되었다."

(Bruce Rusk, "Artifacts of Authentication, 187-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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