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태고의 달인! Post-Superfluous Things (4) 雜同散異 Superfluous Things

Antiquarianism and Intellectual Life in Europe and China, 1500-1800의 6장, "Artifacts of Authentication: People Making Texts Making Things in Ming-Qing China"를 계속해서 번역합니다.
이번에는 진시황의 옥새, 전국새 이야기 다음에 나오는 "우왕의 비문" 이야기입니다.
-------------------------------------------------------------------------------------------


Primitive Perfection: The Inscription of Yu
태고(太古)의 달인: 우 임금의 비문

관료들은 전국새와 씨름하면서 전승과 그림을 인용했다. 이 전승과 그림이 보존되어 전해내려온 이유로는, 기이한 옛 유물에 대한 오랜 호기심을 들 수 있는데, 글씨가 써있는 경우는 특히 더 호기심을 끌었다. 옛 문자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는 옛 문자가 적혀있는 유물을 더 많이 찾으려는 욕망과 함께 했으며, 이에 따라 찾아낸 유물과 출판한 서적은 또 고문자학(古文字學) 지식 목록의 일환이 되었다.[1] 이 과정에서 가장 이목을 끈 이야기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옛 성왕(聖王)인 우 임금(손수 주조한 솥이 이후에 전국새로 대체되었다는 바로 그분이다[2])이 썼다고 하는 비문(碑文)이었는데, 이 비문이 발견된 곳은 오늘날 후난성 장사(長沙) 근처 형악(衡岳)이었다. 

이 유물을 둘러싼 전승은 우왕이 홍수와 맞서 싸울 적에 남긴 비문이 이 성스러운 산에 있다는 옛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오월춘추(吳越春秋)에 따르면, 우왕은 물을 다스리는 방법이 새겨진 옥 조각을 얻기까지 치수 사업을 완성할 수 없었다. 우왕이 형악서 세 달 동안 금식을 한 뒤에야 신의 심부름꾼이 옥 조각을 건네주었다. 이 전설은 우왕이 형악 어딘가에 비문을 남겨놓았다는 이야기로 발달했고, 어떤 이들은 형악 정상에서 서쪽에 있는 구루산(岣嶁山)을 비문의 위치로 지목했다. 송나라 때 쓰인 서령기(徐靈期, d. 474)라는 인물에 대한 전기에 따르면, 서령기는 형악에서 15년 간 살면서 산을 샅샅이 살피던 중 천주봉(天柱峰) 정상에서 "올챙이 문자"[3]로 쓴 우왕의 비문을 발견했다고 한다. 몇 년 뒤, 임방 (昉, 460-508)은 우왕이 쓴 또다른 비문을 언급하며, (선대에 요 임금이 남긴 비문과 함께) "사라지지 않고 상고시대 내내 남았다"는 주나라 초기의 기록을 인용했다. 이 이야기는 당나라 때까지 살아남아, 한유(768-824)는 시를 쓰기를, "도인"이었던 서령기와 달리 본인은 우왕의 비문을 보지 못했음을 탄식했다.  


岣嶁山尖神禹碑
구루산 꼭대기에 신우(神禹)의 비석, 
字青石赤形模奇
파란 글씨 붉은 돌에 기묘하게 서렸구나 
蚪蝌拳身薤倒披
올챙이를 펼쳐놓은듯 염교풀을 뒤집은듯[4]
鸞飄鳳泊拿虎螭
난새가 날개짓하며 붕새가 머무르고 호랑이 이무기가 뒤엉킨듯  
事嚴跡秘鬼莫窺
삼엄히 자취 감추니 귀신도 못 훔쳐봤고 
道人獨上偶見之
도인이 홀로 산을 타다 우연히 보았다네
我來咨嗟涕漣洏
나는 와서 탄식하고 눈물만 줄줄 흘리거늘 
千搜萬索何處有
천번 뒤지고 만번 찾아도 어디에 있단 말인가?
森森綠樹猿猱悲
빽빽하게 푸른 숲 속 원숭이만 슬피 우네


위 시에서 한유는 비문의 형태나 내용에 대한 추측했을 뿐인데도, 형악 지역을 방문하거나 이 지역의 역사를 서술한 이들이 자주 인용했다. 이는 사라진 유물의 공백을 상상 만으로는 메우지 못했으며, 이 유물을 직접 본다는 것은 초자연적 힘의 징표였다는 것을 가리킨다/암시한다. 이 전설은 이후에 더 신비롭게 덧칠되었다. 송나라 때 전해지던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에 나무꾼이 바위 표면에 용 두마리가 서린 모양을 보았다. 돌에 새겨진 비문이 별안간 밝은 빛을 내뿜기 시작했고, 나무꾼은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한 채 겁에 질려 달아났다. 그 후로 아무도 비문을 보았다고 하는 자가 없었다."

========================================================================================

[1] "옛 문자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는 옛 문자가 적혀있는 유물을 더 많이 찾으려는 욕망과 함께 했으며"
Rusk는 Clunas의 Superflous Things를 참조하고 있지만,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Clunas가 활용하지 않은 사료를 인용해 명나라 관료들은 사실 금문의 내용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
이 글을 처음 번역하기 시작하면서 Superfluous Things가 "80년대 책이라서 다소 오래된 감"이 있다는 것은 이런 맥락이었다.)

"그러므로 유물에 글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 그 물건의 가치를 더해준 것으로는 보인다새겨진 내용을 대체로 해독하지 못 했더라도 말이다엄숭(嚴嵩, 14801567)이 소유했던 1127 개나 되는 고동에 대한 카탈로그를 보면그중 어느 하나도 금문(金文)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상당히 학식 있는 명나라 엘리트들조차 금문에 쓰인 옛 글자를 못 읽었던 것으로 보인다금문이 중요하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었지만굳이 해독하지 않은 것이다."
(Clunas, Superfluous Things, 98)


[2] 솥
"
이중 가장 유명한 것은 상고시대에 우왕이 만들었다고 하는 9개의 솥(九鼎, 구정)이다. 구정은 통치 자격을 감별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덕이 있는 군주의 궁궐에 이 솥이 놓이면 무거워서 옮길 수 없었으나, 간악한 군주의 치세 때는 솥이 가벼워져 쉽게 치울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궁궐에 이 구정을 설치하는 것은 정부의 정당성을 상징했다. 한나라의 전설에 따르면, 앞선 진나라(221-206 BCE)의 시황제가 강에서 구정 중 하나를 건져 올리려고 했을 때 용이 나타나 방해함으로써 시황제의 간악함이 드러났다고 한다.

전근대의 역사학자들도 익히 알고있던 역사 속의 모순은, 정당성 계량기로써 구정을 대체한 것은 바로 진시황의 돌 도장이 되었다는 것이다."(중략)

[3] "올챙이 문자"
"전국새의 명문은 한문을 멋들어지게 재구성해서 새나 다른 동물의 모양이 되도록 만든 조문(鳥文, 조어문鳥魚文, 어문魚文, 용문龍文 등으로도 불린다)의 과장된 형태였다."

[4] 염교 (왜 올챙이랑 비슷한지 알겠지?)


핑백

  • 남중생 : 장물(長物), 그 이후의 연구. Post-Superfluous Things (1) 2018-04-18 22:53:39 #

    ... 거나 발견한 유물에 대해 위와 같은 질문을 어떻게 던졌으며, 누가, 어떤 근거로 판단을 내렸고,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를 묻고자 한다. 필자는 시황제의 옥새, 우왕의 비문(碑文), 선덕제(1426-35)의 청동 향로라는 세 가지 진품 감별 사례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이 셋은 각각 역사적 중요성이 있다고 주장되었다. 이 세 가지 ... more

  • 남중생 : 하치 이야기... Post-Superfluous Things (5) 2018-04-20 17:00:51 #

    ... 전 포스팅</a>에 이어 계속 "우왕의 비문" 이야기입니다. ------------------------------------------------------------------------------------------- 이와 같은 전설은 모두 신화적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돌 위에 어쩌다보니 글도 적혀있을 뿐이라는 식으로 언급한다. 몇몇 송대 문헌은 비문을 언급하지만 멋드러진 모양에 대해 상술할 뿐, 글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다. 남송 ... more

  • 남중생 : 허목 영감의 임진강 유람선, 그리고 반가운 선물! - 조선의 경우 (1) 2018-05-06 22:02:47 #

    ... 구루산(岣嶁山) 시</a>가 그 기이한 자취만을 어렴풋이 전하였을 뿐이고, 유몽득(劉夢得 유우석(劉禹錫))의 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이 비석이 세상에서 사라진 지가 오래되었는데 가정(嘉靖) 연간에 형산 악록봉(嶽麓峯)에서 이 비석이 비로소 발견되었으니, 성인의 문자가 세상에 드러나고 숨는 것은 천명(天命)이다.[5]《서경(書經)》 우공편(禹貢篇)에 민산(岷山)의 남쪽에서 형산에 이른다고 하였는데, 《지리지(地理志)》에 형산은 장사 ... more

  • 남중생 : 신우비는 월나라의 유물? 2018-05-11 00:55:39 #

    ... 우왕의 비문</a>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학술 행위가 현대 연구의 기반이 되어주었다. 대부분의 청대 금석학자는 신우비가 (송대나 명대에, 또는 이름 없는 "도사"[1]에 의해) 만들어진 위작이라고 지적했고, 의심 많은 20세기 학자들 중 특히 전통이나 미신에 기댄 역사 학설을 쓸어내는데 관심이 있는 이들은 위작설을 따랐다. 최근의 재평가에서는,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유물과 명대 사본 및 탁본을 비교한 결과, 학계에서 널리 수용되 ... more

  • 남중생 : 잡동사니(雜同散異) 항목의 포스팅 목록 2018-05-15 22:00:59 #

    ... 어쩌면 좋지? (pp. 181-184) 3. 1500년 발견된 진시황의 옥새, 그 결말은? (pp. 184-187) 신우비(神禹碑)4. 태고의 달인! (pp. 187-189) 5. 하치 이야기... (pp. 189-190) 6. 글이 안 읽히면 잠을 자는게 좋다 (pp. 190 ... more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