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지리적 신체의 또다른 이름, "지도 페티시" 인도차이나 ~Indochine~

이전 포스팅에 이어 국가의 지리적 신체에 대해서 계속 씁니다.
"지리적 신체" 개념을 언급하신 解明 님의 "사이비 역사학은 왜 문제가 되는가?" 포스팅에 붙여쓰는 두번째 글입니다.

티모시 브룩 교수님은 젊은 시절(1976년) 중국을 방문했다가 베트남을 통해서 귀국한 경험을 회고합니다.
중국 지도를 갖고 가려다가 국경에서 걸렸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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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페티시는 중국 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는데, 우리가 없었더라면 그 의미도 무효할 것이다.[1] 왕정 시대에는 군주의 신체가 페티시로 작용했고, 신성의 물리적 형체로 다뤄졌으며, 옥체에 해를 끼치는 것은 반란죄를 범한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왕정 시대를 넘어섰기 때문에 이 원시적인 아우라는 국가의 신체로 옮겨갔다. 왕은 영토를 조금 내어주더라도 아무도 그것을  신성모독이라 부르지 않았다. (영토를 내어주는 일은 왕의 아들딸이 결혼을 할 때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왕을 조각칼로 찌르기만 해도 가장 위험한 형태의 반란을 일으킨 셈이었다. 현대 국가는 조각칼에 상처를 입지 않는다. 그러나 고작 땅 한 뙈기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웃국가에게는 상처를 입는다. 한 뼘이라도 가져갔다가는 국가 정당성이 전부 흔들린다. 지도 상의 경계를 옮겼다가는 마찬가지로 모욕감을 느끼게 된다. 전국지도가 신성한 국가의 상징물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국가 보다 지도가 더 실물에 가까운 이상, 자신의 정당성에 대해 불안한 정권은 지도를 눈 밖에 둘 수 없는 것이다. 필자는 지도를 국경 초소에 남겨둔 채 남쪽의 덜 초조한 국가사회주의 체제로 향하는 수 밖에 없었다.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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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은 그저 사람이 아니니, 사물(物)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는가? 사물도 그저 사물이 아니니, 사람이 아닌 사물이 어디 있는가? 하물며 사람으로서 사물이 아닌 자가 어디 있으리오? 나는 영물이다. 사물도 조금은 나다. 나와 섞여있다. (사물이) 눈에 익어서 잊어버렸으니, (사물과 내가) 둘이라는 것을 모를 뿐이다.  


출처: Timothy Brook, Mr. Selden's Map of China, (New York: Bloomsbury Press, 2013).


덧글

  • 광주사태 설문조사 2018/04/13 23:56 # 답글

    백두대간이니 백두혈통이니 하는 것들도 마찬가지죠.
  • 남중생 2018/04/14 00:05 #

    네, 혈통이나 민족 같은 허상을 좇는 행위는 모두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 광주사태 설문조사 2018/04/14 07:55 #

    혈통이나 민족은 실존하는 것이죠.
    다만 왜곡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백두혈통은 신라김씨고 백두대간은 주민들의 실생활과 아무 연관이 없는 것으로 머리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죠.
    장백산에 한민족이 접한 것은 몇 백년 되지 않았습니다.
    고대에는 맥족과 백산흑수의 경계였는데 그 두 종족은 여진이 되었죠.
  • 광주사태 설문조사 2018/04/14 08:43 #

    남북관계가 한일, 한중 그리고 한월 관계와 다른 것은 같은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민족은 실존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는 당위가 생기고 그로 인해 긴장관계가 풀리지 않습니다.
    어느 쪽도 통합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통일을 버리고 공존을 지향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입니다.
    남북관계가 한일, 한중 그리고 한월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는 것이죠.
    그러자면 미군철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 광주사태 설문조사 2018/04/14 08:47 #

    삼한시대의 고려, 신라 그리고 백제는 통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가 없었어요. 그러나 신라말기의 왕씨고려, 견훤백제 그리고 신라는 다시 통일해야 한다는 당위를 가지고 있었죠. 한민족은 신라시대에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나 발해가 한민족이라는 주장은 엉터리죠.
  • 남중생 2018/04/14 10:52 #

    글쎄요. 저는 한일, 한월도 같은 민족이라고 봅니다.
    더욱이 통일을 해야한다면 말이죠.
  • 광주사태 설문조사 2018/04/14 12:37 #

    이북 주민들은 김일성민족이지 우리 민족이 아니라는 사람도 있고 세상에는 일반적이지 않은 특이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죠. 그러나 사회과학은 반례로 뒤집을 수 있는 자연과학과 다릅니다.
  • 남중생 2018/04/14 15:16 #

    제 생각은 과학적 사례가 되지 못합니다. 자연과학에서는 더더욱 그렇겠지요.
  • 나인테일 2018/04/14 02:52 # 답글

    1. 여전히 대통령, 총리 이하 고위공직자에 대한 테러 행위는 반란과 연계되어 처벌됩니다. '옥체'의 개념은 사라졌지만 이들이 수행하는 기능을 손상시켰다는 점은 같기 때문이죠.
    2. 영토를 할양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되는데 대체로 어떤 국가던 헌법과 그 이하 법에는 그런 근거가 매우 희박하니까요. 법적 근거 없는 행정 행위는 현대의 어떤 국가에서도 불가능합니다.

    둘 다 법치와 국민국가라는 관점에서 보면 매우 당연한 것이고 형태가 비슷하다고 해서 본질이 비슷하다고 보는 상상력이야말로 비합리적입니다. 그런 식의 비유라면 현대 컴퓨터가 인터넷에 접속하는 본질은 조상신의 만신전과 접신하는 행위이며 이는 컴퓨터 사이의 종교행위의 출발이라고 말해도 모순이 없어요.

    구조주의 철학은 다양한 형태 속에서 구조적 유사성을 끌어모아오는것엔 유능할지 모르지만 그 상관관계나 인과관계를 실제로 밝혀내는 능력은 상상력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려 실망스럽기 그지없죠.
  • 남중생 2018/04/14 12:08 #

    고위 공직자로서 왕의 “기능”과 민주 정부의 선출직 공직자의 “기능”이 같으니, 거기에 대한 공격도 같은 취급을 받는다... 이게 구조주의적 유사성 같이 들리네요. 왕의 기능을 손상시켰다는 이유가 전부였다면 페티시라고 부르지 읺겠죠.
    브룩 교수는 “일본에서는 천황을 때려죽이면 살인죄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반란죄에 해당한다.” 농담류의 말을 (보다 진지하게) 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 글에서 군주제 국가를 법치/국민국가라고 보고있다는 느낌을 받으셨나본데, 그랬다면 “원시적인 아우라”라는 표현을 쓰지 읺았을거라고 봅니다.

    영토할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르ㅡㅋ 2018/04/14 08:30 # 삭제

    지식 뽐내는척하면서 제 바닥 보이는거 보소
  • 남중생 2018/04/14 10:50 #

    제 블로그에 많은 분들이 소통하는 것은 제가 바라는 바입니다. 하지만 쓸데없이 비난하는 것은 자제를 바랍니다.

    더욱이 대화에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비아냥만 얹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 adsf 2018/04/14 10:01 # 삭제 답글

    댓글에 독도라고 한마디만 써도 싸움터 될듯
  • 남중생 2018/04/14 10:26 #

    동감입니다. 사실 본문에서 안 언급해도 들고 오는 분도 있고... 안 써도 써있는 셈이죠.
  • 광주사태 설문조사 2018/04/14 12:46 # 답글

    사드재인은 위안부합의를 재협상하는 동시에 김대중협정도 개정해야 합니다. 조금만 손보면 훼손된 독도영유권을 회복할 수 있죠.
    http://qindex.info/s.php?i=1695
  • 解明 2018/04/14 14:19 # 답글

    "아버지 두만을 살해하고 선우의 자리에 오른 묵특에게 흉노의 동방에서 힘을 과시하고 있던 동호가 시비를 걸어왔다. 동호 왕은 묵특에게 사자를 보내어 먼저 흉노의 보물로 알려져 있던 천리마를 달라고 했다. 묵특은 인접국과의 우의를 중시하여 그 말을 내주었다. 이에 우쭐해진 동호는 다음으로 묵특의 애첩 가운데 한 사람을 달라고 하였다. 도를 넘는 무례한 요구에 신하들은 모두 반대했으나 묵특은 "사람과 나라를 이웃하고 있는데 어찌 여자 하나를 아까워하겠는가?"라고 하여 애첩 또한 동호에게 주었던 것이다. 그에 더욱 동호 왕은 묵특을 깔보고 서진하여 흉노와의 사이에 있던 구탈지甌脫地의 할양을 요구했다. 묵특이 동호의 이러한 요구에 대해 군신들에게 상의할 때 어떤 이가 "그곳은 버려진 땅이라 주어도 좋고 주지 않아도 좋다."라고 답했다 한다. 그러자 묵특은 크게 노하여 "토지는 국가의 근본이다. 어떻게 이를 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며 전군에 호령하여 동호를 무찌르고 그 왕을 살해한 뒤 백성과 가축들을 빼앗았다."
    - 사와다 이사오[澤田勳]의 『흉노』에서

    유목민이지만, 옛사람들의 토지 인식이 어떠했는지 엿볼 만한 사례가 될까요?
  • 남중생 2018/04/14 15:00 #

    이거 흥미롭네요.
    그런데 결론이 "백성과 가축을 빼앗았다"인 것은 또 의아합니다.

    전근대 국가는 "영토"를 다스린 것이 아니라 영토 상의 "사람"을 다스렸다는 주장이 있고,
    또 전근대 영토관은 면적이라기보다는 점과 선에 가까웠다는 주장도 있죠.

    흉노의 사례에서 천리마나 애첩과 마찬가지로 영토는 그럴싸한 "빌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상대방이 어디까지 하나 보다가, (후견지명에 가깝게) 선전포고를 할 좋은 빌미로 삼는 것이지요.
  • 광주사태 설문조사 2018/04/15 06:53 #

    영토 타령은 구실이고 공격할 때가 되어서 공격했다는 설명이 그럴 듯하군요. 미제의 이번 시리아 폭격도 때가 무르익어 감행된 것입니다. 화학무기 타령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죠.
  • 광주사태 설문조사 2018/04/14 19:36 # 답글

    그런데 사실 지도는 역사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역사는 지도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죠.
    고려를 구성했던 맥족, 예족, 옥저 그리고 부여가 발해를 거친 뒤 여진이 되는 과정도 이 지도 한 장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먼산족들이 펄쩍 뛸 일이지요.
    http://qindex.info/s.php?i=4385
  • 남중생 2018/04/14 20:36 #

    물론입니다. 지리적 신체에 대한 다른 포스팅에서도 지도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 파파라치 2018/04/15 21:24 # 답글

    그런데 저런 식으로 해석하면 도대체 페티시가 아닌게 뭔지 궁금해 지네요. 예를 들어 국민 몇명 죽었다고(ex. 세월호)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닌데 전국민이 들고 일어나는 것은 국민의 목숨이 페티시의 대상이 되어서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 않나요?
  • 남중생 2018/04/15 21:42 #

    우선 빠른 답변을 드리자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사람"이 페티시로 작용한다는 논의도 물론 있습니다.

    배명훈 작가의 다분히 정치적인 소설, "고양이와 소와 용의 나라로부터"에서는 이집트의 고양이 숭배나 인도의 소 페티시와 마찬가지로 데모크라시라면 사람과 민의를 숭배해야 하지 않나 하는 문제제기를 합니다. 설령 그게 페티시일지언정 말이죠.

    말씀하신대로 수학여행을 간 학생 300여명이 일시에 사망한 것은 나라의 "기능"에는 미미한 영향을 줍니다. 하지만 민주 사회의 상징으로서 "사람"의 가치를 볼 때는 그렇게 말할 수 없겠지요.
  • 남중생 2018/04/15 21:45 #

    "페티시가 아닌게 무엇이냐"라는 질문도 유의미합니다.

    "우리는 모두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는데, 우리가 없었더라면 그 의미도 무효할 것이다."
    여기에 16세기의 사례를 링크로 걸어놓은 것에서도 보이듯이, 페티시적 의미부여는 거의 범-인류사적 현상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다만 개인적인 단계에서 페티시로 작용하는 것이 있고, 국가적 수준의 페티시가 있겠죠.

    앞선 "베트남의 지리적 신체" 포스팅에서도 유사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 파파라치 2018/04/16 15:13 #

    말씀하신대로 수학여행을 간 학생 300여명이 일시에 사망한 것은 나라의 "기능"에는 미미한 영향을 줍니다. 하지만 민주 사회의 상징으로서 "사람"의 가치를 볼 때는 그렇게 말할 수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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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징으로서의 가치, 그것이 본문에서 말하는 페티시가 아닌가요? 국가의 기능에는 별 영향이 없는데 단지 상징이라서 신성불가침의 문제가 된다는 점에서 국토와 국민의 생명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아무것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가치있는 것"이 페티시로 환원될 수 있다면, 특정 현상을 페티시로 설명하는 것은 무의미하게 되겠지요. 왕의 신체부터 국민의 목숨까지 말이죠.
  • 남중생 2018/04/16 16:58 #

    네, 제 말뜻을 오해하신 것 같은데 페티시가 맞다는 뜻이었습니다.
    모든 가치있는 것이 페티시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겠죠. 하지만 누구나 알게 모르게 가치부여(페티시화)를 하고 있으며, 딱딱한 껍데기와 실물 만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지적은 생각할 점이 있다고 봅니다.
  • 파파라치 2018/04/16 18:20 #

    네 그런 의미로 이해했습니다만, 사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를 굳이 페티시라는 자극적인 단어로 표현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트랙백하신 원글하고는 뉘앙스가 다른것 같기도 하고요.

    여튼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남중생 2018/04/16 19:30 #

    아아, 제가 그 점에서 섬세하지 못했군요.
    물론 "페티시"는 "집착에 가까운 성적취향"이라는 의미로 널리 쓰입니다.
    이것은 영어나 한국어나 마찬가지죠.

    하지만 영어로 말할 때는 물론 성적인 의미까지 넓게 아우르면서, "물신숭배"라는 원래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조심하지 못한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잘 읽어주셨다니,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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