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박 화포장, 혹은 벨테브레이의 이야기 - I want to Believe (2) 용틀임하는 동아시아 근세

박 화포장(朴火砲匠)은 훈련도감의 군졸로 위인은 성실하였지만 얼굴이 매우 못생겨서 궁상이라고 조롱을 받았다.

그는 술을 퍽 즐겼으나 가난하여 마음대로 취할 도리가 없었다. 언제나 군문(軍門)에서 요미(料米)[1]를 타면 곧장 술집으로 달려가 술 한 잔을 받아가지고 혼자 골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꽉 잠그고 몇 날 며칠을 새우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의 아내가 수상하게 생각하여 하루는 문구멍으로 들여다보니, 처음엔 두 손을 모으고 엄숙히 앉아 술을 앞에 놓고 한참이나 음미하며 차마 들고 마시지 못하는 것이 마치 사랑하는 여인을 대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껄껄 웃고는 풀쩍풀적 뛰어가서 두 손으로 술대접을 받치고 쭉 들이키는 것이었다. 안주도 먹지 않고 흥치며 일어나서 무릎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빙빙 돌다가 금방 돌아와서 몸을 구부리고 동이에다 병에 물을 기울여 쏟듯 가는 물결을 일으키며 마신 술을 토해내는데 먼저만큼 동이에 차서 술이 조금도 축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윽고 다시 아까처럼 마시고 토하기를 수십 번이나 반복하니 해가 저물고 밤이 이미 새벽이었다.

[1] 급료로 받는 쌀

(동야휘집 및 청구야담에 실린, 박 포장 이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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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1년도 더 전에 박 포장(朴砲匠)과 거대 뱀, 그리고 용골? 포스팅에서 To be continued라고 해놓고서는 매듭을 안 지었지요? 

그런데 사실 이 거대 뱀과 구슬 기담에만 빠져있는 나머지, 제가 한 가지 빠뜨린 사실이 있죠? 
이야기 첫머리 부분에서 박포장이라는 인물을 설명하면서, 술을 즐겨마셨는데 정작 술을 한 잔만 사와서는 골방에 들어가 술과의 밀회?!를 하는 기이한 습관... 박포장의 이런 애주가? 알코홀릭? 같은 기이한 행각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이번에도 역사적인 창작물을 참고 삼아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아요~

▲고일권 작가님의 웹툰 칼부림, 9화 中 항왜촌


"처음엔 두 손을 모으고 엄숙히 앉아 술을 앞에 놓고 한참이나 음미하며 차마 들고 마시지 못하는 것이 마치 사랑하는 여인을 대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박 포장은 임진/정유왜란 때 조선에 항복하고 정착한 항왜(降倭)였던걸까요?
그것도 가능하다고는 보지만, 저는 조금 다른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1627년 동중국해의 템페스트 - 어느 아란타인의 기이한 모험...에서 적륜 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지구를 반바퀴 돌아 조선을 집으로 삼은 박연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그가 기록을 남겼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개인적으로 박연의 이야기가 연구와 더불어 영화같은 매체를 통해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의 일생이 유명한 하멜보다 실은 휠씬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또한 덧글에서 다음과 같이도 말씀하셨지요.

"어쩌면 박연은 일기같은 기록을 남길 정도의 글을 쓸 줄 몰랐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하멜은 서기였지만 벨터브레이는 포수였던 것 같고...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이름 정도나 간단한 인스트럭션 정도가 아마 최대한이었을 겁니다.

모르죠, 하멜 일행을 처음 조사하러 갔을 당시의 기록을 보면 조선에서 살면서 한글은 배웠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저도 정말 찾아내지 못한 그의 기록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네, 그러니까 제 잠정적인 100% 뇌피셜 결론은 이겁니다.

박씨 성을 가진,
얼굴이 이상하게 생긴,
훈련도감의,
화포장이,
기이한 술버릇을 가졌는데,
(조공) 무역선에 타고 가던 도중,
풍랑을 만나 섬에 표착했다라...

석재고 등의 문헌에 보이는 박연 관련 기록 이외에, 이 "기담"이야말로
"찾아내지 못한 박연의 기록" 아닐까요?


앗, 물론 동야휘집과 청구야담은 19세기에 편찬된 책입니다.
이 기록이 벨테브레이/박연이라는 인물의 행적에 대해 무언가 더 알려준다기 보다는 
조선인들이 그를 어떻게 받아들였고, 기억했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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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가톨릭 미사의 의례가 변형되어 동아시아의 문화로 정착했다는 또 하나의 가설에 대해서는, 필리핀 역사학자 Ambeth Ocampo의 다음 글 참조.

"2008년 1월, 필자는 우라센케(裏千家) 유파의 제15대 대종장(大宗匠), 센 겐시츠(千玄室) 박사님께서 말라카냥(Malacañang) 대통령 궁에서 글로리아 마카파갈-아로요(Gloria Macapagal-Arroyo) 전 대통령에게 어떻게 차를 따르는지 구경하는 영광을 입었다. 작은 헝겊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다가 다완을 닦아내는데 쓰이는 모습, 차를 다완에 따르는 경건한 모습, 차를 마신 뒤 다완을 시계방향으로 옮기는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느낀 바가 있었다. 가톨릭 신부가 포도주 축성 전, 도중, 이후에 성작(聖爵)을 다루는 방식이 연상된 것이다. 

필자는 센 박사님께 다도 예절이 가톨릭 전례와 유사한 이유를 여쭈었다. 그러자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일본인들은 예의바르게 기겁했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센 박사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대답하시기를: "선생님의 말이 정확합니다. 그 이유는 역사 상 다도의 대가들 중에 기독교도가 여럿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중 한 분은 다카야마 우콘으로, 종교적 믿음 때문에 1614년에 마닐라로 추방당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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