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일본 다도(茶道)는 가톨릭 전례를 모방한걸까? 용틀임하는 동아시아 근세

필리핀 역사학자 Ambeth Ocampo의 Luzon jars in Japanese tea ceremony를 번역합니다.

미리 말해두자면, 저는 "전통"의 신화를 믿지 않습니다. 전통을 계승하는 "장인"이 한 말이라고 해서 반드시 숨겨진 진실이 있다고 간주하는 태도는 지양합니다. 

제대로 된 역사연구는 문헌 조사와 고고학적 성과를 통해 이뤄져야 할 것이며, 
다만 흥미롭게 생각해볼 방향을 제시한다는 정도로만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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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손의 냄새를 맡는... 히데요시 (NHK 대하 드라마, 사나다마루 中)


일본 다도와 루손 항아리

2017년 10월 18일


외국인이 느끼기에 일본과 일본 전통은 겉모습부터 독특하고 알쏭달쏭하며 말그대로 "낯설다." 필자의 어머니가 TV로 스모 경기를 몇 시간이나 보고나서 어느날 "이 경기는 어떻게 해야 이기는거니?"라고 필자에게 물은 적이 있다. 필자는 어머니께 답을 드릴 수 없었는데, 스모를 즐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9살 때 처음으로 다도 행사를 체험한 뒤로 줄곧 필자의 사랑은, 쓴 맛 나는 걸쭉한 녹색 액체 보다도 이를 넘기기 쉽도록 주는 아기자기하고 색을 입힌 화과자를 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우아하고 느리게 몸을 움직이는 다도의 과정을 즐기게 되었다. 2008년 1월, 필자는 우라센케(千家) 유파의 제15대 대종장(大宗匠), 센 겐시츠(千玄室) 박사님께서 말라카냥(Malacañang) 대통령 궁에서 글로리아 마카파갈-아로요(Gloria Macapagal-Arroyo) 전 대통령에게 어떻게 차를 대접하는지 구경하는 영광을 입었다. 작은 헝겊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다가 다완을 닦아내는데 쓰이는 모습, 차를 다완에 따르는 경건한 모습, 차를 마신 뒤 다완을 시계방향으로 옮기는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느낀 바가 있었다. 가톨릭 신부가 포도주 축성 전, 도중, 이후에 성작(聖爵)을 다루는 방식이 연상된 것이다. 

필자는 센 박사님께 다도 예절이 가톨릭 전례와 유사한 이유를 여쭈었다. 그러자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일본인들은 예의바르게 기겁했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센 박사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대답하시기를: "선생님의 말이 정확합니다. 그 이유는 역사 상 다도의 대가들 중에 기독교도가 여럿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중 한 분은 다카야마 우콘으로, 종교적 믿음 때문에 1614년에 마닐라로 추방당했죠." 필자는 한때 다카야마 하면 일본 음식점 밖에 몰랐는데, 옛 파코(Paco) 기차역 앞 로터리에 서있는 동상과 그 이름을 연상하게 되었다. 다카야마 우콘은 현재 성인으로 시성되기 직전 단계에 있다.

▲키리시탄 다도....

센 박사님께서는 필자에게 그 날 또다른 정보를 던져주셨다. 박사님의 고향 교토에는 루손츠보(루손 항아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16세기 일본이 루손 섬으로부터 애지중지하며 수입한 여러 예스러운 항아리 중 하나인 것이다. 일본 다도가들은 루손 항아리를 아꼈는데 찻잎을 오래도록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는 기능 뿐만 아니라 소박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센 박사님과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필자는 루손 항아리에 대한 언급을 추적해나갔다. 예수회와 프란시스코회의 일본 관련 옛 기록, 또 (1596-1597 연간에 필리핀을 방문한) 이탈리아인 프란체스코 칼레티부터 1609년 멕시코에서 "필리핀 열도 이야기"를 출간한 안토니오 데 모르가에 이르기까지 민간인 기록을 찾아냈다. 두 기록 모두 루손에서 헐값에 구입한 이 질박한 항아리가 일본에 가면 고가에 팔린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 저것은!! 루손의 항아리!
 (花の慶次, 125화 - 루손의 항아리 中)

1594년, 히데요시 정부에 사신으로 파견된 프란시스코회 신부 페드로 바우티스타(Pedro Bautista, 이후 성인으로 시성)는 자신을 파견한 필리핀 총독 고메스 페레즈 다스마리냐스(Gomes Perez Dasmariñas)에게 보고서를 썼다. 보고서에서 바우티스타 신부는 루손츠보를 귀하게 여기는 히데요시와 그 수하들을 위해 이 항아리를 모아서 선물해야 한다고 요청하였다. 루손츠보가 너무 중요해진 나머지 히데요시는 루손츠보 무역을 독점하려고 했다. 그러므로 루손츠보는 이른 시기의 필리핀-일본 외교 관계에 족적을 남긴 것이다. 

한때 루손츠보는 다도 의식에 핵심적인 부분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드물게 쓰인다. 우지(宇治) 지방에서 교토의 센 가문으로 차를 배달하는 연례 행사 때 예외적으로 루손츠보를 열었다가 밀봉하는 의식을 한다. 루손 항아리를 들고 행진을 하고, 비단실과 비단 덮개로 장식되고, 이름이 붙었으며, 확고한 신분, 부, 문화, 권력의 상징으로 차 기록에 남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친구들이 필자에게 왜 그렇게 일본을 "마음의 고향" 마냥 좋아하는지 물으면, 필리핀-일본 관계에 대한 대부분의 역사 연구는 2차 세계 대전에서 양국의 전후 복구까지의 20세기에 치중되어 있어 17, 18세기는 젊은 필리핀 역사학자들이 발굴할 공터로 남겨져있다고 설명한다. 루손 항아리는 수년간 필자를 매혹해왔는데 때때로 마닐라의 골동품 가게에서 이것들을 마주치기 때문이다. 루손 항아리에 대한 전문적인 관심은 다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데, 이 항아리들을 둘러싼 이야기가 히데요시 시대의 일본상(象)을 그려내고 마닐라를 중요한 무역항으로 조명하기 때문이다. 비로소 세계화의 시작으로 비춰지는 마닐라-아카풀코 갈레온 무역(1565-1815)에 대한 연구서도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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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3인칭관찰자 2018/03/31 23:46 # 답글

    이 글을 보니 루손과 일본을 드나들던 전설적 무역상인인 루손(또는 나야) 스케자에몬이 생각나네요. 루손에서 싸구려 항아리들을 잔뜩 사들여 일본에 싣고 와 히데요시와 그 부하들에게 비싼 값에 팔아 폭리를 취하던 사람이였던지라.
  • 남중생 2018/04/01 07:02 #

    루손츠보를 검색해보면 루손 스케자에몬이 상단에 뜨더군요 ㅎㅎ “문화”가 만들어지는데에는 여러 요소가 어우러지는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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