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그러나 청동북이 안 중요한 것도 아닌 이유 [청동북]

Liam Kelley 교수님의 Vịet, “Chinese,” Savages and Bronze Drums를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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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인, "중국인", 오랑캐, 청동북


지난 글에서 청동북이 과거 베트남인[1]에게 중요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였으나, 중요했던 사례도 하나 있다. 그리고 이 사례는 청화(淸化, Thanh Hóa) 현의 단 네(丹泥, Đan Nê) 산 혹은 카 라오 산(可牢山, Khả Lao) 위에 있는 동고신사(銅鼓神祠)라는 사당을 언급할 때이다.

19세기 지리지인 대남일통지(大南一統志)를 보면 이 동고신사에 대한 구절이 있다. 그 구절은 다소 혼잡한데, 단 네 산에 있는 사당뿐만 아니라 동고신에게 봉납한 신전이 수도(하노이)에 세워졌다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정보는 두 곳에서 섬긴 한 위(位)의 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해당 구절을 여기에 번역하고, 아래에 평을 달겠다. 


[17 hạ/5a] 동고신사는 안정 현(安定縣)의 단니산(일명 가뢰산)에 있다. 옛날 웅왕 때 [17 hạ/5b] 점성을 정벌할 때, 가뢰산에 병사를 주둔시켰다. 밤에 꿈을 꾸었는데 신인이 아뢰길 "원하건대 청동북과 청동 북채(銅桴)[2]를 얻어 왕께서 싸움에 이기는 것을 돕고 싶소."라고 했다. 양 진영(陳)이 마주치자 공중에서 은은히 쇠북(金鼓) 소리가 들리더니 과연 전승(全勝)하였다. [웅왕이 신인을] 동고대왕(銅鼓大王)으로 봉했다.  


이태존(李太尊)이 태자였을 때, 점성(占城)을 정벌하라는 명령을 받들었다. 밤에 꿈을 꾸었는데, 융의(戎衣)를 입고 보검을 든 사람이 말하길 "신(臣)은 동고산신(銅鼓山神)입니다. 원컨대 [태자 전하를] 따라 공을 세우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일이 평정되자, 사당을 세워 이를 제사 지냈다. 

훗날 황제(帝)에 즉위하고는, 또 꿈을 꿨는데 신이 시를 가져다 보이기를 삼왕(三王)이 변사를 도모한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러했다. 그 공으로, 황제께서는 [동고산신을] 천하맹주(天下盟主)로 봉하고 상등신(上等神)의 반열에 추가했다. 매년 사당 앞에 단을 쌓고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은 맹세(誓書)를 읽게 하였다. “신자(臣子)의 도(道)란 강상(綱常)에 엮인 것이다. 아들이 되어 불효하거나, 신하가 되어 불충한다면, 신명(神明)께서 조용히 비추시어, 그 가문을 멸하시리라.” (臣子之道, 系乎綱常, 爲子不孝, 爲臣不忠, 神明默鑒, 殄滅其門)[3]


려(黎) 씨 중흥 초에 막 씨의 병사(莫兵)가 영녕(永寧, 지금의 영록永綠)과 안정(安定)의 여러 현으로 쳐들어왔다. 여 씨 수군(舟師)은 배를 마강(馬江) 상류에 댔다. 야간에 수 백 리 밖에서 북 소리가 세 번 났다. 여 씨의 장수가 사람을 시켜 정탐해 알아보게 했더니 북소리가 가뢰산 속에서 울려퍼진다는 것이었다.  

이튿날 이들은 막병을 추격했다. 교전 중에 바람이 몰아치고 조수가 차올랐다. 순풍에 돛을 펼치니 수군은 용기가 백 배가 되었다. 막병은 대패하였다. 

홍정(弘定) 연간에 [동고산신에게 새 작위를] 봉하였다. [17 hạ/6a] 말이 전해지기를  "강 바람과 조수(潮)[4]가, 삼군(三軍)의 승리를 크게 도왔구나" (江上風潮, 大助三軍之勝)라고 하였으니, 옳은 말이다.

경흥(景興) 연간에 항상 노란 우산이 조천관(朝天館)에 보였다. 삼일이 지나자 비로소 사라졌다. 또 하루는 날이 저물려는 무렵 사당 안에서 먹구름(雲陰)이 사방(四合)을 가리고 비바람에 세게 몰아쳤다. 사람들이 멀리서 이를 보았는데, 흑룡이 하늘에서 꿈틀대며 [사당으로] 내려왔다. 날이 밝은(旦) 뒤, 가서 보니 비늘과 발톱이 그대로 있었으니, 그 영험함이 나타나기(靈顯)가 이와 같았다.  


이조(李)에서 여조(黎)까지, 매년 봄이 되면 출병일에 장수들이 모여서 맹세를 했는데, 반드시 신을 모셔 [맹세식을] 보게 하였다.[5] 여씨의 소전(少傳, 보좌) 원문해(阮文楷, Nguyễn Văn Khải)가 쓴 시[6]에 따르면,  

峰拱炤水灣環 태봉에 마주보고 비추니 물굽이 돌고
毓秀鐘靈在此閒 빼어난 인물 내는 종(鐘)은 이 사이에 있다.
壇上翻瓢消旱魃 제단 위에 뒤집힌 표주박은 가뭄 귀신을 물리치고, 
空中敲鼓走狂蠻 공중의 북소리는 미친 오랑캐를 달아나게 한다. 
龜碑石篆經霜綠 거북이 비석에 전서로 새긴 경전은 푸른 녹이 서렸고,
鳳札金章炤日丹 봉황무늬 명찰과 금빛 문장에는 일월이 비춘다. 
今古迭更棋幾局 옛날과 지금 사이 바둑을 몇 대국이나 두었던고?
凛然正氣舊江山 여전히 늠름한 정기는 옛 강산이로다.


사당 안에는 청동북이 하나 있는데, 한 면이 약 100근이 나간다. 원지름은 1척 5촌이며, 높이는 2척이 넘는다. 속은 비었고, 바닥은 없다. 모퉁이는 살짝 흠집이 나있다. 윗면에는 구층권(九層圈, 동심원이 9개)이 그려져있다. [북의] 허리는 묶여있어서 배꼽(臍)이 가려져있다. 사방에 매듭(絡索)을 지었다. 만자문(卍字文)이 과두(蝌蚪, 올챙이) 모양이다. 시간이 흘러 마멸되어 읽을 수 없다. 서로 전하기를 웅왕(雄王) 시절에 만들었다고 한다. 

여조 말기 참칭자 서산(떠이 썬)이 침략해와서는 [북을] 부춘(富春)으로 싣고 돌아갔다. 그 후 후록현(厚綠縣) 사람이 [17 hạ/6b] 다시 강기슭에서 이를 얻었다. 이로 말미암아 살피건대, 반납(報納)해서 사당으로 다시 돌려놓아야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지금도 있다. 


- 위의 구절은 웅왕이 참파(Champa)[점성, 占城 Chiêm Thành]를 상대로 군사 정벌에 나서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필자는 당연히 웅왕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웅왕이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이 구절은 여전히 문제적이다. 어느 역사적 연표에도 이런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참파는 웅왕의 시대(기원전 천년기)였을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다. 

문제삼지 않아도 되는 것은 왕이 꿈을 꿨는데 신령이 나타나서 도움을 주었다는 사상 일반이다. 이는 과거 "중화권" 식자층이 만든 각종 이야기의 흔한 "소재" 혹은 "테마"로, 홍하유역에서 한반도까지 중화권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이태종을 언급하는 위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신령이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 베트남인과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필자는 동고신사가 위치한 곳이 단 네 산, 혹은 카 라오 산이라고 불렸다는 것이 흥미롭다. "단 네"와 "카 라오"는 베트남 이름이 아니다. 이는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적어도 원래는) 베트남인과 다른 민족이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한편, 아래 게시물에서 언급했듯이, 옛날 베트남 식자층은 자기들과 다른 사람들과 청동북을 연관시켰다. 

다시 말해 청동북을 사용한 사람들은 베트남인과 달랐고, 베트남인은 단 네/카 라오 산(적어도 처음에는 베트남인과 다른 사람들이 살던 곳)에 사당을 지어 청동북의 신을 모셨다. "공중의 북소리는 미친 오랑캐를 달아나게 한다(空中敲鼓走狂蠻)"는 말 그대로, 신은 베트남인이 자기들과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것을 도왔다.  

필자가 보기에는 베트남인들이 "오랑캐"로부터 강력한 무언가(예를 들자면, 청동북)를 빼앗고는 그 물건과 연관된 힘을 이용해 "오랑캐"를 물리치려 했던 것 같다.  


기원후 1세기에 "중국인" 장수 마원(援)은 이 지역에서 청동북을 탈취해서, 녹이고, 청동 말로 다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일이 행해진 이유 중 일부는 아마도 현지의 지배계급으로부터 힘을 뺏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 지배계급은 마원이 "오랑캐"라고 본 사람들이다. 

그로부터 대략 1,000년 후, 베트남인이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원이 공격한 청동북을 두드리던 오랑캐와 1,000년 뒤에 베트남이 공격한 오랑캐는 어떤 관계일까? 그리고 그 당시(~기원후 1100년)의 베트남인은 누구였을까? 왜 이들은 마원 같은 "중국인" 장수와 그토록 유사했던걸까? 왜 이들은 청동북을 지닌 자들을 "오랑캐"로 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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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트남인: 리암 켈리 교수는 베트남의 민족과 문화를 이야기할 때, 현대 국가인 "베트남"이 아니라 비엣(Việt)이라고 끊임없이 부른다. 여기에 대해서는 청동북을 두드리던 사람들은 어디로? (1) 포스팅 참조. 본인은 이들을 (베트남의 주류 다수 민족이라는 의미로) "베트남 민족"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2] 북채: 
"처음에 (북을) 만들면 뜰 한가운데에 놓고 동족(同類)을 부른다. 사람이 와서 문까지 (뜰을) 가득 채운다. 부호(豪富)의 딸이 금과 은으로 만든 비녀로 북을 두드리고는 주인이 갖게 내버려둔다." (안남지략 中)

"처음에 (북을) 만들면 뜰에 걸어놓는데, 술을 마련하고 동족을 부른다. 부호의 자녀가 금은으로 된 큰 비녀로 북을 두드린다. 비녀를 남겨놓아 주인에게 넘겨준다." (대남일통지 中)


[3] 맹세: 영국 북보르네오 회사가 보르네오 섬의 원주민에게 맹세시킨 내용. (헤드헌터의 농담 中)
"나는 영국 북보르네오 회사 정부(Government of the British North Borneo Company)의 권위를 따르겠습니다.† 무룻 족과 펠루안 족† 사람은 이제 하나의 마음입니다.† 만일 내가 무룻 족 (펠루안 족이 맹세를 하는 경우) 사람을 죽인다면† 나는 물가에 가도 물을 마실 수 없고† 정글에 가도 먹을 수 없을 것이며† 내 아비가 죽을 것이고† 내 어미가 죽을 것이고† 내 아내가 죽을 것이고† 내 아이들이 죽을 것이며† 내 집에 불이 날 것이고† 내 논에 벼가 자라지 않을 것이고† 고기잡이를 가서 한 마리도 잡지 못할 것이고† 내 목숨이 달아날 것입니다. (중략)"
주석 [5]도 참조.

[4] 조수: 潮의 오르내림은 베트남 고대사를 언급하는 기타 문헌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며, 해석이 분분하다. 해당 본문에서도 강에서의 전투를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바닷물"이라고 직역하는 것은 어렵다.

위 구절에서 또다른 흥미로운 점은 락밭이 "조수(潮水)의 오르내림"을 이용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을 "홍수(floodwaters)로 물이 불고 주는" 대신에 "바닷물의 조수간만"이라고 번역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든, 필자가 주장하는 바는 이 구절이 범람하는 물(floodwaters)을 이용한 벼 농사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5] "반드시 신을 모셔 [맹세식을] 보게 하였다."

"나는 이 막대기를 자르기를† 마치 내 목을 자르는 것처럼 합니다.† 위대한 영혼(the Great Spirit)이 내 증인입니다.† 내가 만일 살인을 하거나 머리사냥을 한다면† 이 막대가 다시 자라날 것입니다.† 나는 영국 북보르네오 회사의 명령과 풍속을 따릅니다.† 나는 진심으로 이 맹세를 하며,† 회사에게 인두세(poll-tax)를 낼 것입니다.†"

[6] 원문해의 시: 리암 켈리 교수님은 굵은 글씨로 된 두 줄만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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