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1500년 발견된 진시황의 옥새, 그 결말은? Post-Superfluous Things (3) 雜同散異 Superfluous Things

Antiquarianism and Intellectual Life in Europe and China, 1500-1800의 6장, "Artifacts of Authentication: People Making Texts Making Things in Ming-Qing Chin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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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와 명대에 발견된 두 도장이 모두 진품일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마 둘다 아녔을 것이다), 이 발견을 언급한 명의 관료들은 송대의 사례를 역사적 선례로 인용했다. 발견한 옥새의 각인이 진나라 옥새라고 기록된 각인과 일치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웅충(熊翀)은 (13인의 송대 고관들처럼) 징표를 해석하는 입장에서 각인을 읽고 있었다. 옥새가 옛 진나라 수도인 장안(오늘날 서안)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비록 옥새는 진, 한을 거쳐 후대 왕조까지 수 세기 동안 장안에 있었으나, 후당 때 불타버렸을 때는 장안에서 동쪽으로 350 킬로미터 떨어진 낙양에 있던 것으로 보고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장이 만들어진 곳에서 신비롭게도 다시 나타났다는 점은, 징표이자 상징물로써 말이 된다. 이는 1096년의 발견 사례에서 확연히 드러나는데, 이 때에도 전국새는 마찬가지로 (13인의 고관이 전국새를 만든 옥의 원산지라고 지적한) 서안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웅충 등의 관료가 발견한 옥새의 해석이 학문적 해석과는 무관하게 순전히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인 문제였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해석은 역사 지식과 기록의 활용에 기반해 있었다. 웅충은 상당한 크기의 서재의 주인이었으며, 이 서재는 특히 경서와 사서 분야의 서적이 잘 구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웅충은 아마도 지방에 부임한 동안에는 고향집에 있는 서재를 활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웅충의 첫번째이자 가장 어려운 할 일은 옥새에 쓰인 옛 문자를 해독하는 것이었다. 1500년에 발견된 옥새의 문자 형태는 전해지지 않지만, 실제 전국새를 따라 그렸다고 주장하는 그림은 남아있다. 전국새의 명문은 한문을 멋들어지게 재구성해서 새나 다른 동물의 모양이 되도록 만든 조문(鳥文, 조어문鳥魚文, 어문魚文, 용문龍文 등으로도 불린다)의 과장된 형태였다. 이렇게 장식적이고 보기 드문 글자 형태를 찾아보는데 명대 초기의 옛 글자 자전은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표준적인 사전은 전국새의 명문 내용을 실었고, 자세한 사전의 경우에도 명문의 형태를 (글로) 묘사하는데 그쳤다. 명문 자체를 재현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옥새를 검토했고, 성과를 보았다.

웅충이 제출한 옥새 발견 정황에는 정확한 위치와 시간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전형적인 징표 발견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시간과 장소는 징표를 해석할 수 있는 체계의 일부였기 때문에 중요했다. 년도, 날짜, 시간은 우주론적인 의미가 있었으며, 공간 상의 상관관계도 그러했다. 발견자는 옥새를 해독할 수 없었던 반면 웅충의 전문 지식을 통해서만 옥새를 알아볼 수 있었다는 점은, 계획이라기 보다는 우연한 발견에 가깝다고 보임으로써 발견의 진실성을 담보했다. 더 극단적인 사례에서는 까막눈 몽고인이 원나라(1279-1368) 때인 1294년에 전국새를 발견했다. 당시 주장에 따르면, 문맹인 사람이 이 옥새를 거짓으로 꾸몄을리는 없다는 것이었다.[1] 의도치 않은 민간 출처라는 것은 역사가 현재로 분출해나왔음을 보였다. 이는 인위적인 조작이라기 보다는 우연한 출현이었으며, 발견 장소가 말이 안 된다는 점도 여기에 부합했다. 

전국새와 보고서가 1500년 음력 7월 황궁에 당도하자, 이 문제는 신임 예부상서 부한(傅瀚, 몰년 1502)이 담당했다. 부한은 능숙한 징표 해독가였다. 그의 일대기에 따르면, 부한은 수도에서의 "불규칙한 별의 움직임, 지진, 비, 우박"과 지방의 "여러 이상현상"를 보고는, 황제에게 이와 같은 현상을 덜 빈번하게 하기 위해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고 간언하였다. 또한 논란의 소지가 있는 징표는 돌려보내기도 하였다. 같은 1500년에 부한은 상서로운 알비노 까치를 바친 것을 비판했다. 그는 섬서 지방에서 온 옥새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부한은 먼저 새로 발견한 옥새와 역사적인 기록에 나온 묘사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부한이 인용한 책 제목은 도종의(陶宗儀, 1316-1403)의 남촌철경록(南村輟耕錄) 뿐인데[2], 이 책은 신변잡기적인 기록과 다른 책으로부터 베낀 구절의 모음집이다. 철경록은 도장의 명문과 도장을 장식한 짐승 모양을 재현해놓았다. 부한의 생각으로는, 철경록이 편찬되기 400년이나 전에 전국새가 자취를 감췄고, 10세기 이래 나타난 다양한 옥새가 모두 위조품이라는 것이었는데, 이런 부한이 철경록이 얼마나 권위가 있다고 보았는지는 불확실하다. 더욱이 철경록 자체에도 서로 다른 내용이 쓰인 두 가지 버전의 전국새가 실려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한의 문헌 자료가 웅충의 (접근이 어려운) 서재를 압도했다.  

▲ 그림1. 진나라 옥새의 두 버전. 명문은 (위에서 아래로, 우에서 좌로) "하늘로부터 명을 받았으니, 수명은 길고 창대하리라 (受命于天, 旣壽永昌)"이라고 읽힌다. 출처: 도종의, 남촌철경록 [3]

그러나 역사적 진위여부를 따지는 것은, 옥새와 그 중요성에 대한 원론적인 비판의 서막에 불과했다. 

생각컨대, 도장()의 쓰임은 문서를 식별하고 위조를 방지하는 것이지, 보물로 간직하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시황이 람전(藍田)에서 옥을 얻어 도장을 새긴 이래, 한나라 이후로 이것이 전하여 쓰였습니다. 이로부터 꾀와 힘으로 (전국새를) 다투어 취하고는 말하길, 이 도장을 얻으면 곧 천명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도장이 없으면 몹시 부끄러워 하며 천명이 떠나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알지 못한 것은 천명은 덕으로 받는 것이지, 도장으로 그 경중을 따질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까닭에 전국새를 구해도 못 얻자, 스스로 새겨 위조함으로써 애써 사람을 속인 것입니다. 혹시 이를 얻으면 진나라 옥새라며 떠들어대며, 임금과 신하가 기쁜 낯빛을 하고, 거듭 잔치를 벌이고, 두루 제사를 지냄으로써 천하에 과시하였습니다. 이는 모두 천 년 동안 웃음을 살 일입니다. [4]

부한은 훈계조로 말하면서 전국새가 때때로 발휘하는 권력 정당화의 힘을 부인했다. 더욱이 기존의 명나라 옥새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하며, 새로운 유물을 수용함으로써 세워지는 새 기준이 왕조의 안정을 뒤흔들 위험이 있다고 날카롭게 경고했다:

여러 성왕이 서로 잇고 조상의 가르침에 따른지 100 여 년이 되었는데, 옛 도장 없이도 천명을 받고 장수번창하는 복을 여전히 성대하게 내려받았습니다. 황상께서는 큰 덕을 무성히 내리비추고, 천명을 게을리하시지 않고, 성스러움이 지극하시어 만복에 이르고, 종사가 존안합니다. 참으로 도장으로부터 하늘의 보살핌을 받을 것을 기다리시지 않아도 족합니다. 

부한이 보기에 정권의 정당성을 보다 더 안정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방법은 현 왕조의 선례와 도덕성이라는 보다 실체가 없는 기준을 통해서였다. 이제 도장과 관계자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의 문제가 남았다. 부한은 이 사안을 조용히 덮을 것을 주장하였다:

미천한 자들은 지금 이 섬서 지방에서 나온 옥새를 곧 하늘이 내린 신부라고 여기어 번갈아 바치며 아첨한 것입니다. 대개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은 스스로 알지 못하였을 뿐이니, 지금은 내탕고(內府)에 보관하여 한가할 때의 구경거리 삼음으로써, 성덕을 드러내시고 사람들의 마음을 바로잡으시옵소서. 신 등의 가장 지극한 바람이옵나이다.

황제는 부한의 제안을 따랐다. 옥새를 찾은 군인은 적당한 보상을 받았고, 웅충의 관직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옥새를 (진품이라) 믿을 것인지 여부는 징표와 상징물로서 옥새가 갖는 의미에 종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옥새가 갖는 상징적 의미와 진품이라고 믿을 것인지 여부가 완전히 분리된 두 사안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옥새라는 징표를 진상하는 이들이, 황궁에서 이 옥새를 기쁘게 받아들이리라고 기대한 이유는 두 가지 가정에 기반하고 있었는데, 옥새를 진품이라고 믿을 것이라는 가정 뿐만 아니라, 옥새를 긍정적인 신호로 볼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한 것이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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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맹인 사람한테 나왔으니, 외부 문헌의 영향을 받지 않은게 틀림없어!"라는 가정은 상당히 위험하다.
  
"다시 말해, 이야기는 '민중'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식자층이 만들어서 인쇄매체로 전파되고, 전체 과정 상 상당히 늦은 시점에서 까막눈 농민에게 구전으로 전승되곤 했다는 것이다."

[2] 더 정확히는, "남촌철경록 등"을 인용했다고 써있다. (아래 명실록 기사 참조.)

[3] 러스크 교수는 위에서 "워딩"이 다른 두 가지 버전을 이야기 하는데, 정작 그림에는 같은 명문이 쓰인 두 버전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구글 북스에서는 그림을 가려서 확인이 어렵다) 우선은 가장 명문 내용이 다른 두 버전(필경유본과 향거원본)을 올린다.

[4] 이 기록의 출처는 명실록 7월 24일 3번째 기사. 이하 인용문도 모두 명실록의 같은 기사 출처. "명사"에는 같은 내용이 축약되어있다. 

[5] 웅충이랑 구닌들이 옥새를 갖다바쳤다는 것은, 황제와 중앙관료들이 이걸 진품이라고 볼 것은 물론이고, 긍정적 징표로 해석할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있었다. 그리고 이 두 가정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진품이면 긍정적 징표지만, 짝퉁이면 아냐."도 있었지만, "이건 왕조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부정적 징표야. 그러니 가짜야!" 같은 식으로 양방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결론: 전국새의 진위 여부와 길흉 여부는 쌍방향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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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중은우시 님의,

그나저나 전국새... 미스캐토닉 대학교 연구팀이 남극에서 발견할 법한 유물로 보이지 않습니까ㅏ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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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haind 2018/03/19 09:26 # 답글

    "철학자들을 생매장하여 학살하고 모든 책을 불태워 없애며 불로장생의 마법에 광분한 사악한 고대 중국 황제의 직인" 이라면 확실히 미스캐토닉 대학에 자리가 있을 법 하죠.
  • 남중생 2018/03/19 09:46 #

    인어의 기름으로 불을 밝히고, 수은으로 강을 판 황제... 테케리-리!
  • Kokuhaku 2018/03/19 10:33 # 답글

    다들 크게 한 번 낚여서 난리법석을 피워주어야 재밌는거슬...
  • 남중생 2018/05/03 17:07 #

    송나라 1096년 사례를 포함해 여러 번 거하게 낚이다보니, 부한이 “이제 그만...” 한거죠^^
    양치기소년이 주운 전국새!
  • 바람불어 2018/03/19 13:51 # 답글

    부한이란 사람 자신의 정치적인 계산도 있었겠지만, 정당성을 과거의 유물이 아닌 현재의 정치에서 찾자는 얘기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이네요.
  • 남중생 2018/03/19 14:02 #

    동감입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조상의 유훈”이나 왕조의 “덕” 같은 개념을 현대인이 말하는 “현실정치”와 나란히 놓을 수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얼마 전 청와대 도장 스캔들(?)에서도 볼 수 있듯, 정치적 상징물은 여전히 중요성을 띠는 것도 사실이지요.
  • 초임당 2019/01/03 00:44 # 삭제 답글

    전국옥새의 명문 해석이 다르게 전해지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기수영창 수명어천?기수영창 수명어천의 뜻으로 해석 된다?등등..
    역사 중간에 글자를 다르게 다시 새겼다는 설등..
    설 말고 기록을 어떤 책을 통해 알수있을까요?
    가장 신빙성있는 답을 구합니다.
  • 남중생 2019/01/03 02:08 #

    "전국새의 명문은 한문을 멋들어지게 재구성해서 새나 다른 동물의 모양이 되도록 만든 조문(鳥文, 조어문鳥魚文, 어문魚文, 용문龍文 등으로도 불린다)의 과장된 형태였다."

    읽기 쉽게 쓴 글씨가 아니라 해독해야하는 서체였기 때문이 아닐까요?

    기록은 사료 기록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기록을 바탕으로 하는 학설을 살펴보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러스크 교수님은 이 글을 마무리 지으면서 조수명의 저서(http://inuitshut.egloos.com/1933361
    )를 언급하고 있으니, 그 책을 포함한 연구를 참고하시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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