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진시황의 옥새를 발견했는데... 이제 어쩌면 좋지? Post-Superfluous Things (2) 雜同散異 Superfluous Things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UBC)의 브루스 러스크 교수님 글을 지난  포스팅에 이어서 번역합니다.
Antiquarianism and Intellectual Life in Europe and China, 1500-1800의 6장, "Artifacts of Authentication: People Making Texts Making Things in Ming-Qing Chin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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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의 옥새

홍치(弘治) 13년(1500년) 음력 7월, 북경의 황궁에 파발이 도착했다. 파발은 황궁으로부터 서남쪽으로 920 킬로미터 떨어진 서안(西安)으로부터 옥새와 두 관료가 쓴 보고서를 가지고 왔다. 지역 주둔군 사령관 양경(揚敬)과 섬서도어사 (陕西都御史)[1] 웅충(1469년 진사 합격)이 보낸 보고서는 다음과 같다:

서안부(西安府), 호현(戶縣), 도안리(道安里)의 군인 모지학(毛志学)이 스스로 말하길, 올해 6월 22일(1500년 7월 17일) 오()시, 도안리 조륜촌(趙倫村)의 강가에서 씻던 중, 문득 옥새 하나를 얻었다고 합니다. 신 등이 그 전서로 쓰인 문구(篆文)를 풀어본 즉, "수명우천 기수영창(受命于天 旣壽永昌)"이라는 여덟 글자였습니다. 뒷면에는 이무기(螭) 모양의 손잡이가 달렸으며, 그 색깔은 씻은 듯이 희고, 이상한 광채를 띱니다. 두께는 1촌[약 3.2 cm], 손잡이를 포함해서 2촌이며, 둘레는 1척 4촌 4푼[약 45 cm]입니다. 전문(篆文)은 명랑하고, 새겨진 무늬는 기이하고 오래되었으며, [옥에는] 흠(瑕)이 없습니다. 순무우도어사(巡撫右都御史) 웅충이 증험하기를, 이는 역대의 전국새(傳國璽)입니다.
(西安府户縣道安里軍人毛志学,自言本年六月二十二日午時,在本里趙倫村沿河邊洗澡,忽得一玉璽。臣等辨得篆文爲“受命于天,旣壽永昌”八介字,背有鈕,其色洗白,光彩異常。厚一寸,連兩寸,方圓一尺四寸四分,篆文明朗,刻畵奇古,無瑕。巡撫右都御史熊驗定,此爲歷代國璽)

이 물건이 도착하자 관료들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웅충이 말한대로 전국새가 맞을까? 그렇다면 이 옥새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 아니라면, 옥새와 옥새 관련 인물을 어떻게 해야할까? 벌을 주어야 하는가? 관공서의 도장을 위조하는 것과 거짓 보고서를 올리는 것 모두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였다. 반대로, 웅충이 말한대로 그 옥새가 1700년 된 유물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방에서 올라온 보고서와 수도에서 보인 반응을 보면 이 옥새가 잠재적인 징표로 읽혔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징조를 알리고 분석하는 관료들의 보고는 적어도 한나라 때(202 BCE -220 CE)부터 있었으며, 이러한 보고는 인간세계의 사건과 자연세계의 사건 사이가 연결되어 공명한다고 간주하는 우주론을 통해 이해되었다. 이 우주론에서는 황제가 핵심이었는데, 황제는 "하늘의 아들" (천자)로서 땅과 하늘 사이의 간의 최고 중개자로 일했다. 이러한 도식 내에서, 이상 현상이란 인간세계를 향한 [하늘의] 응답이었으며 풀이할 수 있었다. 성왕의 탄생을 가리키는 신비한 짐승 같이 긍정적인 응답도 있는 한편, 인간 질서가 타락했음을 알리는 부정적 경고도 있었다. 울프람 에버하르트(Wolfram Eberhard)와 코지마 츠요시(Kojima Tsuyoshi)가 각각 한대와 송대(960-1279)의 사례를 통해 보였듯이, 인문적 우주론과 징표 읽기는 정치적 결과를 좌우하는 외적 요소가 아니라, (황제들, 관료들, 환관들을 포함한) 정치 집단 간의 경쟁의 언어가 되었다. 대부분의 징표는 (생물학, 천문학, 기상학의 범주에 해당하는) 자연현상이었던데 반해, 사회정치적 질서와 감응할 줄 아는 물건인 경우도 있었다. 이중 가장 유명한 것은 상고시대에 우왕이 만들었다고 하는 9개의 솥(九鼎, 구정)이다. 구정은 통치 자격을 감별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2] 덕이 있는 군주의 궁궐에 이 솥이 놓이면 무거워서 옮길 수 없었으나, 간악한 군주의 치세 때는 솥이 가벼워져 쉽게 치울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궁궐에 이 구정을 설치하는 것은 정부의 정당성을 상징했다.[3] 한나라의 전설에 따르면, 앞선 진나라(221-206 BCE)의 시황제가 강에서 구정 중 하나를 건져 올리려고 했을 때 용이 나타나 방해함으로써 시황제의 간악함이 드러났다고 한다.

전근대의 역사학자들도 익히 알고있던 역사 속의 모순은, 정당성 계량기로써 구정을 대체한 것은 바로 진시황의 돌 도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솥(향로)은 제국시대[4] 이전 통치 방식의 적절한 상징물이었다. 당시의 왕은 청동기를 통해 제례를 수행했으며, 동시에 부와 권력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솥이 제국 이전의 통치("봉건" 통치라고 불리기도 한다)의 핵심에 있는 제례 질서, 천연자원과 인적자원의 통제, 혈연 및 의로 맺어진 혈연 관계[5]를 상징했다면, 이를 대체한 통치 방식을 상징하는 물건으로는 도장만 한 것이 없었다. 상속받지 않는 관직 간의 더 추상적인 관계로 이루어졌으며, 규율과 기록으로 진행되는, 관료화, 법제화된 국가의 통치 방식을 말한다. 서주 왕조(약 1045-770 BCE)의 왕은  (봉건 군주들에게) 권력을 위임할 때, 청동 그릇의 안쪽에 위임하는 내용을 새겼다. 청동기에는 동맹이나 전투 같은 중요한 사건을 기록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행위의 목표는 황제와 (실제, 혹은 만들어진) 친족 간의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시공을 초월해 확장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한편, 도장은 개인적 접촉이 없더라도 문서의 진실성을 보증했으며, 기계적인 복제를 통해 하나에 매인 여럿의 의존성을 강조하였다. 임금의 만백성이 마치 하나의 도장에서 나오는 무한한 인감과도 같이, 단 한 명의 주군과의 관계에 매여있다는 것이었다. 비록 한나라와 그 이후의 왕조들이 진나라의 정치체제를 가혹하고 비인간적이라는 이유로 거부한다고 표현했지만, 기본적으로 진나라가 만든 관료제 제국이라는 구조에서 벗어난 왕조는 없었다. 진나라의 옥새는 한나라 때 "전국새"라는 이름이 붙었고, 계속해서 국정 통치수단으로 쓰였다. 이후 제위를 찬탈한 왕망(王莽, 45 BCE -  23CE)은 자신이 세운 신나라(新, 9 - 23)의 정당성을 세우기 위해 전국새를 찾으려 애썼는데,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전국새는 하늘이 굽어살핀다는 귀중한 증거가 되었다. 역대 정사(正史)에 따르면, 전국새는 후당(後唐, 923-36)까지 전해지다가, 후당의 마지막 황제가 궁궐에 불을 피워 분신자살하면서 전국새도 파괴되었다고 전한다. 

전국새는 그 뒤로도 여러번 재등장했다. 이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1096년에 서안 근처의 농부가 밭을 갈다가 발견한 옥새를 황궁으로 바친 것이다. 13명의 고관(高官)이 보고하기를 옥새가 정사의 기록과 일치한다고 하였으며, "전문(篆文)과 솜씨가, 모두 근세의 것이 아니니(篆文工作,皆非近世所为)," 진대 유물이 틀림없다고 보고했다.[6] 황제는 옥새를 받아들이기 위해 의식을 장대하고 경건한 의식을 거행했으며, 단식을 하기도 했다. 옥새를 발견한 자에게는 선물과 관직명을 하사했다. 옥새가 나타난 것은 신령한 가호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었으며, 중대한 정치적 사건이었다. 이윽고 1098년에는, 상서로운 징표라는 뜻의 "원부(元符)"라는 새 연호를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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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섬서... 도사... 두꺼비 도사...

[2] 벌거벗은 임금님...?!

[3] 정약용은 이 무거운 구정을 옮기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옛날 주(周) 나라가 강성했을 때 무왕(武王)이 구정(九鼎)을 낙읍(雒邑)에다 옮기고, 선왕(宣王)이 석고(石鼓)를 봉상(鳳翔)에다 세웠습니다. 이 두 물건은 비할 데 없이 무거운 것들인데, 무왕이나 선왕의 어질고 또 슬기로움으로써 어찌 백성의 어깨에 땀이 배게 하고, 백성의 종지뼈가 끊어지도록 하고, 구부(九府)의 재물을 다 소비해가면서 그러한 일을 했겠습니까? 《예기(禮記)》에, “무거운 솥[鼎]을 움직이는데 그 힘을 헤아리지 않는다.” 하였는데, 아마 꼭 그러하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옛 성인(聖人)들은 소리개의 꼬리를 보고 배를 만들었고, 쑥대[蓬]가 날고 송곳[觿] 자루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수레를 만들었으니, 그것을 볼 때, 반드시 기구를 만들어 편리하게 사용토록 하여 뒷세상까지 그 은혜로움을 남겼을 터이나, 지금까지 전해온 것이 없으니 애석한 일입니다. 응소(應劭)가, “태산(泰山)에 무제(武帝) 때의 돌이 있는데 다섯 대의 수레로도 실을 수가 없어서, 그대로 두고 집을 지었다.” 한 것을 보면, 서경(西京) 시대 이후로 이미 기구를 사용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이제 그 전해 남은 것은, 뱃사람들만이 쓰는 활차(滑車)가 그것입니다. 대개 돛은 무겁고 돛대는 높아서 몇 사람이 일으켜 세우는데, 장대의 끝에 있는 활차가 돌아서 힘을 덜어주지 않는다면, 어찌 중간에 그치거나 꺾임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옛사람들이 남긴 뜻을 취하고 새로운 제도를 참고해서, 기중 소가(起重小架)를 만들어 수원성(水原城)을 쌓는데 사용토록 하였습니다." (적륜재, 번외편: 거중기와 기기도설. 中)

마법스러운 통치 정당성이라니, 도르래의 원리를 썼겠지... (동심파괴)

(근세/근대 동아시아에서 서양학문을 도입하면서도 중국 경전에서 그 유래를 찾는 현상에 대해서는 팜 꽝 산의 복고운동 포스팅 참조!)


[4] 영미권 학자들은 중국사를 말할 때,
하은주 (Pre-Imperial), 진한(Early Imperial), 수당송(Mid-Imperial), 명청(Late Imperial)
이라는 시대구분을 쓴다. 

[5] 한 솥 밥 먹는 식구...

다만, 해당 인용문은 길공구 님의 포스팅에 없다. 송사(宋史) 154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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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解明 2018/03/16 20:41 # 답글

    홍치제의 매력이 100이 되었습니다.
  • 남중생 2018/03/16 21:23 #

    [태평성대] 매력이 100이 되면 새 연호를 지정할 수 있습니다!
  • 나인테일 2018/03/16 23:53 # 답글

    솥이란건 아무래도 종교용품이기도 했으니 법을 집행하는 세속군주로 이행하는 매우 중요한 상징이었군요.
  • 남중생 2018/12/02 15:51 #

    네, 그리고 솥에 새겨서 봉하는 행위를 무한복제할 수 있게 도장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러스크 교수님의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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